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 “조건이 있습니다.”
***
프린스가 날 데려간 곳은 과천 정부청사 인근에 위치한 상가 건물이었다.
으리으리한 주상복합 그런 거 아니고, 2층에 당구장 있고 3층에 한복집 있는, 그런 흔하디흔한 상가 건물.
그 상가 건물 지하에 식당가가 있었다.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 지하에 있는 깔끔하고 세련된 그런 식당가가 아니라, 어디 오래된, 아주 오오오오래된 아파트 지하상가에 있을 후줄근한 그런 식당가 말이다.
그 식당가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돈가스 전문 분식점’이 오늘의 목적지였다.
커다란 접시에 밥 한 덩이, 양배추샐러드, 대형 돈가스와 제육볶음, 조미료로 맛을 낸 오뎅 국물, 단무지, 김치가 반찬의 전부.
“학생 때부터 제가 자주 찾아오는 곳이에요. 아무에게나 소개해주는 곳 아닙니다.”
프린스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다.
단골이라는 프린스의 말이 진짜인 듯, 주인아주머니가 반찬 그릇을 내려놓으며 ‘아유.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그렇게 인사한다.
“자주 오고 싶어도 사람이 워낙 많아야죠. 저번에도 왔다가 줄 선 거 보니 최소 30분은 기다려야겠다 싶어서 그냥 갔다니까요.”
프린스가 넉살 좋게 그렇게 받아친다.
“아유, 그냥 몰래 들어오면 되지. 다음엔 슬쩍 와서 이야기해.”
“하하. 그랬다가는 아저씨에게 혼날 것 같은데요. 그렇죠?”
프린스가 그렇게 말하며 남자 사장님을 바라본다.
무뚝뚝한 얼굴로 열심히 돈가스를 튀기던 주인아저씨는 긍정도 부정도 표현하지 않고 그저 맥주 마실 거냐고 물어본다.
프린스가 차 가지고 와서 안 된다고 말하는 걸 보니, 가끔씩 차 두고 대중교통 타고 와서 낮술도 마시고 하나 보다.
이 양반 큰 그림 그리고 있는 건가? 나중에 정치하려고?
아니, 생긴 건 귀공자인데, 차는 왜 15년 된 국산 준중형이고 먹는 건 왜 제육 돈가스야? 왜 서민적인데?
***
돈가스는 맛있었다. 뭐, 애초에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기는 했다. 제육볶음에 돈가스. 이 정도면 반칙이지.
아니, 오늘의 반칙은 프린스다.
솔직히 인정한다. 그래. 잘생기고, 멋있고, 뭐, 공부 잘하고 전도유망하고.
그런 거 다 알겠다. 다 알겠는데, 오늘 보여준 모습은 솔직히 너무했다.
이렇게 소탈하다고? 이렇게 소박하다고?
그래. 뭐 소탈한 척할 수 있지. 소박한 척할 수 있다. 근데 핵심은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는 거다.
모르지. 꾸며낸 모습일는지. 하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꾸며 낼 수 있다면 프린스는 심리학 공부가 아니라 연기를 해야 한다. 전 세계 영화제에서 상이란 상은 다 쓸어올 테니까.
밥을 먹은 우리는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테이블이 두 개뿐인 작은 카페, 역시 사장님하고 아는 사이인지 반갑게 환담을 나눈다.
나는 프린스를 보며 확신했다.
정치다. 분명 정치할 생각인 거다. 그리고 대성할 거 같다.
하늘이 점지해줘야 한다는 대통령은 몰라도, 국회의원 같은 건 그냥 ‘해야지.’ 하면 될 것 같은데? 젊고 유능하고 잘생겼고, 인지도도 끝장나고. 투표율 가장 낮다는 20대 여성 표 다 잡아먹어 버릴 테니까.
“이게 나쁜 버릇인데, 식후에는 커피를 꼭 마셔야 뭔가 제대로 밥을 먹은 것 같아요.”
프린스가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담긴 컵 두 개를 각각 양손에 들고 와서 그렇게 말한다.
저 북쪽 친구들이었다면 이렇게 적었을는지도.
-위대한 령도자 프린스께서 ‘식후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반만년 동안 한반도에 내려온 전통’이라고 교시하시었다.
“조금 당황스럽지 않았어요?”
살짝 얼굴을 돌려 날카로운 턱선을 드러낸 채, 위로 10도 정도로 시선을 준 상태로, 광고 모델처럼 커피를 마시던 프린스가 그렇게 묻는다.
“네?”
“갑자기 밥 먹자고 해서요.”
프린스가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는데, 불경스럽게 ‘당황스러웠다.’ 같은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없어서, 그냥 웃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다고 했는데, 모르겠다. 자연스러웠을지.
“후배님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가끔씩 당혹스러울 때가 있어요.”
프린스가 그렇게 말하며 살짝 미소 짓는다.
100%다. 저 미소면 당선은 100%, 아니 1,000%다.
“나는 상대방을 모르는데, 처음 보는 사람인데, 처음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잘 모르는 사람인데, 상대방은 저를 잘 안다는 시선으로 바라볼 때, 반갑다고 눈빛으로 인사를 보낼 때. 그럴 때 느껴지는 당혹감이 있어요. 뭐랄까, 괴리감이라고 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간다. 유명인이 된 프린스를 사람들은 알아볼 테고, 아는 척을 하고 싶을 테고, 다가오려 할 테다.
사인을 받고 싶다. 사진을 찍고 싶다. 그들에게는 그저 오늘 하루의 작은 즐거움, 얼마 지나지 않아 의미 없어질 작은 추억을 위해 서슴없이 쉽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테고.
“불편하시겠습니다.”
“뭐, 그렇죠. 무의식적으로 한발 물러서게 되니까요. 그분들이 나쁜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도 아닌데.”
