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50화 (150/271)

150 : 가능할까요?

“…가능할까요? 그게?”

내 계획을 전해 들은 서현 씨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렇게 물어본다.

“모르겠어요.”

내 대답이다.

솔직히 모르겠다.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로 실행까지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저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에요.”

서현 씨의 말처럼 얼굴에 걱정스러움이 묻어 있다.

“뭐, 괜찮겠죠? 못 하면 마는 거고, 할 수 있다고 해도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일단 러프하게 계획만 만들어 놓은 상황이니까,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면 되겠죠.”

내 말에 서현 씨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간다.

차를 음미하며 잠시 생각하다가, 갑자기 궁금하다는 듯 다시 물어본다.

“혹시 어디서 하실지 생각해 두신 장소는 있어요?”

“안 그래도 그게 가장 고민이에요. 어디가 좋을지. 동선이나 그림을 생각하면 창회 자취방이 제일 좋기는 한데…. 하지만 안 되겠죠?”

“창회 씨 자취방은 좀 그렇지 않을까요? 후유증이 너무 클 것 같은데요.”

서현 씨의 의견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현 씨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지적했다. 단순히 일을 벌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나중에 감당해야 할 여파도 감안해야 한다.

“뭐, 사실 장소야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여차하면 학교 앞 모텔촌 가서 방 하나 빌리면 되겠죠. 동선은 문제없고, 명분은 뭐 대충 만들면 되고.”

내 이야길 들은 서현 씨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이렇게 하면 어때요?”

“어떻게요?”

“동선도 의심을 사지 않으면서, 창회 씨를 유인할 수 있는 명분도 있는 장소를 찾는 거죠?”

“그…렇죠.”

뭔가 불길한데?

“여기는 어때요?”

“여기요?”

“네, 여기. 우선 같은 7호선 라인이니까 동선 깔끔하고, 친구 집이니까 명분도 만들기 쉽고. 승환 씨도 동참하는 거죠?”

“아직 이야기는 안 했는데…. 아마도 같이하겠죠?”

“그럼 승환 씨도 문제없겠네요. 우리가 같은 집에 산다는 거 이미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승환 씨가 함께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서현 씨가 말한다.

나는 일단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서현 씨 말대로라면 동선은 문제 될 것이 없다.

아니, 동선은 최고지. 학교 근처에서 우리 집을 거쳐 창회네 집 쪽으로 가니까.

명분은? 뭐, 적당히 잠깐 들렀다 가라. 그런 거 하면 되지 않을까?

동선은 확실하고, 명분은 끼워 맞출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여기도 나쁘지 않기는 한데….

“싫으세요?”

서현 씨가 묻는다.

“아니, 장소가 싫다는 것은 아니고요…”

나와 서현 씨의 보금자리에 평화로운 로마제국에 김창회라는 게르만 반달족(Vandals) 야만인이 들어오는 게 싫은 거지.

아니. 그것보다 서현 씨가 문제지.

서현 씨에 대해서 또 해명을 해야 하는데, 해명을 하려면 또 그 이야기를 안 할 수도 없고.

그냥 태중 혼약한 정혼자라고 대충 둘러댈까?

“혹시 제가 부담되시면 저는 본가에 가 있을게요.”

서현 씨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렇게 말한다.

나는 서현 씨를 바라보았다.

“잘못된 전제예요.”

“네?”

“서현 씨가 부담된다는 전제부터 잘못된 전제예요.”

내 말에 서현 씨가 작게 웃는다.

“내가 걱정하는 건, 나와 서현 씨의 이 소중한 공간에 창회나 박승환 같은 저주받은 영혼을 들여도 되는지, 그게 싫은 거죠.”

사실 당사자인 창회까지는 몰라도, 박승환 그 자식은 진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데…….

잠깐만.

내 머릿속에서 전구 하나가 뿅 하고 떠올랐다.

거기가 있었네?

