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68화 (168/271)

168 : 마음에 찍은 점 하나

아, 뭔가 허기진다.

참 인체의 메커니즘이 정말 신비로운 게, 아침을 아무리 든든하게 먹어도 점심 먹을 시간 되면 뭔가 먹고 싶다. 분명히 아침에 먹은 샌드위치가 위장에서 소장으로 꿀렁꿀렁 다 넘어가지 않았을 것 같은데도 밥 달라고 아우성이다.

서양 생활사 관련해서 공부해본 적이 없어 양놈들은 어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원래 동양 문화권에서는 1일 2식이 기본이었단다. 점심은 안 먹고 아침과 저녁만 먹었다는 이야기다.

해 뜨기 전에 든든하게 아침밥 챙겨 먹고, 밭에 일하러 가서, 해지면 돌아와 또 든든하게 저녁 먹고 자는 거지.

그렇다고 해 있는 동안 한 조각의 음식도 허용하지 않겠다! 그런 건 아니고, 사람인지라, 그냥 사람도 아니고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라, 낮 시간에 배가 고프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그러면 일의 효율이 저하되니까, 정신 붙잡고 더 가열하게 일하라는 의미로 중간에 간단하게 뭘 먹었는데, 이를 해이해진 마음에 불을 붙인다, 또는 점을 찍는다는 의미로 점심(點心)이나 점심(点心)이라고 했단다.

아, 그리고 점심(点心)의 중국어 발음이 딤섬이다. 나도 그렇지만 딤섬, 그러면 만두가 먼저 떠오르잖아. 간식으로 만두를 많이 먹어서 그런 거지, 딤섬 이퀄 만두는 아니라고.

만두 생각했더니 만두 먹고 싶다. 오늘 만둣국 정식 나왔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런 씨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학생 식당으로 향했다.

우연치 않게 오늘 만둣국이 딱! 나오면 참 좋았겠지만, 오늘 한식은 육개장이네. 뭐, 육개장도 좋지.

육개장을 받아 들고 어디 가서 앉을까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식당 구석에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이중훈과 박찬희다.

뭐 그놈들을 피할 이유도 없고, 그쪽으로 가서 앉는다.

“오늘 창회 봤냐?”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찬희가 묻는다.

“아니? 못 봤는데?”

“오늘 김창회 오전 수업 안 들어왔어.”

이중훈이 말한다.

“그래?”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고 숟가락으로 육개장 국물을 떠먹었다.

음. 역시. 한반도의 대표적인 보양식 육개장, 자본에 찌든 대기업의 더러운 손길이 닿아있음에도 기본은 하네.

아니지. 학생 식당 운영하는 곳이 중앙그룹 계열사라고 했는데, 더러운 손길이라니!

우리 강민철 회장님의 따듯한 마음이 담긴 한 그릇. 회장님의 손맛! 그래!

“그래가 아니지.”

박찬희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다.

“그래가 아니면?”

“김창회가 수업을 안 들어왔다니까?”

“그런데?”

“그 자식 절대 수업 안 빼먹잖아.”

김창회 수업을 안 빼먹는다고?

몰랐다.

원래 성실한 놈이기는 하지만, 그 근육 봐라. 성실하지 않으면 내추럴로 절대 그렇게 못 만들지. 아무튼, 성실한 놈이기는 하지만 수업을 한 번도 안 빼먹었다고?

“왜?”

“장학금 받겠다고.”

그거였네. 집에서 도움 못 받으니까 학비는 장학금으로 해결해보겠다, 그런 생각으로 성실하게 수업을 듣는다.

“뭐, 장학금을 수업으로 받냐. 성적으로 받는 거지.”

내 자랑 같지만, 나도 받았거든, 그 장학금.

사실 우리 학교 장학금 제도가 좀 빵빵하다. 뭐 명색이 한국 최고의 대학이니까. 학내 장학금 말고도 외부 장학금도 꽤 되는 편이다. 학점 2.7만 넘으면 일단 10% 면제는 깔고 간다.

