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90화 (190/271)

190 : 아이스 카푸치노 (1)

***

어김없이 목요일은 찾아오고, 어김없이 알바는 가야 하고, 어김없이 진상손님들은 우리를 괴롭히고.

“그만둘 거야. 진짜 그만둬버릴 거야.”

어김없이 병진이 형은 그런 소리를 하고.

나는 웃으면서 양손으로 형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자꾸 그런 말 하지 마요. 오는 복도 달아나 버릴라.”

내가 형의 어깨를 주무르며 그렇게 말했다.

“복? 무슨 복?”

“혹시 알아? 정직원 채용될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형이 작게 웃는다.

“정직원은 뭐 아무나 하냐?”

그렇게 웃는 형의 웃음에 어딘가 모를 씁쓸함이 묻어난다.

***

‘한수야. 아무 대학이나 가서 졸업장을 따는 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작년 겨울, 알바들끼리 모여 송년회를 했던 그 날.

3차까지 마시고, 첫차를 기다리기 위해 편의점에서 따뜻한 캔 커피를 마시던 그 날의 새벽, 편의점 창밖에 소복소복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던 병진이 형이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졌다.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기왕 가는 대학이라면 아무 대학 말고 제대로 가는 게 어떠냐? 간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전공이 중요하다. 공부도 재미있어야 하는 거지, 재미없는 전공 선택하면 졸업 못 한다. 뭐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병진이 형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아는 편은 아니었다.

아니, 뭐, 이 사람이 선한 마음과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형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송년회에서 마신 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소복소복 내리는 눈 때문이었을까?

병진이 형은 그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학생, 어찌 보면 가장 민감한 시기에 부모님의 이혼, 거기에 연달아 일어난 나쁜 일들, 남들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할 나쁜 일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일상이 산산이 조각난 사춘기 중학생이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친구들뿐이었다.

문제는 그 친구들이 나쁜 친구들이었다는 것이지.

가출, 자퇴, 비행.

청소년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들.

하마터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뻔했던 상황들.

정신을 차린 것은 고모님 덕분이었다고 했다.

형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가족이었던 고모님이 조카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랬기에, 일반인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검정고시를 보고, 군대에 다녀올 수 있었다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 없는데….’

그렇게 말하며 쑥스럽게 웃는 병진이 형의 모습에서 나는 강철주괴(鑄塊)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밀도가 높은 강철주괴처럼, 마음이 꽉 들어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의 사람들은 형의 그런 내면을 알지 못한다. 그저 표면만을 바라볼 뿐이다.

고졸, 그것도 검정고시. 특별한 기술도 없고, 능력도 없는 흔하디흔한 20대 취준생. 그렇게 말이지.

***

“형이 왜 아무나야? 형 아무나 아니야.”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사회는 몰라도 내가 알고, 점장 누나도 안다. 병진이 형이 얼마나 속이 꽉 들어찬, 단단한 강철주괴인지.

어떻게 두드리느냐에 따라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고품질의 강철주괴.

그런 병진이 형이 아무나일 리가 없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병진이 형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돈 빌려줘? 많이는 못 빌려주는데….”

그런다.

“아, 진짜 이 형 보게? 내가 형에게 돈 빌려달라고 지금 아양 떠는 것 같아요?”

“…그러면 알바 바꿔 달라고?”

“아니.”

“여자 소개시켜 달라고?”

“아니?”

“그러면 무슨 사고를 친 건데?”

“아나 진짜, 이 양반이!”

나는 그렇게 말하며 형의 어깨를 주무르던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으갸갸갸아으다악!”

병진이 형이 그렇게 소리를 지른다.

“아니, 사람이 왜 그렇게 삐뚤어져 있어? 좋은 말 하면 좋게 받아들이면 되지.”

“으그그. 평소에 안 그러던 녀석이 그러니까 그러지. 너 뭐 잘못 먹었냐?”

“잘못 먹기는. 같은 거 먹어놓고서는.”

그렇게 병진이 형이랑 투닥투닥 하고 있는데, 점장 누나가 웃으면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두 사람, 지금 되게 한가한가 봐~?”

생글생글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데, 자연스럽게 우리 두 사람의 몸에 힘이 들어간다.

“심심해요? 할 일이 없어요? 일할 거 알려줄까요?”

“아, 아니요.”

“아닙니다.”

부동자세로 그렇게 대답한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생글생글 웃는 점장 누나는 무섭다.

점장 누나가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자 병진이 형이 나에게 작게 속삭인다.

“누나 본사 들어간다더라.”

나도 들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없으면 무슨 재미로 일하냐.”

병진이 형이 점장 누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다.

“고백 안 해요?”

내가 물었다.

“고백?”

“할 거면 얼른 해야지. 본사 들어가면 얼굴 보지도 못할 텐데.”

내 말에 병진이 형이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고백도 자격이 있어야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한다.

“고백하는데 무슨 자격이 필요한데요?”

내가 그렇게 묻자.

병진이 형은 다시 씁쓸하게 웃고는 몸을 돌린다.

***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말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비웃는 용도로 사용되는 관용구였다.

일하기 싫은 하인이 새벽만 되면 닭이 우니까, ‘닭이 없으면 새벽이 안 오지 않을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서, 닭들을 다 잡아 죽였는데 그래도 새벽은 찾아오고, 오히려 닭이 없어지니까 주인이 낮이고 밤이고 가릴 것 없이 일을 시켜서 더 피곤해졌다는 내용의 이솝우화에서 나온 말이다.

