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56화 (156/271)

156 : D-day (3)

도대체 이중훈 저 녀석은 무슨 사고를 친 거냐!

“애들에게 그랬다더라고요. 투쁠 한우를 공짜로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선착순 단 열 명!”

지연이가 마트의 정육코너 판매사원 같은 표정과 제스처를 취하며 그렇게 말한다.

공짜? 공짜로? 그것도 투쁠 한우?

“…저 자식이?”

“네.”

“그러니까, 이중훈, 저기 저기서 카메라 들고 있는 이중훈 저 자식이 1학년들에게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공짜로 한우를, 호주산도 아니고, 한우를. 그냥 한우도 아니고 플러스가 두 개나 붙은 투쁠 한우를 배가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넵.”

나는 고개를 돌려 이중훈을 바라봤다.

자기가 얼마나 큰 사고를 쳤는지 인지하지도 못하는지, 이중훈은 액션캠을 들고서 무슨 PD라도 된 것처럼 1학년들에게 김창회 생일 멘트를 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아니! 그게 아니야! 조금 더 감정을 실어서!’ 이렇게 쇼를 하고 있다.

딱 알겠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저 자식… 그림을 그린 거다. 아주 큰 그림을 그린 거다.

이중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거다.

이중훈이 사장 형님에게 스무 명이라고 블러핑을 쳤는데, 준비과정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스무 명은 힘들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오니까 이중훈이 걱정했을 거라고.

어떻게 하지? 스무 명 안 되면 사장 형님에게 죄송해서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을 말이지.

그래서 사장 형님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무리해서 일을 벌였다.

아마 이중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선한 마음이 발효된 결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중훈은 사장 형님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은 사소한 부분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다. 고작 사장 형님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여자다. 여자만이 이중훈을 움직일 수 있다.

그 여자가 누구겠냐?

뻔하지. 지우. 창회 동생 지우.

생각을 했겠지. 동영상을 찍고, 기깔나게 편집해서 지우에게 상납하고 점수를 따겠다고.

그런데 머릿수가 좀 부족한 감이 있다? 그러면 자기가 생각한 그림이 안 나온다? 지우에게 점수가 깎인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 거다.

지금 이중훈의 저 모습이 바로 그 증거였다.

‘아니이~ 좀 더 그 센스 있게! 예능적으로. VJ 특공대가 아니고, 신 서유기 스타일로!’ 같은 소리 하면서 1학년들 하나하나 인터뷰 따고 있는 저 모습이 바로 그 증거였다.

아니, 뭐 1학년들이 와서 싫다는 건 아니다. 오면 좋지. 고맙지.

공짜 고기가 크게 작용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저 녀석들도 ‘김창회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의의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문제는 회비가 빵꾸 난다는 게 문제지.

그나마 이중훈도 생각이라는 게 있는지, 열 명으로 인원 제한을 두기는 했는데, 지연이까지 1학년이 열한 명이다.

두당 4만 원씩만 계산해도… 두당 4만 원에 끝날까? 끝나겠지? 끝나야 하는데…, 아무튼 44만 원.

최소 50만 원이라는 이야기다. 그 50만 원을 선배들이 분담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이고. 이 자식아. 사고를 칠 거면 좀 상의하고 쳐라. 니가 다 나쁜데 그게 가장 나빠. 근시안적으로 사는 거.

나는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면 1인당 부담 금액이 얼마나 늘어날까를 재빨리 계산해보려 했다.

그렇게 머릿속에 암산식을 그리다가, 작게 한숨 쉬고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 50만 원. 적은 돈 아니다. 적은) 돈은 아니지.

아니지만 감당 못 할 정도로 큰돈도 아니다.

오늘 좋은 날인데, 일단 돈 생각은 나중에 하자. 일단 넘어가고, 나중에 정산 후에, 돈 빵꾸 나면 이중훈에게 책임지라고 하면 되겠지.

회수하면 된다. 회수할 수 있다.

버티면 소액재판 걸지 뭐.

***

사실 이중훈이 친 사고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누가 그랬거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쉬운 거라고. 돈을 해결하는 게 가장 싸다고.

문제는 박찬희였다. 최유라에게 까인 박찬희가 오늘의 불안 요소였다.

박찬희가 김창회를 데려오기로 했던 7시가 가까워져 오면서 불안감은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었다.