대기업 지원 많이 받는 공대 같은 경우 장학금이 철철 넘쳐흘러서 웬만하면 다 받는다고 하던데, 우리 과는 뭐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튼 아무 장학금이든 받는 건 그리 어려운 거 아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장학금은 개나소나닭이나염소나, 앞집 백수부터 뒷집 고시생까지 다 받는 10% 수업료 면제 같은 게 아니다.

정말정말정말정말 받기 어려운 반액 장학금이란 말이지. 지난 학기 기준으로 거의 200만 원 가까운 금액이다.

이거 진짜 힘든 거다. 다른 곳도 아니고, 나름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재수 없는 놈들이 모인 한국대에서 반액 장학금은 진짜 대단한 거거든!

“그래도 명색이 과탑인데, 수업은 전부 들어가 줘야지.”

찬희가 그렇게 말한다.

응? 지금 뭔가 이상한 단어가 들린 것 같은데?

“과탑?”

“어.”

“누가?”

“창회가.”

“창회가?”

“과탑.”

“과탑이라고? 김창회가?”

“몰랐어?”

몰랐다. 당연히 몰랐지.

울퉁불퉁 근육밖에 모르는 바보 김창회가 과탑이라고?

매치가 안 된다.

상상해보자. 이 공부 괴물들만 모인 한국대에서 학점 4.3을 찍고, 과탑 같은 거 하는 미친 인간이 어떻게 생겨 먹었을지를 한 번 상상해보자.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4.3 같은 건 불가능하거든.

아, 물론 김창회도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기는 하지. ‘정상이 아님’ 범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상상한 ‘4.3 받는 정상이 아닌 인간’과는 좀 거리가 있는데?

그런데 김창회가 과탑이라고?

뭐야. 지가 관우야? 왜 문무를 겸비하고 지랄이야.

아무튼 수업을 단 한 번도 빼먹은 적 없는 김창회가 오늘 수업을 빼먹었다. 지금까지 얼굴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이거지.

그런 이레귤러한 상황 속에서, 박찬희와 이중훈은 두려워하고 있는 거다.

맨날 지나다니면서 바라보던 마을 앞 장승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두려워!’ 이러고 있는 거다.

창회를 걱정하는 게 아니고.

“연락해봤어?”

내가 물었다.

“아니.”

두 녀석 다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대답한다.

“궁금하면 연락해보면 되잖아.”

“아니, 뭐 그렇게까지 할 정도는 아니고….”

“귀찮아.”

그렇게 말한다.

그래. 김창회 여자 아니니까, 궁금하기는 해도 연락할 정도는 아니겠지.

나는 그런 녀석들을 보고 작게 한숨 쉬고는 다시 국물을 떠먹었다.

승환아, 니가 그랬지? 친구를 골랐다고, 필요에 의해 니가 선택했다고.

넌 친구 잘못 골랐다.

그나저나 김창회 이 자식 오늘 학교 안 온 거 보니까, 내려간 일 잘 풀렸나 보네.

***

김창회는 봉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여름에서 한여름에 막 접어드는 시점, 평소 같으면 우후죽순처럼 자란 풀들이 빼곡히 덮여 있을 산소였지만, 유서 깊은 화양 김씨 문중의 선산은 도심의 공원처럼 잡초 하나 없이 잘 관리되어 있었다.

창회는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된 봉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누워있는 곳이었다.

수능을 보기 며칠 전, 작별 인사를 위해 마지막으로 찾아온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산소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보고 싶었다.

가끔씩, 그리움이 커져갈 때, 아무리 운동을 해도 보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지 않을 때, 산소에 찾아가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곤 했었다.

잠깐이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보고 오면, 그러면 그리움이 조금 해소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또 보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또 다른 감옥처럼 느껴졌다. 죽어서까지도 화양 김씨 종가라는 굴레에 벗어나지 못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와보고 싶지 않았다.

