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 “이건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닌데요.”
“그게 엄마가 끓여준 마지막 국이었어요.”
지우는 슬픔이 옅게 묻어있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해 준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주 목요일에 보았던 창회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른 아침, 학생 식당에서 김창회를 만났었다.
-지금 뭐 해?
-밥 먹어.
창회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떠먹었다.
그날 아침에 비가 내렸고, 학생 식당 아침 메뉴가 김치 콩나물국이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내가 작게,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네?”
“아니. 아니야. 알겠어. 아무튼 이번 주 금요일에 창회에게 깜짝 생일파티를 해주면 된다 이거지?”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한 톤 높여서 말했다.
“네? 네. 부탁드릴께요.”
“꼬깔모자 씌우고, 생일 축하 노래 불러 주면 되는 거지? 그게 핵심이지?”
“네. 꼬깔모자는 빼먹지 말아주세요. 사진 찍어서 보내주세요.”
“알았어, 꼬깔모자는 꼭!”
“사진도 꼭!”
“그래. 사진도 꼭!”
나는 지우와 그렇게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모습을 보던 승환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세요?”
지우가 승환이에게 묻는다.
“아니, 별다른 건 아니고….”
“아니고?”
“창회에게 꼬깔모자를 씌우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를지 걱정이 되어서….”
승환이가 그렇게 개드립을 빼먹지 않았다.
***
지우는 3시에 대전 유성 터미널로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탔다.
나와 승환이는 지우가 탄 버스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플랫폼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버스가 떠나고, 우리 두 사람만이 남았을 때, 손 하나가 내 눈앞으로 쑥 하고 나온다.
박승환의 손이다.
“뭔데? 이건?”
“정당한 내 지분을 요구한다.”
박승환이 그렇게 말한다.
“정당한 뭐?”
“정당한 내 지분. 30만 원.”
승환이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너의 정당한 지분이 왜 30만 원인데?”
“지우 씨가 준 금액은 100만 원. 원칙대로라면 정확히 3분의 1인 33만 3,333원이 되겠지만, 5만 원권 지폐니까, 원 단위로 끊을 수는 없고. 마음 넓은 내가 양보해주지. 창회 생일에 40, 너 30, 나 30.”
진지한 목소리로 그런 개소리를 한다.
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냐?
간단하다.
나는 봉투를 꺼내서, 그 자리에서 5만 원짜리 여섯 장을 꺼내서 승환이에게 내밀었다.
정확하게 박승환이 요구한 30만 원이다.
“쳇. 재미없는 자식.”
박승환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손을 거둔다.
참나. 애초에 삥땅 치겠다는 생각도 없었으면서 개드립치기는.
임마! 내가 너 머리끝에 서 있어!
그나저나 요즘 박승환 이 녀석 폼이 많이 죽었는데?
얼마 전에는 찬희에게도 발리고.
“그나저나 무슨 좋은 생각 있어?”
다시 봉투에 돈을 집어넣는 내게 승환이가 물어본다.
“좋은 생각?”
“어. 뭔가 김창회를 제대로 엿 먹일 아이디어. 그냥 생일파티는 재미없잖아.”
“재미없지.”
“뭔가 생일파티의 형식을 취하면서 김창회는 엿을 먹고, 우리 모두는 즐겁고, 그런 즐거운 파티를 열고 싶은데.”
박승환이 그렇게 말하며 턱을 문지른다.
지우야. 이건 명백한 너의 실수란다.
승환이는 피해야 했어. 진정 오빠를 위한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승환은 피했어야 했어.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어쩌겠냐. 내가 그림을 제대로 그려주는 수밖에 없지.
“뭐, 떠오르는 게 하나 있기는 한데.”
내가 말했다.
“뭔데?”
“기왕 생일빵을 때려야 한다면 제대로 때려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달까?”
“제대로?”
“아주 제대로.”
“얼마나 제대로?”
“아주 질질 짤 때까지.”
승환이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기다려. 이 형님이 좀 더 알아보고 알려주도록 할게.
이 형님은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까.
***
월요일 늦은 오후, 과방.
예정대로 사문위원회 사문위원님들이 모여 있다.
나는 위원님들에게 주말 동안 새롭게 업데이트된 정보를 고지해 주었다.
일단 그 스포츠음료 모델은 창회 여동생이 맞았다.
이름은 김지우, 국군간호사관학교 사관생도님 되시고, 우리보다 한 살 아래.