어쩌지? 전화를 해볼까? 지금 당장 어디인지 위치를 파악해야 하는 거 아닐까? 박찬희야 어디서 처울든 말든, 일간 김창회를 확보해야 하는 거 아닐까? 서른 명이나 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일단 김창회부터 데려와야 하는 건 아닐까? 안 되겠다. 일단 추적조 편성해야 되겠다.

딱, 그렇게 마음먹은 타이밍에 문이 열렸다.

다행스럽게도 박찬희는 제 임무를 완수해낸 것이다.

계획대로 7시에서 10분 정도 지난 시간에, 김창회가 식당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문이 열리고 김창회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성이 터져 나왔다.

이중훈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만들어진 그림이기는 한데, 의도가 어떻든 1학년들이 많으니 확실히 분위기가 확 올라간다.

그래. 50만 원. 그거 방청객 알바 비용이라고 생각하자. 물론 이중훈이 내겠지만.

아무튼 쏟아지는 환성과 박수 앞에서 김창회는 놀란 얼굴로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스턴이 걸린 그 틈에 지연이가 재빨리 창회에게 다가가 까치발을 하고서 고깔모자를 씌웠고, 나는 그 모습을 재빨리 찍어 증거용 사진을 확보했다.

잠시 굳어있던 김창회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번거롭게….’ 같은 말을 중얼거리면서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제 딴에는 쿨해 보이려고 그렇게 중얼거렸겠지만,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 자식아!

특별 주문한 우둔살 케이크가 등장하자 창회가 나타났을 때보다 더 큰 환성이 터져 나왔다.

사장 형님에게 ‘우둔살로 대충 케이크 비슷하게 만들어주시면 감사하고요.’ 그렇게 미리 부탁을 드려는 놨었다.

사실 큰 기대는 안 했다. 아무리 꾸며봤자 그냥 고깃덩어리겠거니,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이 양반이 예술 작품을 만드셨네?

단순히 외모만 가지고, 외모의 험악함을 수치로 측정해 레벨과 직업을 부여한다면 전국구 폭력 조직 행동대장 말고는 다른 직업 선택지는 없을 것 같은 우리 사장 형님. 아이러니컬하게도 미대 출신이다.

사실 처음에 자기 미대 다녔다고 입시 학원에서 강사도 했다고, 나름 인기 있는 미대 오빠였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아, 저쪽 바닥에서는 소싯적에 길바닥에 사람 피로 그림 좀 그렸다는 이야기를 미대 나왔다고 하는갑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진짜 미대 오빠 맞기는 한가 보다.

아무튼, 사장 형님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예술 작품에 양초-박승환이 성인용품점에서 사온 SM 플레이용 저온 양초-를 꽂아놓고 서른 명의 사람들이 입을 모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우 민망해, 닭살 돋는다. 민망해서 닭 되겠다.

고깔모자를 쓴 김창회는 무표정한 얼굴을 가장하고 하고 있었지만 다른 건 모르겠고, SM용 양초는 확실히 싫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지가 어쩌겠어. 지가 아무리 김창회라고 해도 서른 명의 압박을 어떻게 이겨내겠어? 그냥 서른 명도 아니고 선배님도 계신 서른 명인데.

김창회는 결국 작게 한숨을 쉬고는 촛불을 불었다.

당연히 이중훈은 여러 방향에서 찍었고,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불라는 소리를 했다가 욕을 먹었다.

아무튼 그렇게 촛불 소화식을 끝내고, 김창회를 중심으로, 정확히는 커다란 SM 플레이용 저온 양초를 중심으로 참석자 전원이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해서 공식 식순이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찍힌 사진은 바로 깨톡을 통해 의뢰인인 창회 동생 지우에게 보내줬다.

‘미션 컴플리트입니다. 고객님.’

***

아무튼 그렇게 김창회 사람을 힘들게 했던 서프라이즈 생일파티의 공식 일정이 끝났다. 이제 먹고 마실 일만 남았다는 이야기지.

사장 형님이 특별히 좋은 양지를 골라 끓였다는 소고기미역국, 오늘을 위해 직접 시드니까지 가서 떼왔다는 호주산 소고기가 테이블 위에 오르고, 불판이 달아오르고, 소주와 맥주 병뚜껑이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이것이 한국의 생일파티, K-파티 되시겠다.

