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 성소(聖所)
예상대로였다.
담벼락, 아니, 성벽 뒤로는 지배계층에게만 허락된 향락과 사치가 펼쳐져 있었다.
넓은 정원, 가정집 정원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정원!
이렇게 넓으니까 담벼락이 끝도 없지!
넓은 정원에 마법진이라도 그려 넣으려는지 여기저기 참 많이도 심겨 있는 정원수(庭園樹). 조경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내 눈에도 ‘엄청 비싸 보이는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고급 정원수.
정원수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저기, 저거는 뭐야? 수영장?
아니, 수영장이라고 하기에는 좀 작다.
설마 자쿠지(Jacuzzi)?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그 자쿠지?
성북구 성북동이 아니고, 캘리포니아 성북 카운티야? 왜 정원에 자쿠지가 있는데!
아니, 뭐 그래. 자쿠지 좋다 이거다. 문제는 저 건물이다.
집이라기보다는 작은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3층 건물이 마치 작은 성처럼 넓은 정원을 품고 있다.
높은 성벽, 거대한 정원, 비싼 정원수, 한쪽의 자쿠지, 미술관 같은 집.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초고급 저택이라는 말이다.
강우현을 따라 현관으로 들어섰는데, 현관문 너머에서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일반 가정집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현관이었다. 현관일 뿐인데 내가 살던 하숙방보다 크다면 반칙 아닐까?
딱 봐도 명품구두 뿐인 현관에 비루한 내 나이키를 벗어두고, 안으로 들어가니, 더 말 안 되는 크기의 거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풋살은 무리여도 족구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의 거실. 떨어지면 사람 둘 셋은 그대로 저세상 보낼 것 같은 크기의 샹들리에, 샹들리에 밑에 놓여 있는 커다란 테이블.
고급 레스토랑 종업원 같은 복장을 차려입은 남녀들이 테이블을 세팅하고 있다.
“이쪽입니다.”
하지만 강우현은 내가 거실을 관찰하게 두지 않았다.
나를 인도하는 강우현 님께서는 계단을 통해 3층까지 오르시고도 부족하신지, 복도를 따라 한참을 걸어 어떤 문 앞에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작은 어르신을 모시고 왔습니다.”
강우현이 그렇게 말했고.
“모시어라.”
안에서 대답이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
문이 열리고 내부가 보였다.
마치, 이 공간은 서재입니다, 라고 강조하듯, 사방이 책으로 가득 들어찬 서재가 눈에 들어왔고, 책들을 배경으로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의 주인인 강민철 회장님이 서 계셨다.
물론 강 회장님만 계신 것은 아니었다.
소위 상석(上席)이라고 불리는 포지션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내가 잘 아는 사람. 강 회장님보다 더 잘 아는 사람.
우리 할아버지였다.
***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강 회장님은 언제나 그러하시듯,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그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숙이셨다.
그러실 줄 알았죠!
나도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그렇게 허리를 굽힌 채로 재빨리 분석해 보았다.
성북동의 고급주택, 나를 맞이한 강우현은 나를 서재로 안내했고, 서재에는 강 회장님이 계신다.
모든 단서가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강 회장님의 자택. 여기는 강 회장님 자택이라고.
내 기준으로는 너무 화려하다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회장님의 품격을 생각한다면 뭐….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곳이 강 회장님의 저택이라는 이야기는 바로 이곳이 우리 서현 님의 본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왜 서현 님이 그러셨잖아. 나하고 같이 동…. 같이 살기 전에는 할아버지하고 같이 살았다고.
그렇다면?
여기! 이 집! 어딘가에 서현 님만의 공간이 있다는 이야기고!
그 방 어딘가에는 사춘기 소녀 강서현의 추억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교복이라든가, 뭐 교복이라든가, 그 교복이라든가….
그건 그렇고, 그렇다면 왜 우리 할아버지가 여기에 계시는 걸까?
“왔느냐.”
할아버지가 날 보며 말씀하신다.
“…네.”
나는 단답으로 응수하고.
뭐, 따지면 지금 이 공간에서 가장 큰 어른은 우리 할아버지일 것이다. 나이도 그렇고, 뭐 어르신이라고 하니까.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에게 회장님에게 하듯 깊게 허리 숙여 인사하지 않는다.
