194 : “안녕하세요…. 형.” (2)
“그래. 뭐야. 학교 왔으면 연락하지 그랬어?”
정지수 선생님, 아니, 아직은 형이라는 호칭이 어색한 한국대 프린스가 나를 친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다.
“아. 그게, 갑자기 온 거라서요. 그리고… 학교에 계시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형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역시 어색하다.
“그렇구나. 옆에는 친구들?”
“네. 제 친구들.”
그제야 친구들이 프린스에게 인사한다.
다들 ‘왜 프린스가 한수에게 살갑게 말을 건네고, 왜 한수 저 자식은 프린스에게 형이라고 하는 거야?’ 그런 눈빛을 하고 있지만, 일단 진짜 친구의 아는 형에게 인사하듯 ‘안녕하세요?’ 그렇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그럼 다 우리 후배님들?”
“네. 제 동기랑 후배들.”
“그렇군요. 반가워요. 나중에 같이 밥 한번 먹어요.”
갑작스러운 식사 제안에 다들 놀랐는지,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뭐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국대 프린스, 학교 내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흔히 말하는 셀럽이 밥 먹자고 하는데, ‘네! 좋아요!’ 하기도 그렇고, ‘그건 좀 부담스러운데요’ 같은 소리를 하기도 그렇겠지.
프린스는 그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날 바라보며 묻는다.
“그러면? 밥 먹고 이제 놀러 가는 중?”
프린스가 다시 나에게 물어본다.
“아니요. 저는 알바 가야 해서요.”
“알바? 카페?”
“네.”
“신림역 거기 맞지?”
“네? 네. 맞습니다.”
“그래? 잘됐네.”
“네?”
잘됐다고? 뭐가?
“나도 지금 나가는 길이거든. 중간에 내려줄게. 혹시 이 일행이 전부 다 가는 건 아니지?”
“아니요. 저하고, 이 친구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지연이를 가리켰다.
“그래? 다행이다. 그러면 태워줄게.”
“네? 아니, 괜찮습니다.”
본능적으로 그런 대답이 나왔다.
솔직히 아직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니까.
“어차피 나도 나가는 길이니까, 중간에 내려줄게. 부담 가질 것 없는데.”
프린스가 그렇게 말하는데,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프린스는 특유의 싱긋 미소를 짓고는.
“그래. 잠깐만 기다려줄래? 여기로 차 가져올게. 한 5분? 10분은 안 걸릴 것 같은데. 그리고 후배님들 만나서 반가웠어요. 다음에 진짜 밥 한번 먹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에게서 멀어져갔다.
우리는, 당연히 나도, 멍한 얼굴로 그렇게 멀어져 가는 프린스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프린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찬희였다.
“형?”
그 한 음절 안에 ‘도대체 어떻게 너 같은 미천한 것 따위가 감히 한국대 프린스를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지?’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지금 내가 헛거 본 거 아니지?”
이중훈도 그렇게 말한다.
웬만한 일로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김창회도 평소답지 않게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김창회도 그럴진대, 다른 사람들은 더하겠지.
승환이만 ‘너 이 자식. 또 무슨 짓 한 거야?’ 같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고.
에휴. 내가 이럴 줄 알았어.
***
그날, 프린스와 같이 과천까지 가서 점심을 먹었던 그 날, 프린스가 그랬었다.
“예전 일상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자연스럽게 거리를 걸어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긴 잡담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디에 있으니 소주 한잔하게 당장 달려오라는 전화를 받고, 그런 평범한 일상들. 어느 순간부터 그러한 일상들을 만들어주던 사람들이 주변에서 하나둘씩 멀어지고, 특별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다 보니 좀 마음이 답답해졌어요. 내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사람들이 원하는 누군가가 되어 가는 것만 같고. 그러다 후배님을 만났는데, 후배님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조금 무언가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전부 다는 아니겠지만, 완전히 이해 못 할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냥 길 가다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자판기 커피 마시며 가벼운 잡담 나누고, 이렇게 가끔씩 점심 먹고. 그냥 그렇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학교 선배처럼 느껴진다고, 방송가에서 탐내는 얼굴 천재 심리학 박사 한국대 프린스가 아니라, 사람 좋은 학교 선배 같다고.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했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말을 편히 해주시면.”
그런 내 말에, 사람 좋은 학교 선배가 씨익 웃고는.
“나도 조건이 있어요.”
그러고는.
“형이라고 불러주면.”
그렇게 말했다.
***
몇 번 만났다. 처음에는 우연히 유 선생님 연구실에서 만나서 안면을 텄고, 그다음에 학교에서 몇 번 보고, 병원에서도 한 번 봤다.
