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85화 (185/271)

185 : 개봉주 무대인사 (1)

“왜?”

나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니, 그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중훈이? 아, 물론 중훈이 내 친구지. 부족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애는 착하지.

그래도 내가 여동생이 있다면, 그 여동생이 중훈이에게 관심이 있다고 한다면 가장 먼저 이렇게 물어봤을 것이다. ‘왜? 대체 왜?’

‘왜’라는 내 질문에 지연이가 작게 웃는다. 지연이도 안다는 이야기지. 왜 ‘왜’라는 질문이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응?”

“못 물어봤어요.”

지연이가 해준 이야기로는 그랬다.

민주가 그런 뉘앙스를 슬쩍 흘린 적이 있었다고 했다. 자기가 우리랑 같이 어울리는 것을 부러워한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더랬다고. 단순히 우리랑 재미있게 노는 게 부러워서 그런 것보다는 우리 중 누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지만 확실한 건 아니라고. 그런 이야기를 했었더랬다.

나도 들은 이야기다. 그때였지. 지연이가 민주랑 단둘이서만 내가 일하는 카페에 놀러 왔을 때, 그때. 그런 뉘앙스를 풍겼다고.

그날 이후 특별히 뭐가 없었는데, 창회 생일날, 민주가 이야기를 해줬다는 거다. 정확히는 2차 갔을 때. 나랑 승환이가 창회를 데리고 성북동으로 가던 그때, 1학년과 2학년은 따로 2차를 하러 갔었는데, 그때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거다.

“그러니까 너에게 물어봤다는 거지? 중훈이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네. 그래서 저는 좋은 선배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솔직히 자기가 마음이 있다고.”

“왜라고 물어봐야 하는 타이밍이었는데.”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는데….”

지연이는 그렇게 말하고 작게 웃는다. 아직 둘 사이가 그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라는 이야기지.

아니,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는 아닌데, 그럼 오늘은 어떻게 된 거지?

지연이 설명으로는 설거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우리 동기 녀석 놈들이 들어오는 걸 보는 순간, 민주 생각이 났었다는 거다.

분위기를 봐서는 분명 끝나고 그냥 집에 갈 것 같지는 않고, 그래서 마감하는 도중에 민주에게 몰래 깨톡을 했다는 거다. 오늘 분위기 보니 오빠들이랑 다 같이 놀 것 같은데 혹시 와도 되는지 물어봐 줄까? 그렇게.

역시 그랬군. 그렇게 풀 착장 완전무장을 하고 나타날 수 있었던 시간적 여유가 설명이 된다. 역시, 내 추리는 틀리지 않았어.

“형태가 민주 좋아했던 거 알아?”

내가 물었다.

“네. 아니,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어요. 직접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주변 친구들은 다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을 거예요.”

“민주도 알고?”

“아마도요?”

“하지만 민주는 중훈이에게 관심이 있다.”

“네.”

“이유는 모르고.”

“네. 이유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지만?”

“…꼭 이유가 필요할까요?”

“응?”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이유가 필요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그건 그렇지.”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지. 아니, 오히려 이유가 있으면 그게 더 문제가 되는 거야. 예를 들어 중훈이의 어떤 배경이나, 뭐, 그런 것 때문에 중훈이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라면 그게 더 큰 문제지.

“…괜한 오지랖 부린 걸까요?”

지연이가 그렇게 물어본다.

“응?”

“살짝 걱정이 되더라고요. 괜히 나선 게 아닌가 싶은….”

“왜 도와주겠다고 생각한 건데?”

“…그냥, 모르겠어요. 저도 민주랑 그렇게까지 막 친한 건 아닌데, 아 물론 친하긴 친하지만. 아무튼, 그냥 도울 수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 것도 있고….”

“있고?”

“…뭐. 아무튼 그랬어요.”

뭔가 또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건 말 안 해준다. 뭐 그건 일단 넘어가고.

“오지랖은 아니야.”

내가 지연이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오지랖이 원래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윗옷의 앞자락이요.”

역시 똑똑한 지연이. 잘 알고 있군.