그랬는데, 지금 김창회는 봉분을 바라보고 있다. 엄마와 아빠가 누워있는 장소 그 앞에 서 있었다.

미안.

김창회는 속으로 그렇게 속삭였다.

미안해. 엄마. 아빠.

김창회는 그렇게 다시 한번 말한 후,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잘 관리되어 있는 봉분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다녀왔어요.”

김창회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동안 말없이 봉분을 쓰다듬었다.

***

환자복, 병상, 팔에 연결된 수액관. 그 어느 것 하나 할아버지와 어울리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창회가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여전히 고집스러운 그 얼굴이. 특히, 그 눈. 2년 만에 손자를 바라보는 강렬한 눈빛이 할아버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왔느냐.”

할아버지의 첫 마디였다.

김창회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단 한 번도 할아버지의 질문에 답을 안 해본 적이 없었다.

대답 없는 손자를 잠시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입이 다시 열렸다.

“밥은 먹었느냐.”

“…네.”

거짓말이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왔고, 무언가를 먹을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물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고 해도 무언가를 먹을 마음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결과는 같았겠지만.

먹고 왔다고, 그렇게 거짓으로 대답했지만, 할아버지는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창회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할아버지의 저 강렬한 시선은 언제나 다 알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저 무서운 눈빛이 창회의 마음 구석구석을 전부 더듬는 듯한, 그런 느낌을 주었다. 어린 창회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움츠러들었고,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할아버지의 눈빛은, 예전과 같이 강렬한 그 눈빛은 두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냐.”

그렇게 말한 할아버지의 입이 닫혔다.

언제나 그러셨듯, 할 말이 끝나면 그 입은 닫혔다. 필요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창회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할아버지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온다면, 예를 들어, ‘와줘서 고맙다’ 같은 말이 나왔다면, 창회는 당황스럽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니, 사실, 그런 말을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수술을 받으신다 들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창회였다.

예전 김창회였다면 절대로 이런 말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듣기만 하고, 따르기만 했을 것이다.

“별것 아니다.”

별것 아니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김창회는 긍정도, 의문도, 부정도 표현하지 않고서 할아버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언제 올라갈 생각이더냐.”

할아버지가 말을 돌렸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거짓말이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에 탔을 때, 얼굴만 보고 돌아가겠다고, 바로 돌아가겠다고 그렇게 결심했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왔다.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김창회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기왕 내려온 김에, 산에나 들렀다 가도록 해라.”

할아버지가 말했다.

산이라는 단어는 선산을 의미했다. 화양 김씨 문중이 소유하고 있는 선산만 열 개가 넘었다.

할아버지의 말은 그곳에 가서 조상께 인사를 드리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종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선산. 김창회의 엄마, 아빠가 잠든 그곳. 그곳에 들르라는 것이었다.

그리 멀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빨리 다녀오면 늦어도 저녁에는 서울 가는 버스나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속에는 ‘집에서 자고 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창회도 알고 있었다.

산소에 들렀다, 하룻밤 자고 가라.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김창회는 그렇게 말했다.

***

김창회는 편의점에서 사 온 초콜릿을 뜯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사 들고 온 고급 초콜릿은 아니지만,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초콜릿 중에서 가장 비싼 헤이즐넛 스프레드 초콜릿이었다.

봉지 하나에 들어있는 세 개의 초콜릿 중 두 개를 꺼내, 산소 옆에 두 개를 놓고, 하나는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운동을 시작하고, 처음 먹는 초콜릿이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강한 단맛이 입안에서 퍼져나갔다.

살짝 거부감이 일었지만, 김창회는 두말없이 초콜릿을 천천히 입안에서 녹였다.

엄마 하나, 아빠 하나, 그리고 자신도 하나.

그렇게 사이좋게 하나씩 초콜릿을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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