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44화 (144/271)

144 : 엄마의 마지막 말

서로 모르는 사람이 친해지는 빠른 방법은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 공통분모가 사람이라면, 서로가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빨리 친해질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아는 사람을 욕하면 더 빨리 친해질 수 있다. 아주 빠르게.

우리는 가장 빠른 방법을 선택했다.

박승환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창회 여동생분, 아니, 지우와 우리는 서로에 대해 친밀감을 느꼈다.

“박승환은 죽어서 분명 지옥에 갈 거야. 100%의 확률로. 인정?”

내가 그렇게 묻자 창회와 지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인정.”

“저도요.”

“지옥에 가서도 잘 살 거야. 악마들 등쳐먹으며.”

“인정.”

“저도요.”

그렇게 승환이를 난도질하는 우리 세 사람이 재미있는지, 지우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연이가 내게 귓속말을 건네 온다.

‘이제 알겠어요.’

‘뭐가?’

‘왜 오빠들이 드립을 치는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다가, 같이 동참하니까 너무 좋아요.’

그렇게 말하는 지연이를 보고 있자니, 나도 죽으면 지옥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죄목은 ‘순수한 소녀의 영혼을 타락하게 한 죄.’

“아. 너무 재미있어요. 듣던 대로 진짜 오빠들 너무 재미있어요.”

눈물까지 흘리며 한참을 웃던 지우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또 웃음을 터트린다.

참, 이게 끊을 수가 없다.

드립을 쳐서 상대방에게 먹히면, 이것만큼 또 흐뭇한 게 없거든. 물론 리스크는 감수해야 한다. 분위기를 한순간에 싸늘하게 만들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 바로 개드립이다.

그건 또 이중훈이 전문이지.

“보고 싶어요. 승환 오빠. 찬희 오빠도, 중훈 오빠도 다 만나보고 싶어요.”

지우가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한다.

얘가 사관학교 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뭐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은데, 세상에는 근묵자흑, 근주자적이라는 말이 있단다.

에비. 그거 더러운 거야.

특히, 이중훈, 그놈은 피해야 한다.

지우가 창회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어떻게 돌변할지 안 봐도 노 모자이크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핸드폰을 꺼내든 김창회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오빠. 왜? 누구한테 깨톡 왔어?”

“…관장 형님이 잠깐 보자고 하네.”

관장 형님이라는 걸 보니 헬스장 사장님이 호출하셨나 보다.

“가야 돼? 오래 걸려?”

“아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럼 다녀와. 나는 한수 오빠랑, 지연이랑 놀고 있을게.”

지우가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본다.

그 눈에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라는 간절함이 가득하다.

그렇겠지. 지금 한참 재미있는데.

“다녀오세요. 지우는 저희가 잘 데리고 있을게요.”

눈치 빠른 지연이가 그렇게 지원사격을 하고.

“안 와도 괜찮아. 우리가 집까지 모셔다줄 테니까. 오지 마. 관장 형님하고 놀아.”

내가 쐐기를 박았다.

창회는 ‘내 여동생에게 허튼 소리하면 죽는다’는 의미를 담은 눈빛으로 날 잠시 바라보고는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창회가 자리를 비우자, 우리는 서로에 대한 친밀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창회를 제물대에 올려놓고 말로써 다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닥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닌데, 지우는 빵빵 터졌고, 덩달아 지연이도 빵빵 터져줌으로써, 화자의 의욕을 20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

개그맨들은 자신들만의 한 방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먹히는 필살 개그.

나도 김창회와 관련해 숨겨 놓은 한 방이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애가, 창회에게 라면 먹고 가라고 했는데, 창회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랬는데요? 오빠가?”

“아니, 난 탄수화물은 보충제로만.”

내가 창회의 얼굴 표정을 흉내 내며 그렇게 말했고, 내 말을 듣던 두 명의 여자는 테이블을 때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지. 이렇게 끝장나는 반응을 보여주면 몸 안에서 엔돌핀과 도파민이 펑펑 뿜어져 나온다.

“아. 배 아파요. 안 그래도 오늘 너무 많이 먹었는데, 배가, 배가 너무 아파요.”

지우와 지연이는 웃다가 괴로워하다, 웃다가를 반복하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심호흡을 하며 겨우 진정한다.

아직 해줄 이야기는 많은데, 더 했다가는 애들 웃다가 쓰러질까 봐, 그리고 나중에 나는 김창회에게 맞아 죽을까 봐 일단 여기에서 그만하기로 했다.

“고마워요.”

진정상태로 들어선 지우가 날 보며 그렇게 말한다.

“응? 뭐가?”

“우리 오빠랑 잘 지내줘서.”

“그래. 지우, 너도 알겠지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야.”

“농담이 아니라 진짜 고마워요. 오빠들, 그리고 지연이 덕분에 우리 오빠도 이제야 겨우 웃을 수 있게 되었어요.”

지우가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낸다.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에 나는 일단 아무 말 없이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우리 유지연 씨도 ‘창회 선배에게 무슨 일 있었어?’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우리 오빠,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없었어요. 혹시 들으셨어요? 우리 오빠 옛날이야기?”

지우가 말한다.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나는 창회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그다지 많지가 않다.

면목동에서 자취하고 있고, 본가는 지방에 있고, 헬스를 좋아하고. 그 정도.

사실 우리 나이대의 남자들은 자신의 신상을 공유하는 것에 그다지 거리낌이 없다.