왜냐! 나와 할아버지 사이에 그런 닭살 돋는 전개는 있을 수가 없다.
만약에 내가 그랬다고 해보자. 깊게 허리를 굽히고, ‘할아버님. 불민한 손자가 할아버님을 뵈옵나이다’ 뭐 이런 식으로 대사를 쳐봤다고 해보자.
할아버지는 어떻게 반응할까?
의심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겠지.
‘너 무슨 사고 쳤냐?’
아무튼, 어르신이고 그런 거 난 모르겠고, 나는 친손자 자격으로 할아버지를 대하겠다. 친근하게, 예의 없이.
그리고 그런 마음의 연장 선상에서 나는 의심을 가득 담긴 눈빛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느냐?”
내 눈빛을 읽은 할아버지가 묻는다.
할 말? 있죠.
‘할아버지. 도대체 지금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계신 거예요? 아니. 우선. 서울에 올라오실 거면 말씀을 하고 올라오시던가. 손자도 그 사회생활이라는 걸 해야 하는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올라와서 당장 달려와라! 그러시면 손자가 곤란할 거라는 생각은 못 해보셨습니까? 아니, 그리고 왜 여기 계신 건데요? 올라오셨으면 손자에게 오시던가, 그게 불편하면, 따로 숙소를 잡으시던가 하시지, 왜 여기 계시는데요? 아무리 강 회장님이 스스로 종복이라고 칭하신다고 해도, 그렇게 이렇게 남의 집에서 민폐 끼치는 건 예의가 아니죠. 나중에 사돈이라도 되면 얼마나 미안해하시려고 그러시는 건데요.’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일단 참았다.
단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장님, 강우현도 있는 상황이고.
“아니요.”
할아버지의 체면도 그렇고, 내 목숨도 소중하고. 뭐 겸사겸사.
“그건 그렇고 언제 오셨어요? 오신다는 말씀도 없이.”
나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내 질문에 대답한 것은 회장님이셨다.
“어르신께서는 그제 오셨습니다.”
아. 그제부터? 회장님께 폐를 끼쳤다?
“내가 서울 올 때, 너의 허락이 필요하더냐?”
할아버지의 말.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아니면?”
아니, 이 양반이 오늘 왜 이래? 사춘기 막 접어든 여중생처럼 오늘 왜 이렇게 까칠해?
“아니. 뭐. 손자가 서울에 있는데, 왜 손자 집 놔두고 남의 집에서 머무시냐 그런 이야기죠. 다른 분들 불편하게.”
정확히 말하면 내 집은 아니지만, 등기와 소유권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뒤로 미뤄두고, 실질적인 점유자는 서현 님과 나니까, 어거지로 가져다 붙이면 내 집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어거지로 갖다 붙이면.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뭐 할아버지와 같은 방에서 자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서너 살 꼬꼬마도 아니고, 할아버지, 할머니랑 헤어지기 싫다고 울며불며 바닥을 뒹구는 사랑스러운 손주도 아니고. 당연히 할아버지와는 불가근불가원의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왜 저런 이야기를 했냐고?
명분이 필요했으니까.
나는 오늘 사춘기 여중생처럼 까칠한 할아버지를 디스하겠다고 마음먹었고, 디스를 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이거다.
일단, 할아버지와 나는 이 세상에서 단둘뿐인 혈육이다.
당연히 할아버지가 서울에 오면 손자를 찾아오는 것이 우선이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서 손자 집에 머물지 못했을 경우에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정석이건만,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강 회장님의 집에 머물렀네? 할아버지가 잘못했네?
뭐 이런 명분.
“너의 집 말이냐?”
할아버지가 묻는다.
“뭐. 그렇죠?”
“너의 집이더냐?”
뜨끔.
허. 바로 정곡을 찔러오네.
아무튼 공격할 때 있어서는 자비가 없는 양반이라니까.
하지만 마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
“저의 소유는 아니지만, 설마, 제 이름으로 등기가 안 되어 있으니 불편해서 찾아오지 못하겠다는 말씀은 아니시죠?”
내 반격에 할아버지가 ‘호오. 이놈 봐라’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좋아. 일단 받아는 쳤다.