내 말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이중훈이었다.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난리를 쳤으니, 그냥 난리만 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김창회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했으니….
아마 지금 자신의 묫자리를 보고 있는 기분이겠지.
나는 승환이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런 나에게 승환이는 책상 밑으로 손을 넣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우리는 어제 ‘이중훈 녹음 파일 공유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승환이가 녹음한 파일은 우리 두 사람에게 금전적인 이득을 안겨줄 소중한 공동자산이 되었다.
이중훈에게서 무엇을 얻어낼지는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번 주 금요일이 김창회 생일이고, 동생으로부터 깜짝 생일파티를 해주었으면 한다는 부탁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뭐, 다른 이야기는 전부 다 빼버렸다. 창회 가족 이야기라든가, 돈을 받았다든가, 그런 이야기는 전부 빼버렸지.
“아무튼, 지우가 창회 여동생으로 확인된 이상, 사문위원회는 이 시간 이후로 ‘김창회 서프라이즈 생일파티 준비위원회’로 전환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찬성합니다!”
내 제안에 지연이가 적극 지지 의사를 표하고 나선다.
나머지 놈들은?
“생일파티? 진심으로?”
박찬희의 반응.
“귀찮게 그런 걸 왜 해야 하는데. 그냥도 아니고 서프라이즈? 그냥 과방에서 초코파이에 양초 대충 꼽아서 불고 다구리 치면 되는 거 아냐?”
이건 이중훈.
솔직히 나도 중훈이의 의견에 찬성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어제 지우의 간곡한 부탁을 받았는데, 그냥 대충 넘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나는 중훈이를 바라보았다.
“왜?”
이중훈이 띠꺼운 표정으로 말한다.
“괜찮겠어?”
내가 물었다.
“뭐가?”
“하나뿐인 손위 처남이 될지도 모르는 김창회의 생일인데, 그렇게 대충하게 해도 되겠어?”
내 말에 이중훈의 표정이 변한다. 눈빛도 착 가라앉는다.
지금 이중훈의 두뇌가 열심히 연산을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다.
“어디서 하지? 창회의 품격을 생각한다면 호텔 연회장을 빌려야 할까?”
바로 태도를 바꾼 이중훈이 그렇게 말한다.
쯧쯧쯧. 한심한 놈 같으니.
나는 이중훈이 김창회 집안의 ‘이 서방’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아니, 기대는커녕,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해 막아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내 계획을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일단 우리 중훈이에게 아름다운 꿈을 꾸게 만들어 주고, 창회 생일파티가 열릴 때까지 단물을 쭉 빼먹은 다음, 나중에 버리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 아니던가?
이용, 아니,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활용해야지.
“호텔 같은 소리 한다. 니가 낼 꺼야? 연회장 빌리는데?”
찬희가 발끈하고 나선다.
이 녀석은 여전히 ‘반대’라는 푯말을 들고 있지만, 상관없다.
일단 지연이는 찬성했고, 어제 나와 같이 부탁받은 승환이도 오케이고, 중훈이도 넘어왔으니, 찬희 혼자 발악해봤자 소용이 없다.
뭐, 마지막까지 버티면 나중에 유라를 인질로 삼아서 협박하든가.
뭐 방법이야 무궁무진하지.
“자자. 헛소리 그만하고. 창회 그 자식 처먹는 거는 고기 밖에 없으니까, 그냥 우리 맨날 가는 정육식당에서 하자고. 형님한테 우둔살로 대충 케이크 모양 만들어 달라고 하고, 성인용품점 가서 SM 플레이에 사용하는 저온 양초 사다 꼽아주면 김창회는 만족할 거야.”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케이크 처먹지도 않는데, 쓸데없이 그런데 돈 쓸 필요는 없겠지.
“예산은?”
이중훈이 묻는다.
“뿜빠이. 어차피 니들 창회 생일선물 같은 거 안 살 거잖아? 산다고 해도 진짜 활용도라고는 1도 없는 쓰레기 같은 것만 사 올 테고.”
진짜다. 확신한다.
생일선물을 사 오라고 한다면?
어떤 선물이 가장 쓸모없는지를 경쟁하는 ‘천하제일 쓰레기 대회’가 열린다는 데 우리 할아버지의 명예를 건다.
