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 GREATEST LOVE OF ALL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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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회를 태운 자동차가 물빛 가득한 광화문광장을 지나 경복궁을 끼고 북악산 쪽으로. 삼청공원을 따라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멈춘 장소는 ‘대사관로’라는 이름이 붙은 골목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사관로에 위치한 어느 저택의 차고였다.
여기가 바로 그 ‘그 장소’였다.
성벽 같은 담벼락, 고급 정원수가 심겨 있는 넓은 정원, 정원 한쪽에 마련되어있는 자쿠지, 집이라기보다 작은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예술적 형태의 3층 건물. 서북쪽으로 북악산 뷰를 자랑하는 이곳.
여기가 어디냐. 바로 거기다.
할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염치도 없이 신세를 지고 있다는 바로 그 성북동 저택. 강 회장님 말을 빌리면 성북동 성소(聖所).
처음도 아닌데, 여전히 적응 안 되는구만. 이놈의 집은.
아무튼, 이곳이 바로 오늘 애프터파티가 열리는 바로 ‘그 장소’였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차고에 바로 연결된 계단을 통해 정원으로 올라온 김창회는 내리는 비를 피할 생각도 못 하고, 넓은 정원과 위압감 주는 건물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아는 사람 집.”
내가 대충 그렇게 둘러 말했다. 뭐 틀린 말도 아니지.
“우리도 2차 해야지. 애프터파뤼.”
박승환이 김창회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하자 김창회가 긴장한다.
이해한다.
나 같아도 처음 보는 이상한 장소에 끌려와 당황하고 있는데, 박승환이 갑자기 저런 소리를 했다면 일단 경계 모드로 들어갔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박승환, 저 악마가 저런 말을 했다면, 저 악마가 꾸민 무언가라면 분명 좋은 일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친구야. 걱정할 것 없단다. 오늘의 설계자는 다름 아닌 바로 이 몸이시란다.
“창회 씨. 여기서 비 맞지 말고 안으로 들어갈까요?”
주차를 마무리하고 뒤늦게 올라온 서현 씨가 창회에게 그렇게 말하며, 건물 쪽으로 안내했다.
박승환이나 내가 가자고 했다면 분명 싫다고 했겠지. 아마 말이 아닌 몸으로 싫다고 했을 거다. 초크를 건다든가.
하지만 천하의 김창회도 서현 씨에게는 어쩔 수 없는지 잔뜩 경계한 등을 보인 채,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서현 씨의 뒤를 따른다.
‘진짜로 허락받은 거 맞아?’
어느새 내 옆에 바싹 붙은 승환이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본다.
내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받았다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그랬다니까.’
***
처음 애프터파티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장소를 고민하고 있을 때, 성북동 할아버지 집이 번쩍! 하고 떠올랐다.
할아버지의 성북동 집이라면 우리 집, 아니, 나와 서현 씨의 집에 창회나 승환이를 데려올 필요도 없고, 따로 장소를 빌릴 필요도 없고, 그리고 창회가 나중에 또 방문할 이유도 없다.
승환이도 이미 알고 있는 장소니까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고. 이보다 최적의 장소가 없다.
서현 씨는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하다는 데에는 동의해주었다.
다음 날, 나는 바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 저질러놓고 나중에 수습하는 게 편하기는 한데, 이번 일은 그렇게 하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미리 면죄부를 구입해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뭐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투박한 할아버지의 목소리.
스물한 해를 할아버지의 손자로 살아온, 할아버지 전공자 느낌으로 봤을 때, 할아버지의 지금 저 ‘뭐냐’는 ‘지금 기분 별로임’으로 해석되었다.
아, 씨. 오늘 타이밍이 아닌가? 나중에 이야기할까?
아니다. 시간도 얼마 없는데, 일단 말해보지. 뭐.
만약 안 된다고 그러면 그 핑계로 안 하는 거고.
우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손자 모드로 약부터 치자.
“안부 전화 드린 겁니다. 아침은 드셨는지요?”
그러나 약이 통할 양반이 아니지.
-용건만. 간단히. 세 문장 이내.
바로 저렇게 나온다니까.
“아니, 저기. 그냥 전화 드린 지도 오래되었고.”
-용건 없으면 끊는다.
진짜 혈육의 정이라고는 없는 양반 같으니….
“…저기, 그 할아버지가 머무시는 성북동. 거기를 좀 쓸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 안에서 뭘 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장소하고 문이 필요한….”