“네 방에 날 머물게 해주겠다는 그 말이렷다?”
“그렇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함에도?”
밀리면 안 된다.
“아닌데요? 나는 하나도 안 불편한데요? 난 할아버지와 지내는 거 너무 좋은데요?”
무리수. 무리수다. 나중에 손해로 이어질 수 있는 무리수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일단 이번 싸움에서 이기는 게 중요하니까, 일단 질러버려!
쓰읍. 이거 말조심해야 하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 그랬는데.
“여전히 말귀를 못 알아먹는구나.”
할아버지의 말이다.
응?
“내가 불편하단 말이다. 네 녀석이랑 같은 방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구나.”
오호. 그렇게 나오시겠다?
“아니. 할아버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좀 섭섭한데요. 그래도 하나뿐인 손자인데…. 그리고 그렇게 불편하시면 방을 내어 드리면 되죠. 나는 거실에서 자면 되는데.”
내가 거실 소파에 누워 처량하게…. ‘처량하게’라고 묘사하기에 우리 거실 소파는 너무 고급인데?
아무튼, 소파에 누워 있으면, 우리 마음 착한 서현 님이 ‘작은 어르신 이런 데서 주무시면 감기 걸려요. 제 방에서 주무세요. 제가 거실에서 잘께요.’ 그러면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 어떻게 서현 님을 거실에서….’ 그러면서 투닥투닥 하다가 결국은 같이 서현 님 방으로 들어가는 합의점을 찾아….
“너의 무리한 주장을 최대한 반영한다고 해도, 불편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구나.”
나의 행복한 상상이 할아버지의 말에 끊긴다.
아오. 눈치 없이. 진짜.
“뭐가 또 불편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내 집을 두고, 내가 왜 너의 방에서 자야 한다는 말이냐?”
할아버지의 말이다.
응? 내 집? 할아버지의 집?
나는 말 없이 할아버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당신의 집을 두고, 왜 내 방에서 자냐고?
그게 무슨 말이야?
할아버지 집? 고향 집? 30년 되어서 여기저기 삐그덕 거리는 우리 고향 집?
그 집이 갑자기 여기서 왜 나와?
서울에 왔을 때, 어디서 머무느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향 집 이야기가 왜 나오는데?
그렇게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우리 두 사람의 논쟁을 지켜만 보던 회장님이 말씀하신다.
“이곳 또한 성소(聖所)입니다.”
***
성소(聖所). 풀어쓰면 성스러운 장소라는 의미이다.
자. 그럼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풀어보자.
회장님은 ‘성소’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내가 판단했던 것처럼 성북동의 이 초초초고급 저택이 강 회장님의 자택이라고 하면 논리적인 오류가 발생한다.
자신의 집을 성소라고 칭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아니, 뭐, 억지로 가져다 붙이면 말이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긴 하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라든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스스로 얼굴에 금칠을 하는 사람이라면 말이지.
그럼 강 회장님이 그런 사람일까?
아닌데? 아니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초호화저택은 강 회장님의 거처가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오케이. 다음 논리로 넘어가 보자.
성소. 내가 이 단어를 오늘 처음 들어본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들어보았다.
허름한 우리 고향 집을 강 회장님이 성소라고 불렀더랬지.
그럼 여기서 전제 하나를 끌어낼 수 있다.
할아버지가 머무는 곳을 회장님은 성소, 성스러운 장소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금 이곳을 성소라고 불렀다.
자. 3단논법으로 정리해보자.
대전제 : 강 회장님은 할아버지가 사는 곳을 성소라고 부른다.
소전제 : 강 회장님은 성북동의 이 초호화저택을 성소라고 불렀다.
결론 : 이 초호화 저택은 할아버지의 거처이다.
북악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비싼 정원수가 심어진 정원에는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자쿠지가 설치되어 있고, 그 자쿠지에 몸을 담근 채 은은히 들려오는 길상사의 범종 소리를 들으며 샴페인을 한잔할 수 있는 여기가 할아버지의 집이라고?
“할아버지의 집이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맞습니다. 어르신께서 머무시는 성소입니다.”
강 회장님이 확실히 못을 박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