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 친구라는 확신 (2)
“저기 저 건물 보여?”
승환이가 손가락을 들어, 양재천변 도롯가에 있는 건물 하나를 가리킨다.
기역자 모양의 불 꺼진 4층 건물. 그리고 운동장.
“학교?”
“맞아. 내가 나온 중학교.”
승환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는 부자였어. 변호사니까 당연하겠지.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부자. 돈 많은 변호사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왔더니 많은 것이 새로 생겼어. 커다란 새 집, 커다란 새 방, 새 침대, 새 책상, 새 컴퓨터, 그리고 새 학교.”
나는 승환이가 나왔다는 학교를 바라보았다.
건물의 배치나 외형은 여느 중학교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불 꺼진 교사(校舍) 특유의 음침함이 있었다.
함께 뛰놀던 친구들을 고향에 두고, 낯선 곳, 낯선 학교에 가야만 했던 중학생 박승환은 처음 등교하던 날, 저 교사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학교는 어땠어?”
“어땠을 것 같아?”
“즐거웠을 것 같은데? 촌놈이라고 무시도 당하고, 왕따도 당하고.”
내 농담에 승환이가 웃음을 터트린다. 오늘 처음 보여주는 찐 웃음이었다.
잠시 동안 큭큭거리며 웃던 박승환은 천천히 호흡을 고른 후 말한다.
“괜찮네. 그 드립 마음에 들어. 확실히 한수 너는 허를 찌르는 개드립에 재능이 있다니까.”
“너만 하겠냐.”
진심이다. 개드립에는 승환이 못 당하지.
“그래. 니 말대로 즐거웠지. 강남 8학군. 사교육의 메카, 대치동 중학교에서 이제 막 서울로 상경한 경상도 촌놈의 레벨은 집에 있는 애완견보다 못하지 않았을까? 확실히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는 않았어. 그리고 그중에서는 직접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는 녀석들이 있었지. 너도 알다시피 14살은 아주 잔인한 나이니까.”
“진짜로 왕따 당했어?”
박승환이 피식하고 웃는다.
“당했을 것 같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중학생 박승환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내가 아는 박승환이라면 왕따 같은 걸 당할 녀석은 아니다.
“입학하자마자 존재감을 드러내는 세 놈이 있었어.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유명했었다더만. 가끔 그런 애들 있잖아. 범죄의 재능을 타고 난 애들, 잘 키우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범죄자로 성장할 수 있겠구나 싶은 놈들. 그놈들이 날 찍었고, 입학한 지 일주일 만에 행동에 들어갔지.”
“어떻게?”
“점심 먹는데 시비를 걸더라고. 시골에서는 이런 급식 못 먹어보지 않았겠냐면서, 지들 짬을 내 식판에 버리더라고.”
“그래서?”
“식판으로 찍어줬지.”
“넓은 면으로?”
“세워서.”
“피 봤겠네.”
“나 덕분에 우리 반 급우들은 ‘피분수’라는 걸 실제로 볼 수 있었지.”
시골 애들이 싸움 잘 한다. 험하게 커서. 대표적으로 나, aka 시베리안 한수키.
“변호사 아버지 좋더라고. 그 사람도 아니고, 그 사람 부하가 학교에 와서 싹 정리를 하더란 말이지. 교장부터 싹 갈려버렸어. 그렇게 되니, 은연중에 날 무시하던 선생들이 내 눈치를 보더라고.”
“그놈들은?”
“전학 갔어. 억울했을 거야. 지들이 피해자인데 전학 가고. 길 가다 가끔 만났어. 만나서 이리 오라고 손짓하면 겁나게 도망가고는 했지. 나중에는 이사 갔는지 안 보이더라.”
“유명해졌겠는데?”
“아주 유명해졌지. 그리고 편해졌고. 뒤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 함부로 입 놀리는 녀석은 없었으니까. 거기다 중간고사에서 전 과목 만점을 받았더니, 선생들도 뭐라고 안 했고.”
그렇게 말하는 승환이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중학생 박승환이 떠올랐다.
