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 “승환이 관련된 건데요.”
***
“맛은 어떠하십니까?”
눈앞에 중년 남자가 그렇게 물어본다.
“네. 맛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음식은 맛있다. 음식은 말이지.
하지만 그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있느냐고 물어보신다면, 내 대답은 ‘아닌데요?’다.
서대문 근처 홍제동의 한정식집. 그냥 한정식집도 아니고, 흥선대원군이 별장으로 사용하던 석파정 별당을 이전해 개조했다는 고급 한정식집이다.
뭐 장소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밥을 먹을 때 누구랑 먹느냐 하는 부분은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인데,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는 절대로 편한 식사 상대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법무법인 철주 보안 담당 임원 정현식 이사. A.K.A 승환이 삼촌.
그분이 내 맞은편에 앉아 계신다.
내가 왜 이분하고 마주 앉아 한정식을 먹고 있느냐.
초대를 받았으니까.
-괜찮으시다면 점심을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언제가 괜찮으신지 여쭈어봅니다.
오늘 오전에 그런 전화를 받았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딱 알지. 진짜 밥 먹자는 이야기 아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는 의미였겠지.
뭐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없다.
‘아니, 밥을 같이 먹는 건 좀 불편하고, 보고할 게 있으면 전화로 보고하세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잖아.
‘저는 방학 중이라 언제든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했고, ‘그럼 오늘 점심은 어떠하신지요.’라는 질문에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사실 핑계 댈 것도 없다. 할 일도 없었고.
그래서 나는 지금 사주 중 하나인 법무법인 철주의 정현식 이사님, A.K.A 승환이 삼촌하고 한정식집에 앉아 거한 점심을 먹고 있는 것이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식당이다. 왜 드라마 같은 데 보면 나쁜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이상한 음모 꾸미고 할 때 이용하는, 그런 느낌이 드는 고급 식당이다.
당연히 음식도 훌륭한 것 같다. 스물한 살 대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간이 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거야 내 입맛이 문제지 음식은 훌륭한 것 같다. 아마도.
그리고 심심하다고 해도 개념 없이 ‘좀 싱겁지 않나요?’ 같은 소리를 할 정도로 개념이 없지는 않지.
아무튼, 나는 불편한 식사를 하고 있다.
***
역시 그랬다. 단순히 밥을 먹자고 만나자는 건 아니셨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식사가 끝나고, 후식에 차가 들어오자 이사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셨다.
“언론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테크건설의 임원영 대표, 우리 말썽꾸러기 제이슨의 아버님께서 차명계좌로 회삿돈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했는데, 그 비자금이 어디 부동산 개발하는 데 흘러 들어갔고, 정치인들하고 연관이 되어서 일이 엄청 커져서, 관련 뉴스가 언론을 타고 흘러나올 가능성이 있다.
지난번에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본격적으로 뉴스가 나올 예정인가 보다.
말씀하시는 뉘앙스로 봐서는 임원영 대표가 검찰 쪽하고 어떤 거래를 했고, 판이 커졌으니 검찰 쪽에서도 임원영이라는 개인보다는 정치권 수사에 집중하려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동안 엠바고로 잘 틀어막던 검찰은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져서, 아니, 슬슬 분위기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 언론에 조금씩 이야기를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솔직히 나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세상만사 그렇게 편하게 흘러가는 게 아니지.
“제이슨이 언론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훌륭한 기자님들께서 평소처럼 검찰에서 주는 이야기를 받아다 자기들 입맛대로 가공해서 ‘우매한 민중에게 진실을 알려주마!’ 하면 큰 문제가 없는데, 가끔씩, ‘단독’, ‘독점’ 같은 단어에 정신 줄을 놓을 때가 있으시다는 거다.
그러면 뭐 ‘우매한 대중들을 분노케 할 만한 것이 없을까?’ 그러시면서, 코를 킁킁거리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그 쓰레기통에서 제이슨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재벌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이름 있는 중견 건설사 대표의 아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검은 머리 외국인인데, 사고를 쳤어. 그것도 그냥 폭행도 아니고, 특수상해. 그런데 또 한국대네?
그림이 예쁘지. 기자님들 기사 쓰시기에 아주 그림이 예쁘단 말이지.
솔직히 여기까지도 나하고 상관없는 이야기다. 제이슨이 언론에 노출되어서 개망신을 당하든 말든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좋을지도.
하지만 문제는 제이슨이 노출되면 피해자인 나도 같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형사재판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이사님 말씀이다.
형사재판의 원고는 검찰이니까 기자들이 재판에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피해자인 나에게까지 그 눈길이 미치지는 않을 거라는 거지.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피해자라는 이유로 언론에 노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문제는 민사재판이다. 민사재판에서는 내가 원고가 되니까 수면 위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괜찮으시다면 시간적 여유를 좀 두는 것이 어떠신지 여쭈어보려고 직접 찾아뵈었습니다. 전화로 드릴 말씀은 아니라서 실례를 범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형사재판이 끝나자마자, ‘제이슨 유죄!’가 쓰여 있는 판결문을 들고 바로 민사로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그 민사재판을 좀 미루자. 그런 말씀이시다.
