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01화 (101/271)

101 : 호랑이 굴에서 (2)

전화벨 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려 퍼지고 있지만, 장영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앉은 자세 그대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기 딴에는 눈에 힘을 줘서 위협적으로 노려보려고 하는 것 같지만, 눈동자는 거침없이 흔들리고 있다.

그 눈을 마주 바라보면서 박승환이 말했다.

“뭐 안 받아도 상관없어요. 책임질 수 있다면.”

장영호는 잠시 박승환을 노려보다가 몸을 일으켜, 책상으로 다가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수화기를 얼굴로 가져간 그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바뀐다.

분노에서 놀라움으로, 놀라움에서 두려움으로.

그리고는 두려움 담긴 시선으로 박승환을 바라본다.

나는 장영호의 그런 표정을 보면서 다시 생각했다.

고작, 저 정도의 인간이었다.

저 정도의 인간이 나를 폭행하고, 윤기훈의 인생을 나락으로 밀어버리려 했다.

한동안 아무런 말 없이 수화기를 들고 있던 장영호가 꺼낸 말은 단 한 마디뿐이었다.

“…알겠습니다.”

누가 전화를 걸어왔는지 나는 모른다. 박승환 쪽에서 걸어온 전화였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먹혔다는 것. 그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장영호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박승환을 바라보다가 소파로 다가와 앉았다.

“…박 변호사님 자제분이셨군요.”

장영호가 박승환을 보며 말한다.

진짜 박승환 말마따나 승환이 아버님이 밤의 대통령 같은 그런 분이 맞는 건가?

장영호는 잠시 박승환을 노려보더니 협탁 위에 놓인 담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모습을 보고 박승환이 말했다.

“끄세요.”

그 말을 들은 장영호가 박승환을 바라보았다. 아니, 노려보았다.

바로 조금 전 두려운 시선으로 박승환을 바라보았다는 것을 잊어먹기라도 한 듯, 강한 시선으로 박승환을 노려보았다.

물론 그렇다고 쫄 박승환은 아니지.

자신을 노려보는 장영호를 마주 바라보며 박승환은 나직하게 말했다.

“끄라고.”

두 사람의 대치는 계속되었다.

장영호의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말고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먼저 꼬리를 만 것은 장영호였다.

장영호는 협탁 위에 놓인 재떨이, 이미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있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그 동작은 느릿느릿했다. 마치, 강요 때문이 아니라는 듯, 아직 여유가 남아있다고 어필하려는 듯, 하지만, 기세에서 밀렸음은 장영호를 포함해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장영호를 보면서 박승환이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간접흡연이 직접 흡연보다 더 나쁘다는 이야기 못 들어보셨어요? 밀폐된 공간에서 간접흡연은 예의가 아니죠. 참 아실만한 분이.”

명백한 도발이었지만, 장영호는 그저 어금니를 꽉 깨물 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화를 식히려는지,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장영호가 다시 입을 연 것은 몇 분이 지난 후였다.

“어떻게 해…주면 되겠습니까?”

장영호의 질문은 박승환을 향하고 있었다.

박승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시선으로 나를 가리켰다.

이 녀석이 이야기할 거야.

그런 시선이었다.

장영호의 시선이 나에게로 움직인다.

그렇게 옮겨오는 시선이 점점 날카로워진다.

마치, 어쩔 수 없이 박승환에게는 꼬리를 말았지만, 나에게는 아직 꼬리를 치켜들었다고 시위라도 하는 듯.

나도 박승환처럼 해볼까? 눈깔아. 이렇게?

“경찰에 출도, 아까 말했던 것처럼 증언. 그렇게.”

장영호는 날 노려본다.

‘다시 한번 말해봐.’ 그런 눈빛이다.

못할 것 같아?

“그리고 증거도 준비해주세요. 아이테크건설로부터 돈 받은 계좌 내역, 통화 내역, 문자 메시지 있으면 그것도 따로 준비해주시고.”

