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 “안녕하세요…. 형.” (1)
해는 뜨면 지고, 달은 차면 기울고, 주말이 지나면 월요일이 찾아온다.
그리고 월요일은 무슨 날? 알바를 가는 날.
평소 같으면 점심 즈음에 일어나 빈둥대다가, 강철의 의지로 씻고, 대충 뭐라도 챙겨 먹고, ‘아, 알바 가기 싫다’와 같은 소리나 하면서 똥 씹은 표정으로 기어나가, 출근 시간 3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카페에 도착하는 것이 정상적인 월요일의 루틴이지만, 오늘은 오전 10시라는 이른 시간임에도 학교에 와있다.
왜냐고?
떡볶이 먹겠다고.
이게 다 이중훈 때문이다.
어젯밤 이중훈이 단톡방에 갑자기 너튜브 영상을 올렸다.
어떤 영상이냐 하면, 먹방 전문 스트리머가 떡볶이집에 가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매운 떡볶이를 먹는 영상이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지가 좋아하는 영상, 재미있게 본 영상. 그런 거 단톡방에 올릴 수 있지.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의 발효일 수 있겠지.
하지만 이중훈이 선한 마음이었는지 아닌지는 둘째 치고, 결과는 아주 끔찍했다.
일단 그 영상을 공유한 시간이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는 것이 이중훈의 첫 번째 만행이었다.
자, 11시가 어떤 시간인가? 사람이 가장 공복을 느끼는 시간이다. 저녁에 뭘 먹었든 11시가 되면 뭐라도 땡기는 시간이다.
두뇌가 ‘자, 출출한 시간이네? 뭐라도 좀 먹어야지. 살찐다고? 에이. 내일 운동하고, 소식하고 그러면 괜찮아. 진짜라니까? 배가 부르면 잠도 잘 오고.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잠 못 자면 살찐다니까? 영국에서 연구했다니까?’ 그렇게 속삭이는 시간이다.
항상 굶고 다녔던 인류의 선조 시기부터 DNA에 각인된 신체 메커니즘이다.
그런 시간에 먹방 영상을 올렸다? 광역 도발을 시전한 거다.
단순한 떡볶이 먹방도 아니었다. 더 결정적인 만행은 스트리머가 먹으러 간 떡볶이집이 우리가 아는 집이라는 거지. 그냥 아는 것도 아니고, 아주 잘 아는 집이라는 거다.
우리 선배의 선배의 선배들부터 사랑받던 신림동 매운 떡볶이집. 단순히 캡사이신의 자극적인 매운맛이 아니라, 고춧가루에서 나오는 깊은 매운맛이다. 거기에 양배추도 엄청 들어가는데, 그 양배추에서 나온 채수가 내는 달큰한 맛이 매운맛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바로 그 떡볶이집의 먹방 영상이었다는 거다.
왜 그런 말 있잖아. 아는 맛이 가장 무섭다고.
식욕이 폭발하고 침샘이 터진 거지. 그것도 밤 11시에. 광역 도발에 다들 제대로 어그로 끌려버린 거다.
라면 먹방 같았어 봐. 그냥 물 올리면 끝인데, 어제는 물 올려서 될 게 아니었다. 다른 떡볶이로도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이 끓어올랐다.
결국 늦은 밤, 단톡방에서는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고, 거의 만장일치로 밀가루 안 처드시는 김창회를 제외한 모두가 오늘 점심에 그 떡볶이를 먹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한 거다.
그래서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학교에 나와 있는 것이고 말이지.
***
과방. 모두의 시선이 어제 광역 도발을 시전한 이중훈에게 향해 있다. 이중훈의 시선은 손에 들린 휴대폰을 향해 있고.
“오케이! 주문 완료!”
핸드폰을 꾹꾹 누르던 이중훈이 그렇게 떡볶이 주문이 완료되었음을 선포한다.
“얼마나 걸린대?”
