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99화 (99/271)

99 : “중앙의 힘을 이용하시길 제안 드립니다.” (2)

***

“장영호를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이십니까?”

강우현이 그렇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나는 아무 말 없이 강우현을 바라보았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강우현도 대답 없는 나를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침묵을 먼저 깬 것은 강우현이었다.

“기분을 상하게 해드렸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강우현이 그렇게 말하며 작게 고개를 숙인다.

다른 상황 같았으면 그러지 말라고 말렸을 것이다.

서현 님의 친오빠라는 것을 떠나서 나보다 열두 살이나 많은 형님이시다. 연장자가 고개를 숙이는 것은 본능적으로 거북스럽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 사람이 어떻게 아는 거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 있다.

“서현이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강우현의 말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투도, 어투도 딱딱했다.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강우현의 대답이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작은어르신인 나를 ‘보필’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보필이 아니라 감시로 느껴졌다.

나는 말없이 강우현을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언제부터 날 지켜보고 있었는지, 어디까지 지켜보고 있었는지를 해명하라고 물었다.

강우현은 그런 나의 시선을 읽어냈고, 설명을 시작했다.

“병원에 입원하신 그날, 정확히 말하면 응급실에 가신 그날, 친구분들이 우리 쪽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작은어르신께서 거처를 옮기실 때, 서류 작업을 전담했던 그 변호사입니다.”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친구 놈들이 서현 님에게 연락하기 위해, 하숙집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변호사 번호를 알려주었다. 변호사가 서현 님에게 연락을 했고, 서현 님이 그 밤에 병원으로 달려왔었다.

“우리 변호사는 작은어르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고, 다음 날 우리에게 보고했습니다.”

이어진 강우현의 말에 따르면 보고는 강우현에게 전달되었고, 바로 회장님께 보고되었으며, 회장님이 조사를 지시했다.

국정원 뺨친다는 중앙그룹의 정보팀이 움직였고, 장영호와 제이슨이 일을 벌였다는 사실을 전부 파악해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강우현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강우현의 말대로라면 그들 말처럼 나를 ‘지켜보던 시점’은 그날 사건이 발생한 이후라는 것이다.

즉, 사건 이전에는 날 ‘감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내가 경찰서에 가서 윤기훈의 주소를 알아내고, 성남 집을 찾아가고, 윤기훈을 만나고, 보증금을 빌려주고, 기훈이 아버지에게 입원을 주선한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그 부분에서 ‘감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저의 동의 없이 저를 지켜보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강우현이 대답했다.

“무슨 준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작은어르신께서 도움을 요청하셨을 때,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준비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강우현의 시선에는 어떠한 죄책감이나 미안함 같은 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할 일을 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 뿐.

“어느 부분에서 불쾌해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적합한 표현은 아니지만 ‘감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경에 대한 벌은 차후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장영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으십니까?”

강우현이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분이 상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작은어르신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의 힘을 이용하시거나, 신력을 사용하시는 것 이외에는.”

강우현이 말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기분이 어떠한지는 둘째치고, 강우현의 지금 말은 부정할 수 없었다.

“도움을 요청하실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준비를 하고 있었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강우현의 말이었다.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어떠한 논리적 허점이 없었다.

어린애처럼 내 기분이 나쁘다고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이해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작은어르신께 제안 하나를 드릴까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의 힘을 이용하시길 제안 드립니다.”

강우현의 말이었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서 강우현을 바라보았다.

아니,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정확했다.

“이런 제안을 드리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조금 더 불경을 저지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목적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목적이 집중해라. 진철이 형이 했던 이야기가 강우현의 입에서 나왔다.

“만약 작은어르신께서 초법적 제재를 원하신다면 시간과 장소는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주신 모습으로 판단했을 때, 작은어르신께서 원하시는 방법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의 법적 처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의 말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었다. 초법적인 방법도 생각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제대로 된 법의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작은어르신께서 본인만의 힘으로 이 일을 해결하시겠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또한 잘 해오셨다고 감히 판단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해결하셔야 하는 문제, 장영호의 증언을 이끌어내고, 그 증언을 바탕으로 제이슨이라는 진범을 끌어내는 일을 작은어르신만의 힘으로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만,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씀드리면 제이슨, 그자에게 적법한 처벌을 받게 하길 원하신다면,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임원영 대표는 빨리 움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강우현이 말했다.

“임원영 대표가 누구입니까?”

“임진호, 미국명 제이슨 임의 부친입니다. 아이테크건설의 대표이고, 장영호의 장호건설이 아이테크건설의 하청기업입니다.”

