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 미션 스타트! (2)
“다…쳤다고? 한수가?”
그렇게 묻는 신지수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박승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아니, 얼마나 다쳤는데?”
박승환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신지수가 왜 그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느냐는 식으로 반응했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박승환이 바란 대로, 신지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묻고 있었다.
“그렇게 많이 다치지는 않았어.”
박승환은 그렇게 말했다.
팔의 깁스를 제외하고는 한수는 겉보기에는 멀쩡했으니, 아주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신지수가 물었다.
“제이슨.”
박승환이 제이슨 임의 이름을 꺼냈다.
그 이름을 들은 신지수의 표정이 변했다. 불쾌감이라는 감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지난 축제 때 제이슨이라는 그 사람하고 한수 사이에 일이 좀 있었어.”
신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둘 사이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당시 남자친구였던 김민우까지 관련된 무언가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제이슨, 그놈이 한수에게 앙심을 품었고, 사람을 동원해 한수를 폭행했어.”
신지수는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손으로 간신히 틀어막았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는 있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김민우의 주변 인물 중에서 가장 혐오하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일을 벌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람을 동원해 한수를 폭행했다고?
그녀의 경악은 김민우가 한수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데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녀는 그렇게 굳은 상태로,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경악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박승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박승환이 말했다.
신지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슨, 그 사람이 약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어?”
박승환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약?”
“마약.”
박승환이 말했다.
“뭔가…. 이상한 행동을….”
그렇게 말을 하던 신지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알고 있었어.”
김민우의 유학생 친구들, 특히 제이슨이라는 그 남자는 의심스러운 행동을 자주 보이고는 했었다.
일부러 시선을 돌렸지만, 그의 의심스러운 행동들이 마약과 관련된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신지수는 박승환을 바라보았다.
눈으로, 왜 그런 질문을 나에게 묻는 거지? 그렇게 말했다.
그 시선에 답을 하듯 박승환은 서류봉투에서 사진을 꺼냈다.
클럽에서 찍힌 사진, 신지수가 찍혀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건네받은 신지수는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진 안에는 예쁜 옷을 차려입은, 세상에서 가장 추한 여자가 있었다.
신지수는 박승환의 의도를 그제야 이해했다.
사진과 질문을 같이 건넨 것이다.
‘너도 관련이 있어?’
박승환은 그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들과 같이 행동했다면, 마약을 투여했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그런 의미였다.
신지수는 박승환을 바라보았다.
박승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친구였는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던 친구였는데, 우리 사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박승환은 그런 신지수의 눈을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것에는 손대지 않았어.”
신지수가 말했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선을 넘지 않았다.
박승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그가 아는 신지수라면,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 그럴 거라고 믿고 있었어.”
박승환은 그렇게 말하며 신지수에게서 사진을 받아 들었다.
“…한수를 위해서지?”
신지수가 물었다.
봉투에 사진을 넣던 박승환의 동작이 멈추었다.
“그 사진, 한수를 위해서 모은 증거지?”
박승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나에게 보여 준 거야?”
신지수가 물었다.
“나는 더 이상…. 너희들과 상관없는 사람인데…. 내가 피해를 입는다 해도 너희들과는 상관없는데, 왜….”
신지수는 거기까지 말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박승환은 테이블 위에 놓인 티슈를 신지수에게 건넸다.
그리고 신지수의 눈물이 잦아들 때까지 잠시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
한참을 눈물 흘리던 신지수가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자 박승환은 입을 열었다.
“한수가 원하지 않을 테니까.”
“한수가…. 원하지 않는다고?”
“그래. 그 녀석은 너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
박승환이 말했다.
만약, 박승환이 누구보다 먼저 한수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었다면?
박승환이 아는 한수라면 절대로 이 사진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마약 관련 사안을 배제하자고 나설지도 모른다.
“혹시, 한수도….”
신지수는 질문을 끝마치지 못했다.
한수도 알고 있어? 이 사진을 보았어? 그렇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잔인한 진실을 듣게 될까 봐, 질문을 끝내지 못했다.
“아니. 한수는 아직 몰라.”
박승환이 말했다.
신지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아.”
박승환이 말했다.
신지수는 고개를 들어 박승환을 바라보았다.
“너와 한수 사이가 그렇게 되면서, 덩달아 우리 사이도 조금은 어색해졌지만, 나도, 중훈이도, 찬희도, 창회도 너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어. 너는 좋은 녀석이야.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네가 좋은 녀석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 한수는…. 아직 너에게 화가 나 있겠지만, 화가 난 것과는 별개로 네가 좋은 녀석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
“하지만 너희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겠지.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까. 한수에게 네가 너무 크게 잘못했다.”
신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승환이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수 그 호구 같은 자식은 너에게 화가 나 있을지언정, 복수하겠다고, 해를 입히겠다고 생각할 놈은 아니야. 너도 알잖아.”
