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 솔직히 좋은데?
주말이 후딱 지나고 다시 월요일이 찾아왔다.
평소 같았으면, 월요일 싫어! 학교 가기 싫어! 그랬겠지만, 방학이라 일요일 저녁의 우울함도, 월요일 아침의 정신적인 피곤함도 없다.
하지만 오늘 월요일은 지난주 월요일과는 좀 다르다.
왜냐? 오늘부터 월요일에도 카페 알바가 있으니까.
저녁 타임이 아니고, 오늘은 오후 2시부터 마감까지, 원래 점장 누나가 맡아서 하는 타임인데 오늘부터 내가 하게 되었다.
밖에 나가는데 얼굴에 뭐라도 찍어 발라야지, 라는 생각으로 로션을 치덕치덕 바르고 있는데 전화기가 짧게 울린다.
깨톡이고, 발신인은 이중훈이다.
-뭐해?
발신인을 확인하고는 못 본 것처럼 다시 로션을 바르는 데 집중했다.
여자였다면 당장 답장을 보냈겠지만, 이중훈인데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뭐해?
-바쁘냐?
-뭐 하는데?
-씹냐?
-씹는 거야?
답을 안 했더니 무슨 스토커처럼 계속 이렇게 깨톡을 보낸다. ‘깨톡’, ‘깨톡’, ‘깨톡’, ‘깨톡’ 하는 알림 소리가 끝도 없이 울려댄다.
아오. 짜증 나. 방학 동안 차단을 해놓든가 해야지.
그냥 냅두면 저 망할 놈의 깨톡 소리가 끝도 없이 울릴 것 같아서, 재빨리 물티슈로 손을 닦아내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아! 왜?
-뭐하는데?
-알바가려고 준비 중
-카페?
-ㅇㅇ
-방학하더니 요일 개념도 까먹은 거냐? 오늘 월요일인데?
-당분간 월요일도 하기로 했어. 왜? 용건만, 한 문장으로,
-롤?
-방금 말했다. 알바 간다고.
-째.
-밥 먹었냐?
-밥 먹자고?
-아니, 얼마나 비싼 밥 먹고 헛소리 하나 싶어서.
-심심하다.
-심심하면 공부나 해.
-공부하다가 나온 거야.
-어딘데?
-도서관.
여러분! 여기 미친놈이 있어요! 방학 때 할 것 없다고 도서관 가서 공부하는 미친놈이 여기 있어요!
-시끄럽고, 할 거 없으면 창회나 승환이나 불러서 놀아달라고 찡찡거리던가.
-그래. 그놈들 불러내서 니네 카페에 놀러 가야겠다.
-꺼져주세요. 제발.
나는 그렇게 답을 보내고는 휴대폰을 진동모드로 바꿔놓고는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
확실히 월요일은 한가하다. 점심시간 지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직장인 퇴근 시간인 6시까지 손님들이 별로 없다.
있어봤자, 구석에서 조용히 공부하는 공부족이나, 책을 보는 독서족, 월요일 오후의 느긋한 오후를 즐기려는 직장인들이나 젊은 엄마들이 가끔씩 찾아오곤 한다.
참 신기한 것이, 목요일에 그 무서운 진상 손님들과 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같은 사람들인데, 목요일만 되면 알바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들이 오늘은 왜 다들 친절한 것일까?
주문도 재깍재깍, 음료도 받아 가면서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도 빼먹지 않고. ‘좋은 하루 되세요’ 같은 인사는 목요일에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데 말이지.
월요일의 모습과 목요일의 모습 중 어떤 모습이 본성일까? 성선설의 맹자 님과 성악설의 순자 님이 다이다이를 뜨기에 딱 좋은 주제 아니던가?
아무튼, 진짜, 이렇게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이라면 책 가져와서 공부해도 되겠다. 아니지, 내가 이중훈도 아니고 심심하다고 공부하는 미친 짓을 할 수는 없지. 노트북 가져와서 몰래 게임 해도 되겠다. 롤은 못 해도, 싱글 플레이 게임은 할 수 있겠네.
나는 그렇게 다음 주 월요일에는 뭘 하면서 놀까를 고민하면서 평화로운 오후를 만끽했다.
그런 평화가 산산조각 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지.
***
나는 시계를 슬쩍 바라보았다. 오후 4시 15분이다.
조금 있으면 알바가 올 것이다. 그냥 신입 알바, 그냥 신입도 아니고, 점장 누나 말대로 하면 아아아아아주 예쁜 신입 알바가 말이지.
저녁 마감 파트 근무자의 출근 시간은 원래 5시 반이다. 하지만 점장 누나가 오늘 첫 출근 하는 신입에게 한 시간 빠른 4시 반까지 출근을 하라고 했단다.
교육을 받아야 하니까.
오늘 하루 이벤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바로 이것이다.