“맞아. 보통 겉옷으로 입는 윗도리의 앞자락을 말하는데, 앞자락이 넓으면 감싸는 부분이 많아지지. 그래서 영역을 침범한다는 의미로 ‘오지랖이 넓다’라는 관용구가 나온 거고.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결국 오지랖이라는 것은 영역에 관한 이야기거든? 그러니까 자기 영역도 아닌데, 남의 일에 참견하고 다니면 그때 오지라퍼 소리를 듣는 거지. 하지만 지연이는 민주랑은 적당히 친한 친구잖아? 그리고 우리 멤버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지연 씨 영역이 맞아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중훈이한테 ‘민주 어때요? 오빠한테 관심 있대요.’ 같은 이야기를 했으면 오지라퍼 소리 들어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 정도로 적극적인 액션을 취한 것도 아니고, 또 민주가 싫다고, 싫다고 하는 걸 나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런 거 아니지?”

“네.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래. 우리 지연이가 그럴 사람은 아니죠. 아무튼, 그냥 음. 이런 상황이니까, 내가 살짝 도와줄까? 그런 착한 마음이 발효했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만약 누가 우리 지연이에게 오지랖을 부렸다 같은 소리를 하면 내가 명치에 주먹질해줄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내가 그렇게 말해주자 지연이는 작게 웃는다.

귀여운 녀석.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그나저나 민주가 중훈이에게 마음이 있다, 이거지? 흐음.”

“왜요? 무슨 문제 있나요?”

“사문위원회를 또 열어야 하나 싶어서. 일단 갈구기는 갈궈야 하니까.”

“사귀는 것도 아닌데요?”

“사귀었으면 인민재판이지. 바로 죽창질이지.”

내 말이 지연이는 쿡쿡하고 웃는다.

“저도 참여해도 되죠?”

“특별히 제일 먼저 찌르게 해줄게.”

우리는 그렇게 이중훈의 인민재판 그림을 그리며 즐겁게 집으로 돌아갔다.

***

-용산 어때?

나는 이중훈, 김창회, 박승환, 박민주가 모인 임시 단톡방에다가 그렇게 깨톡을 보냈다.

‘어디에서 영화를 볼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시 단톡방이다.

이중훈은 일산, 김창회는 면목, 박승환은 도곡, 나는 성수, 민주는 목동. 참 어찌 이리도 다들 제각각 사는지.

아무튼 모두가 만족할 수 있거나, 만족은 아니어도 수긍할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선정해야 했으니 의견들을 모아야 했다.

솔직히 나는 어디든 상관없었다. 강변만 아니면 말이지.

그렇다고 멍청하게 ‘나는 강변만 아니면 상관없음!’ 같은 소리를 할 수는 없지. 전략 전술이라는 게 그런 거다.

용산은 철저한 계산에 의해 도출한 장소다.

일단 지리적으로 가장 적당하다. 서울 서북부라 할 수 있으니 이번 영화 관람의 호스트라고 할 수 있는 이중훈에게 어필하기 좋다는 것이 첫 번째, 거기에 목동에 사는 민주도 괜찮지. 창회에게는 같은 강북이라고 어필할 수 있고.

-용산? 너무 멀어.

도곡동 주민 박승환이 그렇게 반대를 하고 나선다.

-응. 승환이는 안 온대.

내가 그렇게 답을 보냈다. 저 녀석을 설득하려고 하는 건 너무 심력 낭비지.

-승환 오빠는 어디가 좋으세요?

역시 민주가 그렇게 물어봐 준다.

-강남, 아니면 압구정?

-반대.

-헛소리하고 있네.

-그래. 너는 강남으로 가라.

우리 셋이 그렇게 바로 반응해준다.

사실 압구정이면 나도 좋다. 우리 집에서 별로 안 멀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이익을 위해 승환이와 연대할 타이밍이 아니지. 아니, 오히려 멀면 멀수록 좋다.

-민주는 어디가 좋아?

중훈이가 묻자.

-저는 어디든 다 좋아요. 강남도 좋아요.

민주는 그렇게 나오고.

뭐, 당연하겠지. 지금 민주가 ‘저는 목동이 좋아요’ 같은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기는 하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 동안 강남으로 가니 강북으로 가니, 그딴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잠깐만. 강변은 어때?

갑자기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이 튀어나온다.

