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 GREATEST LOVE OF ALL (2)
***
그날 나는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창회의 깜짝 생일파티를 해달라는 부탁을 지우에게서 받았던 그날, 플랫폼에 서서 멀어져 가는 고속버스를 바라보며, 창문 너머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지우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괜히 해준다 그랬어. 아, 벌써 귀찮다.
그렇게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늦어버린 후회였다.
그래도 남자로 태어나서 한 입으로 두말한 적 없이 살았다고 생각한다. 한다고 했으면 하는 거다. 할 수밖에 없는 거다.
기왕 할 거라면? 제대로 해줘야지.
어떻게 해야 제대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역시 최고 레벨은 감격해서 눈물 질질 짜는 거겠지?
울려? 김창회를? 야생의 눈빛이 맴도는 그 짐승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나게 한다고?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내 머릿속에서 아이디어 하나가 뻔쩍하고 떠올랐다.
잘하면 울겠는데?
아니, 확실히 운다. 이 방법은 확실히 울릴 수 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도 좋다.
김창회는 확실히 운다.
***
그렇게 김창회를 울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가다듬고, 타임 테이블을 대충 만들었다. 내 아이디어 구현을 도울 첫 번째 조력자는 우리 서현 씨였다.
뭘 도와달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저, 같이 논의할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심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서현 씨가 중국 출장에서 돌아온 그 날, 나는 서현 씨에게 창회의 여동생을 만나서 창회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몰래 창회 생일파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해준다고 해버렸다고 밑밥을 깐 다음, 터미널에서 떠올렸던 그 계획을 말해주었다.
“창회랑 어머님을 만나게 해주면 어떨까요?”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서현 씨는 ‘어머님을 만나게 해준다’는 말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몰랐으면 모를까, 생일인데 선물도 없이 그냥 보내기는 그렇죠. 그리고 내가 창회 입장이라면 어떤 선물을 받는 게 가장 좋을까, 가장 기쁠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그 생각이 든 거죠.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선물, 나만이 할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다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서현 씨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에는 걱정이 담겨있다.
“창회 그 녀석이 단순하고 무식하고, 머릿속에 운동과 근육 키우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도, 또 은근히 유리 같은 섬세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거든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5년 동안 경제적으로 자립하겠다고, 그래서 여동생을 챙기겠다고 그렇게 전력으로 살아왔는데, 누구 칭찬해 준 사람 한 명 없고, 누구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뭐 창회 그 녀석이 누구에게 칭찬 받겠다고 열심히 살았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칭찬해 주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에요. 그런 마음이기는 한데, 뭐 우리가 ‘창회. 잘 살았어. 아주 칭찬해.’ 해봤자 좋아할 것 같지도 않고,”
“…어머님께 칭찬을 받게 해주고 싶다는 말씀이죠?”
“네. 뭐. 그렇죠.”
서현 씨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내 계획에 찬성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걱정스럽다고 말하는 두 눈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어떻게… 만나게 해주실 생각인데요?”
당연한 질문이다.
5년 전 돌아가신 창회 어머니를 어떻게 만나게 해줄 것이냐.
“모셔와야겠죠?”
“…모셔온다고요?”
“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역시 그 방법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냥 심플하게, 창회 꿈에 개입해서 어머니가 그동안 열심히 했다고, 그렇게 칭찬해주면 어떨까 싶었는데,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진짜가 아니니까, 어머니도, 칭찬도, 그리고 꿈도 진짜가 아니니까요.”
“…진짜는 아니죠.”
“그렇죠. 만들어진 허상, 가짜죠. 물론 그 나름대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창회에게 위로가 되기는 하겠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구태여, 가짜 방법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달까요. 아무튼…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다가, 예전에 창회가 살던 집을 구현해서, 어머님을 모셔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고, 아니, 기왕이면 가상으로 구현하기보다는, 진짜 창회네 집을, 5년 전에 창회가 살던 그 집을 그대로 연결하면 되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진행된 거죠. 진짜 집. 진짜 어머니.”
내 이야기를 듣고서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서현 씨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가능할까요? 그게?”
“모르겠어요.”
내 대답이다.
솔직히 모르겠다.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시공간 왜곡이야 그렇다고 치고, 이미 돌아가신 창회 어머님을 사후세계에서 모셔온다?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로 실행할 수 있을까? 실행 후에 부작용은 없을까?
뭐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어차피 허락은 받아야 하니까.
물어보고, 안 된다고 하면 안 하면 되고, 된다고 하면 허락받고 하고.
허락 안 해주면?
몰래 하고 나중에 수습하고. 아몰랑.
“저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에요.”
그 말처럼 서현 씨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움이 가득하다.
“뭐, 괜찮겠죠? 못 하면 마는 거고, 할 수 있다고 해도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일단 러프하게 계획만 만들어 놓은 상황이니까,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면 되겠죠.”
내 말에 서현 씨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간다.
차를 음미하며 잠시 생각하다가, 갑자기 궁금하다는 듯 다시 물어본다.
“혹시 어디서 하실지 생각해 두신 장소는 있어요?”
“안 그래도 그게 가장 고민이에요. 어디가 좋을지. 동선이나 그림을 생각하면 창회가 자취하는 집이 제일 좋기는 한데…. 하지만 안 되겠죠?”
첫 번째 술자리가 끝난다. 그러면 창회를 집에 데려다준다는 핑계로 자취 집으로 동행한다. 그리고 자취방 문을 열면 예전 그 집의 현관이 보이는 거다.
동선이나 우리가 동행하는 명분에서 가장 그럴싸하기는 하다. 그럴싸하기는 한데…,
“창회 씨 자취하는 곳은… 좀 그렇지 않을까요? 후유증이 너무 클 것 같은데요.”