내 생각은?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제이슨에게 민사소송을 걸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일단 내가 직접 하는 거 아니니까. 변호사님이 해주신다니까 ‘귀찮지는 않겠구나.’가 첫 번째 이유.
그리고 제이슨에게 심적 고통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인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법에 ‘타인에 신체,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 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 이외의 손해에 대하여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쓰여 있는 것처럼 손해배상을 받아내겠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
손해배상금, 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사실 그렇잖아. 내가 뭐 배상금을 꼭 받아야 할 정도로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아니. 돈 좋지. 돈은 분명 좋은 거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얼마를 받아야 할까?’보다는 ‘얼마를 뜯어내야 그 자식이 괴로울까?’ 하는 부분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아니지. 제이슨 합의금 받아서 막 흥청망청 써야 하는데….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시민단체에 후원도 하고, 적금도 들고, 그러면서 막 흥청망청 쓰고 싶다. 그러려면 많이 뜯어내야 한다.
아무튼, 이사님 말씀은 민사소송을 ‘하지 말자’가 아니라 ‘나중에 하자’는 말씀이시다.
“손해배상 청구권도 소멸 시효기간이 있지 않나요?”
내가 물었다.
내가 알기로는 손해배상청구권도 시효가 있다.
왜, 죄짓고 잘 도망 다녀서 공소시효 지나면 벌 안 받는 것처럼, 손해배상도 마찬가지다. 시효가 지나면 ‘배상해라!’고 할 수 없다.
“가해자를 인지한 날로부터 3년입니다.”
승환이 삼촌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3년이면 충분하네.
“알겠습니다. 지금 급하게 진행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적당한 시간을 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민사소송과 관련한 부분을 일임했다.
그나저나 이거 호칭이 애매하네. 이사님이라고 할 걸 그랬나?
참 이분하고 관계가 복잡하다.
뭐 사주 그런 거는 일단 미뤄두더라도, 학교 선배님, 그냥 선배님도 아니고 대선배님이시고, 승환이 삼촌 되시고. 그렇다고 내가 ‘이제부터 선배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라든가, ‘승환이에게 삼촌 되시면 저에게도 삼촌이시죠. 조카의 절 받으십시오.’ 같은 소리를 할 수는 없잖아.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이사님께서 말씀하신다.
“어떻게 부르시든 상관은 없습니다만, 불편하시면 정 이사라고 불러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민사 쪽은 일정이 정해지는 대로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사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내 눈을 바라보더니.
“다른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신지요.”
그렇게 물어보신다.
“…아니요. 딱히.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감사하다는 의미로 눈앞에 중년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용과는 상관없이, 내 일을 봐주시는 분, 아니,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다. 예의를 차리는 것이 당연하겠지.
하지만, 이사님은 말없이 날 바라보신다. 마치,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다는 듯.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어색한데? 음. 그러면. 어떻게 하지? 뭐 말이라도 걸어볼까?
선배님이셨다면서요? 혹시 전공은 어떻게 되시나요? 혹시 우리 유 선생님 아시나요? 그렇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사님께서 말을 걸어오신다.
“저번에 모셔다드렸을 때.”
저번에? 아, 집 앞까지 태워다 주셨을 때?
“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
차가 멈추었다. 집에서 50m 정도 떨어진 위치. 내가 거기에서 내려달라고 말씀드렸다. 좀 걷고 싶어서.
차가 멈추고, 내가 막 문을 열려던 타이밍에 이사님이 말했다.
“요청할 사항이 있으시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저분은 대답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질문.
물어볼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감사했다고 조심히 들어가시라고, 그런 말을 남기고 차에서 내렸다.
***
아주 짧은 순간의, 찰나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짧은 시간의 주저함이었는데, 그 주저함을 눈치챈 것일까?
“별건 아닙니다만….”
내가 말했다.
이사님은 날 바라보고 계신다.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래.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지.
“듣겠습니다.”
이사님이 말씀하신다.
“다른 게 아니라 승환이 관련된 건데요.”
내 질문에 이사님은 말 없이 날 바라보신다.
표정은 바뀌지 않았지만, 눈빛은 조금 달랐다.
뭐랄까? 조금 부드러워졌달까? 아무튼 그런 느낌의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소계주…. 아니, 승환이 할머님에 대한 말씀이시군요.”
그렇게 말씀하신다.
***
식당을 나온 것은 식사가 끝나고도 30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나는 이사님께 그렇게 인사를 드렸다.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지하철이 편합니다.”
나는 그렇게 데려다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 물리적인 것은 둘째 치고, 심적으로 혼자 가는 게 편하다.
그리고 좀 걷고 싶기도 했고.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이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며 나에게 고개를 숙이신다.
그렇게 인사가 끝나고 막 몸을 돌리던 찰나,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사님의 목소리가 날 붙잡는다.
“소계주…. 승환이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 바라보며 그렇게 말씀하신다.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마무리하고, 몸을 돌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내 머릿속에 승환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해 주던 승환이의 얼굴이.
-…할머니 보고 싶다.
그렇게 중얼거리고 뒤돌아서던 승환이의 뒷모습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