어떤 미친놈이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그런 말을 하나 보니 이중훈이다.

뭐야? 저 자식. 갑자기 왜 강변이 나와!

나는 재빨리 핸드폰 자판을 두드렸다.

-강변! 난 좋아. 콜!

이렇게 보낼 수밖에 없다. 의심을 피해야 하니까.

강변에서 가장 가까운 내가 강변을 거부한다?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특히 박승환, 그 예리한 자식은 분명히 냄새를 맡을 거다.

하지만 내가 강변을 찬성한다면?

-반대! 절대 반대! 절대로!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역시 박승환이 이렇게 반대를 하고 나선다.

후후후. 넌 아직 멀었다.

-나도 강변 좋기는 한데, 민주가 너무 멀어지는 거 아냐?

창회가 그렇게 말한다.

-전 괜찮아요. 강변 상관없어요.

잠깐만.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되는데?

지금 박승환 빼고, 나머지 네 명이 모두 강변에 찬성했다? 4대1이라고? 이러면 안 되는데?

막아야 한다. 어떻게든 이 흐름을 돌려야 한다.

-근데 갑자기 강변은 왜?

내가 중훈이에게 물었다.

일단 정보 수집부터. 왜 강변이 튀어나왔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하니까.

-내일 무대 인사 한대. 감독이랑 배우들.

이중훈이 그렇게 말한다.

무대 인사?

흔히 개봉 주라고 하는 개봉 첫 주 동안 배우랑 감독들이 돌아다니면서 ‘우리 영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하는 그거? 그걸 강변에서 한다고?

-내일?

-ㅇㅇ. 내일 저녁 상영 끝나고.

-좋아요! 저 무대 인사 하는 거 꼭 한번 보고 싶었어요.

-나도 상관없음.

-나는 반대! 그거 무대 인사라고 해봤자, 멀리서 몇 분 보는 거, 큰 의미 없다고 생각함! 이성적으로 생각하자고. 친구들.

박승환이 유일하게 반대를 했지만,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강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안 돼! 막아야 한다. 이 흐름을 막아야 한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막지?

-근데, 표가 있을까?

내가 그렇게 말했다.

-잠깐만.

이중훈이 그렇게 말하고 잠시 후.

-표 없다.

그렇게 답이 온다.

휴. 다행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더니, 역시.

그럼 그렇지. 배우들이 총출동해 무대 인사를 한다는데, 그 시간을 전날 예매할 수는 없겠지. 다행이다.

-그럼 어쩔 수 없네. 무대 인사는 못 보겠네.

내가 그렇게 깨톡을 보낸다. 자, 다들 나를 따르라.

-그래. 강남. 강남으로 하자.

-난 어디든 상관없음. 강남하고 압구정 빼고.

-저는 강남, 압구정도 좋아요.

그렇게 한참을 옥신각신.

에휴. 일단 강변은 막았는데, 냅뒀다가는 계속 이러고 있겠다.

후딱 정하고 예매가 확정되어야 나도 마음 놓고, 딴짓을 하지.

나는 재빨리 이중훈에게 개인톡을 보냈다.

-야. 용산이나 영등포, 뭐 아무튼 민주 편한 곳으로 해.

그렇게.

-왜?

이중훈이 그렇게 물어본다.

왜긴 왜야? 민주가 너 좋아하니까 그렇지. 이 멍청아!

-그냥 형 말 들어. 민주네 집 쪽으로 해. 목동은 너무 노골적이니까 하지 말고.

그리고 창회에게도 개인톡을 보낸다.

-영화 보고 밥 먹고 그러면 늦겠다. 민주 집에 보내야 하니까 그쪽으로 하자.

-ㅇㅇ

역시 싸나이 김창회. 바로 수긍한다.

그럼 박승환에게는?

안 보낸다. 어떤 핑계를 댄다고 해도 박승환 저 자식은 믿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쓸데없이 의심할 거리를 던져 줄 이유도 없고.

-한수가 처음에 말한 대로 용산으로 하자. 거기가 극장도 좋고, 놀 데도 많고.

-용산 좋아요!

-그래. 용산.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박승환도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이렇게 용산이 확정되었다.

힘들다. 힘들어.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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