장영호의 시선이 승환이에게로 움직인다.

승환이는 그런 장영호에게 고개를 저어준다.

나랑 이야기하라는 의미다.

장영호가 다시 날 바라본다. 노려본다.

그렇게 노려보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보상을 하도록 하지.”

장영호가 말했다.

나에게는 계속 반말하네,

“보상?”

내가 물었다.

“치료비와 피해보상금, 섭섭하지 않게.”

그렇게 말한다.

궁금하네.

과연 이 인간이 말한 ‘섭섭하지 않다’는 금액이 얼마일까?

“섭섭하지 않은 정도가 얼마입니까?”

궁금하면 물어봐야지.

내 질문에 장영호의 눈꼬리가 올라간다.

“…한 장.”

한 장? 설마 1억은 아니겠지?

“천만 원?”

내가 물었고, 장영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천만 원?

고작 천만 원으로 넘어가자고? 1억을 준다고 해도 꺼지라고 할 참인데, 고작 천만 원?

옆을 보니 박승환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다.

“오천오백.”

내가 말했다.

장영호의 눈이 커진다.

“합의금은 오천오백만 원. 그러면 판결문에 ‘피해자와 합의했고.’라는 한 줄 추가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민사소송도 없고. 하지만 경찰서는 가야 해요. 그건 바뀌지 않아요.”

장영호가 다시 날 노려본다.

노려보면 어쩔 건데.

장영호의 시선이 박승환에게로 향한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뭅니다.”

장영호가 박승환에게 말했다.

“물어봐요.”

박승환이 말했다.

“어디 한 번 물어봐요. 진짜 궁지에 몰리는 게 뭔지 가르쳐 드릴 테니.”

그렇게 말하는 박승환을 장영호는 강한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내 카드를 쓰기로 결정했다.

어제, 강우현 그 아저씨가 그랬다.

승환이의 도움만으로 일이 매끄럽게 해결되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되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그 카드를 안 써도 된다면 안 쓰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지만, 진짜 장영호가 물어버리면 어떻게 해?

나는 휴대폰을 꺼내, 어제 강우현이 알려준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어떻게 해줄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일단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중년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영호를 바꿔 주십시오.

나는 전화기를 장영호에게 건넸다.

장영호는 잠시 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전화기를 건네받아 얼굴로 가져갔다.

장영호는 조금 전 통화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해했습니다.”

중간중간 그렇게 대답을 했다.

5분 정도 그렇게 통화를 하고는 장영호는 다시 나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기분상인지 모르겠지만 훨씬 공손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영호가 말한다.

이제야 존댓말 하네.

“뭐를요?”

박승환이 옆에서 그렇게 말한다.

“…오천오백.”

장영호가 말한다.

“경찰서는?”

내가 물었다.

돈도 돈이지만 돈보다 경찰서가 더 중요하지.

하지만 내 질문에는 아무런 답이 없다. 그저 협탁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한참 동안 그렇게 협탁을 바라보던 장영호가 말했다.

“살길은 열어주셔야죠.”

장영호가 고개를 치켜든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돈은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죽으라고 하는데 그냥 죽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나는 잠시 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장영호의 눈을, 비열한 인간의 더러운 눈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돈을 깎아달라고 했으면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못 참겠다.

살길을 열어달라고? 죽으라고 하는데 그냥 죽을 수는 없다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윤기훈의 인생을 나락으로 밀어버리려 한 인간이 뻔뻔하게도 살길을 열어달라고?

개 같은 소리다.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장영호에게 얼굴을 가져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개소리 하지 마.”

내 낮은 속삭임에 장영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개소리 하지 마.”

장영호는 자신을 향해 몸을 기대오는 청년의 나지막한 속삭임을 들었다.

장영호에 비하면 한참 젊은, 아들뻘 나이의 청년이 장영호에게 그렇게 폭언을 했다.

하지만 장영호는 분노하지 않았다. 아니, 분노하지 못했다.