동선이 살짝 꼬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 눈치 덜 봐도 되고, 나중에 창회가 또 갈 일도 없고, 그리고 승환이를 들이기에도 부담 없는 장소가 있었네?

***

화요일, 창회 깜짝 생일 파티까지 D-3

유 선생님 수업 중에 계속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평소에는 수업 전에 무음으로 해 놓는데, 이날 살짝 늦는 바람에 급하게 강의실에 들어오느라 무음 모드로 바꾸는 것을 깜빡 해버렸고, 주머니 속 휴대폰이 수업 내내 울려대고 있었다.

느낌이 딱 깨톡이다. 단톡방 알림이다.

뭐지? 분명 단톡방은 전부 다 알림을 꺼놨었는데.

재빨리 꺼내서 무음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하필 맨 앞자리에 앉아 있어서 그럴 수도 없었다.

선생님이 뭐라고 생각하시겠어?

아,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꾸려고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실까?

아니다. 백 퍼센트, 저거 수업 중에 딴짓 하는구만. 그런 오해를 살 가능성이 높지.

그리고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휴대폰 꺼낸 후, 확인 안 하고 다시 집어넣을 자신이.

아무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손에 스위치가 쥐어진 바이브레이터마냥 주머니에서 계속 자극을 주었던 핸드폰은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범인은 친구 놈들이었다. 이 망할 놈들이 새로 단톡방을 파서 날 초대해놓고 지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아니, 이 자식들도 수업 중이었을 텐데?

아무리 하늘의 이치를 모르고, 땅의 도를 알지 못하는 무도한 놈들이라고 해도 수업 도중에 이렇게까지 일을 벌일 놈들은 아닌데?

나는 스크롤을 올려 단톡방 첫 번째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저 무도한 놈들이 왜 그렇게 난리를 쳤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긴급!긴급! 최유라가 양다리!

단톡방의 첫 번째 메시지였다.

***

갑작스럽게 소집된 원년 멤버, 지난번 사문위원회 멤버 중에서 지연이를 제외한 나, 승환이, 중훈이, 창회, 그리고 박찬희는 중국집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중국집이 어디냐 하면, 학교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위치한 중국집.

잡채밥과 굴짬뽕이 예술로 나오는 그 중국집.

작년에 나와 지수가 데이트를 했었고, 얼마 전에 찬희와 유라가 몰래 데이트를 왔다가 딱 걸린 바로 그 중국집에 우리는 앉아 있었다.

왜 여기에 있느냐?

우선 우리에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대낮에 과방을 독점하고 있을 수는 없었고, 오픈된 공간은 보안상의 문제도 있다고 판단했다.

거리상으로도 학교와 적당히 떨어져 있고, 또 별도의 방도 있는 이 중국집이라면 비상대책위원회를 개최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점심시간 즈음이었고, 기왕이면 밥도 먹자는 생각으로. 겸사겸사 이곳으로 온 것이다.

“뭐 먹을래?”

“일단 요리 하나 시키자. 사람이 다섯이니까.”

“그럴까? 탕수육 대짜?”

“맨날 탕수육은 좀 그렇지 않냐? 다른 것 좀 먹자.”

“그럼 깐풍기?”

“깐풍기에는 소주 먹어야 하는데.”

“소주 같은 소리 한다. 뭐 탕수육에는 소주 안 먹냐?”

우리가 그렇게 건설적인 논의를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사장님이 쟁반을 들고 들어오신다.

“주문은 정했어? 일단 이것부터 먹고들 있어.”

그러면서 군만두 두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으신다.

아니, 어머니. 사람이 다섯인데, 군만두를 두 접시나 서비스로 내어주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어머니. 저희가 사랑한다는 말씀드렸던가요?”

박승환이 재빨리 개드립 던진다.

저번에 찬희도 이런 개드립 던졌는데, 이 자식들은 올 때마다 이러나 보네.

