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 “없지.”
역시 예상한 질문이었다.
“그래, 맞아. 동기, 친구, 같이 수업 듣고, 같이 밥 먹고, 같이 놀던 그 한수.”
창회는 말없이 내 눈을 바라보고 있다.
나도 그 눈을 마주 바라본다.
나를 바라보는 창회의 눈에는 의심이라는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맑고 투명한, 비유를 들자면 초겨울의 깨끗한 아침 하늘 같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닌 것 같아?”
내가 물었다.
“맞는 것 같아. 아니, 맞지. 내가 아는 한수, 동기, 친구, 같이 수업 듣고, 밥 먹고, 같이 놀던 그 한수.”
김창회가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는다.
“그래. 이 자식아.”
“…미안하다.”
“뭐가?”
“그냥.”
“미친놈.”
그렇게 두 번째 질문이 끝이 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겠지.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에는 말이지.
“지금부터 말해 줄게. 나에 대해서.”
나는 창회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
내가 승환이에게 처음 창회를 어머니와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던 그 날, 승환이가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러면 그건 어떻게 할 건데?”
“그거? 그거가 뭔데?”
“말해 줄 거야? 너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그래. 작은 어르신 어쩌구. 그냥 ‘엄마 만나서 좋았지? 이 형님이 주는 선물이니 고맙게 생각하고 열심히 돈 벌어서 은혜 갚아라.’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잖아.”
승환이가 그렇게 말한다.
사실 맞는 말이지.
시공간을 왜곡해 연결한다. 사후세계에 계신 어머니를 모셔오는데, ‘어쩌다 보니?’ 같은 소리를 해봤자 당연히 믿지 않겠지.
“둘 중의 하나지. 사실대로 말해 주든가 아니면….”
“기억을 지우든가.”
박승환이 내 말을 받는다. 역시 똑똑한 이 녀석은 단번에 이해하는구나.
“쉽고 편하네. 기억 지우는 게.”
그렇게 말하는 박승환이 내 눈을 바라본다. 그 눈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렇게 할 거냐고.
“어떻게 생각해?”
내가 물었다.
“뭐가?”
“내가 나 혼자 편하자고 기억 지우고 그런 놈인 것 같아?”
내가 승환이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박승환이 말한다.
“그럴 놈은 아니지, 너는.”
“그런데 왜 그딴 눈으로 바라보는데?”
“미안.”
승환이가 솔직히 사과한다.
“나 편하자고 기억을 지우지는 않을 거야.”
내가 말했다.
“그래야 한다면 창회를 위해서.”
승환이가 말한다.
그래. 이 녀석이라면 이해할 줄 알았다.
내 정체를 감추겠다거나, 설명하기 귀찮다거나 하는 이유로 창회의 기억을 지우지는 않는다. 만약 기억을 지운다면 그건 창회를 위해서.
“창회가 이겨낸다. 그렇게 가정하고, 그런 상황이면 너에 대해서 전부 다 이야기해 줘야겠네. 괜찮겠어?”
“뭐… 전부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뭘 뺄 건데?”
“너, 너희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유 선생님도.”
승환이는 말없이 날 바라본다.
“그런 곁가지는 빼고, 뭐, 우리 할아버지가 신이고 나는 다음 신이라더라. 그래서 과학적으로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그 능력으로 시공간 왜곡하고 어머니 모셔왔다.”
“안 믿으면? 시간아 멈춰라?”
박승환이 그렇게 말하며 오른팔을 번쩍 들어 올린다.
젠장. 저 자식 기억을 지워버려야지.
“안 해. 임마! 안 믿으면 뭐, 모르겠다. 안 믿으면 말고, 겁나서 친구 못하겠다 그러면 뭐 나도 어쩔 수 없지.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 해봤자 미친놈 소리나 들을 텐데. 그리고 창회가 그럴 놈이냐? 못 믿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겁내고 그럴 놈이냐?”
“그럴 놈은 아니지.”
“그래. 아무튼, 그 전과 변하는 거 없이 그냥 쭈욱 간다. 그게 내 기조다.”