최유라가 이중훈에게 물었다.
“40분.”
이중훈이 핸드폰을 보며 말한다.
“생각보다 빨리 오네요.”
지연이가 그렇게 말한다.
“제대로 조리로 주문한 거 맞지?”
내가 물었다.
“상관없지 않아? 비조리 상태면 이중훈 저 자식에게 불붙여서 조리하면 되는데.”
박승환이 박승환 같은 소리를 한다.
“조리 맞다고. 두 번 확인 했다고.”
이중훈이 그렇게 발끈했다.
짜식들 흥분했는지, 그렇게 개드립들을 치고 있다.
“그냥 가서 먹는 게 맛있는데.”
박찬희가 그렇게 말한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지. 카레처럼 하루 묵혀두면 또 특유의 맛이 나는 몇몇 음식 빼고, 대부분의 음식은 만들자마자 먹는 게 가장 맛있다.
“요즘 맨날 줄 선다고 하더라. 가서 줄 서서 따끈따끈 신선한 떡볶이 드시든가. 배달도 지금이니까 되는 거지, 점심시간 가까워지면 이제 배달 주문도 안 된다고.”
이중훈이 그렇게 박찬희를 쏘아붙였다.
저 자식들 한때는 같은 노선을 타고 있었는데, 요즘은 확실히 서로에 대한 도발 수위가 높다. 박찬희가 최유라를 만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갔다.
물론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보는 게 좋다.
아무튼, 배달앱이 확실히 편하긴 편하다. 이게 사람 나태하게 만드는 넘버 원이다.
개인적으로 배달비가 좀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사람이 많으면 배달비에 대한 부담도 적고.
그리고 떡볶이 5인분, 모둠 튀김 5인분, 순대 ‘간 많이 주세요’로 3인분, /오뎅 3인분, 꼬치가 열두 개에 국물까지. 이 정도면 배달비 내는 게 맞지.
아무튼 배달앱 덕분에 우리는 과방에서 편하게 배달 될 음식을 기다리면서 침만 질질 흘리고 있으면 된다.
막상 욕망이 현실화된다니까 조바심이 나네.
사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좀 귀찮은데.
이성을 잃어버린 어젯밤에는 금단증상에 고통받는 중독자마냥, ‘떡볶이! 떡볶이를 다오!’ 그랬지만, 이성이 돌아오는 아침이 되니 ‘그거 몸에 막 좋은 음식도 아닌데, 그거 먹겠다고 방학인데 학교까지 가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이 아닐 거다. 분명 나처럼 생각한 사람이 있을 거다.
누군가가 ‘자, 우리 모두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현대인답게 이성적으로 생각해봅시다.’ 그렇게 말하며 총대를 멨다면 오늘 모임을 개강 이후로 연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괜히 나서기 싫으니까 ‘누군가 해줬으면….’ 하고 미루고 있다가 결국 학교로 끌려온 거지.
그랬는데, 막상 또 떡볶이가 현실화되기 직전이 되자, 어젯밤 영혼을 불태웠던 욕망에 다시 불이 붙은 거다.
***
오늘 안 오면 큰일 날 뻔했네.
떡볶이 5인분, 모둠 튀김 5인분, 순대 ‘간 많이 주세요’로 3인분, 오뎅 국물 열두 꼬치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누가 보면 굶긴 줄 알겠네. 입에 있는 거 삼키고 먹어라! 이 자식들아!
아니, 지금 그런 이야기 할 상황이 아니다. 먹자. 얼른 먹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김말이 하나를 양념에 푸욱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 떡볶이의 핵심은 떡이 아니라 소스다. 특유의 점도를 가지고 있는 매콤달콤한 국물이다. 바삭한 김말이를 국물에 찍어 먹으면? 솔직히 이것보다 맛있는 음식 그렇게 많지가 않다.
