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69화 (169/271)

169 : 정현식 (1)

***

“뭐, 고향이라도 내려갔나 보지. 급한 일 있어서.”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밥을 천천히 육개장 국물에 말았다.

밥을 마는 습관이 위장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식습관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안 말 수가 없다.

내 몸 안에 한국인의 DNA가 ‘국밥은 말아야지!’라고 외치고 있었으니까.

음. 역시. 밥은 말아서 먹어야 해.

“지우 씨도 같이 갔으려나?”

속마음 시커먼 이중훈이 그렇게 물어본다.

“왜? 관심 있어?”

“아니, 그런 거 아니고.”

“아니고?”

“그거. 영상 찍은 거. 그, 그거 드려야 하니까.”

오호라. 금요일 밤에 찍었는데 벌써 편집을 끝내놓으셨다?

사랑이 이렇게 위대한 거다. 아니, 이건 저열한 욕망인가?

“그래? 다 되었으면 나 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중훈의 몸이 딱 하고 굳는다.

“어?”

“전해줄게. 내가 전화번호 아니까,”

그렇게 말하자 이중훈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입만 뻐끔뻐끔하고 있다.

아닌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되는데! 직접 만나서, ‘제가 창회와 동생 분을 위해서 부족한 솜씨이지만 영상을 만들어봤습니다.’ 그렇게 1차로 이빨을 까면, ‘어머. 고마워요. 저희 남매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이렇게 1차로 감동을 주고, 심혈을 기울여 편집한 동영상을 보고 2차로 감동을 주겠다는 계획을 다 세워놨는데!

이중훈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명분이 없지. 명분이 없어.

자, 이중훈 선수. 이제 어떤 카드가 남았을까요?

“에이. 그건 아니지이~”

그렇게 반응한 것은 박찬희였다.

“응?”

“아니야. 너무 나갔어. 이번에는 봐줘라. 중훈이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이것도 방해하면 진짜 그건 아니지.”

박찬희가 그렇게 말한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이중훈 편을 들겠다고? 갑자기?

왜 그래? 너 갑자기 왜 그래? 커플 되니까 세상이 아름다워 보여? 니가 무슨 큐피드도 아니고, 온 세상을 사랑으로 채우고 싶어? 러브앤피스 포에버야?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다.

이중훈도 ‘이 자식이 갑자기 왜?’라는 눈으로 박찬희를 바라보고 있다.

“솔직히 나도 심적으로는 한수 너에게 동의하고 싶지만, 이번에는 좀 봐주자. 중훈이 저 녀석, 영상 찍는다고 고생한 거 나도 봤고, 물론 알지. 순수하지는 않지. 그래, 더러운 흑심이 담겨 있지. 그래도, 노력했잖아. 그 부분은 인정해주자고. 그리고 중훈이도 이제 어른이 되어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게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

박찬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중훈의 어깨를 두드린다.

“걱정할 필요 없어. 이 형님이 도와줄게. 우리 중훈이도 죽기 전에 연애라는 거 한 번은…. 켁!”

박찬희는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이중훈의 오른손 주먹이 박찬희 배에 들어가 있다.

“왜 때려!”

불시에 배빵을 맞은 박찬희가 그렇게 말한다.

“나, 나도 모르게….”

이중훈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다.

모르긴 뭘 몰라.

본능이 움직인 거다.

니 편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 연애한다고 잘난 척을 하는 박찬희에게 본능적으로 반응한 거라고. 무조건 반사 같은 거지.

여기는 지금 혼전 상황이야. 적과 아군이 따로 없거든.

***

오후 수업까지 모두 끝나고 나는 가방을 챙겼다.

알바 가야 하거든.

원래 월요일은 알바 없는 날인데, 지난주 창회 생일 때문에 목요일 알바를 오늘과 바꿨다. 그래서 노동으로 한 주를 시작해야 한다, 이거지.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얄팍하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해야만 하는 일을 조금 늦게 하는 것뿐인데, 뭔가 추가 노동을 하는 듯한 그런 억울한 기분이 든달까?

조삼모사가 틀린 말이 아니라니깐.

아무튼, 그런 무거운 마음을 안고, 해가 뜨기도 전에 부실한 아침밥 대충 먹고, 자욱한 새벽 안개 해치며 공장에 출근하는 산업혁명 초기자본주의 공장노동자의 심정으로 카페로 갔다.