감정도, 표정도 없는 얼굴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그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고 있는 박승환의 모습이 떠올랐다.
“뭐, 슬프다거나, 외롭다거나, 힘들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었어. 그날, 초등학교 졸업식 그날 이후 난 빈 껍데기였으니까. 그렇게 지내다가 3학년이 되었고, 그 녀석을 만났어.”
“그 녀석?”
“3학년 올라가 반이 바뀐 첫날,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녀석. 그 녀석이 내 등을 툭툭 치더라고. 1학년 때 뭣도 모르고 시비 걸다 머리가 깨진 놈 이후 내 등을 친 놈은 그 녀석이 처음이었어. 뒤를 돌아보니까 어딘가 모르게 허름한, 그렇지만 다른 애들보다 깔끔한 느낌을 주는 교복을 입은 놈이 씩 웃고 있더라고. 그러더니 그러는 거야. 반갑다고. 자기는 윤경식이라고.”
조금 전까지 남 이야기하듯 하던 승환이의 목소리가 조금 바뀌었다.
“이상한 놈이었어.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그냥 무시했는데, 그런데도 자주 말을 걸어왔어. 대형 지진이 무서운 이유는 땅이 갈라지는 것 때문이 아니라 지반이 액체처럼 출렁이는 액상화 현상 때문이라느니, 방정환이 손병희를 도와 3.1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다가 체포되었다는 등의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는 했어. 그냥 실없는 녀석이라고 치고 무시하려고 해도, 무슨 스킬 시전 하듯 씩 웃고는 공부에 전혀 도움 안 되는 잡지식을 말해주고는 했지. 쓸모없는 이야기였지만, 사실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녀석의 헛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더라고.”
“그 친구였네,”
“뭐가?”
“지금의 박승환을 만든 게. 너의 시그니처잖아. 쓸데는 없지만 흥미로운 잡지식,”
“…그래. 그 녀석에게 영향을 받았지.”
박승환이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는다.
“구룡마을이라고 들어봤지?”
“어. 개론 수업 때.”
내가 말했다.
작년에 개론 수업에서 강남의 유일한 판자촌이었던 구룡마을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레포트를 쓴 적이 있었다.
승환이는 손을 들어 양재천 건너 한 방향을 가리킨다.
“구룡마을이 저기에 있었어. 윤경식 그 자식이 거기 살았고. 할머니하고 단둘이서.”
나는 승환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손가락 끝에는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이 보였다.
“특이한 녀석이었지. 마치, 마음속에 그늘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녀석이었어. 중학교 3학년. 열여섯 살. 판자촌에 산다는 것이 부끄러울 만도 한데, 그 녀석은 가난한 건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자기는 부끄러울 것 없다고, 불편하긴 더럽게 불편하지만 부끄러울 건 없다고 그러면서 씩 웃었어. 난 그게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으로, 속 빈 껍데기가 된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호기심이라는 감정을 느꼈어. 공부도 잘했어. 애초에 머리가 좋은 녀석이었는데, 거기에 책도 많이 읽고, 학원이나 과외 같은 게 안 되니까 수업을 성실하게 들었고. 그래서 그런가 성적도 좋았어. 강남 중학교는 석차가 나와. 물론 불법인데, 강남 엄마들은 아이들의 석차를 궁금해 하거든. 나중에 알았지. 입학하고 내가 계속 전교 1등이었고, 그 녀석이 2등이었더라고. 뭐, 이렇게 저렇게 엮이다 보니까 수행평가도 같이 하고 있고, 점심도 같이 먹고 있고, 집에도 같이 가고 있더라고.”
“처음 사귄 친구였네. 서울 올라와서.”
“그래. 처음 사귄 친구였어.”
승환이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는다.
“언제부턴가 학교를 마치면 그 녀석 집으로 갔어. 그 녀석 집에 가서 할머니가 차려 준 밥을 먹었어. 주말에도, 공휴일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녀석 집에 갔지. 할머니가 가끔 라면을 끓여주실 때가 있었어. 우리 나이 때는 부족하게 먹으면 안 된다시며, 라면 세 개에 계란도 세 개, 거기에 말아먹으라고 고봉밥까지 주셨어. 그걸 다 먹었지. 밥까지 말아서, 국물 한 방울도 안 남기고.”
