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58화 (158/271)

158 : 납치의 9할은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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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큰 사고 없이, 예를 들어 어두운 골목길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명치를 때리고 다구리를 놓는 비겁한 습격 같은 것 없이, 김창회 깜짝 생일파티는 잘 마무리되었다.

그러고 보니 제이슨 그 자식은 잘 지내고 있나 모르겠네.

기소는 되었고 조만간 재판이 진행된다고, 그럴 일은 아마 없겠지만, 혹시라도 증인으로 출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상황이 되면 알려주겠다는 이야기를 변호사에게 들었는데, 그다음으로는 소식이 없네.

뭐 변호사님이 유죄는 확실하지만 초범이라 집행유예 가능성이 높다고,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실 내가 기대하는 건 이번 재판이 아니다. 다음 재판이거든.

마약 재판. 집행유예로 끝난 제이슨 다시 약에 손댄다는 데 내 전 재산과 손모가지와 발모가지도 건다. 같은 쪽으로.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고 했는데, 이건 확실해. 제이슨은 다시 약에 손을 댈 거다. 새로 약에 손을 댔다는 증거만 나오면, 내가 예전에 가지고 있던 사진하고 잘 포장해서 검찰청으로 보내버려야지. 경찰 말고 바로 검찰로.

뭐 아무튼 마약 건도 변호사님이 알아서 하시는 것 같으니 나는 걱정 없겠지.

자신 앞에 어떤 어두운 미래가 펼쳐져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제이슨은 사과는커녕 합의해달라고 딱 한 번 연락 오더니, 이후에 연락이 없다.

무슨 짓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고 판단했는지, 공탁금 걸고는 특별한 액션이 없다.

공탁금 8천만 원?

손도 안 댔다. 당연히 안 대지. 돈이 뭐가 중요하겠어? 사회 정의 구현이 훨씬 더 중요하지.

그리고 민사 가면 배상금을 공탁금보다 더 받을 수 있다고 했거든. 민사 합의 들어올 가능성도 있고. 그쪽이야 돈이 문제가 아니지만, 시끄럽고 귀찮은 거 싫어서 민사 합의해 줄 수도 있다고 변호사님이 그랬다.

아무튼 빨리 결과 나왔으면 좋겠다. 얼른 민사 걸어서 배상금 받아다 흥청망청 쓰고 싶다. 적금도 들고,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믿을 만한 NGO에 후원금도 내고 말이지. 자고로 흥청망청은 남의 돈으로 하는 게 최고라고 할아버지가 그러셨거든.

***

7시 조금 넘어 시작한 회식, 아니 김창회 깜짝 생일파티는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돼서야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는 듯,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제법 비 같은 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준비하고, 중간중간 진행하고 챙긴다고 조금 피곤타 싶었는데,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그저 와서 먹고 마시기만 한 동기 녀석들은 술이 부족했는지, ‘비도 올 때는 막걸리에 파전이다!’라고 소리치며 1학년들을 데리고 2차를 갔다.

물론 나와 승환이, 창회는 안 갔다. 할 일이 남았다는 핑계를 대고.

사실 거짓말도 아닌 것이, 계산도 해야 하고, 사장 형님 정리하는 것도 좀 도와야 하고.

우리 착한 지연이도 남아서 돕겠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2차 가서 놀고 있으라고 그렇게 먼저 보내버렸다. 은밀한 2차 애프터파티에 우리 지연이는 초대받지 못했다.

미안하다. 절대 지연이 니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솔직히 승환이보다 우리 지연이가 더 좋단다. 이번에는 사정이 있단다.

아니, 그리고 지연이도 남아서 돕겠다고 하는데, 이중훈은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지가 2차 전집 먼저 가서 자리 잡아놓겠다고 하고는 도망갔다.

박찬희는 그보다 훨씬 전에 도망가 버렸다. 유라와 구석에서 한참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더니,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찬희가 한참 동안 혼났다는 표현이 맞겠지. 아무튼 한참을 그러더니, 9시가 되기도 전에, ‘미안하다. 먼저 간다’는 문자 하나만을 남겨두고 사라져버렸다.

그것도 최유라와 같이.

그냥 도망친 것도 중형이 확정인데, 여자랑 도망을 쳤다? 극형감이다.

평소 같았으면 당장 추적조를 편성해 추노에 들어갔을 거다. 당연히 금방 잡혔을 테고.

