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55화 (155/271)

155 : D-day (2)

어찌 보면 웃기고, 다른 한편으로 보면 또 슬픈 이야기인데, 우리 멤버 중에서 이중훈이 여자들과 가장 인연이 없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선호도가 낮다.

찬희도 유라와 뭐가 있고, 아니, 있었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박승환도 은근히 여자 후배들에게 인기가 있다.

정신적 거세 상태라고 소문난 김창회마저도 관심을 보이는 동기나 후배가 있었다.

나?

나는 뭐 말할 것도 없지.

내가 선배 누나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데.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 장난 아니었다. 진짜 귀염둥이였다니까?

그리고 우리 동기 중에서, 아니 작년 새내기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수랑도 사귀었지. 뭐 끝은 안 좋았지만. 아무튼 사귀었잖아.

그리고 이번 새내기에서 천상계 넘버 원 지연이도 나 좋다고….

크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구만. 객관적 평가다. 자아도취 아니라니까.

아무튼, 우리 멤버들은 그래도 여성 동지들이랑 이런저런 썸과 이야기들이 있는데 중훈이만 그런 게 없다. 정확히 말하면 중훈이가 괜찮은 것 같다고 마음을 보인 처자가 아직까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이중훈이 엄청, 못 봐 줄 정도로 못생겼거나, 성격이 모나거나 그런 건 아니다.

꼭 산술적으로 따지면 평균은 간다. 처음 보고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는 아니지만, 부티 나고 깔끔한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 집도 잘살고. 부잣집 외동 아드님답게 가끔 차도 끌고 다니고. 엄마 차라고 하는데, 요즘 보면 공식적으로 증여받은 거 같단 말이지.

그런데 왜 이중훈에게 여자가 없냐?

이중훈 특유의 한 발 더 나아가는 버릇 때문에 그렇단다.

원래 말이나 행동에는 적정선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중훈은 항상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버린다고.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분위기 파악을 못 한다고 할까?

이건 내 분석이 아니다. 내 여자 동기들의 평가가 그렇단다. 사귈 때 지수가 해준 이야기였다.

뭐 나도 그렇고, 우리 멤버들은 친구니까 ‘ㅋㅋㅋ 이중훈이 이중훈했음’ 하고 넘어가겠지만, 여자들은 그런 사소한 부분에서 확 깨버린다나, 어쩐다나?

솔직히 내 친구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중훈이는 좀 억울한 부분이 있다. 같은 실수를 해도 조금 더 감점을 받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장가는 갈 수 있을 거다. 부잣집 외동아들이니까.

나는 열심히 지시를 내리는 척을 하고 있는 이중훈을 보며 그렇게 속으로 말해주었다.

***

준비하겠다고 미리 식당에 도착했지만 사실 준비랄 것도 없었다.

테이블을 옮기고, 테이블에 수저 깔고, 잔 몇 개 가져다 놓고, 이중훈이 카메라 세팅하고 나니 끝나버렸다.

이제 찬희가 똥볼 안 차고 김창회를 잘 유인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서, 사장 형님에게 ‘거짓말 같지만 진짜로 있는 진상 손님 베스트 파이브’ 같은 이야기나 들으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진상 손님 이야기는 카페에서 알바하는 같은 서비스업 입장에서 일종의 막장 드라마와 비슷하다.

들으면 열불 나고 주먹이 꽉 쥐어지는데, 또 끊을 수가 없다. 욕하면서 듣는 거다. 엄마들이 막장 드라마 못 끊는 데 다 이유가 있다니까.

아무튼 그렇게 진상들 발기부전이나 걸리라고 저주를 하면서 형님이 해주는 썰을 듣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조금 불안해하고 있었다.

과연 몇 명이나 올 것인가.

그런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서 스멀스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카운트해 볼까?

일단 우리 멤버 다섯 명, 아니, 지연이까지 여섯 명. 오늘 참석하겠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 한 동기와 후배가 아홉, 그래서 확정된 숫자가 열다섯이다.