그러다가 아까처럼 밥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냥 인사치레로 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실제로 밥을 먹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괜찮은 사람 같다고. 방송에서 본 거나, 소문으로 들었던 것과 달리 진솔한 사람 같다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그리고 내가 먼저 ‘선생님하고 친해지고 싶습니다. 형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같은 개소리를 한 것도 아니고. 저쪽에서 먼저 ‘인사하고 지내자.’라고 이야기했는데, 또 유교탈레반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가 손윗사람의 제안에 ‘부담스러운데요.’ 같은 소리를 할 수도 없었다고.
내가 그렇게 설명해줬지만, 이 짜식들은 납득하는 눈치가 아니다.
뭐, 사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아니, 사실 지금의 나도 납득 못하고 있다는 게 정확하겠지.
그리고 사실 ‘형’이라는 호칭은 진짜 부담스럽다. 어색하고 그렇다. 일단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은데….
사실 유교적 관점에서 보면 ‘형’이라고 부르는 게 맞기는 하다. 공자님도 그랬잖아. 나이가 두 배 많으면 아버지처럼 대하고, 10년 차이 나면 형이라고 하고, 5년 차이면 친구 먹으라고★주석(年長以倍卽 父事之 十年以長卽 兄事之 五年以長卽 肩隨之)★주석 실제로 이항복과 이덕형도 다섯 살 차이가 났지만, 한 이불 덮고 잘 정도로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하고.
그런데… 그건 조선시대 이야기잖아.
일단 알겠다고 하기는 했는데, 막상 ‘형’이라고 부르자니, 또 실제로 불러보니 겁나 부담스럽다.
아무튼, 그렇게 설명을 했지만, 친구 놈들은 다들 나를 예의 따위는 모르는 무뢰배 쳐다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니, 바라보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뭔가 목적이 있을 거라느니 일종의 방자 같은 개념이라느니 착각하지 말라느니, 그런 소리를 한마디씩 던지고 있다.
젠장. 내가 이럴 것 같아서 이 자식들에게 이야기 안 한 건데.
아무튼, 그렇게 난리들을 치고 있는데, 어느새 다가온 차 한 대가 우리 옆에 와서 천천히 멈춘다.
주행거리 30만 넘어가는 구구구 아방이.
“미안. 기다렸지? 가자.”
열린 창문으로 프린스가 씽긋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 쉬었다.
***
운전석에는 프린스, 보조석에는 나. 그리고 뒷좌석에는 지연이가 앉아 있다.
“아, 거기? 거기 맛있지.”
우리가 떡볶이 시켜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프린스도 바로 아는 체를 한다.
“그 이야기 하니까 갑자기 먹고 싶네. 옛날에는 진짜 자주 갔었는데. 사장님 건강하신가 모르겠다.”
돈가스집 사장님처럼 떡볶이집 사장님하고도 잘 아는 사이인가 보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이 양반 진짜 나중에 출마하는 거 아닌가 몰라.
“그건 그렇고. 미안해요. 갑자기 방해꾼이 껴서.”
프린스가 룸미러를 힐끗 보며 그렇게 말한다. 뒷좌석에 있는 지연이에게 하는 말이다.
“네? 네, 아니요.”
지연이도 당황했는지 그렇게 말한다.
“1학년이죠?”
“네.”
“혹시 내 수업 들었어요?”
“아니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요.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다른 게 아니라 아주 낯설지는 않은 것 같아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나요?”
프린스가 지연이게 그렇게 물어본다.
저거 들어본 소린데? 나한테도 그런 말 했는데.
“네? …네.”
지연이가 그렇게 말한다.
응? 본 적 있다고? 나도 처음 듣는 소린데.
“그래요? 어디서?”
“저희 오빠랑….”
오빠? 미국에서 공부한다는 지연이 오빠?
“그래요? 오빠분이 누구신데요?”
운전대를 잡은 프린스가 다시 룸미러로 지연이를 힐끗 보면서 물어본다.
“…지훈. 유지훈이요.”
지연이가 대답한다. 미국에 가 있는 오빠 이름이 유지훈인가 보다.
“지훈? 지훈이?”
프린스는 그렇게 이름을 되뇌더니.
“아, 지훈이! 지훈이 동생이었어요?”
“네.”
“아. 그러면… 그.”
“네.”
지연이가 그렇게 재빨리 대답한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겠다. 프린스가 유주원 선생님 이야기를 꺼낼 것 같으니, 지연이가 재빨리 대답하면서 말을 끊어버린 것 같다.
지연이는 자신이 유 선생님의 영애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른 척하고 있기는 하지.
“아, 그렇군요.”
프린스도 눈치챘는지, 그렇게 넘어간다.
“잠깐만. 그럼 우리 언제 봤죠? 아니, 일단 미안해요. 내가 기억을 못 해서.”
