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241번 게이트 앞 (2)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제이슨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하긴,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누가 시간이 멈추는 경험을 해봤겠냐.
나도 뭐 처음에는 저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렸겠지?
하지만 자신하건대, 저런 멍청한 표정은 아니었을 거야.
“뭐긴 뭐야. 긴급출국 금지지.”
내가 말했다.
그제야 제이슨이 나를 돌아보았다.
멍청한 얼굴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저렇게 입까지 반쯤 벌리고 있으니, 평소보다 더 멍청해 보인다.
“…뭐. 뭐. 뭐라고?”
제이슨이 그렇게 떠듬거린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그 녀석에게 걸어갔다.
대략 다섯 발자국? 그 정도 거리에서 발을 멈추고 말했다.
“긴급출국 금지. 출입국관리법 제4조의 6. 수사기관은 범죄 피의자로서 수형, 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할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으며 긴급한 필요가 있는 때에는 제 4조 제3항에도 불구하고 출국심사를 하는 출입국관리공무원에게 출국 금지를 요청할 수 있다.”
내가 그렇게 출입국관리법 조문을 읊어주었다.
물론 멍청한 제이슨은 여전히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나.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둘, 피의자가 도망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는 때.”
우리 제이슨은 여전히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입을 달달 떠는 것을 보니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다.
“그. 그게. 무슨….”
하지만 들을 필요 없다. 개소리일 테니까.
“수사기관은 제1항에 따라 긴급출국 금지를 요청한 때로부터 6시간 이내에 법무부 장관에게 긴급출국 금지 승인을 요청하여야 한다.”
내가 그렇게 제이슨의 말을 잘랐다.
제이슨은 그저 입을 떡 벌리고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지?”
내가 물었다.
제이슨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서는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늦게나마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 부끄러움을 분노라는 감정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경찰이 출국 금지신청을 했다 이 말이지. 너 미국으로 도망가지 말라고.”
제이슨의 얼굴이 더 일그러진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제이슨이 소리친다.
제 딴에는 최대한 위협적으로 보이고 싶었나 본데, 내가 보기에는 성질 더러운 소형견이 겁나니까 오히려 소리 높여 짖어대는 것처럼 보인다.
“알았거든.”
“뭐. 뭐를!”
“도망가려 한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제이슨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내가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자, 제이슨이 재빨리 두 걸음 물러난다.
새끼. 쫄기는.
“항공사와 법무부 출입국 관리 데이터베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너의 이름으로 항공권이 예약되면 바로 알 수 있도록. 사실 내가 한 건 아니라서 나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어. 아무튼, 그렇게 감시하고 있는데 오늘 너의 이름으로 예약이 딱 하나 뜬 거지. 그게 일종의 증거가 된다고 하더라. 아무튼 탑승자 명단에 너의 이름이 딱 뜨니까 경찰에서는 아, 이 녀석이 도망치려 하는구나. 하면서 재빨리 출국 금지신청을 한 거다. 이거지.”
다시 한 발 앞으로, 제이슨은 주춤주춤 세 걸음 뒤로.
“뭐 사실 꼼수를 쓰기는 했어. 사실 너에게 씌워진 혐의는 특수상해거든.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출국 금지를 신청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닌데, 그냥 도망가 버리면 내가 또 슬퍼할 것 같으니까 우리 변호사님께서 장난을 좀 치셨다고 하더라고. 고소장에는 살인미수도 포함했다고 하시더라. 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마 살인미수는 인정을 못 받을 거래. 그냥 널 최대한 괴롭히기 위해 집어넣은 거라고 했으니까.”
다시 한 발 앞으로.
본능적으로 제이슨은 다시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그 녀석의 발을 묶어버렸으니까.
“술래잡기하는 것도 아니고, 자꾸 그렇게 도망가면 어떻게 하냐. 서로 피곤하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제이슨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다. 다가오지 마!”
제이슨은 꿈쩍도 못 한 채, 제자리에서 손을 휘젓고만 있다.
그 모습이 한심하다 못해 처량해 보인다.
이런 놈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다니. 내가 불쌍해지려 한다.
“기왕 이야기를 시작했으니까 마저 설명해줄게. 내가 아까 감시하고 있었다고 그랬지? 사실은 네가 항공사 카운터에서 발권했을 때, 사실 그때부터 아예 면세구역으로 못 들어가게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안 하고 일단 들여보냈다고 하더라고. 일단 면세구역에 잡아놓으면 어디 도망도 못 가고, 또, 출국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가 안 되면 더 슬퍼할 것 같아서 그랬다더라. 우리 편이지만 참 독한 사람들이다.”
“다가오지 마!”
제이슨은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마구 소리 지르고 있다.
닥치라고 하면 닥칠까?
귀찮으니, 일단 입도 봉하자.
나는 그렇게 제이슨의 입과 손도 봉해 버렸다.
제이슨 저 자식이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눈동자뿐이었다.
