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46화 (146/271)

146 : “왜 하필 우리 두 사람이죠?”

일요일 오후, 나는 센트럴시티 1층 카페에 앉아 있었다.

전국에서 오는 고속버스가 모두 집결하는 이곳 센트럴시티가 바로 오늘의 약속 장소였으니까.

자기가 약속 시각을 정했으니 약속 장소는 나보고 정하라고 했고, 그러면 센트럴시티에서 보자고 했다. 교통 편리하고, 바로 버스 타고 가도 되고, 밥 먹고 차 마실 곳도 많고.

크으. 이런 섬세함.

가끔씩 이렇게 자상하고 섬세한 내가 두렵다.

그런 뻘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보니, 약속 시각으로 정한 1시까지 2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나는 빨대를 입으로 가져가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그나저나 지우가 갑자기 왜 보자고 했을까?

오빠 친구라서?

아니, 아무리 오빠 친구라고는 해도 어제 처음 만났는데, 다음 날 바로 보자고 한다고?

물론 관계적 특수성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김창회 여동생 김지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지만, 지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지만,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전해 들었으니 나와 달리 지우 입장에서는 완전 초면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친근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좀 무리가 있는 가설이기는 하지만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오케이.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하지만 창회 몰래?

창회 없이도 아니고 몰래?

거기서 첫 번째 가설이 막힌다.

아무리 기저에 깔린 친근감이 있다고 해도, 지우와 나 사이에 중간 매개체인 창회 없이, 아니, 창회 몰래 만나자는 것은 상식 수준에서 이해가 안 간다. 일반적인 인간관계의 관점에서 무리가 있다.

거기에 승환이까지?

백번 양보해서, 지우가 제안한 만남이 지우와 나. 단 두 사람만의 만남이라고 한다면, 지우가 나에게 호감이 있다. 첫눈에 반해 버렸다. 뭐 그런 가설을 억지로 끼워 맞출 수도 있겠는데….

아니, 이거 진짜 내가 오바하는 거 아니고.

나도 알지. 내가 한국대 프린스, 정지수 선생님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면, ‘으이구. 또 첫눈에 반해 버렸구만! 이놈의 인기란….’ 같은 재수 없는 소리를 했겠지만, 그 정도 얼굴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어쩐지 씁쓸한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갑자기 단둘이 만나자고 했으면 그런 가설을 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야기라는 거지.

하지만 승환이가 함께 했으면 한다?

자연스럽게 나에게 반했다는 가설은 폐기.

다른 가능성을 찾아가 보자.

혹시…. 설마…. 승환이를 소개시켜 달라는?

지우는 승환이를 만난 적 없다고 했다. 승환이도 지우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아닐 거다. 아닐 가능성이 높다.

왜 어제 그랬잖아.

박승환한테는 뼈밖에 없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아무리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소개해 달랄까.

잠깐만. 설마 하이브리스토필리아(hybristophilia)?

흉악범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정신적 증후군? 찰스 맨슨에게 구애한 애프턴 일레인 버튼처럼?

에이 설마.

그나저나 이 자식은 왜 안 오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드는데,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이미지를 보유하고 계신 박승환이 카페 밖에서 날 바라보고 있다.

뭐야? 저 자식 왔으면 들어올 것이지 왜 밖에서 저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나와 시선이 교차한 박승환은 잠깐 의심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고, 무언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둘러보고서야 천천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원하는 게 뭐냐?”

다가온 박승환이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이게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뭐?”

“도대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수준 낮은 함정으로 날 끌어낸 거지?”

아나. 이 자식은 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박승환이 내 휴대폰을 집어 든다.

“녹음 중은 아니고….”

주변을 돌아본다.

“카메라 같은 건 안 보이고.”

다시 날 바라본다.

“잠깐 일어나봐. 주머니에 있는 거 다 꺼내고, 옷 좀 벗어봐. 팬티까지 몽땅.”

이런 개소리를 한다.

때릴까? 때려 버릴까?

잠깐 그런 충동이 들었지만, 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현대인으로서 박승환을 이해해주기로 했다.

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느긋한 일요일 오전 ‘우리가 찾아다니던 그 스포츠 모델은 사실 창회의 여동생이었고, 그 창회 여동생이 너를 보고 싶단다. 창회 몰래.’라는 전화를 받으면 저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겠지.

“설명해 줄 테니까, 일단 닥치고 앉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박승환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자신 앞에 놓인 의자를 바라본다.

으이구. 의심 많은 새끼. 난 모르겠다. 앉든가 말든가.

“나도 왜 만나자고 했는지 몰라. 그냥 보자고 했고, 가능하면 너도 같이 보고 싶다고 했어.”

“…어제 처음 만났는데?”

“그래.”

“진짜로?”

“그래, 진짜로.”

“고향에 계신 할아버님의 명예를 걸고?”

“우리 할아버지의 명예가 그다지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걸라면 걸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박승환이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의자를 두어 번 눌러보고는 자리에 앉는다.

***

지우는 각이 생명이라는 사관생도답게 정확히 1시에 카페에 등장했다.

“죄송해요. 지하철에서 10분 전에 내렸는데 길을 헤맸어요.”

“아니야. 안 늦었는데 뭐가 죄송해? 여기는 승환이.”

내가 그렇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승환이를 소개하자 지우는 승환이에게 ‘안녕하세요. 창회 오빠 여동생 지우입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내 옆에 앉는다.

승환이 저 녀석 눈을 보니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도 같다.

섭외한 연기자가 아닐까 그런 의심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섭외한 연기자치고 너무 예쁘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진짤까? 진짜 창회 여동생일까? 창회 여동생인데 왜 예쁜 건데?

