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 “알았으면 나를 뭐라고 부를 건데?”
고개를 끄덕이는 최유라의 얼굴에서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 엿보인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어쭈? 이 녀석 보게.
어디서 볼발그레질이야?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는 아니지.
“나도 마찬가지야. 처음 지수에게 고백했을 때,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게 아니야. 찬희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아, 그러고 보니 찬희가 고백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던데?”
“…응.”
“작년에도 찬희가 고백했을 때 거절한 것도 그것 때문에 그런 거야?”
“뭐. 그런 것도 있고….”
유라가 그렇게 말을 얼버무린다.
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냄새가 폴폴 풍기는데?
일단 킵해두고.
“아무튼 찬희 녀석이 사고가 단순하고, 생각이 얕은 녀석이지만, 그 녀석도 분명 고민이라는 걸 하지는 했을 거야. 저번에 누가 그러더라. 고백은 단순하게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고. 상대방이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관계가 어색해질 수도 있다는 고민과 걱정보다,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마음이 더 클 때만 고백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수정 누나가 그렇게 말했지.
“찬희도 진심이니까 고백을 한 거고, 너도 진심이니까 받아 준 거고. 그러면 일단 앞으로 가는 거지. 나중에 세금을 내야 되는 상황이면 세금 내면 되고, 세금 안 내도 되면 땡큐고.”
“그 세금 안 내려면 결혼?”
“…그냥 세금 내는 게 좋겠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라가 웃는다.
“그리고 지금 하는 말은 내가 영혼을 걸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데, 너와 찬희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든 최유라가 내 소중한 친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거야.”
내 말에 유라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럴까?”
“너는 어땠는데? 내가 지수랑 깨졌을 때, 그때도 너는 내 친구였잖아.”
유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기억하고 있다니까. 그때 니가 맥주 사준 거. 지나가면서 내 어깨 툭툭 쳐주고 간 거, 밥 사준다고 나오라고 했던 거. 다 기억하고 있다고. 놀려먹으려고 음모 꾸미는 승환이 패거리보다 너에게서 더욱 진한 우정의 향기를 느꼈다고. 그리고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봐도 찬희를 버리고 유라 너와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될걸? 졸업하면 니가 돈 더 많이 벌 것 같으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둘이 헤어지게 되면 찬희를 왕따 시켜야지. 자본주의적인 마인드로다가.”
“약속?”
“각서 쓸까?”
내 말에 유라가 웃는다.
“…고마워.”
“고맙긴. 고마우면 나중에 성공하고 밥 사라.”
“그래. 밥 살게.”
“아무튼 우리 최유라. 몰랐는데 소녀 감성이네. 그런 걱정도 다 하고.”
“너 때문이야.”
최유라가 그렇게 말한다.
“응?”
“너하고 지수. 두 사람 그렇게 남보다 못한 사이 되는 거 옆에서 지켜봐서 그래. 겁나서.”
유라가 그렇게 말한다.
나는 그런 유라의 말을 들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선례이기는 하지.
“그래도 나는 후회 안 해.”
내가 말했다.
“…후회 안 한다고?”
“어. 뭐, 결과적으로는 힘들고 괴로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했던 기억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깨지는 게 무서우면 애초에 연애를 하면 안 되지. 평생 혼자 살아야지.”
내 말에 유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튼, 우리 상남자 최유라 오늘 의외의 모습 많이 보여주네. 야. 나랑 지수랑 헤어진 게 언젠데 아직까지 그 이야기가 나오냐?”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라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니들도 있고.”
응? 니들도 있고? 그럼 다른 사례도 있다는 이야기?
유라는 맥주잔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는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잠시 맥주잔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말했다.
“이건 비밀인데.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줘.”
이렇게.
‘이건 비밀인데’처럼 사람을 흥분시키는 접속사가 또 있을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태가….”
형태의 이름이 유라 입에서 나왔다.
