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 천륜(天倫)
한가서고(韓家書庫).
나는 그렇게 쓰여 있는 간판을 바라보고 있다.
빛바랜 간판. 서점만큼 세월의 풍파를 맞은 간판은 변함없이 이곳이 할아버지가 당신의 집이자 정원이자, 무덤이 될 곳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나는 고향 집 익숙한 거리에 서서 그 간판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번, 진철이 형 아버님에게 능력을 사용하고, 고해 성사를 하기 위해 내려왔을 때, 서 있던 바로 그 자리다.
뭐, 오늘도 비슷하다. 일단 할아버지에게 경과보고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번에는 월요일이었고, 아침이었고, 조금은 비장한 마음가짐이었다.
책임을 지겠다. 내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 그때는 그러한 비장한 마음을 품고 서점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일요일이고, 점심 즈음인 지금은 그냥 ‘뭐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런 마음이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이번에는 허락받았잖아.
그걸 허락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리 이야기도 하고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도 들었으니.
그리고 할아버지는 내가 이야기 안 해도 다 알고 있을 거다.
내가 어쩌다 그런 계획을 세우게 되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진행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떠한지.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다.
그렇다고, ‘알고 계신데 뭘 또….’ 하면서 어물쩍 넘어가는 것보다 내려와서 얼굴을 보며 직접 보고하는 것이 좋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할아버지의 변덕’을 면피할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이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보고를 핑계로 오랜만에 할아버지도 보고, 아니, 오랜만은 아니지. 얼마 전에 서울에서 봤으니까. 오랜만에 고향 집도 가보고, 겸사겸사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뭐. 그런 이유로 내려온 거지. 그런 거다.
아무튼, 나는 서점 간판을 잠시 동안 바라보다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서점을 향해 걸어갔다.
배고프다. 할아버지가 된장찌개 끓여놨으면 좋겠는데.
***
땡그랑.
문을 열자, 작은 종이 내가 왔음을 알린다.
소리가 들렸음에도 할아버지는 언제나의 모습 그대로, 당신의 자리에 앉아 돋보기안경을 쓰고서 책을 보고 계신다.
“왔느냐?”
할아버지는 손에 들고 있는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서 그렇게 말한다.
“다녀왔습니다.”
언제나 하는 인사.
“그래.”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책에 집중한다.
이 양반 일부러 저러는 거다. 이웃집 강아지가 놀러 와도 이렇게는 안 하겠다.
하지만 그게 또 싫지는 않다.
‘아이고, 우리 손주 왔어? 밥은 먹었고? 타지에서 고생하느라 살 빠진 거 봐라.’ 그렇게 반겨주는 것도 어색하지. 어색한 정도가 아니고, 상상만으로도 닭살 돋는다. 닭이 될 것 같다.
나는 할아버지 친구 고물상 박가이버 할아버지가 바둑 둘 때마다 사용하는 보조 의자를 가져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진짜로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요.”
그렇게 운을 뗀다.
여전히 할아버지의 시선은 책을 향해 있다.
“그…런데, 혹시 무슨 부작용 같은 건 없는 건가요?”
그렇게 묻자 할아버지가 책에서 시선을 떼고 날 바라본다.
“부작용? 어떤 부작용 말이냐?”
“아니요. 그 뭐랄까. 남들이 못 보는 걸 보게 된다던가…?”
내 말에 할아버지의 눈빛이 변한다.
한심한 놈. 그런 눈빛으로.
“왜 그런 부작용이 생긴다고 걱정을 하느냐? 그 나이를 먹고도 아직 귀신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냐?”
이건 좀 부끄러운 이야긴데, 고백을 하자면 나는 어릴 때 귀신을 좀 무서워했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서점 한쪽에는 아동용 공포소설이 적어도 몇 권씩은 구비되어 있었거든. 왜 빨간 마스크 같은, 혐오스러운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런 책 말이지.
우리 할아버지 성격상 그런 책은 안 받았을 것 같은데, 총판에서 아마 판촉용으로 아동용 공포소설 몇 권을 껴놨고, 그게 우연히 서점 한쪽 구석에 진열된 걸 내가 발견했었겠지.
아무튼, 그런 책을 보는 날이면, 무서워서 혼자서 잠을 못 잤고, 할아버지 이불로 기어들어 가고는 했었다.
어릴 때 이야기라고. 일곱 살, 여덟 살 그때 이야기!
참나. 할아버지는 그게 언제 적 이야긴데, 그 이야길 꺼내시는 거야.
“저 말고 창회요. 혹시 그 녀석에게 뭔가 안 좋은 부작용 같은 거 생기지 않을까 해서요.”
일단 표면적으로 봤을 때, 창회 어머님은 사후세계의 주민이시니까.
“어미가 자식을 만나는데 무슨 나쁜 일이 생긴단 말이냐. 그리고 나쁜 일이 생긴다면, 어느 어미가 자식을 만나려 하겠느냐.”
할아버지의 말이다.
그렇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천륜(天倫)이라고 한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말이다. 영혼이고, 사후세계고를 떠나서 엄마와 아들이 만나는 데 부작용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바보 같은 질문이었네요.”
할아버지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쯧 하고 차더니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렇게 끝난다고? 이렇게 끝낼 양반이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며 할아버지를 바라보는데, 할아버지가 말한다.