음. 역시 맛있군. 이거 재수 없으면 오늘 저녁부터 똥꼬에 불날지도 모르겠는데….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일단 이 매운맛을 즐기고, 똥꼬의 불나는 고통은 저녁 간의 나에게 맡겨버리자.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먹는데, 박찬희가 갑자기 생뚱맞은 소리를 한다.
“야. 니들 어제 연예가통신? 봤냐?”
그 말을 들은 나는 본능적으로 지연이를 바라보았다.
지연이도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연예가통신, 198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연예가 정보 프로그램.
인터넷 덕분에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지금에 와서는 그 위상이 많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연예정보 프로그램 하면 가장 먼저 이름을 떠올린다는 그 프로그램.
지연이와 내가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개봉 날, 지연이와 내가 영화를 보러 간 그날, 배우들의 무대인사를 할 때, 연예가통신에서도 촬영을 하고 있었거든.
“어. 봤지. 고마음 영화 말하는 거지?”
이중훈이 그렇게 받는다.
‘봤어?’
내가 입 모양으로 지연이에게 그렇게 물었다.
‘아니요.’
지연이가 입 모양만으로 그렇게 대답한다.
그날 방송국 로고가 박혀있는 카메라를 보면서, ‘설마. 찍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걱정이 됐지만, ‘에이, 설마. 아니겠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넘어갔고, 그리고는 완전 까먹고 있었다.
방송일이 어제였구나. 설마….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이중훈을 바라보았다.
“이벤트 했더라. 3명인가 뽑아서 같이 사진 찍을 수 있게 해줬더라고. 고마음이랑 완전히 딱 붙어서. 그때 어떻게 해서든 강변으로 갔었어야 했었어.”
이중훈의 그 말을 듣고, 다시 지연이와 눈을 마주친다.
이벤트 장면도 나왔나 본데?
“와. 진짜, 화면에서도 그렇게 예쁜데, 실제로 보면 얼마나 예쁠까? 진짜 장난 아니겠지? 눈부셔서 막 눈멀어버리고 그러는 거 아냐?”
박찬희가 그렇게 받는다.
본능적으로 내 시선이 찬희 옆으로 향한다. 최유라를 바라보게 된다.
비단 나만 그러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최유라의 눈치를 살핀다.
한 사람만 빼고.
눈치 따위는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은 듯한 박찬희가 계속 떠든다.
“나도 강변 가서 볼 걸 그랬어. 고마음 님을 직접 영접하고 그분의 용안을 함께 사진에 담을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적금을 깨서라도 암표를 구해서 보러 갔을 텐데. 진짜 천추의 한… 뭐야?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래?”
열심히 자기 무덤을 파다가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그제야 눈치챈 박찬희가 두리번거리다 옆에 있는 최유라와 눈이 딱 마주친다.
“왜? 재미있는데? 계속해봐.”
상여자 최유라는 떡볶이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찬희에게 말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승환이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박찬희에게 읍한다.
“내년 제사상에 이거 올려 줄게.”
내가 말한다.
“오빠, 그동안 감사했어요. 잊지 않을게요.”
지연이가 말한다.
쯧쯧쯧. 멍청한 녀석.
그나저나, 방송에 이벤트 장면이 나왔단 말이지? 그런데 고마음 예쁘다는 이야기 말고는 다른 이야기가 없다.
만약 방송에 나와 지연이가 노출되었다면? 이벤트 때 찍혔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MC가 직접 지연이를 지목했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으니까.
하지만 특별히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걸 보니, 다행히 걸리지는 않았나 보다.
이중훈은 이번 영화가 얼마나 훌륭한지, 고마음의 연기가 얼마나 끝내줬는지에 열 올리며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처음에 맞장구쳐주던 민주도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말수가 줄어든다.
으이구 멍청아. 너 지금 똥볼 차고 있는 거야.
하지만 난 말리지 않을 거야.
***
떡볶이 같은 분식류가 먹을 때는 참 좋은데, 먹고 나면 그때부터 좀 그런 게 있다.
