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 정현식 (2)
***
뭔가 찝찝한 기분으로 마감을 마치고 카페에서 나오니 도로에 시커먼 중형차 한 대가 비상등을 깜빡이며 기다리고 있다.
내가 혹시나 싶어서 그 차를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자동차 문이 열리고 조수석에서 변호사님이 나오신다.
모습을 보인 사람은 변호사님뿐만이 아니었다. 운전석 쪽 문도 열리고, 거기에서도 어떤 중년 남자가 나온다.
짙은 색 양복, 건장한 체격. 딱 봐도 변호사님의 운전기사는 아니다.
어둠의 세계 주민이라는 인상을 주는 중년 남자는 나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듯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당황하지 않고 나도 고개 숙여 연장자에 대한 예를 취한다.
옛날 같았으면 당황해서 어버버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상황을 하도 여러 번 겪다 보니 이제는 이 정도로는 놀랍지도 않네.
변호사님이 뒷문을 열어주셨고, 나는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뒷좌석에 올랐다.
보조석 뒷자리. 이놈의 상석은 어떻게 해도 편해지지가 않는단 말이지.
아무튼, 그렇게 차를 타고 20여 분을 이동해서 어느 사무실로 갔다.
거기랑 비슷하다. 예전에 강우현 그 형님과 만났던 교대역 오피스텔하고 느낌이 비슷하다.
대충 다섯에서 여섯 명 정도가 사용할 수 있는 크기의 테이블이 가운데 있고, 테이블 위에 커다란 모니터, 주변에 의자 몇 개가 놓여있는 그런 공간. 국정원 요원들이 사용하는 안전 가옥 같은 그런 느낌의 사무실이었다.
변호사님이 커피 마시겠냐고 물었고, 나는 물이면 된다고 했다.
아마 토요일이었다면, 토요일 그 지옥 같은 알바를 마치고 왔었더라면 아무리 연장자에 대한 예의를 중요시하는 나라고 해도, ‘저녁 내내 커피 내렸는데, 커피가 먹고 싶겠습니까?’ 같은 소리를 했을지도.
아무튼, 변호사님은 직접 음료를 만들러 가셨고, 테이블에는 운전석에 앉아 있던 건장한 중년 남자와 내가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확실히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정현식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중년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두 손으로 공손하게 명함을 건넨다.
나도 두 손으로 공손하게 그 명함을 받아 재빨리 살펴본다.
엄청나게 심플한 명함이다.
법무법인 철주, 정현식, 그리고 전화번호. 이게 전부다.
확실히 처음 보는 얼굴, 처음 보는 이름이다.
아니. 잠깐만. 법무법인 철주? 철주? 철 기둥?
머릿속에서 승환이의 말이 재생된다.
-법무법인 철주, 그 사람의 회사.
그래. 그런 이름이었다. 승환이 아버님께서 운영하시는 법무법인. 분명 철주라는 이름을 썼었다.
“혹시… 승환이?”
내 말에 중년 남자가 작게 미소 짓는다.
짙은 색 양복과 건장한 체구 때문에, 강렬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인상인데도 그 미소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계주를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한다.
소계주?
“계주님의 뒤를 있는다는 의미로, 저희는 소계주라 칭하고 있습니다.”
중년 남자가 그렇게 설명한다.
아하. 승환이 아버님이 계주라고 하셨더랬지? 그러니까 박승환이 소계주.
박승환 그 자식, 도련님이었구만! 어? 집에서는 소계주님 소리 듣고 오냐오냐하면서 컸구만. 그래서 애가 버릇도 없고, 아주 막 지멋대로, 지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살고 있구만!
아무튼, 그건 그거고, 그런데, 왜 승환이네 쪽 사람이 왜 이 자리에?
***
먼저 설명을 시작한 것은 변호사님이었다.
역시, 우리 말썽꾸러기 제이슨에 관한 이야기였다.
요약하면 우리 제이슨은 지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검찰이고 변호사고, 지금 제이슨은 관심도 없고, 제이슨 아버지, 아이테크건설 임원영 대표를 터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차명계좌로 조성한 비자금 사건이 점점 커진다는 이야기지.
변호사님 이야기로는 차명계좌와 비자금은 회사 경영에서 아주 널리 사용되는 편법이라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제이슨 아버지 임원영 그 아저씨 입장에서는 ‘남들도 다 그러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 그렇게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 용처다.