인과관계를 잘못 해석한 어리석은 사람들을 비웃으려는 의도로 사용되는 용법이 오리지널이라는 거지. ‘이 멍청아, 닭 목을 비틀어봐라. 새벽이 안 오나!’ 이렇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을 하던 시절에 ‘아무리 독재정권의 압제가 심해도 결국 민주주의는 찾아온다’라는 의미로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문장을 사용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여러분!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결국 찾아옵니다. 우리 모두 그때까지 힘을 내봅시다.’로 쓰이고 있다는 거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알바의 목을 비틀어도 폐점 시간은 찾아온다는 것이다.

폐점 30분 전. 이제 본격적으로 마감에 들어갈 타이밍.

다른 날 같았으면, ‘아, 오늘 하루도 잘 버텼어.’ 그러면서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 시간이지만, 지금의 나는 평상시처럼 유쾌한 상태는 아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켜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없다. 아무런 알림 메시지가 없다.

흐음.

나는 휴대폰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집어넣었다가, 다시 꺼내서 깨톡 아이콘을 눌렀다.

-잘 들어갔어?

내가 보낸 메시지.

-네. 잘 들어왔어요.

지연이의 메시지.

어제, 지연이와 주고받은 깨톡이었다. 이게 지연이와의 마지막 깨톡 대화였다.

그 말은?

오늘 하루 동안 지연이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는 의미다.

사실 뭐, 지연이하고 내가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꼭 하루에 깨톡을 한 번은 해야 한다는 그런 규칙 같은 것은 없다. 없기는 한데….

그래도 보통 아무리 적어도 하루에 두세 번은 깨톡이 왔다. 물론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밥 먹었어요?’, ‘오늘 날이 너무 좋아요.’, ‘친구들 만나러 잠실 가는데 지하철에 사람 엄청 많아요.’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

물론 내가 먼저 선톡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지연이가 먼저 톡을 하고, 그러면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면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지연이에게 깨톡이 오지 않았다.

아니, 뭐,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지연이하고 내가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뭐 깨톡 없을 수도 있지. 맨날 깨톡 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지. 최근에는 거의 매일 했네. 언제부터 그랬지?

잘 기억 안 나네. 아무튼 최근에는 하루에 한 번이라도 깨톡을 하거나 통화를 하거나 했었구나.

하지만 오늘은 지연이에게서 어떠한 깨톡도, 전화도 없다는 거.

사실, 나는 깨톡 같은 그런 연락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니다. 고향 친구들도 그렇고, 연락이 없으면 ‘부고가 없는 걸 보니 다들 살아는 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스타일 때문에 지수에게도 한 소리 듣기는 했지만, 사람이 마음이 중요하지, 꼭 깨톡 보내고 전화하고 해서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연이에게 오늘 연락이 없었다고 해서 신경 쓰는 건 내 스타일은 확실히 아니기는 한데….

그런데, 오늘은 신경이 좀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역시, 그거 때문이겠지?

어제 돌아가는 지연이의 뒷모습이 마음에 걸렸더랬다.

어제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지연이에게 연락이 없어도 ‘바쁜가 보다.’ 그러고 말았을 거다. 아니, 애초에 ‘오늘은 연락이 없네….’ 같은 생각도 안 했을 거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내가 연락을 했을 거다.

하지만, 어제, 을지로에서 보았던 지연이의 마지막 모습, 꾸벅 인사하고 뒤돌아서는 지연의의 뒷모습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쓰인다.

솔직히 지연이가 왜 그런지도 대충 알 것도 같고.

역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를 해줄 걸 그랬나?

괜히 구질구질하게 변명 같기도 하고, 또 일단 이야기하기 좀 어려운 부분들도 있고, 예를 들어서 시사회에 디테일이나, 아니면 내가 왜 시사회에 갈 수밖에 없었는지, 그 중앙그룹과의 관계라든가. 뭐 그런 것들을 설명하기도 좀 그렇고. 그래서 적당히 얼버무렸는데, 그게 지연이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거다.

“흠.”

그런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바라보다, 그냥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일단 마감부터 하자. 마감 끝내고 집에 가면서 깨톡 보내보면 되겠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머신 청소를 하려고 몸을 돌리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나. 누가 또 개념 없이 폐점 30분 전에 들어오는 거야?

포장이다. 무조건 포장 아니면 커피 안 만들어준다고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환영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그렇게 이상한 인사를 하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세 명.

정확히 남자 둘, 여자 한 명이 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있었다.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적합한지 모르겠다. 친분이 있다는 의미라기보다, 말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였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전 국민이 아는 사람이지.

고마음.

영화배우 고마음이 거기 있었다.

***

“아메리카노 그란데 샷 추가해서 하나, 캐모마일 하나, 그리고 아이스 카푸치노 가능한가요?”

고마음과 함께 들어온 남자 두 사람, 젊은 남자와 안 젊은 남자, 안 젊은 남자가 그렇게 주문을 한다.

“네? 아, 네. 가지고 가실 건가요?”

“아니요, 마시고 갈 건데요.”

남자가 말한다.

마시고 간다고?

“죄송한데, 저희 폐점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아서.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요. 그리고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주세요. 가능한가요?”

내가 안 괜찮은데.

“…네. 알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며 포스기를 꾸욱꾸욱 누른다.

원칙대로 매장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면 안 된다. 매장에서 마시는 데 테이크아웃 잔에 커피 주면 벌금 낸다. 적게는 5만 원, 많게는 200만 원까지.

단속에 걸리는 것보다 누군가가, 보통 옆 경쟁 가게에서 신고해서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설마 영화배우 고마음이 다른 가게의 의뢰를 받아서 그거 신고하겠다고 찾아온 것은 아니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마음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고마음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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