일단 이게 나트륨 함량이 높다 보니까 갈증을 느낀다. 갈증이 느껴지니까 물을 마시는데, 안 그래도 배가 부른 상황에서 물을 마시니 더 배가 부르다. 거기에 떡이 부는 느낌까지 들어서 속이 더부룩하다.
젠장, 저녁의 내가 고통스러울 것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불편함도 있었군.
뭐 이 정도 더부룩함은 알바 가서 열심히 몸을 움직이다 보면 괜찮아질 거다.
아무튼, 욕망에 기반한 점심을 먹고, 과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알바를 갈 시간이 되어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이대로 겜방 가서 롤이나 달렸으면 좋겠다.
멤버도 딱 다섯 명이잖아. 미드는 당연히 나. 우직한 김창회가 탑. 얍삽한 박승환은 정글이 딱이고, 찬희랑 중훈이는 원딜과 서폿 알아서 하라고 그러면 되는데.
여자애들은? 저 녀석들도 롤 좋아하나 모르겠다. 그냥 유라가 데리고 가서 달달한 커피 마시며 오빠들이 상대 팀 넥서스를 박살 낼 동안 여자들만의 은밀한 대화를 하고 있으라고 하면 최유라에게 혼나겠지?
안 그래도 박찬희 얼마 살지 못할 목숨인데, 괜히 쓸데없는 도발 해서 같이 손잡고 명부에 이름 올릴 필요는 없겠지.
가자. 알바 가야지
“나는 슬슬 알바 갈 시간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자연스럽게 자리가 정리된다.
지연이도 나와 같이 가겠다고 한다. 지연이의 알바 시작 시간은 6시인데, 나랑 같이 카페 가서 커피 만드는 거나 배우겠다고.
나야 좋지. 덜 심심하고.
승환이, 창회, 중훈이 그리고 민주는 놀겠다는 생각인가 보다. 겜방을 가니, 만화카페를 가니 그런 소리를 하고 있다.
부럽다.
눈치로 보면 찬희 저 자식도 지금 저기 끼고 싶은 눈치인데, 그래도 애가 아주 바보는 아닌지, ‘나도 같이 껴줘.’ 같은 소리 대신 최유라 눈치를 보고 있다.
최유라가 ‘너도 같이 가서 놀다 와. 나는 도서관 가 있을 테니.’라고 말하자, 자기는 예전부터 공부하는 게 너무 좋았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면서 생명 연장의 꿈을 이루어냈다.
그렇게 정리가 되고, 우리 모두는 다 같이 과방에서 나왔다.
***
밥도 먹었고, 각자의 목적지가 정해졌지만, 그렇다고 바로 뿔뿔이 흩어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또 그 정도로 정 없는 사이는 아니지.
나와 지연이를 배웅해주겠다고, 우리 모두는 셔틀버스 정류장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여자애들만 없었다면 각목 하나씩 들고 ‘자~ 드가자~!’라고 외쳐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모습이겠지. 김창회도 있으니까.
방학이라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저 앞에서 두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말, 아니, 생각하기가 무섭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는데,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모습이 익숙했다,
“어?”
마주 오는 사람의 정체를 확인한 내가 그렇게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찬희가 우리 무리에게만 들릴 정도의 나직한 소리로 속삭였다.
“프린스다.”
그랬다.
마주 걸어오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정지수 선생님, A.K.A 한국대 프린스였다.
점점 그쪽과 우리 사이에 거리가 줄어들었고, 프린스도 우리를 알아보았다.
정확히 나를 알아보았다.
“어? 방학인데 학교는 어쩐 일이야?”
나를 알아본 프린스가 발을 멈추고 나에게 반갑다는 말투로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친구들하고 점심 먹으려고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정지수 선생님은 옅은 미소를 띠면서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젓는다.
그게 아니지. 그런 의미로.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형.”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