***
나는 미동도 없이 유라가 해주는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 뇌세포는 유라가 해준 이야기를 퍼즐 조각으로 가공해서 하나의 그림을 차곡차곡 완성해가고 있었다.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조합해보면 이렇게 설명이 된다.
우선 1학년 쭈구리 형태는 동기이자 인간계 최강 미녀인 박민주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새터에서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접점을 만들기 위해 수강 신청도 비슷하게 하고, 틈만 나면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노오력을 해서 같은 조가 될 수 있었고, 조별 과제라는 핑계로 계속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형님네 정육식당에서 우리와 마주쳤던 그 토요일, 조별 과제를 핑계로 민주를 불러냈고, 만난 김에 저녁이나 먹자는 핑계로 정육식당에 들렀다가 나와 중훈이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거기서 이중훈이 ‘뭐야? 데이트야?’ 그런 질문을 던졌고, 형태, 그 멍청이가 막 얼굴을 붉히려던 찰나 민주가 ‘아니에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그렇게 정색을 빨았다는 거지.
당연히 ‘분위기 좋아. 무르익어가고 있어. 조금씩. 한발씩. 그렇게 다가가면 될 거야!’ 같은 허튼 생각을 하던 형태는 데미지를 입었고, 데미지를 입었으면, 얼른 본진으로 가서 피통도 채우고, 앞으로 어떻게 전략을 수립해야 내가 이 승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기는커녕,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고백’이라는 궁극기를 눌러버린 것이다.
되겠냐고. 그런 고백이.
내가 백번 말했지만, 한반도에서 고백이라는 건, 일종의 확인 작업이라고.
확실히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때, 그때 하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나 당신 좋아해’ 같은 소리 하면 백 퍼센트 까인다니까? 진짜라니까?
프러포즈랑 비슷한 거야. 식장 다 잡아놓고, 청첩장 다 찍어놓고, 그러고 나서 하는 게 조선의 프러포즈라니까!
뭐 그런 방식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형태의 무식한 고백을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멀어져 갔고, 복구할 수 없는 데미지를 받은 형태는 ‘여자에게 까였을 때, 취해야 하는 찌질함의 정석’에 맞춰 개찌질 모드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술 먹고 꼬장 부리고. 그런 거.
유라는 그런 형태의 모습을 보고, 살짝 겁이 났다는 이야기지.
지금은 문제가 없는데, 나중에 찬희랑 혹시 안 좋게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때 후폭풍이 클지도 모른다는 그런 걱정이.
오케이. 거기까지는 이해했어.
거기까지는 알겠는데, 아직 맞춰지지 않은 퍼즐 조각이 남아 있다.
“저기. 나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응. 뭐?”
“저번에, 선릉에서 두 사람이 술 먹은 것도 그것 때문에 술 먹은 거야?”
내가 그렇게 순화된 버전으로 물어보았다.
두 사람이 부비부비, 아니, 유라가 형태를 부축하고 있었다고 물어보기는 좀 그렇잖아.
내 말에 유라가 놀란다. 날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알았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내가 스토커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진철이 형과 수정 누나의 이야기를 해줬다.
나 너 스토킹하고 그런 사람 아니야!
“일부러 아는 척 안 했다고 그러더라고. 아무래도 그런 상황에서 아는 척하기는 좀 그렇잖아.”
유라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수정 언니가…거기 있었구나. 그때 형태가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해서. 그냥 가볍게 이야기만 들어주려고 했는데, 형태가 많이 취해서. 그 모습을 언니에게 보였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던 유라가 갑자기 내 눈을 바라본다.
그리고 묻는다.
“혹시 그 이야기 다른 사람에게….”
“아니.”
내가 즉답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여기저기 퍼트리고 다니는 이중훈이 아니다.
퍼진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박승환은 더더욱 아니고.
“…누가 봤으면 오해하기 딱 좋은 모습이었겠네.”
유라가 그렇게 중얼거린다.
스캔들이지.
