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41화 (141/271)

141 : “DNA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저번에 창회 오빠 자취방에 갔을 때 방 하나 더 있었잖아요. 그때 창회 오빠가 여동생 방이라고 했는데, 혹시 그 여동생분 아닐까요?”

지연이가 그렇게 새로운 가설 하나를 제시했다.

“절대 아니야.”

이중훈이 바로 선을 그어버린다.

“창회 여동생? 그럴 리가 없어. 예쁜데? 그냥 예쁜 것도 아니고 엄청 예쁜데 창회 여동생이라고? DNA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절대로.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그렇게 주장한 이중훈은 동의를 구하듯 나를 바라본다.

“창회 여동생이라고 하기에는… 아름다운 분이기는 했지.”

나도 동의했다.

선입견일 수도 있다.

처음 창회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리 긴 김창회를 떠올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그렇게 예쁜 그 여자가 김창회와 같은 DNA라는 가설은….

역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감성적으로도 그렇고.

“친구들, 잠깐만 내 이야기를 좀 들어주게.”

한 손을 들어 올린 박승환이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모두의 시선이 승환이에게 모인다.

“아름다운 사람은 창회의 여동생이 될 수 없다는 전제는 위험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데.”

승환이가 그렇게 화두를 던진다.

나는 위험신호가 등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서 경고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박승환이 진지한 말투로 저렇게 말한다?

의도가 있다. 분명 무언가 의도가 있다.

하지만 단순한 이중훈은 바로 낚이겠지.

“아니야. 절대로 아니라니까. 직접 못 봤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진짜로 예뻤다니까? 스포츠음료 하나 딱 쥐여주고, 고대로 사진 찍어서 뽀까리 로고 박으면 그냥 포스터였다니까? 그 여성분이 김창회 여동생이면, 내가 김창회 매부다.”

그렇게 단호하게 반박하고 나선다.

그런데, 지금 저 녀석, 뭔가 자기한테 유리한 말을 한 것 같은데?

“저도 오빠랑 많이 안 닮았어요.”

지연이가 말한다.

“오빠는 아빠 닮았고, 저는 엄마 닮았거든요. 하나하나 미세하게 비교하면 분명 오빠랑 비슷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래도 닮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못 들었어요.”

머릿속에서 머리 짧은 유지연 남자 버전을 상상해본다.

순정만화 주인공이 떠오르네.

“오빠가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지?”

중훈이가 묻는다.

“뭐, 그런 말을 듣고 다니는 것 같아요.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지연이가 말한다.

“거봐. 지연이는 예쁘지? 오빠는 잘생겼대. 그게 남매지. 그게 DNA야! 이중나선의 힘이라고! 하지만? 창회는? 잘생겼다는 말을 들어? 창회가 잘생겼어?”

이중훈이 그렇게 강하게 반박하고 나선다.

“창회 선배도 나름 괜찮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지연이가 그렇게 말을 흐린다.

“지연아. 그렇게 마음에 없는 말 하지 말고. 진짜로, 백번 양보해도 김창회가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 그래. 그냥 뭐랄까? 일반인의 범주에는 있다. 그 정도까지는 양보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몸, 그 인간 흉기 같은 어깨에, 가슴팍에, 창회에게 잘생겼다는 단어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아. 절! 대! 로!”

이중훈이 그렇게 침을 튀기며 말한다.

너무 나간 것 같은데? 이중훈이 저 자식 오바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 걸리면 김창회에게 죽을 것 같은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박승환을 슬쩍 바라보니, 책상 밑으로 들어간 승환이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고, 휴대폰 화면에는 마이크 모양이 떠 있다.

아, 이거였구나. 박승환 이 자식,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구나.

내가 아까 저 자식 진지한 말투로 김창회 편들 때부터 수상쩍다 했어.

그렇게 도발을 시전하고, 녹음을 따고 있었다고?

저 녹음파일은 유형 자산이 될 것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익을 안겨 줄 것이다.

나도 공유해달라고 해야지. 저 자식 혼자 꿀 빨게 둘 수는 없지.

“아니. 그 여자분은 아름다웠다니까? 절대로, 절대로 남매일 수가 없어. 네버! 에버!”

이중훈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고대 그리스 아고라의 소피스트처럼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결국 내가 나서야 되겠구만.

“자. 자. 잠깐만. 진정 좀 해봐.”

나는 두 손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한다. 나를 향한 그 시선 중에서 나는 이중훈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녀석의 눈빛이 날카롭다.

이런 녀석들이 있지. 평상시에는 안 그러는데, 무언가에 한 번 꽂히면 눈 뒤집어지는 녀석들이.

이중훈, 오늘 오바하네.

“목격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중훈이의 주장은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내가 그렇게 살짝 중훈이 편을 드는 듯한 스탠스를 취하자, 이중훈이 강아지처럼 재빨리 고개를 끄덕인다.

으이구. 신났어. 아주.

친구야. 미안하다. 니 편들어주려는 거 아니거든?

지금 녹음 중이거든?

“하지만 그 여성분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창회의 여동생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성인으로 올바른 추론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더불어 우리의 친우인 창회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갑작스런 내 태도 변화에 이중훈의 눈에 당황스러움이 깃든다.

미안하다. 난 살아야겠다. 너 혼자 죽어라.

박승환을 슬쩍 보니, 입술을 삐쭉거리고 있다.

이 자식아. 난 안 낚여.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그 여자분이 창회의 여동생인지에 대한 문제는 지금 우리가 결론 내리고 단정 지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이야. 우리가 맞다고 결론 짓는다고 해서 창회 여동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아니라고 해서 아닌 것도 아니고. 물론 창회와 많이 닮지는 않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은 하지만, 창회 여동생인지 아닌지, 그 판단을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내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솔직히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지.”

