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00화 (100/271)

100 : 호랑이 굴에서 (1)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나는 침대 위에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원래, 잠에서 깨어나면, 누워있는 자세 그대로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는 하지만 오늘은 좀 더 공을 들여 몸을 풀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장영호라는 산을 넘어버리기로 결정을 한 이상 더는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적당히 몸과 머리를 부드럽게 풀어낸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거실에는 서현 님이 앉아있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고 계신다.

“…결국 가실 건가요?”

서현 님이 묻는다.

“네. 다녀올게요.”

내가 최대한 자연스러운 웃음을 띠며 말했다.

서현 님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다 알고 있다.

어젯밤, 내가 전부 다 이야기해 주었으니까.

승환이에게 그런 제안을 들었고, 서현 님의 오빠를 만났고, 중앙그룹의 힘을 이용하라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오빠는 이유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저도 오빠의 생각에 동의해요.’

서현 님의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장영호를 만나러 가겠다는 이야기에는 강하게 반대를 표시했다.

항상 한발 물러나서 나를 위해 양보하는 평소의 서현 님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강한 반대였다.

그저 맡기면 된다. 중앙그룹에서, 오빠가 전부 다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런 상황인데 위험하게 직접 움직일 이유는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강우현도 같은 이야기를 했었지.

내가 마음만 정하면 직접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하지만 나는 직접 그 사람을, 장영호를 만나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보고 싶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밀어버리는 인간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단순히 감정적인 이유로 그를 보겠다고 결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나에게 손대지 못할 것이라는 논리적인 판단도 있었다.

아무리 장영호가 거친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그는 내게 손을 대지 못할 것이다.

강우현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회사를 이룬 사람이었다.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의미였고, 잃을 것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본거지에서 나에게 손을 댈까?

아닐 것이다.

나에게 물리력을 행사한다면, 책임을 져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가 져야 하는 그 책임은 그에게 손해를 안겨 줄 것이고.

더불어 오늘 알게 될 것이다. 내 뒤에, 승환이 뒤에 누가 있는지를.

그는 나에게 손댈 수 없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직접 만나러 가겠다는 근거였다.

나는 그렇게 서현 님을 설득했다.

“…다녀오세요.”

서현 님은 걱정 반, 불만스러움 반이 담긴 눈빛으로 날 보며 말한다.

그 눈빛에는 안 가면 안 되냐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네. 조심히 다녀올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자.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한 번 들어가 볼까?

***

경기도 광주시 외곽.

‘장호건설’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3층 건물 앞에 나와 승환이는 서 있다.

물론 손에 각목 같은 건 안 들었다.

우리가 무슨 ‘신림 2인조’도 아니고, 각목 같은 걸 들고 뛰어 들어갔다가는 ‘날 잡아 잡수쇼.’ 하는 꼴이다.

오늘은 철저히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낼 계획이었다.

“직관적이네.”

박승환이 건물을 보면서 말한다.

“뭐가?”

“딱 영화에 나오는 깡패소굴의 전형적인 모습. 무슨 매뉴얼 같은 게 있나? 깡패소굴은 이렇게 인테리어를 해라. 뭐 그런 거.”

박승환의 말에 나는 피식하고 웃었다.

“빨리 끝내고 학교 가자.”

내가 말했다.

“학교에 간다고?”

박승환이 묻는다.

“오늘 유 선생님 수업 있어.”

내 말에 박승환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린다.

“미친놈.”

***

장영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죽도, 반쯤 부러진 죽도 또한 그가 느끼는 분노를 표현하고 있었다.

장영호는 죽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엎드려뻗쳐 자세로 있는 청년의 등허리를 강하게 내려쳤다.

청년은 비명을 질렀고, 반쯤 부러져있던 죽도는 이내 완전히 두 동강이 나버렸다.

장영호는 부러진 죽도를 벽으로 던져버렸다. 이미 그곳에는 몇 개의 부러진 죽도가 널브러져 있었다.

“다시 말해봐.”

장영호가 쓰러져 있는 청년에게 말했다.

“계속 찾고는 있지만….”

청년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청년의 임무는 윤기훈을 비롯해 그 나이대의 아이들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윤기훈이 기숙사를 나간 것은 토요일이었다. 잠깐 일을 보겠다고 하고 나갔다.