평소 마감조처럼 5시 반에 출근했다가는 교육이고 뭐고 받을 시간도 없이, 오후 피크 타임,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인 6시가 되어버릴 터고, 그러면 그냥 잉여 인력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한 시간 일찍 오게 해서 간단한 일이라도 가르치라는 이야기다.
사실 신입 교육은 조금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뭐,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있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신입이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해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그 시간 동안 교육 담당은 교육과 동시에 한 사람 몫 이상의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가끔 보면 괜히 신입에게 텃세 부리고 그런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뭐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건 좀 아니다 싶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
그리고 나는 솔직히 싫지 않다. 새로운 사람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거, 솔직히 싫어하지 않는다.
승환이 표현대로 하면 ‘개 새끼’ 같은 성격이다. 미친놈. 강아지도 아니고, 새끼 개도 아니고 개 새끼는 뭐야.
아무튼, 점장 누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에게 신입 교육을 부탁한 거겠지. 병진이 형 같았어 봐. 일단 텃세부터 부렸을 거야. 잡일 겁나 시키고, 자기는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면서. 아니, 신입 알바가 여자라니까 안 그럴라나?
그나저나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신입이면 30분 전에 와서 대기하고 있어야지. 유니폼도 갈아입고 말야. 준비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환영합니다…?”
본능적으로 인사를 하다가 신입의 얼굴을 보고 나도 모르게 말꼬리가 올라가며 의문형으로 끝을 맺는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 생글생글 예쁜 미소와 함께 걸어 들어오는 사람.
지연이였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가 아니라,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혹시?
“오빠, 안녕하세요?”
“어. 그래. 안녕? 오늘 어쩐 일이야?”
“제가 오면 안 되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닌데, 놀러 온다는 연락도 없이….”
“놀러 온 거 아니니까요.”
지연이는 빙그레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그래. 그거구나. 그거네.
“너였어?”
“넵! 저였습니다!”
그러면서 손을 번쩍 드는 지연이.
“…저기로 가서 옷 갈아입어.”
“넵!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스태프 전용 탈의실로 가는 지연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뭔가 기분이 묘하다.
***
“초보들이 가장 긴장도 많이 하고 실수도 많이 나오는 부분이 바로 더치페이. 여기에서는 복합결제라고 하는데, 크게 긴장할 필요가 없어. 신용카드, 현금영수증, 현금, 이 순서대로 차분하게 계산하면 크게 문제가 생길 일이 없어요. 일단 승인 금액을 수정하고, 그다음에 첫 번째 결제, 그다음에 두 번째 금액 넣고. 보통 그러면 두 번째 카드를 주는데, 만약 카드를 안 준다? 그러면 그때 물어보는 거야. 현금이신가요? 현금영수증 필요하신가요? 그렇게.”
나는 포스기를 꾸욱꾸욱 누르면서 시범을 보였다.
내 옆에 선 지연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 설명을 듣고 있다. 그렇게 포스기 화면을 보다가 내가 ‘알겠어요?’ 그렇게 물어보면 ‘우와. 오빠 대단해요.’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계산부터 하나씩 배워가면 될 거야. 내가 옆에 있으니까, 모르는 거 있으면 바로 물어보고. 알겠죠?”
“넵!”
지연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포스기를 살펴본다.
오늘 출근한 애한테 바로 머신을 맡길 수는 없지. 일단 포스기 사용법부터 가르친 다음, 어느 정도 포스기에 적응이 되면 그때부터 커피도 가르쳐야겠다.
그나저나, 아니, 어떻게 된 거지? 점장 누나는 알고 있었던 건가? 지연이가 내 후배라는 것을? 알고서 받아준 건가?
나는 예쁜 손가락으로 포스기를 여기저기 눌러보는 지연이를 바라보다가 슬쩍 물어봤다.
“근데 언제?”
“네?”
포스기를 바라보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언제 지원했냐고.”
그러자 지연이는 헤 웃고는.
“그때, 오빠에게 그랬잖아요. 알바해보고 싶다고.”
“그랬지. 그리고 내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카페 알바는 절대로 안 된다고 그랬고.”
“아니요. 흙 이야기는 없었어요. 오빠가 그런 이야기 했으면 아까 들어올 때, 흙 한 줌 들고 왔을 거예요.”
지연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내가 여기는 어쩐 일이야! 그러면 지연이가 ‘오늘부터 여기서 알바해요.’ 그러고, 내가 ‘내 눈에 흙이….’ 하는 순간 지연이가 손에 쥔 흙을 내 얼굴에 뿌리고, 그럼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허락한다.’라고 말하는 그런 그림이 되는 건가?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무튼 내 이야기 듣고 나서?”
“네.”
“왜?”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네. 오빠가 엄청 재미있게 이야기했거든요.”
지연이가 그렇게 말한다.
그랬을 수도 있다. 그놈의 개그 욕심으로 오바했을 수도….
아니, 그건 그거고 하필 왜 여긴데?
“뭐 그거는 그렇다 치고, 여기는 어떻게?”