“너무 낙관적인데?”
“이야기는 해봐야겠지. 너한테 했던 것처럼.”
“…나처럼?”
“그래. 기억 안 나냐?”
“….”
박승환이 불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지도 찔리는 게 있다 이거지. 하지만 지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고?
그래. 그러면 이 형님이 특별히 다시 기억을 떠올려주지.
“뚝방길에서 너 엄청 찌질거릴 때. 뭐랬더라? 니가 선택했다고, 친구로 우리를 선택했다. 뭐 그런 미친 소리…. 컥.”
박승환의 훅이 내 복부에 꽂힌다.
“잊어라. 제발 잊어라. 그 신력인가 뭔가로 제발 지워라. 아니, 지워줘. 내 머리에서 그날의 기억을 지워줘.”
“내가 왜? 두고두고 놀려먹을 수 있는데, 내가 왜?”
그렇게 말하는 나를 박승환은 괴로운 표정으로 노려본다.
“아무튼, 아예 시작을 안 하면 모를까. 시작했다면, 제대로 설명해줘야지.”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
“지금부터 말해 줄게. 나에 대해서.”
하지만 창회는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생일이었고, 선물로 엄마를 만나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너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고, 그래서 엄마를 만나게 해준 것이고. 맞아?”
창회가 그렇게 묻는다.
“그래. 맞아.”
“친구라서?”
“그래. 친구라서.”
“내가 너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걸까?”
“아니.”
“친구라서.”
“그래.”
창회는 고개를 들어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그렇게 잠시 동안 창밖을 보다 천천히 말을 시작한다.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아니, 니가 어떻게 한 건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창회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한 번만 더 물어볼게. 진짜 우리 엄마 맞지?”
“계속 물어봐도 돼. 그래. 진짜 너희 어머니. 진짜 니네 집.”
창회는 작게 웃는다.
“어제 엄마랑 거실에 같이 누워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대로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도 들었어. 아침이 온다고 해도, 현관문을 열지 않으면 이 시간이 끝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엄마와 영원히 같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서, 죽어야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죽을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그렇겠지. 나였어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아까 헤어…. 집에서 나올 때, 엄마가 그러더라. 차 조심하고 잘 다녀오라고. 그래서 나는 갔다 오겠다고, 그렇게 말했어. 항상 하던 인사처럼. 잘 다녀와. 차 조심하고. 갔다 올게. 그렇게 인사를 했어. …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확실히 알지. 진짜 우리 엄마였어.”
“그래. 진짜 너희 어머니.”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창회가 묻는다.
“지금 당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어제처럼 보고 싶을 때마다 엄마를 보겠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야. 나중에, 엄마가 원하는 대로 나에게 주어진 삶을 다 살고 나서, 그 후에 다시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창회가 진짜로 알고 싶어 했던 것은 지금 이 질문이 아니었을까?
“그래.”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그래. 다시 만날 수 있어.”
내 말에 창회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는 사라진 것이 아니야. 다시 만날 수 있어. 그 사실이 가장 중요하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해. 지금 당장 엄마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나중에, 나중에, 엄마가 말했던 대로, 지우 잘 키워 시집보내고 나도 장가가서, 아들, 딸 한 명씩 낳고,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때가 되면, 그때가 되면, 그때 엄마에게 가서 다시 열심히 살았다고. 칭찬해달라고. 엄마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이거지?”
“그래.”
“지금 너는 내가 아는 한수, 내 동기, 내 친구 한수가 맞고.”
“맞아.”
“지금의 너도, 어제의 너도, 지난주의 너도, 그리고 작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너이고.”
“그래.”
“진짜 우리 엄마고, 다시 만날 수 있고, 너는 내가 알고 있는 그 한수고, 내 친구이고. 내가 또 알아야 할 것이 있을까?”
김창회가 그렇게 말하며 오랜만에 씨익하고 웃는다.
보기 드문 시원한 미소다.
“없지.”
나도 같이 웃어주었다.
그래. 작은 어르신이고 중앙그룹이고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어?