내 말이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조금만 더 조사를 해보도록 하자. 그 여자분이 김창회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나서, 그렇게 모인 단서가 하나의 완벽한 그림으로 만들어졌을 때, 그 그림을 가지고 김창회와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이중훈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지. 지가 어쩔 거야? 내 말에 허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우선, 지난주 토요일에 김창회가 그 여자분을 데려왔으니, 당분간 매주 토요일을 집중감시일로 설정하는 것을 제안한다. 어떻게 생각해?”

“위원장님,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박찬희가 손을 든다.

“박찬희 위원. 발언을 허락합니다.”

이중훈 꺼져. 이제 내가 사문위원장이야!

“감사합니다. 위원장님. 이번 주 토요일, 그러니까, 내일은 제가 학교에서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찬희가 그렇게 말하자 어김없이 승환이가 손을 들어 올린다.

“대놓고 데이트를 하시겠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만….”

“그. 그런 의미는 아니고….”

“내일 감시활동에 최유라 씨가 동행합니까?”

박승환이 날카로운 눈으로 그렇게 파고든다.

역시 공격할 때는 자비가 없는 놈이다.

“아니. 저기. 그. 유라가. 저기. 내일 같이 공부하자고 그래서 겸사겸사….”

그렇게 어버버거리던 박찬희가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갑자기 날카로운 눈으로 박승환을 노려본다.

“응원한다며?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며? 제대로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기뻤다며? 이 자식아!”

박찬희의 날카로운 역공에 박승환이 눈동자가 데굴데굴 돌아간다.

크리티컬이다. 회피 불가, 방어 불가. 제대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아니. 나는 기뻐서. 두 사람이 그렇게 면학에 힘쓰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서….”

승환이가 그렇게 어버버거린다.

“박찬희 승.”

내가 판결을 내리자, 박찬희가 오른손을 치켜들며 승리 포즈를 취한다. 박승환은 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박찬희가 박승환을 말로 바르는 장면을 다 보고.

“좋아. 그럼 내일은 찬희가 학교에서 감시하는 것으로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일단 대기. 괜히 조사한다고 오바하다가 타초경사 해버리면 말짱 도루묵 돼 버린다. 이번 싸움은 장기전이 될 거야. 다들 주말 동안 집에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체력 보충하고.”

내 말에 친구 놈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크으. 이 권력의 맛이란.

***

어김없이 지연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 지연이는 어제 내가 알바하는 카페에 민주와 함께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민주가 먼저?”

“네. 민주가 먼저 시간 괜찮으면 차 한잔 마시자고 그랬어요.”

지연이가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어제 오후, 민주에게서 깨톡이 왔다고 했다.

처음 시작은 수업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다는 핑계였고, 괜찮으면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말을 걸어왔단다.

지연이 입장에서는 거절할 명분도 없었고, 또 마침 내가 민주 이야기를 했던 것도 생각나고 해서 제안을 받아들였고,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민주가 커피까지 마시자고 권유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연이는 민주를 내가 알바하는 카페로 데려온 것이고.

나는 처음부터 지연이가 민주에게 접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내가 지연이에게 민주와 형태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고, 그래서 의욕 충만한 지연이가 ‘친하지는 않지만’ 범주에 있는 민주에 대한 대면 조사를 위해서 차를 마시자고 먼저 제안을 했고, 나에게 ‘저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내가 알바 하는 카페로 데려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었는데….

미안하다. 지연아. 내가 짧은 소견머리로 감히 너를 재단했구나.

“근데 왜 하필 우리 카페로 온 거야?”

“보여주고 싶어서요.”

“뭘?”

“오빠요.”

“나?”

“네. 오빠 앞치마 입은 모습 보여주고 싶어서요. 귀엽거든요.”

지연이의 그 말에, 순간적으로 내 말문이 막혀버렸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아니, 그날, 지연이의 그 고백이 없었더라면, ‘너 나 좋아하는구나? 나 좋아하지 마. 상처 입어. 아아주 깊은 상처.’ 그런 개드립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쳤을 터인데….

“그래서, 민주하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말을 돌렸다.

내 질문에 지연이는 잠깐 생각하는 눈빛을 보였다.

그 눈빛이, 내가 말을 돌린 것에 대한 실망감인지, 아니면,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가 있었고, 그 부분을 이야기해도 되는지를 주저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으음. 제가 추측하는 부분을 일단 제외하고, 민주와 저 사이에 있었던 대화 내용을 그대로만 말씀드리면, 별 내용은 없었어요. 그냥, 수업 이야기하고, 과제 이야기하고, 방학 때 뭐 할 건지, 그런 시시콜콜한 내용이 거의 전부였어요.”

“거의 전부였다는 말은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네.”

내 말에 지연이가 작게 웃는다.

“가끔 보면 오빠는 탐정 같을 때가 있어요.”

“고향에서 내 별명이 한코난이었지.”

“오빠가 가는 곳마다 시체가 발견되어서?”

“얘가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오빠는 한코난보다 한전일이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아무튼 맞아요. 전부는 아니고, 민주가 살짝살짝 흘리는 듯 말한 게 있었어요.”

여자들의 대화에서 살짝살짝 흘리는 무언가는 굉장히 중요하다.

보통 그 슬쩍슬쩍에 진짜 여자가 원하는 핵심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주 높다.

“뭐였는데?”

“선배들.”

응?

“우리?”

“네.”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인간계 최강이라는 그 박민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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