아니, 솔직히 열다섯도 최대한 낙관적으로 잡은 거다. 소개팅도 아니고 창회 생일파티인데, 오겠다고 했다고 해서 진짜로 온다는 보장도 없다.

아무튼 낙관적으로 봤을 때, 맥시멈 열다섯.

그런데 이중훈, 항상 한 발 더 나아가는 그 자식이 사장 형님에게 뻥카를 던졌다.

어디서 ‘창회 생일 참석자 폭주 중’ 같은 헛소문을 듣고서 예정 인원으로 스무 명 정도라고 베팅을 해버린 것이다. 뻥카를 날린 거다.

솔직히. 진짜 소올직히. 아무리 생각해도 스무 명은 안 될 것 같단 말이지.

아니. 스무 명은 둘째 치고, 오겠다는 열다섯도 채우지 못할 것 같다. 베팅한다면 거기에 걸겠다. 전 재산과 손모가지는 그렇고, 한 3만 원 정도는 베팅할 수 있을 것 같다.

백번 양보해서 박승환 생일이라고 하면 스무 명이 모일 가능성이 있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과연 오늘 박승환은 생일날 어떤 미친 짓을 할 것인가?’ 하는 기대감을 가진 구경꾼이 몰릴 거다.

하지만 김창회 생일에? 김창회가 할 미친 짓이라고는 차력뿐이겠지만, 과방만 가도 볼 수 있는 ‘김창회 차력 쇼’를 누가 보고 싶어 하겠어?

걱정이란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스무 명은 에반데 말이지.

***

국민영화 《타짜》에 그런 대사가 나온다.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그런 거 안 배웠어?’

다시 한번 고니 형님의 명대사를 속으로 되뇌어본다.

승부 걸었으면 손목 날아갔을 테니까.

약속된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손님들은 동기들이었다. 그것도 자그마치 아홉 명이나!

우리 멤버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농구도 하고, 피시방도 가는 남자 동기 넷. 그리고 여자 동기 다섯. 물론 최유라는 당연히 껴있고.

‘열다섯 명이 안 된다’에 3만 원 걸었으면 그냥 날릴 뻔했네. 3만 원이면 학식이 몇 갠데.

동기들을 자리에 앉힌 후, 슬쩍 최유라에게 다가가 니가 데려온 거냐고 물어보니 아니란다.

자기가 가자고 이야기하기 전에 다들 시간을 비워두고 있었다고. 오고 싶었는데 약속이 있어서 못 오는 녀석들은 꾹 참고 있다가 파티가 시작되면 그때 창회에게 깨톡을 보내겠다고 했단다.

허. 이 녀석들. 의리 있네. 우리 동기들 이렇게 의리 있는 녀석들이었어? 그저 공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녀석들인 줄 알았는데, 은근 사람 감동시킬 줄도 알고.

짜식들. 나중에 동기 모임 한번 해야 되겠구만.

동기들이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손님들이 오셨다.

선배들, 수정 누나, 진철이 형, 준호 형을 비롯해 선배가 다섯 명이나! 별이 다섯 개! 아니 선배가 다섯 명!

원래 사이좋게 지내는 선배들이기는 했지만, 선배들이라서 ‘시간 되면 오세용.’ 그렇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진짜 와줄 줄은 몰랐다.

눈치를 보아하니 수정 누나가 진철이 형 데려오고, 준호 형이나 다른 선배들도 따라온 것 같다.

뭐 선배들은 와주시면 땡큐지. 회비 부담도 덜고.

아무튼, 그렇게 동기와 선배들만 왔는데도 벌써 열네 명이 되어버렸다. 우리 멤버가 여섯이니까 정확히 스무 명, 이중훈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짜식. 잘난 척하고 있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중훈을 바라보니, 저 녀석, 어딘가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집 안은 난장판 되어있고, 한쪽 구석에서 ‘어떻게 하지? 난 모른다고 할까?’라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강아지의 눈빛이다.

뭐 했다. 저 녀석 분명 뭔가 했다. 그런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스친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사장 형님이 낮은 목소리로 물어본다.

“혹시… 여기서 더 오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일단 확정 멤버 중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은 주인공 김창회, 그리고 김창회를 유인하고 있는 박찬희, 그리고 지연이.