그랬구나.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구나. 그래서 장영호라는 사람이 움직인 것이고.

안개로 덮여 있던 진실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장영호는 윤기훈이 사라진 것을 아직 보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단 막을 수 있을 때까지 막아보려 할 테니까요. 하지만, 윤기훈이 작은어르신의 그늘 아래 있는 한, 그들은 윤기훈을 찾을 수 없을 테고, 결국은 보고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아들을 대신해 희생양으로 선정된 윤기훈이 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임원영 대표는 아들을 최대한 빨리 미국으로 피신시킬 겁니다. 이중국적자인 제이슨이 미국으로 몸을 피한다면,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이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계속 그래왔지만, 이번에도,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부분이 한 군데도 없었다.

“회장님의 생각이십니까?”

내가 물었다.

강우현은 고개를 저었다.

“제 독단적인 행동입니다. 알고 계시기는 하시지만, 오늘 작은어르신을 만난 것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도 모두 저의 의지에 따른 것입니다.”

강우현의 말이었고, 그 말 안에는 강우현이 이번 독단적인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강우현은 왜 그런 책임까지 져가면서,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것일까?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강우현이 말을 이었다.

“서현이가 작은어르신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서현 님의 이름이 나왔다.

“저는 그 녀석이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면, 그 녀석의 우는 모습을 또 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서현이를 위해서 이번 일은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강우현은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음을 읽는 능력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 눈에서 한 줌의 거짓도 읽어낼 수 없었다.

***

서초동 오피스텔을 나온 나는 약속한 대로 대치동으로 향했고, 박승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승환은 내가 전화를 걸자마자 몇 분도 안 되어 바로 나왔고, 우리 두 사람은 근처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자리를 잡았지만, 우리는 그저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루 사이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목적에 집중하고, 도움을 받으라는 진철이 형의 말.

정답은 주변에 있는 경우가 있으니, 주변을 잘 살펴보라는 프린스의 가르침.

아버지의 힘을 이용하자는 박승환의 말.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강우현의 제안.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네 사람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구 만났냐?”

그리 짧지 않은 침묵 후에 박승환이 물었다.

“아는 사람.”

나는 그렇게 말했다.

박승환은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저 자식의 반응을 보니, 내가 누굴 만났는지 모르고 있나 보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워낙 많은 일이 일어나다 보니, 혹시 박승환 저 자식도 내가 강우현, 그 사람 만나고 온 것을 알고 있나 싶었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강우현.”

내가 말했다.

“그게 누군데?”

그렇게 되묻는 박승환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나는 확신했다. 박승환은 강우현을 모른다.

나는 박승환을 바라보며, 조금 전 강우현이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

“하나만 더 여쭈어보겠습니다. 승환 군이 무언가 제안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나는 고개를 들어 강우현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승환이를 알고 있지? 내 친구들까지 감시를 한 것인가?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승환 군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내 날카로운 눈빛을 받아내며 강우현이 말한다.

“승환 군은 저의 존재를 모릅니다만, 저는 오래전부터 승환 군을 알고 있었습니다. 승환 군의 부친을 알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군요.”

강우현이 말한다.

승환이의 아버지를 강우현이 알고 있다고?

“승환 군이 부친의 힘을 이용하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습니까?”

감시가 아닌 논리적 추론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대답 없이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시길 제안 드립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눈에 힘을 풀지 않았다.

“지금 설명 드릴 수는 없지만, 승환 군에게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무슨 기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점점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받아들이시지 않으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저희의 힘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하니까요. 작은어르신께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신다 하여도 결과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만, 하지만 승환 군을 위해서 승환 군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강우현이 내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

승환이의 제안을 받아들여라. 승환이를 위해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어쩐지 강우현의 제안을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 아까 했던 미친 이야기.”

내가 말했다.

박승환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냐?”

“뭐 다른 방법이 있냐?”

박승환이 되묻는다.

나는 그런 녀석을 바라보다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다른 방법 없지.”

내 말에 승환이도 피식 웃는다.

“가장 맛있는 부분을 혼자 먹으려 하지 마. 체한다.”

승환이가 말한다.

“뭔 소리야?”

내가 그런 박승환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부터 가장 재미있는 부분인데, 그걸 너 혼자 독식하려 하면 안 되지. 같이 재미 보자고.”

녀석은 이제야 내가 알던 박승환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 같이 재미 보자. 내일. 시간 좀 있냐?”

내가 말했다.

박승환은 내 이야기를 단번에 알아들었다.

“있지. 없어도 있지.”

박승환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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