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 아버지의 이름으로 (2)
***
선정릉 주차장 입구, 일요일 밤 선릉역 인근에서 가장 사람이 드문 장소.
나와 박승환은 그곳에 서 있었다.
“어디서 난 거야.”
내가 박승환에게 물었다.
“흥분하지 마.”
박승환이 나에게 말한다.
“지금 흥분 안 하게 생겼어?”
“알면.”
박승환이 말한다.
“뭐?”
“어디서 났는지 알면? 뭐가 바뀌는데?”
박승환이 말한다.
그 말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박승환의 멱살을 잡았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알아야지. 이 위험한 물건을 얻기 위해서 네가 어떤 미친 짓을 했는지, 어떤 멍청한 선택을 했는지 당연히 알아야지!”
“알면?”
“되돌려야지!”
내가 소리쳤다.
“…되돌린다고?”
“그래, 이 새끼야! 최대한 빨리 되돌려야지! 씨발.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울 생각이야?!”
조용한 선정릉에 내 목소리가 울린다.
아무리 조용한 골목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주변 주택가에 들리겠다 싶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이 멍청한 자식이 무슨 짓을 했는지, 어떤 상황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바로잡을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
박승환은 한수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수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제대로 빡친 상태였다.
박승환은 그런 한수의 눈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답답한 녀석.
알고는 있었다.
증거를 건네줬을 때, ‘오. 잘됐네. 이걸로 같이 엮으면 되겠다’고 좋아할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한수는 박승환이 예상한 것보다 더욱 강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분노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걱정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친구인 자신에게 나쁜 일이 있을까 봐, 피해를 볼까 봐. 그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알고는 있었다. 한수는 이런 녀석이었다.
복수를 하겠다고 하면서, 복수를 위해서 윤기훈을 매수하겠다고 말하면서 삼천만 원이라는 전세 보증금을 마련한 녀석이었다.
윤기훈을 설득하기 위해서라고 말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할머니를 모실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녀석이었다.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윤기훈의 아버지까지 신경 쓰는 녀석이었다.
박승환이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미련한, 그래서 가장 마음이 가는 녀석이었다.
역시. 그냥은 못 넘어가겠네.
박승환은 자신을 노려보는 한수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
박승환이 말했다.
당장에라도 주먹을 날릴 것처럼 강렬하게 노려보던 한수의 눈빛이 바뀌었다.
당혹감으로.
***
“아버지.”
박승환이 말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박승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아버지?
때리면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겠다는 소린가?
“뭐?”
“어디서 났냐며.”
박승환이 말한다.
“…너의 아버지가 줬, 아니. 주셨다고?”
“그래.”
나는 혼란에 빠졌다.
잠깐만. 이게 무슨 소리야.
아버지?
승환이 아버님께서 이 봉투를 건네주었다고?
친구가 요즘 어려움에 빠졌다고 들었다. 여기 제이슨이 마약을 하는 증거가 있으니, 이걸 가지고 해결하도록 해라.
이렇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박승환이 자신의 멱살을 잡은 내 손을 부드럽게 풀어낸다.
“이거. 비싼 옷인데. 늘어나면 어쩌려고. 벌써 늘어났네.”
박승환이 그렇게 투덜거린다.
평소 같으면 개드립으로 받아쳐 줬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희 아버지? 아버님이 저 봉투를 주셨다고?”
“그렇다니까.”
“아버님께서 뭐 하시는데?”
내가 물었다.
“깡패.”
박승환이 말했다.
“…깡패? 조직폭력배 할 때 그 깡패?”
“조폭은 아니고, 조폭 비슷한 거.”
박승환이 그렇게 더 이해 못 할 소리를 한다.
“…깡패인데, 아니. 깡패신데, 조폭은 아니시고, 조폭 비슷한 게…. 도대체 뭔데?”
“변호사.”
박승환이 말했다.
***
박기준 변호사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사무실에서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는 법무법인 철주의 보안을 총괄하는 정현식 이사가 서 있었다.
어제 박승환에게 제이슨 임의 마약 관련 증거 서류를 넘겨준 남자였다.
“장영호는?”
“현재 제주에 있습니다.”
“골프?”
“그렇습니다. 내일 아침 7시 30분 비행기로 올라올 예정입니다.”
“아직 모르고 있나?”
박기준 변호사가 물었다.
윤기훈이 숙소에서 이탈한 것을 아직 장영호가 모르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정현식 이사가 말했다.
장영호가 이번 일과 관련되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정현식 이사는 장영호에게 감시팀을 붙였다.
전문적인 미행 및 감시 훈련을 받은 감시팀은 장영호 주변에서 24시간 장영호를 감시하고 있었다.
정현식 이사의 말에 박기준 변호사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 녀석은 지금 어디 있지?”
박기준 변호사는 여전히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정현식 이사에게 물었다.
“소계주께서는 선릉역에 계십니다.”
“같이?”
“네. 작은어르신과 함께 계십니다.”
“공유했겠군.”
“그렇게 생각됩니다.”
정현식 이사가 말했다.
박기준 변호사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다시 손에 든 서류에 시선을 집중했다.
정현식 이사는 박기준 변호사의 그런 행동이 대화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박기준 변호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할 말이 남았나?”
여전히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박기준 변호사가 말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만.”