“잘 했네. 다 먹어야지.”
내가 말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할머니가 먹으라고 뭐 주시면 다 먹어야 한다. 법이 그렇다.
“그렇게 배 터질 때까지 처먹고, 그 녀석 방에 누워서 그 자식이 몰래 꿍쳐둔 책을 봤지. 그 녀석의 무궁무진한 잡지식이 어디서 나오나 했더니, 그 녀석이 할머니가 폐지로 수거해 온 책을 다 읽은 거지. 그 녀석 말로는 컴퓨터가 없으니까 책 말고는 볼 게 없더라고. 아무튼, 책 많이 본다는 소문이 나니까, 마을 사람들도 어디서 책 주워오면 그 녀석 챙겨주고 그랬더라. 그 책 중에 그 녀석이 따로 몇 개 챙겨 둔 게 있었어. 컬렉션이라고 하면서. ‘황홀한 사춘기’ 같은 거. 알아?”
“모를 리가 없지…. 고전 명작인데.”
“서울 애들은 몰라. 컴퓨터로 야동이나 볼 줄 알지, 그런 명작이 있다는 것도 몰라. 아무튼 그 녀석과 책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흥미롭지만 쓸데는 없는 잡지식 배틀을 하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 그렇게 놀다가 10시 쯤, 할머니가 방에 주무시러 들어가실 때쯤에, 집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면, 비현실적인 장면이 펼쳐져 있었어. 구룡마을 주변의 아파트 불빛이, 마치 구룡마을을 포위하고 있는 군대처럼 위압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장면이, 양재대로를 오가는 자동차의 전조등은 어서 빨리 사라지라고, 강남에 당신들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졌어. 너무나도 현실적인 모습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집으로 걸어갔지. 그렇게 그 녀석과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영화를 보면서 몇 달을 보냈어. 그리고 또 다른 그 날이 찾아왔지.”
“또 다른 그 날?”
“행정대집행.”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포동, 구룡마을, 행정대집행, 더 이상의 추가 설명은 필요 없었다.
“심각한 얼굴의 구청 직원들도, 지저분한 문신을 드러낸 용역 깡패들, 흥분한 얼굴에 비열한 욕망을 잔뜩 드러낸 기자들, 이번 기회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겠다는 정치인들, 양쪽에서 서로를 향해 귀가 찢어질 듯 소리를 질러 대는 방송차, 최루탄과 소화기, 붕대를 감은 쇠파이프,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주먹만 한 돌. 마치 지옥 같았어.”
“…거기 갔었던 거야?”
박승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전날 그 녀석이 그랬거든. 자기 학교 못 나올 것 같다고. 개근상을 노렸는데 아깝다고.”
“미친….”
행정대집행이 예고된 날, 승환이와 승환이 친구는 거기에 있었다.
친구는 그곳에 할머니를 두고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박승환은 서울에서 처음 사귄 친구를 두고 올 수 없었고.
용역 깡패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재개발 현장, 중학생이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박승환은 거기로 간 것이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난무하고, 사람들이 다치고, 그걸 찍겠다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그 현장에서 내가 뭘 봤을 것 같아?”
승환이가 물어본다.
예전에 승환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악덕 변호사,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법의 허점도 파고들고, 때에 따라서는 불법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 그런 악덕 변호사.
“…아버지?”
“그리고 장영호.”
박승환이 말한다.
“장영호? 그 장영호?”
“그래. 우리가 아는 그 장영호. 한 손에는 쇠파이프, 다른 한 손에는 메가폰을 들고 용역 깡패들을 독려하는 장영호가 있었어. 그 사람은 장영호 옆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고.”
“…씨발.”
나도 모르게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래. 나도 그렇게 말했어. 그 말밖에 할 수 없었지.”
승환이가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