“어떻게 할 생각이더냐.”
“네?”
“모든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 알고 있으렷다?”
“…네.”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이냐?”
“…어떤 벌이든 군말 없이 받아야겠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할아버지가 다시 날 바라본다.
더욱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으로,
“쯧쯧쯧. 대학생이라는 놈이 어찌 이리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지. 창회라는 친우에게 어떻게 책임을 지겠느냐는 이야기다.”
“…네?”
“기억을 지우겠느냐?”
기억을 지우겠느냐는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말한 ‘책임’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요.”
나는 할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우지 않으려고요.”
***
토요일, 나는 성북동 할아버지 집 정원 벤치에 앉아서 창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회를 기다리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기억을 지울 것인지, 아니면 남겨둘 것인지.
만약에 엄마와 보낸 생일날의 기억이 두고두고 창회를 괴롭히게 된다면, 또는 창회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창회를 위해서 그 기억을 지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인생에, 기억에, 영혼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책임을 져야 하겠지. 친구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할아버지에게 말했던 것처럼 사람으로서 살아왔고, 사람으로서 행동하고 있고, 사람으로서 생각하려 하는 나 자신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겠지.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다.
책임을 지는 것은 두렵지 않다. 행동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니까. 할아버지에게 받는 가르침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솔직한 마음이었다.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창회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기를, 이겨낼 수 있기를 솔직하게 바라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창회의 모습이 보였을 때, 한참 동안 문을 닫지 못하고, 현관 안쪽을 바라보고 있는 창회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창회에게 소리 없는 응원을 보냈다.
이겨내야 해. 앞으로 살아갈 자양분이 되어야 해. 어머니가 바라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까.
힘겹게 문을 닫고,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는 창회를 보았을 때, 내가 앉아있는 벤치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는 창회를 보았을 때, 말없이 내 옆에 앉는 창회를 보았을 때.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회는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어머니가 바라시는 대로.
***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만 계실 뿐이다.
“일을 벌여놓고 책임을 회피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에요. 창회가 이겨낼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날의 기억은 기쁨이자 그리움이며 슬픔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곁에서 지켜봐 주려고요. 힘들 때는 어깨 두드려주고, 지칠 때는 팔을 빌려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친구로서 책임을 지는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내 말이 끝났을 때, 할아버지는 손에 든 책을 덮고, 천천히 나를 바라보신다.
“일천겁(一千劫) 동종선근자(同種善根者)는 일국동출(一國同出)하고, 이천겁(二千劫) 동종선근자(同種善根者)는 일일동행(一日同行) 한다고 하였다.”
나도 알고 있는 문장이다.
화엄경에 쓰여있는 구결로 전생의 천겁의 인연으로 같은 나라에 태어나고, 전생의 이천겁의 인연으로 하루를 동행한다는 이야기다.
“한 겁의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
할아버지가 묻는다.
“커다란 바위 위에서 비구니가 버선발로 승무를 추어서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 아닌가요?”
내 질문에 할아버지가 작게 웃는다.
이 녀석 보게?
그런 종류의 웃음이다.
“벽오금학도에 그렇게 쓰여 있지. ‘겁’은 힌두 신화에서 말하는 칼파의 음차이다. 1칼파는 1,000마하유가이다. 1마하유가는 1만 신년(神年)이고, 1신년은 태양력으로 360년이다. 이를 힌두 경전에서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 5장인 바위에 100년마다 한 번씩 내려오는 새가 부리를 비비고 가서 바위가 다 닳아 엎어지는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그게 무슨 의미더냐?”
“…영원의 시간이라는 의미 아닐까요?”
“인연이라는 것은 영원과 영원의 틈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기적이다. 그러한 인연 중 하늘이 맺어주는 천륜은….”
거기까지 말한 할아버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입을 닫았다.
할아버지로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영원과 영원이라는 시간의 실로 꼬아 만든, 기적 중의 기적과도 같은 것이지.”
그렇게 말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어쩐지 나에게 말한다기보다, 당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그런 느낌은 사라지고, 할아버지는 다시 나에게 말한다.
“능력을 사용함에 있어서 네 녀석이 책임질 일은 없다. 올바른 결정이었고, 올바른 사용이었다. 다만 결정에 있어서 진중하지 못한 것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네 녀석이 알기 쉽게 이야기하면 시공간을 왜곡하고, 생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는 일이 얼마나 중한 일인지 꼭 기억하도록 하여라.”
“네. 꼭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찌 사고를 쳐도 큰 사고만 치는지…. 쯧쯧쯧.”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책을 바라본다.
할아버지 특유의 말투가 이번 일과 관련한 모든 판결이 끝났다고 말해주었다.
뭐, 잘 끝났다. 일종의 기소유예 정도로 잘 마무리되었다.
자, 하나 끝났고, 그다음 챕터를 진행해야지.
“저기. 할아버지.”
“왜? 또 무슨 할 말이 남았느냐?”
“할 말이라기보다는… 여쭤볼 게 하나 있는데요.”
“무어냐?”
그렇게 무심하게 말하는 할아버지를 나는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속 한편에 항상 존재하고 있었던 질문,
그리고, 단 한 번도 마음 밖으로 꺼내본 적 없는 질문, 할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질문을 처음으로 꺼내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