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 사주(四柱)의 정체
저녁 식사 메뉴는 한정식이었다.
돌솥밥 한정식 식당처럼 테이블 가득 수십 개가 넘는 반찬을 늘어놓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전체-메인-후식으로 이어지는 양식처럼 음식을 먹으면 다음 음식이 나오는 한정식 코스 방식이었다. 강 회장님을 처음 만난 그날, 호텔 센트럴 남산에서 이런 스타일의 한정식을 먹어 본 적이 있었다.
사실 이런 코스요리 방식은 내 스타일은 아니다. 뭐랄까, 순서대로 찔끔찔끔 나오는 방식이 조금 답답하달까?
뭐, 시골에서 흙 파먹던 내가 고급스러운 음식을 많이 못 먹어봐서 그럴 수도 있지만, 역시 밥이라는 것은 그냥 한 상에 다 차려놓고, 누가 가장 빨리 젓가락을 놀리느냐에 따라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배틀로얄 방식이 마음 편하다.
그런데 오늘 이런 스타일의 한정식 코스를 경험해보니, 왜 드라마에서 돈 많고 심각한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는 높은 양반들이 은밀한 한정식집에서 코스를 먹는지 알 것 같았다.
메뉴와 메뉴 사이, 그리 짧지 않은,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그 시간 동안 강우현이 오늘 모임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음식, 설명, 다시 음식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전체적인 긴장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강우현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 모임은 10년 만에 이루어진 전체 사주 모임이라고 했다.
사주는 할아버지를 모시는 4개의 가문을 지칭하는데, 각각 궤(櫃), 인(印), 계(契), 서(書)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궤주, 인주, 철주, 서주라고 불린다고 한다.
강 회장님이 맡고 있는 ‘궤’는 예상대로 함을 의미하는 ‘櫃’였다. 쉽게 말하면 돈과 관련된 모든 일을 관장하는데, ‘돈’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지만, 당연히 단순한 금고지기는 아니고, 할아버지와 네 개의 기둥이 사용하는 예산에 마련, 집행, 결산을 담당한다고 한다. 회사로 따지면 총무, 회계, 감사의 임무를 모두 관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이 모임을 준비하고 마련한 것도 강 회장님의 임무였다는 이야기다.
차기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이현웅 씨가 맡고 있다는 ‘인’은 도장을 의미하는 ‘印’이었고 도장이 의미하는 것처럼 정치와 관련된 일을 관장한다고 했다. 저번에 서현 님이 말해줬던 것처럼 구한말 이전의 왕조가 바로 이 ‘인’을 관장하는 인주(印柱)였었다는 것.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시대를 관통하는 이데올로기가 민주주의로 바뀐 지금 시대에 왕조를 이룬다거나 하지는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이현웅 씨처럼 정치적 영향력을 보유하는 정도에서 현재 인주의 역할이 형성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인주는 다른 4주의 기둥과는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혈연관계로 이어지는 다른 기둥과는 달리 인주(印柱)는 소위 ‘될성부른 떡잎’을 찾아 다음 주재목으로 키운다고 했다. 지금의 인주인 이현웅 씨도 전대 인주로부터 ‘될성부른 떡잎’으로 발탁되었고, 지금의 ‘될성부른 떡잎’이 바로 오늘 처음 만난 고영건이라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인주의 주재목 고영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나보다 8살 연상. 한국대 선배이시고, 재학생 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고 했다. 아무리 소년등과라고 해도, 젊은 나이인데 어떻게 판사가 되셨나 했더니, 법조일원화가 시행되기 이전, 즉 사법연수원 성적만으로 판사임용이 되던 그 당시에 막차로 판사에 임용되었다는 이야기다. 법조계의 마지막 성골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유 선생님은 책 서(書)를 의미하는 서주(書柱)셨다. 배움과 가르침의 영역이라고.
뭐, 유 선생님이시라면 당연히 그쪽일 수밖에 없겠지. 갑자기 ‘무력 담당’입니다, 그러면 너무 안 어울리시잖아.
유 선생님의 뒤를 이을 주재목은 유 선생님의 자제분이시라고 했다. 현재 미국에서 국제외교 관계를 공부하고 있는데, 사주 모임 개최가 결정되고, 날짜가 확정되자, 그 날짜에 맞춰 귀국하려고 했단다. 할아버지가 그럴 필요 없다고, 쓸데없이 미국에 있는 사람까지 불러들일 필요 없다고 했고, 그렇게 할아버지의 허락이 있었기에 오늘 불참한 것이라고.
미국에서 공부한다고 하니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겠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친하다고 할 사람 중에서 미국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쩌면 오늘 박기준 변호사님, 승환이 아버님.
계를 담당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경계를 의미하는 계(界)가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언약이나 약속, 계약이라는 단어에 사용되는 계(契)였다.
계주(契柱)의 역할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강우현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주요 임무를 꼽으라면 정보를 다루는 것이라고,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고, 그렇게 분석한 정보를 활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어떻게 활용하냐고? 강우현은 여론조작을 예로 들어주었다.