천 개가 넘는 차명계좌를 통해 수백억 원의 회삿돈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비자금이 온갖 불법적인 용도로 쓰였다는 거다. 뭐 계열사 주식을 헐값에 사들인 정도는 양반이고, 장부도 나왔단다. 뇌물 장부 말이지.
참 우리나라 사람들 꼼꼼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 얼마를 주었는지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는 장부가 나왔는데, 거기 쓰여있는 이름이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정치권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 돈 안 받은 곳이 없을 정도라고. 장부만 봐도 21세기 들어 최대 규모의 뇌물 게이트가 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라고.
아니, 장부도 장부지만, 가장 큰 폭탄은 다른 데 있단다. 그 비자금이 부동산 개발 회사로 흘러 들어갔는데, 그 개발회사에 국회의원님 아드님이 낙하산으로 내려오셨다 이거지. 뭐 낙하산까지는 그렇다 쳐도, 그 국회의원 아드님께서 회사를 그만두실 때, 퇴직금으로 수십억 원을 받아 가셨는데, 언론에서 그 냄새를 맡았다는 거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검찰 쪽에서 일단 엠바고를 걸어놓고는 있는데, 그래도 터지는 건 시간문제고, 그게 터지면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여차하면 당 하나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사안이라서, 지금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운 상황이라고.
변호사님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는데, 피해당사자인 나조차도 상해 사건을 일으킨 제이슨이 잡범 취급받는 것도 이해가 갈 정도다.
아무튼, 뭐 조만간 신문에서 ‘임원영 게이트’라는 폭탄이 연쇄 폭발을 일으킬 상황인 만큼, 제이슨이야 뭐 검찰이고, 변호사들이고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있단다.
아, 그리고 제이슨 지금 밖에 있다네? 도망치다가 잡혀 왔으니까. 보석은 어려울 거라고 변호사님이 그랬었는데. 그래서 구치소에서 콩밥 먹고 있는 줄 알았는데, 보석으로 나와서 쌀밥 먹고 있단다.
우리나라가 그렇단다. 가족이 연관되어 있으면 다 잡아넣지 않는다고, 부부가 같이 잡히면 둘 중 한 명만, 보통 남편만 구속하고, 아내는 불구속하는 식으로 진행된다고 변호사님이 설명해주셨다.
이번에도 그쪽에서 그렇게 신경을 썼단다. 아버지와 아들이 전부 다 구치소 들어갈 상황이니까 일단 아들은 빼냈다 이거다.
변호사 측에서는 제이슨을 가둬두고, 아버지를 빼내려고 했는데, 그렇게 빼내기에는 일이 너무 커져서 아버지를 빼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둘 다 가둬두기는 뭐하니 제이슨만 빼냈다는 이야기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사실 그 말 말고는 따로 할 말이 없다.
“괜찮으십니까?”
변호사님이 물어보신다.
“네. 저는 괜찮습니다.”
그렇잖아. 안 괜찮으면 어쩔 거야.
‘아니! 이보시오! 변호사 양반! 그게 지금 무슨 말이오! 분명 당신이 그러지 않았소! 구속상태로 재판받을 거라고! 보석은 없을 거라고! 분명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 임원영이고 뭐고, 나는 제이슨 그 망할 놈만 짓밟으면 그만이오! 수임료 값을 하시오! 당장 방법을 강구하시오!’
그렇게 진상 부려?
그리고 애초에 나는 수임료 한 푼도 안 냈잖아.
“다음 공판은 다음 주 화요일입니다. 이후 2~3주 이내에 최종 판결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마 그리 늦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변호사님이 설명해 주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영호 씨도 그렇고 피고 측에서도 죄를 인정한 만큼 유죄 판결이 유력합니다. 하지만 실형까지 이어질지는 판결이 나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검찰에서는 특수상해로 8년을 구형했습니다만, 판례로 봤을 때, 3년에서 4년 징역 정도의 판결이 예상되지만, 임원영 대표 건도 있고, 피고 변호인 측에서도 노력하고 있는 만큼 징역 2년에서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정도로 예상됩니다.”
결국 어떻게든 나온다는 이야기다. 뭐 어쩔 수 없지. 민사도 아니고, 형사인데, 우리 쪽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변호사님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자, 그럼 이제 내가 들을 이야기는 다 끝난 건가요?