그런 생각을 하는지, 눈동자가 카페 진동벨 처럼 부르르 떨고 있다.

난 모르겠다. 의심을 하든 말든.

“뭐 마실래?”

내가 지우에게 물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식사부터 하시는 건 어떠세요?”

지우가 그렇게 되묻는다.

나는 승환이를 바라보았다.

승환이 녀석의 눈동자는 여전히 진동하고 있다.

식당을 섭외해 둔 건가? 카메라는 거기에 깔려 있는 건가? 그런 망상이나 하고 있겠지.

안 되겠다. 저 녀석은 글러 먹었어. 이미 의심이라는 괴물에게 잡아먹혀 버렸어.

“그래. 일단 밥부터 먹자. 뭐 좋아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지우는 빌라 드 어쩌구 하는 이름의 식당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상호가 프랑스어여서 프렌치 레스토랑인가 했더니, 떡볶이집이었다. 본점은 가로수길에 있고, 센트럴시티에서도 나름 유명한 맛집이란다.

기왕이면 비싸고 맛있는 거 사주고 싶어서 다른 거는 어떠냐고 했더니, 친구에게 맛있다는 이야길 들어서 꼭 한 번은 와보고 싶은 집이었단다. 탄수화물은 보충제로만 섭취하시는 오빠 때문에 와보고 싶어도 올 수가 없었다고. 마침 센트럴시티에 오게 된 김에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하긴 한 20분 웨이팅 했다가 들어갈 정도니 인기 있는 집이긴 한가 보다.

아무튼 그렇게 나와 지우, 그리고 여전히 의심이라는 마구니에 씌어있는 박승환 세 사람은 즉석떡볶이에 이런저런 토핑을 추가하고, 마지막에 볶음밥까지 볶아 먹었다.

자기가 계산하겠다는 지우에게 동방예의지국 장유유서의 엄정함을 설명해 준 내가 계산을 했다.

확실히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떡볶이집이라고 하기엔 좀 비싸네. 뭐 맛은 있으니.

아니지. 떡볶이라고 무조건 싸야 한다는 생각은 편견일 수도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5에서 6유로 정도면 사 먹을 수 있는 까르보나라는 한국에서 최소 그 두 배 가격이잖아.

우리나라 떡볶이도 나중에 해외에 나가면 한 접시에 막 12유로로 팔고 그랬으면 좋겠다. 김말이는 개당 2유로로 해서. 이것이 K-바가지다!

아무튼 그렇게 탄수화물과 염분 대환장 파티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근처 커피집에 자리를 잡았다.

본론을 들어야 하니까.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먼저 드릴게요. 이렇게 갑자기 시간 내달라고 부탁드린 거, 실례라는 거 잘 알고 있어요. 더군다나 한수 오빠는 어제 처음 인사드렸고, 승환 오빠는 아직 인사도 못 드렸는데. 죄송합니다.”

지우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인다.

그런 지우를 승환이는 더욱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예의 바른 애가 창회 동생일 리가 없어! 그런 생각 하고 있겠지.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시간 되니까 온 거고. 그나저나 무슨 일인데?”

“다름이 아니라 부탁이 있어서요.”

부탁이라는 말에 머릿속으로 순간 ‘네트워크 마케팅’, 속칭 다단계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딱 그 코스잖아. 인사하고, 안면 익히고, ‘좋은 사업 아이템 있는데 같이 해 볼래요?’

아니면, 더 직관적으로 ‘돈 좀 빌려주세요’라든가.

하지만 지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이야기였다.

“금요일이 우리 오빠 생일이에요.”

“응? 다음 금요일? 5일 후에?”

“네. 돌아오는 금요일이요.”

나와 승환이는 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금요일이 창회 생일. 그런데?

그런 눈으로.

“괜찮으시다면 오빠들이 우리 오빠 생일 챙겨 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지우가 그렇게 말하자, 계속 입 다물고 있던 승환이가 말을 건다.

“안 될 것 같은데요.”

“네?”

지우가 놀란 눈으로 승환이를 바라본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한다고?

“그러니까, 동생분 말씀은 금요일이 창회 생일이니까 생일빵을 때려달라는… 캑.”

내가 재빨리 승환이 옆구리에 엘보를 꽂아 넣음으로써 개소리가 이어지는 것을 막았다.

그런 우리 모습에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던 지우가 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승환이를 바라보다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한참을 웃는다.

“아. 죄송해요. 진짜로 죄송해요. 맨날 오빠에게 말로만 듣던 장면을 실제로 보게 되니까 저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지우가 그렇게 말하며 웃느라 흘러나온 눈물을 훔친다.

역시, 슬랩스틱은 불멸이군.

“창회 생파를 해달라는 이야기?”

“네. 막 대단한 건 아니어도, 어딘가에 모여서 오빠에게 생일 축하 노래 불러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창회가… 좋아하려나?”

“아니요. 아마 싫다고 할 거예요. 그래서 두 분께 부탁드리는 거예요.”

“서프라이즈로 해줘라?”

“네.”

지우가 대답한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있는데….”

승환이가 옆구리를 문지르며 질문을 꺼낸다.

분명 개소리 같은데, 개소리일 텐데, ‘네. 승환 오빠.’ 하면서 대답하는 지우 때문에 승환이 입을 막을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왜 하필 우리 두 사람이죠?”

승환이가 그렇게 질문한다.

나는 지우를 바라보았다.

나도 궁금한 질문이었으니까.

왜 우리 두 사람이지?

“두 분 욕을 가장 많이 들었거든요.”

지우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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