분노는커녕, 그의 마음속에 피어오른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조금 전 전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 전화의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지금 그의 마음에 스며드는 두려움의 대부분은 눈앞의 청년에 기인하고 있었다.

장영호의 본능이 무언가를 잘못 건드렸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향을 등지고 주먹밥을 먹은 지 30년이 지났다.

물론, 장영호가 활동을 시작한 90년도는 폭력조직이 암흑가를 지배하던 1970~80년대처럼 조직간 싸움에 사시미칼이 동원되는 시기는 아니었지만, 옷 가방 하나 들고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상경한 장영호가 지금의 장호건설을 이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장영호와 함께 조직 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100명이었다면, 지금 멀쩡하게 사람 구실 하는 사람은 장영호 하나뿐이었다.

경찰이 있든, 기자가 있든 상관없이 쇠파이프를 휘둘렀고, 누구 보다 앞장서서 현장을 뛰어다녔다. 울부짖는 철거민들에게 발길질을 퍼부었다. 그 대상이 노인이든, 여자든, 어린아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에 그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단순히 미친놈처럼 날뛰었기에 살아남은 것도 아니었다.

약한 자를 짓밟을 때는 철저하게 짓밟고, 강한 자에게는 최대한 깊게 고개 숙였다.

장영호는 그 누구보다 고개를 숙여야 할 때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장영호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방식이었다.

그러한 장영호의 본능이 눈앞의 청년을 가리키면서, 고개 숙여야 하는 상대라고 말하고 있었다.

굴하면 안 된다고, 이렇게 꺾이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려 하는데, 다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지?”

***

장영호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얼마지?”

장영호의 눈동자가 더욱 흔들린다.

“제이슨 그 개자식의 애비가 이번 일을 하는데 얼마를 준다고 했지? 이번 일만 해주면 앞으로 몰라줄 일감의 가치가 얼마나 되지? 앞으로 벌어들일 돈이 얼마나 되지?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윤기훈의 인생을 끝장내는 대가로 당신 호주머니에 들어갈 돈이 얼마나 되지?”

“….”

“얼마가 필요하지? 당신이 쌓은 이 모든 것을 다 허물어버리는 데 얼마가 필요하지? 앞으로 남은 당신의 인생을 죽지도, 그렇다고 살지도 못하게 만드는 데 얼마가 필요하지?”

장영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그저 요동치는 눈동자로 날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폈다. 그리고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장 사장님. 나는 사장님의 회사나 가족분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원한도, 관심도 없습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장영호의 고개가 미세하게 움직인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자수하세요. 그리고 사실대로 말씀하세요. 그래 주신다면 저도 더는 사장님에 대해 관심 가지지 않겠습니다.”

회사는 안 건드리겠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을 남겨둘 수는 있다.

그런 의미였다.

물론 단서는 붙였지. ‘내가’라고.

다른 누군가가 장영호의 모래성을 허물어트린다 해도 나와는 상관이 없다.

***

장호건설을 빠져나온 나는 강우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장영호를 만났고,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했다고.

-마무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우현의 답장이었다.

에휴. 기분이 요상타.

원하는 대로 직접 장영호의 얼굴을 보고 쇼부를 치기는 했는데, 시원하다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부끄럽다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복잡미묘한 마음을 하고 있는데, 박승환이 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왜?”

내가 물었다.

“너희 아버지 뭐 하시냐?”

박승환이 물어본다.

“이 자식아. 나 아버지 없다고. 할아버지뿐이라고.”

박승환 이 자식이 다 알면서 그러네.

“할아버지 뭐 하시는데?”

“백번 말했다. 책방 하신다고.”

“그 책방에는 혹시 총도 팔고 그러시지는 않고?”

“무슨 우리 할아버지가 무기 소믈리에냐? 책방에서 총을 왜 팔아.”

하지만 박승환은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왜? 왜 사람을 그렇게 보는데?”

“한번 잘 알아봐.”

“뭘?”

“니네 할아버지 투 잡 뛰시는지.”

박승환이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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