“그냥 돈으로 내. 일단 형님에게 가서 내가 견적 뽑아올 테니까 n분의 1로 하면 되겠지. 그리고 유라 포함해서 동기나 후배들 온다고 하면 다 오라고 해. 물론 비밀 유지 시키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승환이만 빼고.
승환이는 비릿한 웃음을 지은 채, 입 모양만으로 나에게 말한다.
‘50만 원’
그렇게.
웃기고 있네. 꺼져.
내가 다 계획이 있다 이거야!
***
“이번 주 금요일이요?”
서현 씨가 묻는다.
“네. 진짜 귀찮아 죽겠어요. 괜히 약속 같은 걸 해 가지고….”
내가 만사 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서현 씨는 그저 싱글 생글 웃고 있다.
그런 서현 씨와 나 사이에는 캐모마일 차가 담긴 찻잔이 놓여 있다.
오늘 중국 출장에서 돌아온 서현 씨와 나는 언제나처럼 캐모마일을 사이에 두고 주말 동안 서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서현 씨에게 곰탕을 얻어먹기 위해 주말에 기훈이 집에 갔다가 창회 여동생을 만났고, 창회 여동생에게 창회 몰래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지우와 어머님 이야기도 살짝 곁들여서.
나와 서현 씨는 일심동체. 그러니, 서현 씨에게는 애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던 것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아니, 뭐, 사실 일심동체는 아니지만. 아직은.
“그냥 중훈이 말처럼 대충 초코파이에 아무 양초나 대충 꼽아주고, 다 같이 생일빵 때리는 게 가장 편한데, 사실 창회 그 자식도 원하지 않을 거고.”
“설마요. 기뻐할 거예요. 분명히.”
“혹시라도 그럴까 봐 더 해주기 싫어요.”
심술쟁이 초등학생처럼 말하는 내 모습을 보며 서현 씨는 쿡쿡하고 웃는다.
이거 먹히는구나. 나중에 또 써먹어야지.
“기대돼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서현 씨도 오실래요?”
“어머. 저도 가도 될까요?”
“그럼요. 뭐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리고 생일파티라는 게 원래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우리 친구 놈들도 다 올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에이. 설마요. 다들 사이좋은데.”
“나부터 일단 안 가고 싶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개드립에 다시 서현 씨가 웃는다.
이거구나. 박승환이 끊임없이 개드립을 던지는 이유가 이것이로구나.
나를 낮추어 상대방을 웃긴다.
이거 나름 보람찬데?
로스쿨 말고 개그맨 준비를 해야 하나?
“아무튼 시간 괜찮으시면 오세요. 이번 주 금요일 신림에서 모일 예정이니까요.”
“네. 알겠어요. 시간 비워 둘게요. 그런데, 선물을 준비해야겠네요.”
“아니요. 우리 모두 다 선물 같은 거 안 하기로 했어요. 그냥 그날 파티 비용 n분의 1 하는 것으로 그렇게 합의 봤어요.”
“그래요? 섭섭해할 것 같은데….”
“제가 알기로 선물이라는 건 ‘돈 주고 사기는 조금 그렇고, 하지만 받으면 기쁜 물건’이 가장 좋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창회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이건 저뿐만 아니라 친구들 모두 다 같은 생각이라는데,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 수 있어요.”
“어르신께서 들으시면 혼나시겠는데요?”
“뭐 몇 대 맞고 말죠. 아무튼, 창회 선물 사 오라고 하면 ‘절대로 돈 주고 사고 싶지도 않고, 받으면 기분 더러운 물건’ 박람회가 될 거예요.”
“그래서 더 궁금해요. 어떤 물건들을 골라올지.”
서현 씨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한다.
가끔 보면 우리 서현 씨도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그건 그렇고, 그냥 고기로 끝이에요? 케이크도 준비 안 하고?”
서현 씨가 묻는다.
“어차피 준비해 봤자 창회 녀석은 먹지도 않을 텐데요. 뭘”
“그래도 생일인데, 미역국이라도 끓여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제가 준비할까요?”
“미역국도 끓일 줄 아세요?”
“네. 엄마한테 배웠어요.”
한식 요리연구가 신소현 선생님께 직접 사사받은 미역국이라.
“안 되겠는데요. 창회 따위에게 주기에는 너무 고급이라서. 그리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서현 씨가 묻는다.
“이건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닌데요.”
나는 서현 씨에게 그렇게 전제를 깔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은밀한 계획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