승환이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합법과 불법의 영역에서 수단과 영역을 가리지 않는 단순한 악당 변호사가 아니시라는 이야기였다. 온 나라의 정보를 쥐고 흔드는 그런 대악당이시라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승환이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리고 승환이 녀석이 자기 아버지의 숨겨진 정체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알고 있었다면, 저렇게 티 나게 얼굴에 경악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
식사는 맛있었다. 아니, 훌륭했다.
하지만 훌륭한 음식의 퀄리티가 즐거운 저녁 식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뭐 당연한 이야기다. 밥을 먹으면서 들은 강우현의 설명은,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비현실적인 이야기였고, 여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야기였으니까.
뭐 그렇다고 또 아주 불편한 저녁 식사였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게, 음식은 또 너무 맛있으니까, 마음은 불편한데, 혀는 즐거운?
종합하자면, 무언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허기는 지는데,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마음까지는 안 들고, 그렇다고 단순히 영양공급 측면에서 깨작거리기에는 또 음식이 너무 맛있고, 그런 음식에 집중하기에는 테이블 위를 오가는 이야기가 너무 무겁고, 그래서 식욕이 감쇄되기에는 음식은 너무도 훌륭한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오늘 저녁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아무튼, 시간은 흘러갔고, 식사는 계속되었고, 과연 끝이 있기는 싶을까 의심되는 긴 한정식 코스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느낌상 후식만 남은 것 같았다.
이미 배도 충분히 찼고, 아니, 이미 저장용량은 오버된 상태이고, 꼭 후식까지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이쯤에서 ‘후식은 괜찮습니다’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도 크게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 너머에서 아름다운, 단순히 아름답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고, 무언가 기품이 느껴지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우현이 날 바라본다. 허락을 구한다는 의미로.
내가 고개를 끄덕였고, 강우현이 들어오셔도 된다고 답했다.
아. 진짜 적응 안 된다. 불편하다. 불편하고도 불편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바라보는데, 열린 문으로 여성분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까 그분. 서재에서 할아버지와 우리에게 차를 우려 주셨던 그 아름다운 여성분이 안으로 걸어 들어오신다.
저분께서 왜?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바로 정답이 떠올랐다.
지금 이 타이밍의 등장이라면? 이유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요리연구가 신소현 선생님이십니다. 오늘 식사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강우현이 그렇게 여성분을 소개했다.
“신소현입니다.”
요리연구가 선생님이 그렇게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신다.
물론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준비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선생님을 향해 마주 고개를 숙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한수입니다. 맛있는 저녁을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에 맞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식사였습니다.”
빈말이 아니고 진짜로 훌륭했다.
내가 한정식의 깊고 오묘한 세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오늘 저녁은 훌륭하다는 것 정도는 알아챌 수 있다. 아니,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단지 맛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음식도 예술의 한 영역이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할까? 요리의 이응도, 예술의 이응도 모르는 내가 느낄 정도면, 훌륭했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정도이다.
“부족한 솜씨입니다만 열심히 준비했는데, 작은 어르신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영광입니다. 그럼 후식을 들여도 괜찮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아니요. 후식은 괜찮습니다’라고 말 할 수 있겠어?
“네. 감사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선생님이 작게 미소 지은 후 말씀하셨다.
“소화에 도움이 되는 매실차와 다식(茶食: 차에 곁들이는 후식)을 준비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후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와 우리 앞에 내려놓았다.
후식이 담긴 접시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찻잔 옆에 곱게 놓여있는 다식은 예술작품이라고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듯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흑임자에 콩가루와 꿀을 넣어 차 우려낸 물로 빚었습니다. 틀을 사용하는 대신 직접 손으로 문양을 그려냈습니다.”
선생님이 설명해 주신다.
어디선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우리의 한과, 특히 차에 곁들여 먹는 전통 다식(茶食)은 반죽을 틀에 찍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리 다식만의 독특한 색감이나 개성 있는 형태를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고. 그래서 국제적으로 일본의 화과자(和菓子)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세계에 우리 고유의 과자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 국제적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한과도 일본의 화과자처럼 시각적인 화려함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그런 주장을 담은 글이었다.
어디서 봤는지, 누가 쓴 글이었는지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 글을 쓴 저자가 지금 내 눈앞에 놓인 다식을 보았다면 역시 자신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런지도.
나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찻잔이 입에 닿기도 전에, 매실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찻잔이 입술에 닿고, 매실 특유의 상큼한 산미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바로 깊고 그윽한 단맛으로 그 형태를 바꾼다. 그런 달콤함이 채 전해지기도 전에, 개운한 산미와 달콤한 단맛이 조화를 이루며, 무어라고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청량함으로 바뀐다.
나도 모르게 찻잔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매실차? 이렇게 매력적인 청량함을 내포하고 있는 이 액체를 단순하게 매실차라는 이름으로 규정해도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찻잔을 바라보다, 세공된 보석 같은 느낌을 주는 다식에 시선을 주었다.
감히 내가 손대도 될까 싶은 다식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고, 그런 날 지켜보는 선생님에게 작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한 다음 입으로 가져갔다.
깊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깊고 고급스러운 단맛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깊은 단맛을 음미하면서.
어쩌면 이분과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예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