“누가 봐도 이건 그냥 회식인데….”

진철이 형을 포함해 몇몇이 그렇게 의문을 제기했지만, 케이크 비슷한 거 있고, 촛불 껐고, 김창회는 고깔모자를 쓰고 있고. 그럼 된 거다. 그럼 된 거지.

봐봐. 김창회도 내심 기뻐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평소와 똑같은 김창회 특유의 무표정 같지만, 자세하게 보면 미묘하게 다르다.

찾아와준 선배들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하고, 후배들에게도 많이 먹으라고,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술도 따라주는 김창회의 표정에 미묘한 행복감이 은은하게 드러나는 것 같잖아.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지가 싫어도 어쩔 거야?

이미 증거 사진을 찍었는데.

그리고, 사실 회식이든 생일파티든, 생신 잔치든 즐거우면 그만 아니겠어?

***

“너지?”

어느새 내 옆으로 온 김창회가 소주잔을 내밀면서 그렇게 물어본다.

평소에는 알콜이 근육을 녹이네, 어쩌네, 그딴 소리 하는 김창회도 지 생일이라고 특별히 마셔주기로 하셨나 보다.

“그럼. 나지.”

그래. 이 몸이시다. 너처럼 하찮은 녀석의 생일까지 챙기는 하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겠냐?

“지우가 이야기했냐?”

“그래. 지우 부탁 아니었으면 이런 걸 해줬겠냐? 여자친구도 아니고, 같이 꼬추 달린 사이에.”

내 말이 창회가 작게 웃는다.

“언제 그랬는데?”

“처음 만나고 그 사람 다음 날. 일요일에 몰래 만났지.”

“어쩐지. 점심 약속 있다고 먼저 나가더니…. 녀석. 쓸데없는 일을 벌이고.”

훗. 웃기는 자식. 니가 사람사람 열매 처먹은 순록도 아니고, 표정이나 관리하면서 그렇게 말해라.

“아니지,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지. 응? 아니잖아?”

내 말에 김창회가 작게 웃는다.

“그래. 고맙다.”

“인두겁을 쓰고 있으면 당연히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평생 잊지 마라. 두고두고 틈날 때마다 은혜 갚아라. 그리고 노파심에서 말해두는 건데,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혹시 내년 생일에 또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그런 생각은 하지 마. 없어. 절대 그럴 일 없어. 알지?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어요. 혹시 있다고 해도 나는 아니야.”

내년에 이중훈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우가 부탁하면 월리(月利) 10%의 달러 빚을 내서라도 하겠다고 할 거다.

뭐 하든 말든, 난 안 도와줄 거다. 지우가 아니라 지우 할아버지가 부탁해도 거절이다.

아… 그러고 보니 지우 할아버지 다음 주 화요일에 수술 받는다고 하셨지?

“그래. 나도 사양하고 싶다. 그나저나, 찬희가 나 불러낸 것도 오늘 이거 때문이었던 거냐?”

창회가 그렇게 묻는다.

“당연하지. 솔직히 조금 후달렸어. 박찬희 그 자식, 정신 못 차리고 오바하다가 다 개판 나버릴까 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박찬희를 바라보았다.

오늘의 1등 공신, 아니, 1등 공신은 좀 그렇고, 2등 공신 정도로 해둘까?

어찌 되었든, 부여받은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 박찬희는 구석에 처박혀서 혼자 술 마시고 있다. 나라 잃은 백성의 얼굴을 하고서, 안주도 없이 지 잔에 지가 따라서 깡소주를 마시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마음 한편이 따스해지는 느낌이 든다. 뭔가 행복하다.

“뭐라고 하더냐? 최유라?”

“뭐, 그렇지.”

“실감 났겠네. Based on a real story! 절대 의심하지 못했겠는데?”

창회도 찬희를 돌아보고 쓴웃음을 짓는다.

“의심 못 하지. 계속 저 상태였으니까.”

“소설을 쓰랬더니 자서전이 나온 건가.”

음. 역시, 큰 그림을 그릴 때 작은 희생은 필수 불가결한 거다. 좋은 거 배웠다.

“아무튼, 다들 고맙다. 나중에 보답할게.”

창회가 말한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유형자산으로 가져와, 돈이 제일 좋고.”

나는 찬희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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