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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을 이어라-188화 (188/271)

188 : HS엔터테인먼트

고마음을 향했던 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나에게로 움직인다.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 그 좁은 공간에서 시선을 맞추고 있는 두 사람.

고마음이 누구에게 말을 건넸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네. 안녕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내 인사에, 고마음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런 물음표다.

인사를 마친 나는 그냥 넘어가자. 더 이상의 이벤트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하지만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아니? 고 배우님 아시는 분이에요?”

뒤통수 너머로 중년 느끼남 영화사 대표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저번에 뵈었어요.”

고마음 배우의 목소리.

“그래요? 고 배우님 아시는 분이셨구나. 이거 우연이네요. 하하.”

장 대표가 그렇게 말했지만, 고마음은 며칠 전 시사회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다시 침묵이 흐르고, 엘리베이터는 아래로 내려가는데 어쩐지 뒤통수가 따끔따끔하다.

이대로, 이대로 그냥 넘어갑시다.

“영화는 어떠셨어요?”

이번에 침묵을 깬 사람은 장 대표였다.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고, 장 대표의 시선은 지연이에게 향해 있었다.

“네? 아, 네. 좋았어요.”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지연이가 당황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다.

“다행이네요. 잘 봐주셨다니. 그런데, 저희가 조금 전 초청을 했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요, 죄송할 건 없지요.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장 대표가 계속 그렇게 말을 건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것 같다.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아마도 아까 무대 인사를 하는 도중에 장 대표라는 저 사람도 상영관 안에 있었나 보다. 그리고 이벤트 도중에 지연이를 보게 되었고.

눈길을 끌었겠지. 목적이 있으니까 기회를 주려 했을 것이다.

뭐 캐스팅이라도 할 생각이었는지, 기념사진을 찍게 해주겠다는 핑계로 지연이와 안면을 트고 싶었던 것인지.

하지만 지연이는 거절했고.

그렇게 끝났어야 했는데,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또 만난 거다. 경호원이 문을 닫아버리는데, 지연이 얼굴을 기억해낸 장 대표가 막았고. 뭐 대충 그런 그림이다.

흠. 이거 엄청 불편하구만.

다행이라면,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우리가 내릴 지하 1층에 금방 도착했다는 거?

문이 열리자, 나와 지연이는 작게 고개를 숙이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지, 우리 말고는 아무도 내리는 사람이 없었다.

문이 닫히고, 나와 지연이는 자연스럽게 크게 숨을 내쉬었다.

“와, 깜짝 놀랐어요.”

지연이가 그렇게 말한다.

“나도.”

나도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를 돌아보았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2층을 거쳐, 지하 3층으로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별일이 다 있네.

***

나와 지연이는 강변역과 연결된 지하통로를 통해 지하철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뒤통수가 계속 따꼼따꼼했어요.”

지연이가 그렇게 말한다.

“나도. 엄청 부담스럽더라. 타지 말 걸 그랬나?”

“거절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는 했어요.”

“그건 뭐. 그랬지.”

“아직도 심장이 뛰어요.”

“나도.”

거짓말이다.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오빠, 고마음이랑 아는 사이예요?”

“응?”

“아까 고마음이 오빠에게 인사한 거 아니에요?”

“아, 그거….”

이거 뭐라고 설명해줘야 하나?

“아는 사이는 아니고, 뭐랄까? 나중에 밥 먹으면서 이야기해 줄게. 별건 아니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지연이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뭐, 이야기해 주면 되지. 숨길 것도 아니고.

아니지. 시사회 이야기를 하려면 중앙그룹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잖아? 그러면 내가 작은 어르신이고, 그런 배경 설명까지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적당히 그럴싸하게 이야기를 해줄지 가는 동안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그나저나, 그 아저씨가 우리 지연이에게 아주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네?”

“엘리베이터에서 너에게 말 건 아저씨.”

“아, 네.”

“캐스팅하려고 그랬던 거 아냐? 배우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였던 거 아냐?”

내가 그렇게 말하자 지연이가 작게 웃는다.

그런데, 그 웃음이 좋은 의미의 웃음은 아니다. 어딘가 씁쓸함이 담겨있는 그런 미소다.

“…가끔 있어요.”

“응?”

“명함 주면서, 혹시 연예인 할 생각 없냐고.”

“길거리 캐스팅?”

“네.”

“학교에서?”

“학교에서도 그랬고, 그냥 길 가다가도 그랬고.”

소문으로 들은 적은 있다. 학교에 연예기획사 직원들이 원석을 찾아 돌아다닌다고.

왜 우리 선배 중에서도 그런 분 있다. 학교에서 캐스팅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가 된 선배. 확실히 상품성이 있기는 하겠지. 한국대에 예쁘기까지 하면.

그리고 지연이는 그냥 예쁜 것도 아니고, 진짜 어어어어어엄청 예쁘잖아.

“그래서? 그런 사람들 만나면 어떻게 했는데?”

“처음에는 그냥 죄송하다고 그런 마음 없다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거절했는데, 지금은 그냥 명함 받아요. 가족들에게 물어보고 나중에 연락드리겠다고. 그냥 그렇게.”

“그리고 명함 버리고?”

내 말에 지연이가 웃는다.

“관심은 없으시다?”

“네?”

“연예인 같은 거.”

“네. 저는 별로.”

“왜요?”

“그냥 제 길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쪽에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연예계에서는 그런 말이 있다고 했다. 예쁜 게 재능이라고. 그렇게 따지면 우리 지연이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거지.