프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작게 웃는다. 그 웃음이 어딘가에 씁쓸함이 묻어있다.
“나쁜 마음이 아니라고 해도 그게 명분이 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주사라고 해서 안 아픈 건 아니니까요.”
아프지 않기 위해서 주사를 맞는다. 그런 명분이 있다고 해서 주삿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오는데 아프지 않을 리가 없다.
주삿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올 때 통각을 느끼는 것처럼, 원치 않는 사람들의 관심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인지도가 필수적인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인데, 그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이유로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고 함부로 사람 사이의 선을 넘으려 한다면 불편하지 않을 수는 없을 거다.
뭐 그런 어쭙잖은 위로를 하고 싶었다.
프린스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확실히….”
“네?”
“확실히 후배님은 뭔가 다르네요.”
그렇게 말하고 작게 웃는다. 조금 전 씁쓸함이 묻어있던 미소가 아닌, 평소에 보여주던 상콤한, 사람 홀리는 미소다.
“카페였죠?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가.”
“네.”
“솔직히 말하면 그때 착각을 했어요. 제 수업을 듣던 학생 중 한 명이 아닌가. 그렇게.”
“아, 네.”
그랬다고 했었다.
“모르겠어요. 하도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오다 보니까,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 좀 반가웠던 걸까요? 평소 같으면 아는 체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말을 걸고 싶더라고요. 근데 제 수업 안 들었다는 말에 조금 민망했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잘못한 것 같은데요?
이 사실을 대중들이 알면 ‘감히 너 따위가 프린스를 민망하게 만들었다니! 여러분 다들 돌을 드시오!’ 소리를 들을 것 같은데요?
“그다음에는 유 선생님 연구실이었고.”
“네.”
“바로 다음 날이었죠.”
“네. 맞습니다.”
“그때 후배님이 어떤 표정을 했는지, 기억해요?”
프린스가 그렇게 묻는다.
표정? 어떤 표정을 지었지?
놀랐나? 놀라기는 했을 텐데.
“놀라움. 그리고 약한 실망.”
프린스가 말한다.
놀란 건 그렇다 치고, 실망했다고?
“유 선생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불청객이 있네? 그런 표정이었어요.”
그랬을 것 같기도 하다. 유 선생님 연구실 가는 거니 차나 얻어 마셔야지.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을 거다.
그렇다고 내가 설마 ‘불청객이 있네.’와 같은 표정을 했을까.
“신기했어요. 정말 오랜만에 보는 표정이었으니까. 다들 나를 안다는 눈빛으로 다가가고 싶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나를 바라봤는데, 방해꾼이라는 표정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더군다나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말이죠. 신선했어요.”
…심리학이라는 게 진짜 무서운 전공이구나.
“그리고는 병원이었죠?”
“네. 중앙의료원.”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그때를 재빨리 떠올려 보았다. 그때는 어떤 표정을 지었지?
“그때는 반가워해 주더라구요. 아는 사람이다, 그렇게.”
다행이다.
“내가 그때 그런 이야기 했었죠. 이상하게 후배님 얼굴은 기억에 남는다고. 무슨 인연 같은 게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프린스는 그렇게 말하고 광고 모델처럼 커피를 또 홀짝인다.
“심리학전공을 선택한 신입생들이 가장 후회하는 부분이 뭔지 알아요?”
“…수학?”
내 대답에 프린스가 웃는다.
“심리학 전공은 문과 쪽이라는 인식이 강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왔다가 확률통계 때문에 고통받는 경우가 있죠. 그나마 우리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우는 확통 정도는 다들 어느 정도 수준은 익히고 오니까 다행인데, 다른 학교 학생들은 수학 때문에 전공을 바꾸기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역시나 두려운 학문. 심리학.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심리학이 대단하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아무래도 숫자를 기반으로 하는 학문이다 보니, 이쪽 공부하는 사람들은 흔히 인연이나 우연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해서 그다지 가치를 두지는 않죠. 나도 그렇고. 그런데, 그날 병원에서 그 단어가 떠올랐어요. 우연이 참 재미있다. 어떤 인연 같은 게 있을까? 그런 생각 말이죠.”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다.
이거 딱 그 분위기잖아. 브.로.맨.스.
“저번에 이야기했죠? 나도 여자 좋아한다고.”
“네? 네.”
“후배님은?”
“저도 여자 좋아합니다.”
누가 나에게 성적지향을 묻는다면, 세상 모든 개개인의 성적지향을 존중하는 이성애자라고 말할 것이다.
“오해 안 하죠?”
“오해 안 합니다.”
프린스는 다시 웃고는 말을 계속한다.
“예전 일상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네?”
“자연스럽게 거리를 걸어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긴 잡담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디에 있으니 소주 한잔하게 당장 달려오라는 전화를 받고. 그런 평범한 일상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잘 모른다. 평범한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이지.
“어느 순간부터 그러한 일상들을 만들어주던 사람들이 주변에서 멀어지고, 특별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다 보니, 좀 마음이 답답했어요. 내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다른 누군가가 되어 가는 것만 같고. 그러다 후배님을 만났는데, 후배님은 특별한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네. 조금은.”
“그냥 길 가다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자판기 커피 마시며 가벼운 잡담 나누고, 이렇게 가끔씩 점심 먹고. 그냥 그렇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말없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방송가에서 탐내는 얼굴 천재 심리학 박사 프린스가 아닌,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인 학교 선배가 있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눈앞의 선배가 고개를 끄덕인다.
“말을 편히 해주시면.”
내 말에 선배가 씨익 웃는다.
“나도 조건이 있어요.”
프린스가 날 보며 말한다.
그리고 프린스의 ‘그 조건’을 들은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