“아닙니다.”
“우리 언제 봤죠? 최근 아니죠?”
“네.”
“몇 년 된 것 같은데? 맞죠?”
“네. 3, 4년 전 정도.”
“그렇죠? 맞아요. 그때 중학생 아니었어요?”
“…네.”
지연이가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중학생 지연이. 나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그럼 조금 덜 미안해지네요. 기억 못 할 만하네요. 그렇죠? 그리고 지훈이 동생이면, 내가 말을 편하게 해도 괜찮을까?”
지연이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오랜만이다. 몰랐네. 이름이… 지연이였나?”
“네.”
“맞아. 기억났어. 지연이. 그때 내가 용돈도 주고 그랬는데.”
“…네.”
“그랬구나. 올해 신입생으로 온 거야?”
“네. 올해.”
“전공은?”
“한수 오빠랑 같은….”
“직속 후배야?”
프린스가 나에게 물어본다.
“네. 한 학번 후배.”
“그렇구나. 호오. 난 몰랐네. 지훈이하고는 가끔 통화하는데, 그 녀석은 왜 그런 이야기를 안 했을까? 아무튼 진짜 반갑다.”
“네….”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지연이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든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뒷좌석에는 평소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딘가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지연이가 있었다.
***
나는 컵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런 내 모습을 지연이는 긴장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귀여운 녀석. 나도 점장 누나에게 커피 만드는 법 배울 때, 저런 귀여운 눈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지연이가 만든 음료는 카푸치노다.
카푸치노, 아메리카노, 라떼와 더불어 카페의 대표 음료. 하지만 만들기 쉽지 않은 음료 중 하나이다.
사실 레시피는 간단하다.
일단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우유 3분의 1컵을 끓기 직전까지 뎁히고, 스팀완드로 거품을 만든다. 그렇게 데운 우유와 에스프레소를 섞고, 우유 거품을 얹은 후, 거품 위에 시나몬 가루를 살짝 올려주면 된다.
레시피는 간단한데, 그렇다고 만들기 쉬운 음료는 아니다. 거품 입자가 얼마나 고운지, 업계 용어로 얼마나 ‘실키(Silky)’한지가 바리스타의 실력을 보여주거든.
그래서 카페 알바들이 다른 카페 가면 꼭 카푸치노를 시켜 먹는다. 어떤 놈이 카푸치노 주문했는데 한 모금 먹고 재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카운터를 쳐다본다? 그럼 그 인간 다른 카페 알바다. 십중팔구.
아무튼, 나는 지연이가 만든 카푸치노를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마셨다.
“어때요?”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지연이가 그렇게 물어본다.
그런 지연이를 나는 최대한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너어. 솔직히 말해.”
“네?”
“경력자지? 다른 카페 사주 받아서 우리 카페에 잠입한 스파이지? 목적이 뭐야? 솔직히 말해.”
내 개드립성 칭찬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지연이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내 팔을 찰싹 때린다.
“뭐예요, 그게. 깜짝 놀랐잖아요.”
“솔직히 놀라운데? 우리 지연이, 바리스타로서의 소질이 있는데?”
“진짜요?”
“응.”
“팔 수 있을 정도?”
“그럼.”
“진짜요?”
“어. 사실 손님들은 잘 몰라. 시나몬 가루만 뿌려져 있으면 카푸치노구나. 그러고 넘어가지.”
“…그 말은 무슨 뜻이죠?”
“맛있다고. 지연이의 첫 카푸치노.”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 괜찮다. 초심자가 이 정도 거품 만드는 거 쉽지 않은데.
나는 그렇게 한 모금 더 마시고 지연이에게 컵을 넘겨주었다.
간접키스 뭐 그런 걸 하겠다는 추잡스러운 의도는 아니고, 지연이가 만든 첫 카푸치노인데, 본인도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 이거지.
다음에 아이스 카푸치노를 가르쳐줘야 되겠다. 그때는 엄격하게 심사해야지. 거품이 하나도 실키하지 않아! 그러면서.
“그런데, 원래 알고 있었어?”
나는 자기가 만든 커피를 홀짝이는 지연이에게 그렇게 물어보았다.
“네?”
어디서 카푸치노 귀엽게 먹는 법을 배우기라도 했는지, 입술 위에 거품을 묻힌 지연이가 날 보며 말한다.
“아니. 그, 정지수 선생님. 원래 알고 있었던 사이였냐고.”
“아. 네. 한번 뵈었었어요.”
“오빠분이랑 되게 친하신 것 같던데.”
“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지연이의 얼굴이 조금 전과는 달리 다소 굳어졌다.
뭐지? 뭐 있었나? 둘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