점장 누나가 편의 봐준 건데, 이럴 때 늦으면 진짜 개념 없는 거다. 좀 일찍 가서 샤바샤바 해야겠다는 노동자의 슬픈 마음가짐으로 후다닥 출근이다!

***

와… 난 몰랐다. 진짜 몰랐네. 좋은데? 월요일 완전 좋은데?

아니, 같은 카페 알바인데 왜 월요일은 이렇게 업무 환경이 좋은데?

일단 손님 수가 적다. 포스기 안 찍어봐도 알 정도로 확실히 목요일보다 적다. 체감상 30%는 적은 것 같다.

단지 손님의 양적 숫자만 적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진상도 확실히 적다. 아니, 목요일에 비하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대부분이 테이크아웃. 무슨 급한 일들이 있으신지 바로 음료를 받아 밖으로 나가주신다.

매장에서 드시는 손님들도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거나, 커피만 후딱 마시고는 얌전하게 컵까지 카운터로 가져다주고 가신다.

와…. 이러면 할 만하지. 이러면 진짜 카페 할 만하다.

아니, 업주 입장에서는 손님 수가 적은 건 좀 그렇겠지만, 알바 입장에서는 꿀 알바 중 개꿀 알바다.

내가 슬쩍, 점장 누나에게 월요일은 좋네요. 그렇게 말했더니,

“월요일에는 확실히 스트레스가 적어서 그런 것 같아.”

점장 누나가 그렇게 분석한다.

주 후반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날카로워지는 게 느껴진다고. 아무래도 회사 다니고, 일하면서 누적되는 스트레스가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가 주말을 지나며 해소되고, 월요일에는 확실히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상태라서 그런 것 같단다.

뭐 맞는 말 같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오늘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확실히 사람들의 눈에 평화가 깃들어있다. 가능성 있는 이론 같다.

어디서 연구 안 했으려나? 왜 쓸데없는 연구만 골라서 하는 영국 대학 같은 곳에서.

아무튼, 월요일 좋네. 바꿀까? 목요일에는 병진이 형 혼자 피똥 싸라고 하고 난 월요일로 도망쳐올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여유 있게 일하다 보니, 어느새 마감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원래 카페 알바라는 게 보이는 것과 달리 노동 강도가 상당히 하드하다.

보이는 것처럼 웃으며 ‘안녕하세요. 음료 주문하시겠어요?’, ‘네.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대충 커피 만들어 맛있게 드세용.’ 그러다가, ‘아, 퇴근 시간이다. 집에 가야지~’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특히 마감이 이게 사람 잡는다.

일단 설거지. 주말에 사람 몰려서 제대로 설거지도 못 하고 정신없이 보내다가, 마감해야지. 그런 생각 하면서 개수대를 보면 산처럼 쌓인 컵과 접시를 보고 있으면 ‘그만둬! 당장 그만둬버리라고!’ 하는 마음의 외침이 들린다.

설거지에 비하면 홀 청소하고, 테이블 닦고,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 아니, 쓰레기 분리수거는 좀 짜증 난다. 제발 분리수거 좀 제대로 합시다. 그거 귀찮다고 다 섞어버리면 나중에는 두세 배의 노력이 들어간단 말입니다. 세이브 더 어쓰!

바리스타존 청소하는 것도 고역이다. 일단 그놈의 커피 찌꺼기. 알바 시간 내내 커피를 내린 뒤에 그놈의 커피 찌꺼기를 보고 있으면 구역질이 난다.

그래도 지금은 양반인 게, 예전에 카페에서 담배 피울 수 있었을 때, 재떨이에 커피 찌꺼기가 나갔었단다. 담배꽁초와 뒤섞인 커피 찌꺼기는 정말 최악이었다고.

아무튼 커피 찌꺼기 버리고, 바리스타존 용품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바닥 닦고, 그러고는?

에스프레소 머신 청소해야지.

일단 포터필터를 분리하고, 망도 빼내서 세제 푼 물에 담가둔다. 그룹 헤드도 분리해 역시 담가 놓고. 귀찮다고 맨손으로 하다가 화상 입는다. 꼭 장갑 끼고 해야지. 머신 밑의 배수판. 이거 장난 아니지. 아우, 생각만 해도 짜증. 스팀 노즐도 청소한다. 맨날 안 하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 카페는 점장 누나의 원칙에 따라 스팀 노즐도 매일 청소가 원칙이다. 아무튼 그렇게 포터필터랑 그룹 헤드 씻은 다음 또 조립하고. 조립하는 것도 그냥 콕 하고 끼는 게 아니고 나름의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고는?