내가 그런 표정으로 변호사님을 바라보는데, 변호사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그리고는 ‘또 알려드릴 사항이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하고는 밖으로 나가신다.
응? 뭐지? 갑자기 저렇게 나가신다고? 지금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시츄에이션이지?
잠깐 당황하는 사이에, 사무실에는 나와 정현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년 남자 두 사람만 남았다.
헐. 뭐지? 나 낯가리는데? 박승환이라는 매개체가 있다고 해도, 아직 어색한데?
그런 생각하는데, 중년 남자가 서류 봉투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 내 쪽으로 밀어준다.
서류 봉투를 향했던 내 시선이 다시 중년 남자에게로 향했을 때, 남자의 입이 열렸다.
“제이슨이 판매상과 접촉했습니다.”
***
가로등이 창밖을 스쳐 간다.
그렇게 가로등이 스쳐 갈 때마다 유리창에 차 내부의 모습이 반사되어 비춘다.
정현식 이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년 남자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는 집으로 가고 있다.
조금 전이랑 다른 점이 있다면, 변호사님은 안 계시고, 나는 조수석에 타고 있다는 정도?
그렇게 차 창문에 비치는 중년 남자를 바라본다.
-언약, 약속, 계약이라는 의미에 맺을 계(契) 자를 사용합니다.
사주 중 하나인 계주에 대한 강우현의 설명이었다.
-계주의 역할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독자적으로 역할을 맡는다기보다는 다른 세 개의 기둥을 지원하는 포지션이라고 설명 드리는 것이 가장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런 계주에서도 주력으로 담당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정보를 다루는 것입니다.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고, 그렇게 분석한 정보를 활용하는 역할을 주로 수행합니다. 대표적으로 여론의 방향을 움직이는 일이 있습니다.
여론의 방향을 움직인다. 쉽게 말해 여론조작이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승환이 아버님이 승환이가 오해하고 있던 것처럼 합법과 불법의 영역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악당 변호사가 아니라, 온 나라의 정보를 쥐고 흔드는 대악당이시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 대악당의 두목이 우리 할아버지고, 그 할아버지의 후계자가 나고.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아, 승환이 아버님은 어둠의 세계의 거물이시구나. 무서운 분이구나.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승환이로부터 제이슨의 마약 정보 출처가 아버님 쪽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좀 놀라기는 했지만 실감이 났던 건 아니었는데….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서류 봉투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은 SNS 메시지 캡처본이었다. 제이슨이 원래 알고 지내던 마약 딜러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시간은 오늘 오후였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주고받은 메시지였다.
내용은 심플했다.
요즘 그쪽 분위기는 어떤지, 시세는 어떤지, 그리고 구매하면 언제 받을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하지만 구매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렇게 질문만 하고, 끝끝내 구입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다.
-겁을 내고 있습니다.
중년 남자의 말이었다.
일단 풀려는 났지만, 자신이 불구속 상태이고, 지금은 몸을 사려야 한다는 인식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겁을 내고 있다고.
-시간문제입니다.
그렇게도 말했다.
겁을 내고는 있지만, 약이 주는 쾌락에 대한 갈망이 공포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다음 주 있을 공판부터 판결 때까지 압박감이 최고조로 이르면 결국 약에 손을 댈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바라는 결과였다.
하지만 기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굳은 얼굴로 알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
우리 집에서 5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차가 멈추었다. 내가 그곳에 내려달라고 했다. 편의점에 가서 살 게 있다는 핑계로.
사실은 좀 걷고 싶었다. 뭐, 적당히 음료수 하나 사 들고 마시면서 들어가면 되겠지.
아무튼 그렇게 차가 멈추고, 중년 남자가 말한다.
“요청할 사항이 있으시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작게 고개를 숙인다.
나도 그런 중년 남자에게 같이 고개를 숙였다.
요청할 것이 있을까? 내가 어둠의 세계를 주름잡는 저 사람들에게 요청할 것이 있을까? 물어볼 것이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물어볼 것이 있었다. 저 사람들만이 대답해줄 수 있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물어볼까?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나는 고개를 들고, 오늘 감사했다고, 조심히 들어가시라고 말씀드리고는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려, 멀어져가는 차량의 후미등을 바라보며 나는 승환이를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