-마음대로 해라.
“네?”
-벌써부터 귀가 먹었느냐?
이렇게 쉽게 오케이가 떨어진다고?
뭐에 쓰려는지 들어보지도 않고?
“아니, 어떻게 쓰려는지 들어보시지도 않고….”
-가능하다.
“네?”
-집을 쓰겠다는 건 핑계고, 네놈이 진짜로 물어보고 싶은 것이 그것 아니겠느냐.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까먹고 있었다. 이 양반, 어르신이었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있구만. 젠장. 사생활이라는 게 없어.
“…가능해요?”
-가능하다. 하지만 능력을 씀에 있어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야.
그 말을 끝으로 할아버지는 전화를 끊었다.
***
그날,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니 갑자기 오한이 척추를 타고 흐른다.
할아버지 말을 정리하면 ‘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데, 책임은 져야 할 거야.’ 뭐 이런 뉘앙슨데, 할아버지가 나중에 이번 일을 핑계로 어떤 패악을 부릴지 벌써부터 두렵구나.
두려운 건 두려운 거고, 일단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찔러봐야지.
서현 씨에게 ‘제가 이런 신박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잘난 척해놓고 이제 와서 ‘할아버지한테 혼날 것 같아요. 무서워요. 못하겠어요. 징징징.’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아, 몰라.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일단 묻고 떠블로 가!
어느새 서현 씨와 창회는 현관문 앞에 서 있다.
현관문 앞에 멈춰 선 서현 씨의 몸이 경직되어 있는 것이 옷 위로도 느껴진다.
서현 씨도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긴장을 풀겠다는 듯 서현 씨는 작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손을 움직여 문손잡이를 잡는다.
천천히 문이 열린다.
“들어가실까요?”
서현 씨는 그렇게 말하며 옆으로 한 발 비켜선다.
창회는 그런 서현 씨를 잠깐 의아한 눈으로 보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앞으로 한 발 내디딘다.
그러나 이내 멈추어버린다.
딱 한 발만 내디딘 그 상태 그대로,
석상처럼, 마치 메두사의 눈빛에 의해 돌이 되어버린 석상처럼.
현관을 바라보는 그 상태 그대로
그렇게 굳어버린다.
그렇게 굳어버린 그 상태로, 현관문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나도 창회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곳에는 현관이 있다.
저번에 보았던 할아버지 저택의 거대한 현관이 아닌, 처음 보는,
열여섯 살의 중학교 3학년 창회가 살던 집의 현관이 있었다.
***
나는 모른다.
열여섯의 창회가 살던 집, 엄마하고 여동생과 함께 살았던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방은 몇 개고, 부엌은 어디에 있고, 현관은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창회에게 옛날에 살던 집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해도, 그때 그 집을 똑같이 구현해낼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똑같이 만들어낼 수 없다면?
그렇다면 진짜를 가져오면 되지 않을까?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면 되지 않을까? 공간 왜곡 같은 거.
공간을 왜곡해 할아버지의 성북동 집의 현관문과 창회 집의 현관을, 5년 전, 중학교 3학년 창회가 비에 흠뻑 젖은 상태로 들어서던 그 현관을 연결한다.
정확히 말하면 시공간 왜곡이다. 현재 시간의 현관문과 연결되는 것은 5년 전의 창회네 집 현관이니까.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는 했지만, 시공간 왜곡이라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기는 한 건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뭐 간단하게 아무 문에다가 시험해보면 되기는 하겠지만, 시공간 왜곡이라면 할아버지가 말한 삼라만상을 조절하는 능력의 범주에 들어가잖아.
‘시간아 멈춰라!’처럼 ‘한번 해볼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말이지.
아니, 뭐 다지면 ‘시간아 멈춰라’도 삼라만상 카테고리네.
아무튼, 직접 시험해보는 것보다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성북동 할아버지 집, 아니, 정확히는 그 집의 현관문을 써도 되겠냐는 허락을 받으면서, 동시에 다른 시간과 공간을 이어붙이는 것이 가능한지도 물어보면 되겠다고 생각을 한 거지. 다른 것도 물어보고.
그런데 우리 어르신 할아버지는 듣지도 않고 가능하다고 했다.