오픈조를 위해서 비품을 채워 놓는다. 컵, 뚜껑, 홀더, 파우더 페이스트 분류해서 전부 다 세팅해놓아야 한다.

가끔 보면 마감조인데 이런 거 안 해놓는 개념 없는 알바들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 예의라고. 기! 본! 예! 의!

그렇게 실내가 적당히 마무리되면 야외테이블 정리하고, 세탁업체가 수거하기 편하도록 세탁할 천 종류 다 모아 행낭에 담아놓고, 야외테이블 정리하고, 입간판 같은 거 안에 넣고, 환풍기 끄고, 컴퓨터 끄고, 콘센트 다 빼고, 불 꺼주고. 그러고 나서 다시 빼먹은 거 없나 하고 확인하면 마감 끝이다. 퇴근이다.

영업 시간 다 끝나고 마감을 시작한다? 큰일 날 소리.

보통 영업 종료 30분 전부터, 진짜 환장하는 날에는 한 시간 정도부터 슬슬 시작해야 한다. 안 그러면 잔업 해야 하고, 잔업 하면 점장 누나가 본사한테 혼난다.

어디 쓰레기 같은 곳은 점장이나 사장이 마감 시간은 페이 안 쳐주는 곳도 있다고 하던데, 우리 점장 누나는 칼이거든. 1분이라도 초과근무 하면 한 시간 시급 더 쳐주거든.

아무튼, 마감이라는 것이 그렇게 괴롭고 힘든 노동의 시간인데, 오늘은 진짜 너무 좋다. 쓰레기도 평소의 반이고, 매장도 깨끗하고 설거지할 것도 별로 없고, 마지막에는 손님도 없어서 흥얼흥얼 노래 부르면서 머신 청소했다.

이러면 혼자서도 마감하지.

평소에는 대충 한번 쓱 닦아버리고 마는 스팀 노즐, 오랜만에 번쩍번쩍 광 한번 내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닦고 있는데, 카운터 한쪽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원칙상으로는 업무 시간 내에는 휴대폰 금지이지만, 정신 줄 놓고 깨톡질만 하고 있지 않으면 손님 없을 때, 가끔 보는 건 점장 누나도 뭐라고 안 한다.

그래도 웬만하면 휴게실이나 화장실 가서 몰래 보곤 했는데, 지금은 손님도 없고, 마감도 여유 있고, 점장 누나도 포스기랑 금액 맞춘다고 정신없으니 슬쩍 볼까나?

그런 나쁜 마음으로 휴대폰을 확인하니 문자가 하나 와있다.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확인하시면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고, 문자를 보낸 사람은 변호사님이었다.

***

다른 사람 같았으면 마감 다 끝내고 전화를 했겠지만, 변호사님이 이 늦은 밤에 연락을 해왔다는 사실이 의아했기에, 나는 점장 누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내가 다쳤던 것이 형사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점장 누나는 어서 전화해보라고 그렇게 말해주었고, 덕분에 나는 휴게실에 가서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갑자기 죄송합니다. 알려드려야 할 것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변호사님이 말한다.

내용은 되게 급박한 것 같은데, 목소리는 또 엄청 차분하다.

변호사 직업 특성 같은 건가? 아니지. 예전에 제이슨 그 멍청이가 데려온 선배 변호사 그 인간은 감정적이었는데.

아무튼, 우리 서현 씨 오라버니, 강우현 팀장님께서 소개해주신 변호사님은 ‘보고할 내용이 있다. 만나고 싶으니 시간을 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급한 내용인가 싶어서 전화로 말씀해주셔도 된다고 했더니, 급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 급한 것도 아니니 가능한 한 빨리 듣는 것이 좋고,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니라시네?

“네. 저는 언제든 괜찮습니다.”

사실 그렇다. 뭐 내가 직장인도 아니고, 수업 시간만 아니면 언제든 괜찮지.

“혹시 현재 계신 곳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지금 알바 중인데요.”

“언제 끝나십니까?”

“거의 끝났어요. 한 30분 정도 후?”

“알겠습니다. 그리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변호사님이 그렇게 말한다.

아니, 급한 거 아니라고 하셨는데? 이 밤에 여기까지 찾아오신다고?

뭐지? 무슨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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