정현식 이사가 그렇게 말하자, 박기준 변호사는 처음으로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 정현식 이사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정현식 이사는 작게 미소 지었다.
계주의 시선을 받는 것은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번 기회에 소계주께 진실을 알리심은 어떠하신지요.”
정현식 이사가 말했다.
소계주라는 호칭으로 불리우는 인물, 박승환은 자신의 아버지인 박기준 변호사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었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악인. 그것이 아들이 알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니,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은 박승환만이 아니었다.
박기준 변호사와 법무법인 철주에 대해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기준 변호사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경계의 허점을 이용하는 악덕 변호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박기준 변호사는 그런 오명을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자신에게 그런 오명을 뒤집어씌운 당사자가 바로 박기준 변호사 본인이었다.
사람들은 모르는 진실이 있었다. 그 진실을 감추기 위해 오명이라는 위장막을 뒤집어쓴 것이다.
위장막 아래 감추어진 법무법인 철주는 단순한 법무법인이 아니었다.
“슬슬 소계주께서도 아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마침 그런 약속을 하셨으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정현식 이사가 박기준 변호사에게 말했다.
-이유를 불문하고 지시 하나를 따르겠다.
이번 일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박승환이 내어놓은 카드였다.
그 말뜻에 숨어있는 저의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적어도 5년 전 그날 이후 멀어질 대로 멀어진 부자지간의 관계를 다시 좁힐 수 있는 효율적인 카드임에는 확실했다.
박기준 변호사는 정현식 이사를 바라보았다.
박기준 변호사가 소계주이던 시절부터 그의 곁을 지켜왔던 오른팔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정현식 이사는 그런 말 정도는 할 자격이 있었다.
“조만간, 자리가 있을 걸세.”
박기준 변호사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서류로 시선을 주었다.
정현식 이사는 그런 박기준 변호사에게 깊게 고개를 숙이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
“…깡패? 조직폭력배 할 때 그 깡패?”
내가 물었다.
“조폭은 아니고, 조폭 비슷한 거.”
박승환이 그렇게 말했다.
“…깡패인데, 아니. 깡패신데, 조폭은 아니시고, 조폭 비슷한 게…. 도대체 뭔데?”
“변호사.”
박승환이 말했다.
“영화나 드라마 나오는 악덕 변호사.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법의 허점도 파고들고, 때에 따라서는 불법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 그런 악덕 변호사.”
박승환이 마치 남의 일 이야기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멍청한 표정으로 박승환을 바라보았다.
특이한 녀석이었다. 뭔가 남들과는 달랐다.
그래서 반 농담으로 저 자식은 성장 과정에서 뭔가 트라우마가 있었을 거야. 대한민국의 과학 발전을 위해 저 녀석의 뇌를 해부해봐야 할 필요가 있어. 그렇게 말하고는 했는데, 아니, 뇌를 해부하는 거면 반 농담이라고 하면 안 되려나?
아무튼, 특이한 녀석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지금 박승환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동안 보아왔던 저 녀석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납득도 가면서 또 한편으로 이질감도 느껴진다.
영화에서 나오는 악독 변호사,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하신다고?
잠깐만. 그러면. 혹시?
“장영호. 그 사람도?”
내가 물었다.
박승환이 장영호라는 사람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박승환의 이야기를 들으니 머릿속에서 선이 하나 연결되었다.
박승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예전에 아버지가 부리던 사람 중 하나. 지금도 같이 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그자를 봤고,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박승환이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전류가 등골을 스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나는 차마 할 수 없는 질문을 시선에 담아 박승환을 바라보았다.
“아니라고 하더라.”
내 눈빛을 읽은 박승환이 말했다.
“물어봤어. 혹시 관계되어 있냐고. 아니라고 하긴 하더라.”
박승환은 자신조차 반신반의한다는 말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라고 했다고 하셨다.
그 말의 진위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니라고 하셨다니 믿을 수밖에.
“아무튼 장영호는 아버지 영향력 아래 있던 사람이니까, 윤기훈 그 녀석의 할머니를 보호하려면 아버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그 서류봉투를 받은 거야.”
박승환이 그렇게 말한다.
아직 여기저기 비어있는 곳이 있었지만, 박승환이 해준 설명으로 그림의 전체적인 윤곽은 어느 정도 보인다.
아니, 그건 그거고. 아직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아 있다.
“그래서. 넌 위험한 거 아니고?”
내가 그렇게 묻자 박승환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아버지에게 빚졌다. 너 때문에 완전 피 봤다고.”
그렇게 말하는 박승환의 얼굴에 뭔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진다.
더 물어보고 싶은데,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박승환의 개인사를 캐묻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저 자식과 아버지 사이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건 그거고. 이 자식아. 이거 어쩔 거야. 늘어났잖아! 비싼 건데.”
박승환이 늘어진 옷을 손으로 만지며 말한다.
뭐, 많이 늘어난 것 같지는 않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건 내가 잘못했으니까.
“미안. 사줄게.”
내가 그렇게 말했다.
“남자에게 옷 선물이라니.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아무튼,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그 개자식 다 마무리 짓고, 그때 하자고. 평생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데, 참나.”
박승환은 그렇게 툴툴거린다.
아. 씨. 괜히 더 미안해지네. 멱살은 잡지 말 걸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