지가 뛰어봤자 벼룩이지, 동선이야 뻔하디뻔하다. 해외로 나가지 않는 이상 무조건 잡히지. 아니, 해외로 튀어도 잡힌다. 내가 있으니까.

아무튼, 평소 같았으면 당장 잡아다가 인민재판을 열고 ‘죽창! 죽창이다! 만인에게 평등한 죽창이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그렇게 피의 축제를 열었겠지만… 오늘은 특별히 봐준다. 고생한 것도 있고, 유라와 뭐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고.

그런 생각을 하니 ‘너’라고 말하며 가슴을 툭 치던 최유라의 모습이 떠오르네.

음…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나중에 이야기하면 되겠지.

아무튼, 이 망할 놈의 깜짝 생일파티를 가장한 회식을 다 끝내니 속이 다 후련했다.

“다시는 안 해. 절대로.”

옆에서 박승환이 테이블을 닦으며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래. 절대로. 다시 하지 말자. 억만금을 줘도.”

깜짝 생일파티고, 그냥 생일파티고 안 한다. 앞으로 절대로 안 한다.

“억이면 해야지.”

박승환이 그렇게 지적한다.

“…백만 원으로는 안 해.”

오늘 손님들께서 고기 구워 드시고 술 마시고 한 비용만 거의 백만 원 돈 나왔다. 그것도 사장 형님이 디스카운트해 줘서 그 가격이었다.

그래도 생일날인데, ‘회비 걷자, 1인당 얼마야.’ 뭐 이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 다 보낸 후, 일단 내가 계좌 이체해 드렸다.

나중에 정산해야지. 지옥의 추심 들어가야겠다. 뚜룹뚜~ 한수 한수 한수 머어니~ 한수, 한수 한수 머어니~ 걱정 마세요!

아무튼. 공식적인 김창회 생일파티는 끝났지만, 오늘 모든 일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비공식 애프터파티가 남아 있으니까.

그리고 이제부터 우리만의 2차, 애프터파티의 시작이라는 신호처럼, 식당 앞에 삼각별 달린 중형차 한 대가 천천히 멈춘다.

비상 깜빡이가 점멸하는 삼각별의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서현 씨다.

***

원래 서현 씨도 오늘 창회의 깜짝 생일파티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창회랑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또 사람들이 많이 안 올 것 같기도 해서 서현 씨도 괜찮으면 같이 해달라고 요청을 했었고, 서현 씨도 오케이를 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기획한 ‘은밀한 애프터파티’의 계획을 듣고 나서 서현 씨가 갑자기 아이디어 하나를 제안했다.

‘차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창회 씨를 그 장소로 데려가려면 차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1차가 끝나는 시점에 서현 씨가 직접 차를 가지고 와서 창회를 애프터파티 장소로 태워 가면 어떠하겠냐는 제안을 했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들렀는데, 마침 생일파티가 끝나는 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볼일도 끝이 났고, 기왕 가는 김에 한수 씨와 같이 가려고 연락했다. 그래서 식당으로 갔는데, 어머? 창회 씨도 계시네? 어차피. 창회 씨도 한강을 넘어가야 하니까 같이 타고 가요. 그러면 되지 않을까요?’

예쁘고 착하고 귀엽고 똑똑한 우리 서현 씨가 그렇게 말하는데, 비루한 내가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이냐?

아니, 서현 씨와 나의 존비는 일단 둘째 치고 서현 씨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닌 것이, 창회를 ‘그 장소’로 유인하려면 지하철을 이용해 몇 번을 갈아타면서 가야 한다.

노선도 다르고. 창회 집은 7호선, 그 장소는 4호선. 아무리 김창회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하지만 차가 있으면 아주 간단해진다.

‘태워다 드릴게요.’ 하고 면목동으로 가는 척하면서! 그 장소로 슝~ 하고 가버리면 되니까.

뭐, 사실 내 입장에서 창회 생일이고 애프터파티고 다 뒷전이고, 우리 서현 씨 힘들고 귀찮게 하는 것이 더 마음에 걸린다.

그냥 거짓말 한두 개 더 하는 게 더 마음 편하지, 괜히 서현 씨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창회 씨에게 저도 무언가 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는 서현 씨에게 나도 두 손을 들었다. 이 얼마나 착한 마음씨란 말인가.