“그렇구나. 그럼 아까도 그래서 그런 거야?”

“네?”

“아까 이벤트 끝나고 같이 사진 찍을 기회 준다고 했을 때.”

“아, 네. 뭐, 그런 것도 있고.”

“사진 찍고 싶어 했잖아.”

“그거야 이벤트에 당첨되면 뭐, 그거는 좋은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달까요? 그리고 명함 주시니까 그것도 부담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다른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을 지연이가 본능적으로 눈치챈 거겠지.

“그렇구나.”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지연이가 갑자기 그렇게 쌩뚱맞은 사과를 한다.

“응? 뭐가 죄송한데?”

“제가 받아들였으면 오빠도 배우들이랑 사진 찍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말한다.

나는 잠시 지연이를 바라보다가.

“으이구, 이 바보야.”

그렇게 말했다.

“네?”

“내가 그런 스타일이야?”

“네?”

“배우들이랑 사진 찍고, SNS 올리고, 해시태그 걸고, 내가 그런 스타일이냐고요.”

“…아니요.”

“안 어울리지?”

“네.”

“솔직히 사진을 찍을까 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야. 그런데 사진을 찍었다면 목적은 하나밖에 없지.”

“뭔데요?”

“알지? 찬희랑 중훈이가 고마음이라면 환장하는 거.”

“네? 네.”

“자, 고마음과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두 녀석에게 보여준다. 그러면 녀석들이 어떻게 되겠어? 정신적 대미지를 입겠지? 내가 사진을 찍는다면 오직 그 목적뿐이란 말입니다.”

내 말에 지연이가 다시 웃는다. 조금 전 씁쓸한 미소가 아니라, 찐 미소다.

“너 불편한 거 나도 싫어. 아무리 이중훈, 박찬희 엿 먹이는 게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고 해도, 우리 지연이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사진을 찍을 생각은 없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지연이가 말없이 날 바라본다.

“왜? 왜 그렇게 보는데?”

“오빠는….”

“응?”

“목사님 하시면 엄청 큰 교회 만드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변호사 하라며?”

“아, 맞다. 변호사도 괜찮아요. 로스쿨. 제가 뒷바라지할게요.”

“그럼 군대를 가야 하잖아.”

“군대 싫으면 한 2년 정도만 휴학하셔도 돼요.”

“휴학하면 바로 군대 끌려가.”

“진짜요?”

“아니. 안 끌려가.”

“뭐예요.”

지연이가 그러면서 내 팔을 친다.

귀여운 짜식.

“그리고 혹시 다음에도 연예인 관심 있냐면서 명함 주는 사람 있으면 이렇게 말해.”

“뭐라고요?”

“이미 계약했다고.”

“계약했다고요?”

“보험사 전화 응대법 몰라?”

“그게 뭔데요?”

“왜 가끔 보험사에서 보험 들라고 전화 오잖아.”

“네.”

“그때 그냥 끊기 그렇잖아.”

“네. 아무래도 죄송해서.”

“근데, 또 죄송합니다. 관심 없어요. 그래도 안 끊으시잖아.”

“그쵸.”

“뭐,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불편하지. 아무튼 그럴 때 좋은 방법이 있어요.”

“뭔데요?”

“저희 엄마도 보험 하시는데요. 그러면 끊는다.”

“진짜요?”

“몰랐지.”

“네. 그런 좋은 방법이 있었네요.”

“승환이가 가르쳐줬어. 그 자식은 확실히 그런 쪽으로는 머리가 팽팽 돌아가.”

“역시 승환 선배.”

“마찬가지로 다음에 명함 받으면 이미 계약되어있다,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럼 그쪽에서도 ‘아. 이렇게 예쁜 사람이 계약이 안 되어있을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할 거야.”

“만약에 물어보면요?”

“응?”

“어디랑 계약했냐고 물어보면요?”

“그러면? HS엔터테인먼트라고 해.”

내 말에 지연이가 빵 터진다.

“대표님 번호로 오빠 번호 알려주고요?”

“어. 내 번호 알려줘. 그러면 내가 얼씬도 못하게 해줄게.”

“좋은데요.”

“좋지? 계약서 쓸까?”

“좋아요! 써요, 대표님!”

지연이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다.

***

계약서에 꼭 들어갈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강변역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갑을 꺼내 들고 개찰구로 걸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온다.

“저기요오! 잠시만요!”

강변역에는 사람이 많다. 대형 쇼핑몰도 쇼핑몰이지만,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있으니까 진짜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을 뚫고 그런 외침이 들려온다.

본능적으로 나와 지연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 외침의 대상이 우리라고는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데, 누군가가 우리 쪽으로 뛰어오고 있다.

아니, 정확히 우리 두 사람을 향해 달려온다. 달려오는 남자의 시선 끝에는 확실히 우리 두 사람이 있다.

아, 그 사람이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에게 다가왔던 그 영화사 직원. 그 사람이었다.

당황한 나와 지연이가 어찌할 새도 없는 사이, 남자는 우리에게 바로 앞까지 다가와 멈춘다.

그리고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아, 죄송합니다. 잠시만. 시간 좀.”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기를 꺼내 든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지금 찾았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사이, 남자가 전화기를 내밀며 말한다.

“저희 대표님께서 통화를 하시고 싶다고 하셔서요. 괜찮으시면 잠시 통화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시선과 전화기를 든 손이 나에게로 향해 있다.

“저요?”

내가 물었다.

“네.”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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