가능하다면 가능하겠구나.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한편으로 ‘진짜? 진짜 가능해? 진짜 진짜 진짜 진짜 가능한 거야?’ 그런 의심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석상처럼 굳어 버린 창회가, 처음 보는 현관의 모습이 할아버지가 말한 ‘가능하다’는 증거였다.
이번에도 신력은 나의 생각을 곡해하지 않았나 보다.
다행이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멈춰 서 있는 창회 등에 가볍게 손을 가져다 댔다.
넓고 탄탄한 창회의 등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그 미세한 떨림이 손바닥을 타고 전달되고 있었다.
“들어가자.”
나는 창회에게 그렇게 말해주며 살짝, 아주 살짝 힘을 주었다.
작은, 아주 작은 힘이었는데도, 창회는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에 밀리듯 앞으로 나아갔다.
현관문 앞에서 현관까지 몇 발자국, 고작 몇 발자국을 걷는 동안 창회 등의 떨림은 조금 더 강해졌다.
흘러 들어온 것은 창회 등의 떨림만은 아니었다.
현관의 들어서자 정원에서 피어나는 빗물의 냄새를 지워버리겠다는 듯, 다른 냄새가 흘러 들어왔다.
나는 단번에 그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 냄새였구나.
흠뻑 젖은 상태로 돌아온 창회를 반겨준 그 날의 김치 콩나물국의 냄새.
어딘가 짭조름하고, 어딘가 시원하며, 또 어딘가 따스한 느낌을 주는 김치 콩나물국 냄새가 현관 안쪽에서 은은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회의 발이 다시 멈추었다.
등의 떨림이 더욱 강해졌다.
김치 콩나물국 냄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그 발소리가 창회를 다시 멈춰 세웠다.
***
발소리가 들리고, 이내 한 여성분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창 요리 중이셨는지, 앞치마를 두르고 나타난 여자분은 우리를, 더 정확히는 창회를 보고 천천히 발을 멈추었다.
그렇게 3~4m 앞에 서서, 인자한 미소로 창회를 바라보고 계신다.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린다.
“생일 축하해. 우리 아들.”
그 목소리에 옅은 물기가 묻어있다.
얼굴 가득한 미소, 행복하다는 표정,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물기가 묻어있다.
창회의 등이 크게 울컥였다.
하지만, 창회는 여전히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서서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겠다는 듯, 움직이지 못한다는 듯 눈앞의 여자분을,
5년 만에 보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창회 등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내 곁에 다가온 서현 씨가 내 팔짱을 낀다. 서현 씨의 두 팔이 천천히 내 팔에 감긴다. 그렇게 감긴 서현 씨의 두 팔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창회 어머님은 일렁이는 눈동자로 창회를 한동안 바라보시더니,
“우리 아들, 오랜만에 안아보자.”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천천히 걸어오신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한 걸음으로.
그렇게 다가온 어머니는 두 팔을 벌려 창회를 앉는다.
조심스럽게, 마치 신생아를 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하지만 두 팔로 확실하게,
이제는 자신보다 훌쩍 커버린 아들을 감싸 안는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어. 고마워. 잘 지내줘서 엄마가 고마워. 너무 고마워.”
창회는, 이제는 자신보다 작아진 엄마에게 안긴 아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커다란 등은 세차게 떨리고 있다.
이제는 옷 위로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세차게 요동치고 있다.
그렇게 요동치는 등을, 어머니는 꼭 안은 두 손으로 쓸어내리며 계속 속삭여준다.
“엄마가 미안해. 먼저 가서 미안해. 우리 아들 남겨두고 가서 먼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
처음으로 창회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세차게 흔들리는 등에 공명하듯, 눈물이 가득 들어찬 창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말대로… 지우도 잘 보살….”
창회 등이 더욱 세차게 물결친다.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래. 알아. 알고 있어. 우리 아들이 얼마나 잘 해줬는지. 고마워. 엄마가 너무 고마워. 우리 아들에게 너무 고마워. 사랑해. 우리 아들.”
창회 어머니도, 눈물 가득한 목소리로, 더욱 강하게 창회를 끌어안으며, 그렇게, 그렇게 계속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던 창회의 두 팔이 천천히 위로 향한다.
그리고 이내 자신보다 작아져 버린 엄마의 몸을 세차게 끌어안는다.
동시에,
화장로 앞에서,
두 주먹을 꽉 쥐고,
앞으로 절대로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억지로 마음속 한쪽에 담아두었던 눈물이
5년 만에 강하게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