“야. 나도 바빠. 나 지금 이사하다가 온 거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사는 다 끝났고, 짜장면 먹으려는 타이밍에 나도 전화 받고 급하게 온 거야. 다 불어터지기 전에 후딱 가서 먹어야 되지 않겠냐? 그러니까 우리 빨리 끝내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제이슨 앞에 멈추었다.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제이슨을 구속하는 힘이 풀렸다.
제이슨이 그 자리에서 휘청거린다.
“자. 자세 잡아라. 정정당당하게 하자.”
“그. 그게 무슨 말….”
“무슨 말은. 일대일 다이다이지. 다 알면서. 빨리 자세 잡아. 도망가면 묶어놓고 팬다.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제이슨이 주춤주춤 자세를 잡는다.
나는 그렇게 어설픈 자세를 잡는 제이슨에게 몸을 날렸다.
***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부르는 내 별명이 ‘한수키’였다.
시베리안 허스키에서 따온 건데, 내 이름 한수와 시베리안 허스키의 허스키가 적절하게 들어맞아서 그렇다고 하는 건 표면적인 이유고….
뭐, 쉽게 말해 개라는 이야기지.
무엇보다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평소에는 얌전히 있다가 한번 핀트가 나가면 아주 제대로 지랄을 해서 그렇다고 하더라.
시베리아허스키가 그렇단다.
늑대처럼 생긴 외형과는 달리 시베리아허스키는 성격이 유순한 품종인데, 한번 돌아버리면 아주 끝을 본다고.
뭐,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친구 놈들이 나를 한수키라고 불렀지.
나는 오랜만에,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이후 처음으로 한수키 모드로 들어갔다.
가볍게 주먹을 쥐고, 어설프게 자세를 잡고 있는 제이슨의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일단 간장부터. 복싱의 리버 블로우(Liver blow)기술이다.
자세를 낮춰 파고들어, 몸을 왼쪽으로 기울이고, 훅과 어퍼컷 중간 정도의 각도로 간장이 있는 위치를 올려 치는 기술.
마음 같아서는 일단 명존쎄부터 시전하고 싶은데, 그건 마지막까지 좀 아껴주고.
내 왼쪽 주먹이 정확히 제이슨의 간장 부위를 파고든다. 내 주먹에 녀석의 허약한 측면 가슴근육이 출렁인다.
아차. 너무 쎘나?
아직 패야 할 데가 많은데, 벌써 갈비뼈가 부러지면 안 되는데?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내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녀석의 오른쪽 옆구리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어디냐면, 소위 말하는 트렁크 라인.
제대로 맞으면 콩팥에 제대로 충격을 줄 수 있고, 꼬추에서 붉은 피오줌이 쏟아져 나오는 바로 그곳.
둔탁한 타격음이 녀석의 옆구리에서 터져 나온다.
이건 확실히 제대로 들어갔다.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아빠 엄마 없다고 놀린 놈들에게 한방씩 선물해준 펀치다. 빗나갈 리가 없지.
애석하게도 우리 허약한 제이슨은 그 자리에서 허물어진다.
이제 시작인데, 그렇게 허물어지면 안 되용.
나는 재빨리 허리를 비틀었다.
반동을 이용한 낮은 각도의 숏 훅(Short Hook).
내 왼쪽 주먹이 허물어져 내리는 제이슨의 옆얼굴에 제대로 들어간다.
어금니 두세 개는 부러졌다는 느낌이 주먹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제이슨은 끼에엑 하는 비명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그 녀석, 참말로. 비명 소리마저 추잡스럽네.
이제 고작 세 방밖에 안 되는데, 저렇게 나가떨어지는 건 너무 하잖아.
나는 천천히 제이슨에게로 다가갔다.
“일어나.”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제이슨은 그저 엎어져서 신음 소리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자식 뺑끼 부리고 있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나는 오른발로 그 녀석의 옆구리를 차버렸다. 발끝을 세워서.
제이슨의 몸이 옆으로 구른다.
“그러고 있으면 계속 찬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제이슨이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거 봐, 일어날 수 있잖아.
근성이 있으면 다 할 수 있다니까.
나는 그렇게 녀석이 자세를 잡기도 전에 다시 앞으로 몸을 날렸다.
이번에는 코부터.
***
패고, 자빠지면 일으키고, 좀 심하게 다쳤다 싶으면 치료하고, 다시 일으켜서 패고, 나중에는 아예 묶어놓고 패고 해서 한 20분을 신나게 때렸다.
열심히 때렸더니 주먹이 아프다. 퉁퉁 부어있다.
병원? 필요 없어. 나는 신력으로 주먹을 치료했다.
부풀어있던 주먹이 천천히 아물어간다.
좋네. 이거 있으니 탱, 딜, 힐 다할 수 있고. 아주 만능이야.
제이슨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그래. 나도 인정한다.
내가 좀 과하게 손을 쓰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일단 최대한 죽기 직전까지 패주고 싶은 내 마음이 첫 번째 이유이고, 지연이와 친구들을 위해서가 두 번째 이유이다.