“…오해가 하나 더 있기는 한데.”
내가 그렇게 슬쩍 운을 띄웠다.
“무슨 오해?”
“어제 중훈이 만났다며?”
“어제? 어. 형태랑.”
“그리고 찬희에게는 조카를 만난다고 이야기했고.”
내 말에 최유라가 작게 신음 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아침에 중훈이가 장난친다고 ‘유라 다른 남자 만나고 다니더라’ 그렇게 도발했는데, 찬희는 깜짝 놀란 거지. 그냥 후배 만난다고 했으면 후배 만났겠구나. 그러고 넘어갈 텐데, 조카라고 했으니까. 찬희는 오해할 수밖에 없지.”
유라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하고 있다.
나는 그런 유라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린다.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유라가 유일하다.
유라가 찬희에게 ‘조카를 만난다고 말한 것’은 팩트이고, 조카를 만나고 있을 시간에 형태를 만난 것도 팩트이니까.
잠시 동안 머리를 감싸 쥐던 유라가 체념한 표정으로 한숨을 작게 내쉰다.
그리고는 말한다.
“사촌 언니.”
응?
“사촌 언니?”
“응. 사촌 언니 아들.”
“누가?”
“형태가.”
응?
“형태가…사촌 언니 아들? 우리가 아는 그 형태가?”
유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너는 형태에게….”
“…이모.”
그렇게 말하고 다시 머리를 감싸 쥔다.
“으아. 절대로 니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는 그런 유라의 모습을 보면서 재빨리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한다.
유라에게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촌 언니가 있고, 사촌 언니에게는 아들이 있고. 유라에게는 5촌 조카 되는 그 아들이 유라와 한 살 차이고, 거기에 같은 학교 같은 과, 한 학번 차이 선후배 사이?
“…왜 말 안 했는데?”
내가 물었다.
유라가 날 바라본다.
“말했으면?”
“응?”
“니들이 알면?”
“응?”
“알았으면 나를 뭐라고 부를 건데?”
“이…모?”
유라가 다시 으아~ 그러면서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한다.
그거였구나. 그거였네. 퍼즐 다 맞춰졌네.
나는 괴로워하는 유라를 보면서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완벽하게 맞추어진 퍼즐을 감상하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
“자자. 마시자. 마셔. 괴로울 때는 마셔야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유라에게 맥주를 권했다.
“웃지 마. 그렇게 웃지 마.”
유라가 날 보며 말한다.
“응? 아니. 나 안 웃고 있는데? 지금 심각한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이모. 이모라. 아주 좋은데.
상상해보자.
학생들이 가득한 강의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먼저 앉아 있는 최유라가 나를 발견한다.
우리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내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반갑게 인사한다.
‘유라 이모!’
그렇게.
오우. 척추가 움찔움찔한다.
유라랑 같이 듣는 다음 수업이 언제지? 금요일인가? 양말을 걸어놓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이러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수 있겠냐?
나는 얼굴 근육에 힘을 주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최대한 끌어내리고, 진지한 말투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찬희 그 녀석에게 빨리 이야기를 해줘야겠는데? 그 녀석 지금 잔뜩 오해하고 있을 테니까.”
내 말에 유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고개를 끄덕이지만, 말해줘야 하는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내가 말했다.
“…어떻게?”
“일단 찬희에게만 말해주는 거지. 다른 녀석들은 모르게.”
“너는?”
“물론 나는 비밀을 지키고.”
‘당분간은.’ 그렇게 속으로 덧붙이면서.
후후후. 최유라의 약점을 잡았다.
비밀이라는 건 밝혀지는 그 순간 가치가 소멸한다. 그러니까 가치가 소멸하기 전에 최대 효용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아니던가. 디스! 이즈! 캐피털리즘!
“아무튼 찬희에게는 빨리 말 해줘야지. 안 그러면 그 녀석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또 어이없는 헛발질 할지도 몰라. 아니. 하지. 백 퍼센트!”