서현 씨가 그렇게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다. 창회 자취 집은 후유증이 너무 크지.
만약 그렇게 어머니를 만났다면?
그다음 날부터 자기 집에 들어갈 때마다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없게 될 거다.
이 문을 열면 옛날 집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엄마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고, 실망하고를 반복하겠지.
버틸 수 없을 거다. 아무리 김창회라도, 그런 희망과 절망의 반복이 계속된다면, 마음이 버텨내질 못할 거다.
“여기는 어때요? 우선 친구 집이니까 명분도 만들기 쉽고. 같은 7호선 라인이니까 동선도 깔끔하고, 승환 씨도 동참하는 건가요?”
“아직 이야기는 안 했는데… 아마도 같이하겠죠?”
“그러면 승환 씨도 문제없겠네요. 우리가 같은 집에 산다는 거 이미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승환 씨가 함께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서현 씨가 그런 의견을 제시한다.
어차피 필요한 건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목적을 가진 장소’와 공간 왜곡을 위한 ‘현관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여기도 괜찮은데….
잠깐만.
내 머릿속에서 전구 하나가 뿅 하고 떠올랐다.
거기가 있었네?
동선이 살짝 꼬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 눈치 덜 봐도 되고, 나중에 창회가 또 갈 일도 없고, 그리고 승환이를 들이기에도 부담 없는 장소, 할아버지가 머무는 성북동 집이 있었네?
***
할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서 그렇게 장소를 확정했고, 세부적인 계획과 타임 테이블을 작성했고, 모든 계획은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창회네 집, 정확히 5년 전, 중학교 3학년 김창회가 살던 옛날 그 집의 식탁에 앉아 있는 것이다.
김창회는 내 맞은편에 앉아 있다.
엄마 품에 안겨서, 마음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둔 5년 치의 울음을 다 쏟아낸 김창회의 두 눈은 단 1초의 놓칠 수 없다는 듯, 요리를 하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다.
내 옆자리에는 역시 충혈된 눈의 서현 씨가 앉아 있다.
서현 씨도 한참을 울었다. 내 팔을 꼭 잡고서,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소리 죽여 한참을 울었다.
서현 씨 맞은편에는 역시 새빨간 눈을 한 박승환이 앉아 있다. 저 녀석도 한참 동안 뒤돌아서 있었지.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나도 뭐, 비슷하다. 눈물바다가 쏟아질 것 같다고 시나리오 쓰고, 의연하게 버텨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사람이 다 비슷한가 보다.
아무튼, 그렇게 한바탕 눈물을 쏟은 우리 네 사람은 그렇게 시뻘건 눈을 하고 식탁에 앉아 있다.
창회 어머니만 가벼운 몸놀림으로 열심히 요리를 만들고 계신다.
이미 식탁 위에는 커다란 접시에 담긴 음식들이 가득하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LA갈비찜, 묵은지등갈비찜, 굴비구이, 오징어숙회, 훈제오리무쌈말이, 닭볶음탕….
하나하나 어디 가도 빠지지 않을 메인 메뉴다. 하나만 올라가 있어도, ‘오늘 무슨 날이야?’ 소리가 절로 나올 식탁 위의 주인공들이 모두 무대 위에 올랐다.
주연급이 다 한 영화에 출연한 거다. 생일상의 어벤져스다.
이럴 거라 예상은 했었다. 오랜만에 차려주는 아들의 생일상이니 힘을 주실 것이다. 그렇게 예상은 했었다. 했었는데, 지금 식탁 위에 장면은 내 예상을 훨씬 더 뛰어넘었다.
이미 어마어마한 음식이 식탁 위에서 존재감을 뿜뿜 뿜고 있는데, 어머니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신지, 계속 요리를 하고 계시고.
참으로, 엄마의 커다란 사랑은 아들의 마음으로는 계측할 수가 없구나.
“아들, 국 좀 받아줄래?”
유치원 다니는 꼬맹이처럼 엄마 등만 바라보던 김창회가 엄마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저 녀석, 옛날에도 엄마 말 저렇게 잘 듣는 녀석이었을까?
아무튼, 효자 모드 김창회는 미역국이 담긴 국그릇을 엄마에게 받아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런데, 창회만 국그릇이 두 개다.
미역국 하나, 김치콩나물국 하나.
“생일에는 미역국인데, 우리 창회가 김치콩나물국도 맛나게 먹었어서 같이 끓였어요.”
어머니가 흑미밥이 가득 담긴 밥그릇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씀하신다.
“어머니, 저도요! 저도 주세요!”
박승환이 그렇게 재롱 스킬을 시전한다.
재빠른 놈.
“저도 주세요.”
나도 재빨리 동참한다. 서현 씨도 손을 살짝 든다.
“그럴래요? 입에 맞을까 모르겠네.”
창회 어머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김치콩나물국 세 그릇을 더 뜨신다.
김치, 콩나물, 그리고 두부가 들어간 김치콩나물국이 앞에 놓인다.
“창회가 이렇게 친구들 데려오니 너무 좋네요.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들어요.”
어머니가 자리에 앉으시며 그렇게 식사 개시를 선언하셨다.
주연급 메인 메뉴가 식탁 위에 잔뜩 있었지만, 내가 숟가락을 제일 먼저 가져간 곳은 김치콩나물국이 담겨 있는 국그릇이다.
현관에서부터 후각을 자극하던 그 짭조름하고 시원한 국물을 조심스럽게 떠먹어 보았다.
그렇게 한 모금 맛을 보고 창회를 바라보았다.
창회 녀석도 김치콩나물국을 떠먹고 있다.
그렇네. 이제 알겠네.
나는 그런 창회를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잊지 못하지. 이런 맛이라면, 절대로 잊지 못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