한번 친구라고 인정을 했으면,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다.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것을 친구들도 다 알고 있고, 다른 녀석들의 부모님이 뭐 하시는지, 형제가 몇인지 그런 이야기도 나누고는 했었다.

아. 물론 승환이는 빼고. 그 자식은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스무스하게 잘 빠져나갔지. 뱀 같은 녀석.

반면에 창회는 그냥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 주제가 나오면 평소처럼 말없이 듣고만 있었지.

원래 말이 없는 녀석이라서 우리도 자연스럽게 그런갑다 했고.

그래서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도 오늘에서야 알게 된 것이고.

“아마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닐 거예요.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이니까. 오빠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주저한다.

그 짧은 주저함에 지연이가 반응한다.

“…나 잠시 화장실 다녀올게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지연이를 지우가 재빨리 붙잡는다.

“아니야. 괜찮아. 지연이도 들어줬으면 해.”

그렇게.

지연이가 괜찮냐는 질문을 담아 바라보자, 지우는 지연이에게 작게 미소 지어주고는 말했다.

“오빠가 지연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똑똑하고, 마음이 참 착한 사람이라고 말해줬어. 오빠가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신뢰할 수 있어.”

지우의 말에, 지연이가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지금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이거 엄청 보기 좋은 장면 아닌가?

“우리 오빠. 벽을 쌓고 살았어요. 아주 두꺼운 벽을.”

지우가 그렇게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

창회가 돌아오고 나서도 수다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끝나기는커녕, 말 너무 많이 했다고, 당 떨어진다며 여자애들은 케이크까지 먹었다.

대단해. 여자들의 설탕 사랑은 위의 물리적인 크기까지 제어할 수 있나 보다.

아니, 그렇게 먹고도 살 안 찌는 게 더 대단해.

무서운 녀석들.

아무튼 그렇게 수다를 떨다가, 결국 종업원에게 ‘죄송하지만 저희 마감 시간이라서…’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현직 카페 종사자로서 무한한 죄송함을 느낀다.

아무튼 그렇게 카페에서 쫓겨날 정도고 긴 수다를 떨었음에도, 무슨 할 말이 또 남았는지, 조만간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서야 토요일 밤의 길고 긴 저녁 식사와 티 타임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창회와 지우는 창회 자취방으로, 나와 지연이는 택시를 타고 교대로.

지연이는 괜찮다고, 바래다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는데, 그런 말을 들었다고, 그래? 괜찮아? 알았어. 그럼 잘 들어가. 학교에서 보자~ 같은 개념 없는 소리를 할 정도로 상식이 없지는 않다.

아무튼, 교대역을 향해 가는 택시 안은 고요했다.

지연이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고, 나는 그런 지연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행 방향 반대편으로 사라지는 가로등 불빛만이 택시 안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에너지였다.

“…몰랐어요.”

10여 분의 침묵 후에 지연이의 말이었다.

“나도.”

내가 말했다.

창밖을 향해 있던 지연이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그 눈동자에 옅은 슬픔이 일렁이고 있었다.

***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중학교 2학년, 오빠는 중학교 3학년이었어요. 갑작스러운 이별은 아니었어요. 엄마는 오래 아프셨고, 그래서 우리도 어느 정도의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날은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왔어요. 엄마가 너무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날들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시작하는 지우의 시선이 그날을 바라보고 있다.

“장례식이 끝나고, 화장장에서 엄마가 한 줌의 재가 되던 그 날, 오빠는 화장로 앞에서 단 한발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화장이 진행되던 그 한 시간 남짓 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어요. 그리고 그날 이후 오빠는 변했어요. 장난기 가득했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았고, 재미있는 농담을 해주던 입은 닫혀버렸어요. 운동을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어요. 저는 이해할 수 없었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단숨에 변해버린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지우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고, 나와 지연이는 그런 지우의 숨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유명해요. 단순히 부자이거나, 지역에서 큰 어르신 대접 받는 지역 유지 정도 수준이 아니라, 도지사 선거 향방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예요. 실제로도 선거철만 되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할아버지를 오빠는 싫어했어요. 엄마가 그렇게 된 것이 할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창회에게 할아버지가 계셨구나.

“아주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거예요. 제가 태어나기 전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소위 말하는 유복녀죠. 엄마는 남편을 잃고도 슬퍼하지도 못한 채 깐난쟁이 아들과 배 속에 있는 딸을 먼저 챙겨야 했었고, 뼈대 있는 화양 김씨 종가는 그런 며느리를 따스하게 감싸주는 집안은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오빠는 대놓고 할아버지와 대립했어요. 그리고 할아버지도 그런 종손을 용납하지 못하셨죠. 당연히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 되어 버렸고, 저는 그런 고집불통 할아버지도,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오빠도, 그 외에 모든 것이 다 싫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학교도 안 가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사춘기를 제대로 앓았죠.”

말없이 듣고만 있던 지연이가 천천히 손을 뻗어 지우의 손을 잡아준다.

그런 지연이에게 지우가 고맙다는 눈인사를 건넨다.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오빠가 왜 그렇게 변해버렸는지, 갑자기 왜 운동을 시작했는지,”

지우의 시선이 천천히 우리에게로 향한다.

“엄마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어요.”

“마지막 말씀이….”

“‘미안해. 우리 아들. 지우를 부탁할게.’ 그게 엄마가 오빠에게 해준 마지막 말이었어요.”

지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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