아무튼, 그러한 과정을 거쳐, 서현 씨가 몰고 온 차가 지금 식당 앞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가게로 들어온 서현 씨는 미리 써놓은 시나리오대로, ‘마침 근처에 들렀다가 혹시나 싶어서 한수 씨에게 연락해봤는데 거의 끝났다고 해서 같이 갈까 하고 와봤어요. 어머. 오늘 창회 씨 생일이에요? 축하드려요. 미리 알았다면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드렸을 텐데. 선물은 나중에 드리고 마침 비슷한 방향인데, 같이 가시면 어떨까요? 근처까지 데려다드리고 싶어요. 마침 비도 오는데, 잘 되었네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뻔뻔하게 연기를 하는 서현 씨에 이어, 남우조연상을 노리는 박승환이 ‘그래. 그게 좋겠다. 나도 우산 없는데, 덕분에 중간까지 좀 얻어 타고 가자.’를 시전했고, 단순한 창회는 아무 의심도 없이 차에 올랐다.

그렇게 납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

서울은 참 다양성이 가득한 도시다.

무슨 말인고 하니,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할 때, 정말 다양한 루트를 짤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까지 있었던 신림동에서 창회네 자취방이 있는 면목동으로 이동한다고 했을 때, 상도동을 지나 한강대교를 건너 강변북로를 타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는 코스였다. 하지만 상도동 대신 사당역 사거리를 지나쳐 동작대교를 넘어도 되고, 강변북로가 막힌다 싶으면 서빙고로를 타고 가도 된다.

오늘 좀 우울하다. 기름값 따위 신경 안 쓰고 창문 다 열고, 음악 크게 틀어놓고, 미친 척 달리고 싶다. 그러면 구리암사대교까지 밟은 다음 용마터널로 빠져나오는 방법도 있고.

루트가 무궁무진하다 이거지.

하지만 시골은 그런 거 없지. 심플하다. 무조건 최단 거리란 말이다.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최단 거리가 아닌 다른 길로 간다? ‘지금 그 길은 막혀서요. 이리로 가는 게 빨라요.’ 그렇게 핑계를 대면서?

그러면 일단 ‘아하. 그렇군요.’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고, 사람 좋은 미소를 얼굴 가득 지어준 다음 기사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이렇게 말하면 된다.

‘기사 양반. 쩌어기 파출소로 가입시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운전대를 잡은 서현 씨가 한강을 건너기 위해서, 사실은 애프터파티가 열릴 ‘그 장소’로 가기 위해 한강대교를 선택했을 때, 우리 순진한 김창회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강대교를 건넜어. 그런데 강변북로 대신, 삼각지 방향으로 계속 직진한다? 강변북로가 막히는구나 싶겠지. 우회하나 보다. 그렇게 생각할 거다.

하지만 서울역과 시청을 거쳐 광화문광장이 보이면 아무리 단순한 창회라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겠지?

광화문과 면목동은 같은 강북이지만 신림과 잠실만큼 완전히 다른 동네거든.

승환이에게 말을 거는 척을 하면서 뒤를 슬쩍 보니 김창회는 특유의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당황한 듯했다. 그런 느낌이 확실히 든다.

택시 같았어 봐. 진작에 ‘기사님, 요즘 힘드시죠? 참 걱정입니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튼튼해야 나라 경제가 튼튼해지는데 말이죠. 하지만 어려우시다고 이러시면 안 되죠. 일단 여기까지 오셨으니 광화문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종로경찰서로 가주시죠.’ 했을 거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이 나였다면? 승환이었다면?

일단 목부터 졸랐겠지. 무슨 꿍꿍이냐. 그러면서.

김창회는 사고 나도 안 다친다. 본인도 그걸 알고 있을 테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목을 졸랐을 거다.

그런데, 지금 운전을 하고 있는 사람은 택시 기사도 나도 승환이도 아닌 서현 씨다.

이상하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 분명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지가 서현 씨의 목을 조를 거야?

아니, 물리력을 쓰기는커녕, ‘저기, 죄송한데, 지금 어디로 가시는 거죠?’라고 묻지도 못하고 그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나나, 승환이가 ‘서현 씨. 이 방향 아닌데요. 길 잘못 들었어요.’ 그렇게 말해줬다면, 자기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했겠지. 하지만 나도 박승환도 당황한 기색이 없으니 더욱 답답할 거다.

넌 납치당한 거야. 이 자식아. 너 오늘 집에 못 들어간다고! 우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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