“천 번도 넘게 했지. 메뉴 정했어? 정하면 벨 눌러.”

그렇게 말씀하시고 문을 닫아주신다.

“야. 요리 비싼 거 시키자. 무슨 서비스를 두 접시나 주셨다냐.”

“그래. 비싼 거 시켜. 대신 밥은 통일해. 면 하나, 밥 하나. 그렇게.”

일단 요리는 김창회의 강력한 주장에 힘입어 고추 잡채. 헬창이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중국 요리 중 하나라고. 뭐 맛있으니까 상관은 없지만.

식사도 간짜장과 잡채밥 중 택1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한 명만 빼고.

“저 녀석은?”

박승환이 방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그렇게 물어본다.

거기에는 넋 나간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박찬희가 앉아 있다.

“…저 자식은 울면.”

내가 정해줬고, 그렇게 주문이 마무리되었다.

***

나는 꽃빵에 고추 잡채를 싸 먹으면서 사건의 정황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일단 최유라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터져 나온 곳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장소였다.

정육식당, 우리가 창회 생일 파티를 하기로 한 그곳.

어젯밤, 중훈이가 금요일 예약도 하고, 밥도 먹을 겸 해서 거기에 갔는데, 거기서 최유라를 딱 마주쳤다는 것이다.

그냥도 아니고, 남자와 단둘이 앉아 있는 최유라를 말이지.

같이 앉아 있던 남자 놈은 중훈이도 아는 녀석이었다.

축제 때 같이 일했던 1학년 형태. 그 녀석이었다.

뭐 그럴 수 있다. 다른 놈도 아니고 후배니까, 단둘이 밥 먹고 할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중훈이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오늘 오전에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어젯밤 일이 생각이 났고, 장난으로 찬희에게 ‘어제 유라가 너 몰래 외간 남자를 만나고 있더라’는 도발성 깨톡을 보내면서 일이 커진 것이다.

중훈이의 그림은 질투에 눈이 먼 찬희가 광분하면 ‘그 외간 남자는 사실 1학년 형태였단다 ㅋㅋㅋ’로 마무리하려 했는데, 상황이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자. 일단 다시 정리해보자. 찬희 너는 어제 유라에게 깨톡을 받았다고 했지? 누군가와 저녁을 먹는다고.”

박승환이 그렇게 묻자 박찬희가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누군가가 누구라고 했지?”

“…조카라고.”

찬희가 대답한다.

승환이의 시선이 중훈이에게로 향한다.

“중훈이는 어제 형님네 식당에서 최유라를 만났다. 확실하지?”

“확실해.”

“유라 옆에는 누군가가 있었고.”

“있었고.”

“그 누군가는 1학년 형태였고.”

“확실해. 내 영혼을 걸고!”

이중훈이 그렇게 확신의 찬 목소리로 말한다.

“걸려면 부모님 재산을 걸어. 악마도 관심 없는 너의 영혼 따위는 필요 없고, 아무튼 유라는 찬희에게 조카를 만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시간에 1학년 남자 후배를 만나고 있었다. 여기까지 확인된 팩트.”

내가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팩트만으로 봤을 때, 우리는 두 개의 가설을 이끌어낼 수 있다. 첫 번째, 최유라가 찬희에게 거짓말을 했다. 두 번째, 거짓말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거짓말이 아니면, 형태가 유라 조카라고? 그게 말이 되냐? 한 살 차이 조카? 그리고 만에 하나, 형태가 조카라고 치면 말 안 했을까? 친인척이 과 후배로 들어왔는데?”

이중훈이 바로 반박하고 나선다.

사실 이중훈이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경우는 많지만, 이번에는 나도 중훈이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잖아? 그렇게 나이 차이 안 나는 조카라고?

조카라고 해도 왜 이야기를 안 했을까?

우리는 그 정체불명의 ‘조카’라는 단어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단 하나의 진실은 최유라가 가지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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