내 말에 유라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유라에게 약점이라면 찬희에게도 약점이 될 테고.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 일타이피!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 그 타이밍에,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최유라의 핸드폰이 울린다.
화면에는 ‘찬희-동기’라는 이름이 선명하다.
참나. 아무리 그래도 남자친구한테 ‘찬희-동기’가 뭐냐. 진짜 심했다.
“잠깐만.”
유라는 그렇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기를 집어 든다.
“어. 응. 아니. 여기? 저번에 우리 감튀에 맥주 먹은 데. 어. 맞아. 거기. 어. 한수랑. 같은 수업이잖아. 끝나고. 어? 너 술 마셨어? 어딘데? 여기로? 지금? 응. 알았어. 얼마나 걸려?”
유라는 그렇게 ‘찬희-동기’와 전화 통화를 한다.
딱 보니 온다는 이야기로구만.
“온대?”
“응.”
그 녀석 어디 도청기라도 심어놨나? 타이밍 좋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불길한 예감이 척추를 타고 흐른다.
찬희 혼자가 아니었었지? 악마들과 같이 있었지?
“혼자?”
“모르겠네. 누구랑 온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유라가 그렇게 말한다.
***
비장한 표정의 찬희가 모습을 나타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찬희의 좌우에는 박승환, 이중훈이라는 두 명의 악마가 붙어 있었다.
저 두 악마는 간교한 혀로 양쪽에 붙어서 찬희에게 악마의 주문을 속삭였을 것이다. 그 주문에 홀린 박찬희는 영혼을 저당 잡힌 채로 여기까지 온 것이고.
“뭐 하고 있었어?”
찬희가 유라에게 묻는다.
“한수랑 맥주 마셨어.”
유라가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말한다.
“둘이서만?”
“응.”
박찬희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 눈에 추악한 질투가 가득하다.
양옆에 붙어 있던 두 악마가 재빨리 찬희에게 귓속말을 속삭인다.
내가 하나뿐인 진실에 대한 퍼즐을 완성하는 사이, 저 두 악마는 피로 그린 그림을 스케치하고 있었구나.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찬희가 유라에게 말한다.
“그래. 앉아.”
유라가 옆으로 비켜서며 자리를 내어준다.
하지만 찬희는 그 자리에 앉지 않는다.
대신 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둘이서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게 말하면 ‘자리 좀 비켜주지 않을래?’, 나쁘게 말하면 ‘당장 꺼져’라고 말하고 있다.
나도 눈빛으로 말했다.
야. 하지 마.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너 후회해. 후회한다. 분명 후회한다? 지금 이 형님이 전부 다 해결해 놨어. 그냥 조용히 옆에 앉아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오해가 생긴 건지, 자세하게 듣고, ‘아, 내가 오해했었구나. 미안해. 하하하.’하고 맥주 마시고 집에 가면 ‘그 이후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하는 동화책 엔딩으로 끝날 수 있어, where the story ends.
하지만 이미 영혼의 말단까지 악마의 저주에 물든 박찬희가 내 눈빛을 읽어낼 리가 없다. 아니, 읽어냈는지도 모르지만 무시해버린다.
눈빛이 안 통하면 어쩔 수 없지.
“찬희야.”
내가 그렇게 말을 시작하는데 찬희 옆에 자리를 잡고 있던 두 악마가 어느새 나에게 다가와 내 양팔을 잡는다.
“한수야. 두 사람이 이야기할 게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비켜주자.”
“그래. 이럴 때 눈치 없이 여기 껴 있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러면서 나를 억지로 일으킨다.
그리고 박찬희는 그런 두 녀석에게 고맙다는 눈짓을 보낸다.
으이구 이 멍청한 놈아!
지금 누가 니 편이고, 누가 니 적인지 전혀 판단을 못 하는구나!
난 모르겠다! 똥뽈을 차든 말든!
나는 두 악마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끌려나가며 속으로 그렇게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