이런 놈들은 한 번 손을 볼 때 확실하게 봐야 한다. 어설프게 손대면 오히려 앙심만 품는다.
앙심 같은 건 품지도 못하게, TV에서 지연이 비슷하게 생긴 사람만 봐도 거품을 물고 기절할 정도로 확실하게 손을 봐놓아야 한다.
그래도 좀 과했나?
아니야. 이 자식 때문에 내가 그동안 마음고생 한 게 얼만데. 이 정도는 패줘야지.
뭐, 이 정도 팼으면, 이제 더 이상 기어오르지 않겠지?
뭐 기어 올라와도 상관없다. 그때는 진짜로 지옥 보내버리면 되니까.
마무리 해야 되겠다. 배가 고프네. 얼른 짜장면 먹으러 가야겠다.
“이제 끝내자. 앉아봐.”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제이슨은 그저 헐떡이고만 있다. 눈물, 콧물, 피에, 오줌까지 쌌네. 이 자식.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까?”
내 말에, 제이슨의 고개가 천천히 좌우로 움직인다.
“앉아봐. 쭈그린 자세로.”
내가 그렇게 말하자 제이슨이 몸을 움직인다.
“그래. 그렇게. 옳지. 잘한다. 그래. 그렇게.”
나는 몸을 일으키는 제이슨을 열심히 응원하면서 자세를 잡아 주었다.
그리고 결국 그 자세를 만들었다.
어떤 자세?
내가 팔이 부러지던 그때 그 자세.
“자. 팔 올려. 지금부터 내가 이걸로 널 때릴 건데, 잘 막아야 해. 잘못하면 두개골 깨진다.”
나는 그렇게 하며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오른손에 내가 원한 대로 각목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특별히 그때 그 각목을 똑같이 구현했다.
신력 있으니 이거 너무 편한데?
“자. 마지막 이거 하고 끝내자. 팔 잘 들어. 진짜. 조심해야 해.”
제이슨은 엉엉 울고 있다.
엉엉 울면서 두 팔을 들어 올린다.
살려달라거나 용서해달라거나 그런 이야기는 안 한다.
이미 다 해봤고, 내가 용서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나는 그런 제이슨을 보고 각목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있는 힘껏 그 녀석의 팔을 향해 내려쳤다.
***
“어디 갔다 와?”
탕수육 비닐을 벗기고 있던 박찬희가 물어본다.
“화장실.”
내가 말했다.
“더러운 녀석.”
이중훈이 이때다 싶은지 날 비난한다.
“야. 손 씻고 왔어. 밥 먹기 전에 손 씻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내가 더러워, 네가 더러워?”
나는 그렇게 중훈이에게 카운터를 먹이고는 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역시 이삿날에는 짜장면이지.
내가 친구들의 시선에서 사라진 시간은 고작 몇 분에 불과하다.
물론 실제로 시간 멈추고, 공항으로 순간 이동해서 제이슨 후드려 패고, 다시 치료하고, 그 자식이 울고불고 오줌 싸고 한 거 정리한 시간까지 합치면 30분은 훌쩍 넘었지만, 뭐 그사이에 시간은 멈춰 있었으니, 친구 놈들은 고작 몇 분 정도로밖에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제이슨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론, 그렇게 두들겨 맞은 상태로 둘 수는 없잖아.
조금 전까지, 날카롭게 욕설을 내뱉던 사람이 갑자기 비 오는 날 먼지 날 때까지 두들겨 맞은 모습으로 바뀌면 안 될 거 아냐.
CCTV도 있는데 큰일 나지.
그래서 살짝 조작을 해 놓고 왔다.
일단 두들겨 맞은 흔적은 전부 지웠다.
뭐, 기억에 남아있으니 괜찮겠지. 그리고 시간이 멈춘 그 순간에 제이슨이 서 있던 자리로 고대로 옮긴 다음, 시간이 움직이는 순간에 그 자리에서 졸도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사람들은 아마도 제이슨이 제 성질에 못 이겨 발작했다는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아. 그리고 대부분의 상처는 치료했지만, 부러진 팔은 그대로 두었다.
외상도 아니고, 나중에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뭐,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설사 제이슨이 ‘공항에서 갑자기 시간이 멈추었고, 한수 그 녀석이 짠하고 나타나서 손에서 각목을 뽑아낸 다음에 날 내리쳤어요!’ 그렇게 말한다 해도 상관없다.
감옥 대신 정신병원에 가려나?
아무튼, 항공권이 막힌 제이슨은 공항 경찰이 알아서 잘 모실 것이다.
뭐, 응급실을 먼저 가려나?
쓸데없는 생각 말고 짜장면이나 먹자.
그렇게 열심히 짜장면을 비비는데, 박승환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왜?”
내가 물었다.
“신나 보여서.”
“고귀한 노동 후에 짜장면인데, 어찌 신나지 않을 소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열심히 짜장면을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