창회는 사랑받는 아들이고, 언젠가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고, 우리는 여전히 친구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지.
***
길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주제가 부드럽게 넘어가면서, 나도 창회도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빠졌다.
우리는 각자의 음료를 홀짝거리며 평소처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시답잖은 이야기라고는 말 못 하지.
나는 몰래 생일파티를 준비한다고 고생했던 이야기를 해줬다.
너 때문에 나랑 서현 씨가 이렇게 수고했다. 박승환은 하나도 수고 안 했다. 그렇게.
솔직히 고생한 건 없다. 조금 신경을 쓰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고생이라고 말할 건 아니지.
하지만 이럴 때 아니고 언제 유세를 부려보겠냐.
창회는 지난 밤 어머니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어머니는 잘 지내고 계신다고, 아버지도, 외할머니도 다들 잘 계신다고. 그저, 조금 멀리 떨어져 계시는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셨단다.
그리고 칭찬받았다고 했다. 열심히 살았다고, 지우를 잘 돌봐주었다고, 그렇게 칭찬받았다고. 한국대에 들어간 것보다 좋은 친구들을 사귄 것을 칭찬해 주셨단다.
참나. 어머님은 무슨 그런 당연한 말씀을 하셨는지. 후후후.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 한 모금이 남았을 때, 내가 창회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어머니가 할아버지 이야기 안 하시더냐?”
컵을 들어 올리던 김창회의 팔이 딱 멈춘다.
“하셨네. 어머니가 뭐라셨는데?”
김창회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아니, 가장하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뭐 말하기 그러면 말고.’ 그러고 넘어갔겠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네.
아직 처리할 퀘스트가 남아 있거든.
“뭐, 그냥.”
“그냥?”
“뭐… 미워하지 말라고.”
“미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단순히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내 날카로운 추궁에 김창회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지우에게 전해 들었던 것처럼 창회 할아버님께서 어머니에게 나쁜 시아버지가 아니셨다면, 분명히 어머니께서도 창회에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줬을 거다.
뭐, 창회가 어머니 말을 듣고, ‘아! 내가 할아버지에게 잘못했구나. 앞으로 효도해야겠구나.’ 그렇게 반성하면 참 좋은데, 아니, 반성은 하겠지. 해도 그러한 마음이 액션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의 남자라는 생물은 3살짜리 갓난아이부터 아흔을 넘긴 어르신까지 그놈의 꼬장꼬장한 자존심을 기본 패시브 스킬로 장착하고 있거든.
아니, 저건 패시브 디버프인가?
아무튼, 김창회 저 자식이, 엄마 말 듣고, 바로 고향 내려가서 할아버지에게 발목 붙들고 ‘그동안 제가 잘못했어요. 사랑해요. 할아버지. 제가 잘할게요. 엉엉엉.’ 하지는 않을 거란 말이지.
등을 살짝 밀어줘야지.
나는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거 지우가 준 거야.”
내가 봉투를 창회 앞으로 쓱 밀며 말했다.
“이맘때쯤 할아버지께서 지우에게 주시는 특별용돈이라고 하더라. 뭐 어떤 용도인지는 설명 안 해도 잘 알겠지.”
창회는 아무런 대답 없이 봉투를 바라보고 있다.
“5만 원짜리 스무 장, 백만 원, 고대로 들어있다. 10원 하나 빼지 않고 지우에게 받은 그대로. 원래 배달 수수료 30% 떼야 하는데, 이번에 특별히 봐줬다. 나중에 딴말하지 말고 세어봐. 이거 가지고 월세를 내든, 헬스장에 가져다 바치든, 보충제를 직구하든, 고급 닭찌찌살을 사 처먹든, 홍삼 사 들고 고향 가든 니 마음대로 해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그리고 너희 할아버님 다음 주 화요일 수술 받으신다더라.”
창회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지우 말로는 큰 수술은 아니라고 하는데. 뭐, 아무튼, 난 다 전달했다. 학교에서 보자.”
그렇게 모든 임무를 끝낸 후, 나는 봉투와 창회를 남겨두고 카페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