지연이와 1학년이 같이 오겠지? 분명 몇 명 같이 오기는 할 텐데, 몇 명이나 데리고 올지 계산이 안 선다.

혹시라도, 지연이가 ‘창회 선배의 생일인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데려가야지!’라고 마음먹었다면 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지연이가 사람을 모으겠다고 광화문광장에 가서 ‘안녕하세요? 도움이 필요한데, 저를 도와주실 분 계실까요?’ 하면 십만 명쯤 모으는 건 일도 아닐 거다. 십만이면 임진왜란도 막을 수 있다.

‘오늘 창회 선배 생일인데 같이 가서 축하해주자.’ 그러면?

아니다. 지연이는 똑똑한 녀석이다. 현명한 사람이다.

20분 만에 뚝딱 진행되는 결혼식도 아니고, 단순히 사람이 많다고 해서, 사진 찍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훌륭한 결혼식이 아니라는 것쯤은 지연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결혼식은? 인원 대비 많은 축의금이 들어오고, 식권이 적게 나가는 결혼식이라는 것을 지연이도 알고 있을 거야.

몇 명? 창회랑도 안면이 있는 친구 두서너 명 정도.

그래. 그 정도.

지연이는 상식도 있고, 적정선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니까. 중훈이와는 다르게 말이지.

“글쎄요. 두…세 명 정도?”

내가 그렇게 말하는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사장 형님의 머리가 동시에 문 쪽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반갑게 손을 흔드는 지연이의 모습이었다.

아니 진짜, 저 녀석, 저 표정 못 짓게 해야지. 인간적으로 너무 예쁘잖아!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몇 명? 과연 동행한 인원은 몇 명이냐!

***

식당 안이 바글바글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지연이와 동행한 1학년은 열한 명이었다.

우리 멤버 여섯, 동기 아홉, 선배 다섯, 그리고 지연이 빼고 1학년 열한 명. 토탈 서른한 명이 식당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아니, 아직 창회랑 찬희가 안 왔으니 스물아홉 명이지만, 아무튼 식당 안에 사람이 가득하다.

사장 형님은 ‘국이 부족할 것 같은데….’라고 중얼거리며 주방으로 향했고. 나는 다시 테이블을 세팅해야만 했다.

뭐야? 맨날 과방 구석에서 덤벨 들고 하악대는 김창회에게 이 정도의 인망이 있었다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박승환이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묻는다.

“하긴 뭘 해. 아니,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다. 너 몰래 뭐 꾸민 거 없어? 했으면 지금 말해. 지금 말하면 용서한다. 나중에는 얄짤 없어.”

나는 오히려 박승환 이 자식이 의심스럽다.

적어도 우리에게 있어서 세상 모든 음모론의 시작은 박승환이었다. 일단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박승환을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박승환은 결백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자기는 절대로 무언가를 꾸미지 않았다는 무언의 항변이다.

그렇겠지. 박승환이 무언가를 꾸몄다면 그 결과는 파국이었겠지, 이렇게 좋은 쪽은 아닐 테니까.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자기 동기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연이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건지 지연이에게 물어봐야지.

내가 다가가자 한참 지연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민주가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다.

인간계 최강 민주와 천상계 원탑 지연이가 함께 있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네.

아니, 그건 일단 넘어가고, 나는 애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연이를 따로 불러내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어보았다.

지연이가 아닌 다른 사람 같았으면, 예를 들어 남자 후배 같았으면 열중쉬어 자세 취하게 한 다음에, ‘이 개념 없는 쫘식아! 어떻게 눈치도 없이, 저렇게 많이 데려온 거냐?’ 그렇게 질문 겸 갈굼을 시전했겠지만, 우리 지연이에게는 그럴 수 없지.

“몰랐네. 창회가 1학년들에게 저렇게 인기가 있는 줄.”

“창회 선배도 인기 많기는 하지만, 오늘은 중훈 선배요.”

응? 이게 무슨 소리야?

이중훈?

“중훈이? 중훈이가 뭐 했는데? 무슨 사고 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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