원래 윤기훈처럼 말단 조직원으로 키우는 녀석들은 외출이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윤기훈은 특별했다.

큰 공을 세우기도 했고, 그리고 조만간 재판을 받아야 했기에, 특별대접을 받았다.

그 특별대접이 문제였다.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어디 나가서 술 퍼먹고 길바닥에서 퍼질러 자겠거니 생각했는데 일요일인 다음날에도, 사장인 장영호가 제주에서 돌아온 월요일에도 윤기훈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히 회사에는 비상이 걸렸다.

윤기훈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전부 동원했다.

계속 전화를 걸었고, 메시지를 보냈다.

사람을 풀어 주변을 이 잡듯이 수색했으나 윤기훈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윤기훈의 집도 찾아가 보았다.

당연히 윤기훈은 없었다. 윤기훈은커녕 할머니와 아버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살림은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웃들은 이사를 가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기훈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말은 어딘가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숨어있는 곳을 찾기 위해서 윤기훈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빼돌린 것처럼 윤기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장영호는 분노했다.

단순히 말단 조직원 하나가 도망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장영호는 윤기훈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임원영 대표에게 아직 보고하지 않았다.

최대한 그 사실을 숨겨야 했다. 임원영 대표가 그 사실을 알기 전에 윤기훈을 찾아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니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만들어낸 회사였는데, 단 한 번의 파도 때문에 허물어져 내리는 모래성처럼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장영호는 사무실 한쪽으로 걸어가 새 죽도를 집어 들었다.

윤기훈을 찾아내야 한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찾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밑에 놈들에게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다음.”

장영호가 겁에 질려 있는 다른 조직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청년, 아니, 소년은 눈을 질끈 감고 바닥에 엎드렸다.

장영호가 손에 든 죽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있는 힘껏 내려치려는 그 순간, 무언가가 그의 동작을 방해했다.

소리, 정확히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영호는 불쾌한 감정을 담은 눈으로 자신을 방해한 정체가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두 남자, 아니, 아직 남자라고 부르기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할 것 같은 두 명의 애송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장영호도 아는 애송이였다.

그의 팔에 칭칭 감겨있는 깁스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

개판.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눈앞에 보인 광경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꼴에 사무실이라고 의자와 책상도 가져다 놓고, 책상 위에는 서류 파일 같은 것도 가져다 놓기는 했지만, 어딜 봐도 이게 회사 사무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벽에 붙어 일렬로 서있는 청년들, 아니 소년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몇 사람, 엎드려뻗쳐 자세로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있는 사람, 그리고 바로 그 옆에 서서 죽도를 들고 있는 남자.

장영호. CCTV에서 보았던 그 얼굴이었다.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개판이네.”

박승환이 그렇게 말한다.

대단하다. 이 자식.

나도 생각은 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는데, 우리 승환이는 거침이 없구나.

“뭐야!”

벽에 일렬로 서 있던 놈 중 하나가 우리에게 소리친다.

자기 딴에는 위협적으로 소리를 지른 것이겠지만, 벌 받는 초등학생처럼 뒷짐 지고서 벽에 바싹 붙은 자세로 그렇게 소리쳐봤자 하나도 안 무서운데?

“오래간만입니다.”

내가 장영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영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버릇인지,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당황했다는 감정이 드러난다.

박승환이 내 말을 받아 계속 말한다.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 밖에서 조금 기다릴까요? 하지만 우리 그렇게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라서, 오래 기다릴 수는 없는데.”

박승환 이 무서운 자식. 저 모습을 보고 쫄지도 않는다고?

씨댕. 나도 쫄지 말아야지.

“우리 할 이야기가 좀 있죠? 어떻게, 지금 여기서 이야기할까요? 나는 뭐 상관없는데.”

내가 장영호에게 말했다.

장영호는 잠시 동안 날 바라보더니 손에 든 죽도를 놓아버렸다.

죽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따라와.”

장영호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사장실이라는 명판이 붙어있는 방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런 장영호를 따라 사장실로 걸어갔다.

벽에 붙어 있는 청년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것이 느껴졌지만,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내 옆에서 걸어가는 박승환도 그 상황에서도 특유의 개드립을 멈추지 않았다.