“알바 사이트 찾아보는데, 여기 자리가 딱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래서 이력서 넣었더니 점장 언니가 편한 시간에 한번 찾아오라고 해서 바로 다음 날 만났고, 일단 월요일 저녁 타임부터 일해보고 괜찮으면 시간 늘려보자고 하셨고, 저는 좋다고 했죠.”
“끝?”
“네. 끝. 뭐 또 있나요?”
“저기, 그… 내 이야기는 안 했어?”
“오빠 이야기요?”
“어. 뭐. 저기, 나랑 아는 사이라든가.”
“알고 계시던데요?”
“응?”
“점장 언니가 저 보자마자 혹시 한수 후배? 그렇게 물어보시던데요?”
알아봤다고? 점장 누나가?
아, 물론 지연이가 우리 카페에 가끔 찾아온 적은 있었다. 그래봤자 서너 번?
하지만, 내가 점장 누나에게 지연이를 소개하거나 한 적은 없었는데? 물론 누나도 따로 물어본 적은 없고. 없나?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우리 카페에 얼마나 많은 손님들이 오가는데, 물론 지연이가 좀, 아니, 많이 예쁘기는 해도 지연이를 기억하고 있다고?
“그래서?”
“맞다고, 오빠 학교 후배라고 그랬죠.”
“그러니까?”
“그냥 흐음, 그러면서 고개 끄덕이시고는 보건증 있냐고 해서, 보건소에 가서 신청은 해놨다고 말씀드렸고, 그리고는 뭐 특별히 없는데요? 아. 시급은 일단 최저인데, 3개월 지나면 그때 올려준다고 그러셨어요.”
“저기, 그 뭐랄까? 나랑 같이 일하고 싶다거나 그런 말은 한 건 아니고?”
내 말에 지연이는 그 녀석답지 않게 살짝 뾰로통한 표정을 하고는.
“제가 아무리 알바 경험이 없어도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상식이 없지는 않아요.”
그렇게 말한다.
아니, 뭐 상식까지 나올 건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이거지? 내 이야기는 안 했는데, 점장 누나가 날 월요일로 보낸 것이다?
“아, 손님 오셨다. 환영합니다.”
손님이 들어오자 지연이는 재빨리 얼굴에 미소를 띠고 그렇게 인사를 한다.
알바 시작하고 맞이하는 첫 손님인 만큼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게 보인다.
***
-왜? 싫어?
점장 누나의 깨톡이다.
-아니, 싫다는 건 아닌데요.
나는 그렇게 재빨리 깨톡을 보내고, 지연이를 힐끗 바라보았다.
똑똑한 녀석 아니랄까 봐, 지연이는 벌써 포스기에 적응해서 능숙하게 주문을 받고 있다.
물론 복잡한 주문이나, 페이 계산은 조금 버거워하는 것 같기는 한데, 손님들에게는 오늘 처음 일하는 알바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능숙하게 포스기를 다루고 있다.
저 녀석, 사실 경험자인 거 아냐?
아무튼 점장 누나 이야기로는 그렇다. 지연이가 왔는데, 안 뽑을 이유가 없었다는 것.
카페 알바에게 필요한 세 가지 덕목이 있다.
일단 용모.
뭐, 이거야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는 하지만, 적어도 용모 부분에서 지연이가 탈락하거나 감점을 당할 이유는 없겠지.
두 번째가 암기력,
카페 알바라는 게 단순히 주문 받고, 음료 만드는 게 끝이 아니다.
수많은 종류의 음료 이름 다 외워야 한다. 이름만 외운다고 끝인가? 레시피도 전부 다 알아야지. 기본 레시피에서 파생되는 변형 레시피도 알아야지. 주문도 마찬가지다. 할인되고 적립되는 카드, 신제품 판촉 멘트, 프로모션 행사, 주문한 손님의 특징 등등 외울 것 천지다.
그런데 지연이는 한국대 다니니까, 기본 머리는 있다는 이야기고. 암기력에서도 문제없고.
마지막으로 보건증. 카페 알바에 보건증은 필수인데, 지연이는 벌써 보건소 가서 검사도 받고, 보건증 신청도 해놓았다고 하니, 점장 누나 입장에서는 ‘이 친구는 벌써 준비가 다 되어있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겠지.
솔직히 안 뽑을 이유가 없다.
내가 점장이라도 무조건 뽑는다. 업장 입장에서 지연이는 플러스 요소면 플러스지, 절대 마이너스는 아니니까.
그리고 날 월요일로 보낸 것도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 점장 누나가 본사에 가게 되면서 월요일 마감을 맡을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고, 거기에 신입에게 텃세 안 부리고 차근차근 잘 가르쳐줄 사람도 필요했다. 그게 나고, 마침 지연이랑 아는 사이고.
내가 딱 적임자라는 이야기다. 사실 그렇지.
흐음. 아무튼 우리 지연이랑 앞으로 월요일에는 같이 알바를 하게 되었단 말이지?
흐음… 이거 이거
솔직히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