엎드려뻗쳐 자세로 있는 청년을 향해 말을 건넨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

또 꼴에 사장실이라고, 소파도 있고, 퍼팅연습용 장비도 있고, 무슨 무슨 클럽의 감사패도 걸려있네.

나와 박승환은 소파에 앉아 맞은편의 장영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영호는 위압적으로 보이겠다는 생각인지, 몸을 앞으로 기울인 자세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손님이 왔는데 커피 한잔도 안 내온다 이거지? 기본이 안 되어있네.

뭐 커피 얻어먹자고 온 건 아니긴 하지.

“기훈이는 내가 데리고 있어요.”

내가 말했다.

장영호는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지만, 눈에는 경악이 깃든다.

겁이 나서 어딘가 숨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내가 데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어디에 있지?”

장영호가 물어본다.

“알려줄 것 같습니까?”

내가 말했다.

장영호의 턱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는 이야기다.

“기훈이가 어디 있는지는 관심 끄시고, 일단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 잘 들으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시작해볼까?

“기훈이는 조만간 경찰서에 가서 다시 증언할 겁니다. 우선 내 폭행에는 가담하지 않았다고 자백을 번복할 겁니다.”

장영호의 눈가가 움찔거린다.

“전화로 나를 불러낸 것은 맞지만, 장영호 씨의 강압에 의한 비자발적 행동이었고, 또한 나를 폭행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것은 몰랐다고. 아 물론, 폭행에는 가담하지 않았다고 증언 할 테고, 저도 윤기훈의 말이 맞다고 증언할 겁니다.”

“…재미있군.”

장영호가 말했다.

그 말을 박승환이 받았다.

“다행이네요. 하지만 진짜 재미있는 부분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장영호의 시선이 천천히 박승환에게로 옮겨졌다.

“어디 들어보지. 얼마나 재미있는지.”

마치 씹어먹겠다는 듯한 시선으로 박승환을 보며 말했다.

허. 그 양반. 사람이 말하는데, 딴 데 한눈팔고 그러면 안 되지. 아무리 못 배웠다고 해도, 기본 예의인데.

나는 다시 장영호의 눈길을 끌기 위해 말을 이었다.

“장 사장님께서 윤기훈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자수를 하라고 강요했다고 말할 겁니다. 그 자리에는 장 사장님도 같이 동행해 주시면 됩니다. 동행해서, 기훈이 말이 맞다고, 장 사장님이 날 폭행하기 위해 사람을 동원했고, 폭행했고, 그리고 기훈이에게 자수하라고 강요했다고. 그렇게 장 사장님이 인정해주시면 됩니다.”

장영호는 나를 노려보고만 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분노라는 불꽃이 조금씩 크기를 키워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재미있군. 재미있어. 그 재미있는 이야기가 더 남았나?”

“잘 아시네요. 그 이야기도 하셔야죠. 아이테크건설 임원영 대표의 사주를 받았고, 임 대표의 아들인 제이슨 임이 현장에 있었고, 그 자식이 각목을 휘둘렀고, 내 팔을 부러트렸다는 증언까지 해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내 말에 장영호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비웃음, 그런 이름이 붙는 비열한 미소를 띤 얼굴로 천천히 소파에 등을 기댄다.

“이런 결말은 어떨까?”

장영호가 말했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두 애송이가 실종되고,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두 애송이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그렇게 말하는 장영호의 입가가 살짝 비틀린다.

개인적으로 평생 깡패짓만 해 온 사람치고는 센스 있는 농담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협박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내 뒤에 중앙그룹이, 승환이 뒤에 아버님이 계시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정도의 인간이었구나. 이런 어쭙잖은 협박 정도밖에 못 하는 그런 인간이었구나.

내 눈앞에 있는 인간은 고작 이 정도의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더 이상 이 자의 어쭙잖은 협박은 나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해보시죠.”

내가 말했다.

“…그럴까?”

장영호가 말한다.

“그 전에 전화 한 통 받아보시고.”

박승환이 그렇게 말하자 타이밍 좋게,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진다.

승환이나 내 휴대폰이 아니었다.

장영호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유선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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