신지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 사진을 보여준 이유.”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신지수가 나직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괜찮겠어?”
박승환이 물었다.
“…괜찮아.”
신지수가 답했다.
“그래. 알았어. 그리고 당분간은 그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거야. 물론 알아서 잘 하겠지만.”
“…이미 헤어졌어.”
신지수가 말했다.
박승환은 그런 신지수를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신지수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면서 말했다.
“그래. 잘 생각했다.”
***
우리. 정확히 말하면 나와 이중훈, 지연이와 윤기훈 네 명은 이중훈의 차를 타고 성남으로 갔다.
우리는 사전에 수립한 계획에 따라 빠르게 행동에 들어갔다.
일단 가까운 데 차를 세운다. 그리고 윤기훈의 할머니를 불러낸다.
할머니가 나오시면 나와 윤기훈, 그리고 유지연이 나가 할머니를 맞이한다.
윤기훈이야 손자니 문제없고, 나도 며칠 전에 좋은 인상을 드렸으니 괜찮을 터이고, 지연이야 누가 봐도, 도를 공부하지 않았어도, 아. 이 처자는 참 심성이 곱고 맑은 처자이구나 할 정도의 인상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게 할머니를 만나 짧게 사정을 설명 드리고 차로 모셨다.
그리고 다시 면목동 김창회 집으로.
그렇게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 십오 분.
길만 안 막혔으면 한 시간에도 가능했을 거다.
이거, 로스쿨이 아니고 국정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나? 나 그쪽으로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렇게 작전을 마무리하고 창회 자취방으로 돌아오니, 오늘 코빼기도 안 보였던 박승환이랑 박찬희도 와 있었다. 뭐 그 녀석들은 필요 없었으니까 상관없었지만.
할머니가 도착하고, 역시 수립된 작전 계획에 따라 김창회와 유지연만을 남기고 우리는 모두 밖으로 나왔다.
원래는 나하고 유지연, 그리고 윤기훈이 할머니를 설득할 생각이었는데, 김창회 그 자식이 자신이 대신 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윤기훈이 그 자식도 내심 김창회가 같이 해줬으면 하는 눈치였고.
의좋은 형제 납셨어. 아주.
뭐, 덩치 큰 손자를 키우신 할머니니까, 김창회에게도 그다지 거부감은 안 느끼시겠지.
아무튼, 그렇게 뒤를 부탁하고, 나와 이중훈, 박승환, 박찬희 넷은 근처 카페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고마웠다. 오늘 제일 수고 많았다.”
내가 이중훈에게 말했다.
이중훈이 고생했지. 오늘 하루 종일 운전했으니까.
“뭐, 아직 끝난 것도 아닌데.”
이중훈이 말한다.
맞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만약 설득에 실패하면, 할머니가 다시 성남으로 귀가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이중훈이 한 번 더 수고를 해줘야 한다.
“그리고 항상 말하지만 널 위해서가 아니라고. 지연이를 위해서라고.”
그렇게 투덜거리는 녀석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쩌면 나는 이중훈, 이 녀석을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의사 아빠, 교수 엄마를 둔 서울 깍쟁이.
이중훈에게 그런 이미지를 아주 조금은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해서 조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단순히 나를 도와주었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지연이. 이중훈은 지연이를 좋아했다. 아니, 지금도 지연이를 짝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지연이는 내게 고백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니, 닫지 않는 마음에 대한 상처가 있으니, 이중훈이 저 녀석이 얼마나 괴로울지 어느 정도 짐작은 간다.
그런데도 사심 없이 이번 일에 발 벗고 나서 주었다.
그저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래도 고맙다. 나중에 꼭 은혜 갚을께.”
내가 이중훈에게 말했다.
이중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빨대를 입으로 가져간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박찬희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오늘 친척에게 정보를 얻어온다고 했었지?
“사촌 누나에게 물어봤거든?”
박찬희가 내 눈빛을 읽고 말을 시작한다.
“각 지자체에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센터에서 정부 재원과 지자체 예산으로 중독재활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더라고. 그게 직접적으로 입원비 지원을 의미하는지는 내일 다시 문의해봐야 할 것 같아. 아 그리고, 치료 병원도 리스트 몇 개 뽑아준다고 했어. 복지부와 연계되어있는 병원으로.”
이 녀석도 고맙지.
맨날 장난만 치고, 가벼운 놈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한국대 들어왔나 가끔 의심스러웠는데, 막상 이렇게 같이 무언가를 해보니 믿을 수 있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고맙다.”
“뭐래. 미친놈.”
크흠. 그 자식. 그냥 좀 넘어가지.
마지막으로 나는 박승환을 바라보았다.
“넌 오늘 하루 종일 뭐 했냐?”
이중훈이 먼저 물어본다.
박승환은 아무런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뭐야? 저 표정은 뭐야?
“왜 그래? 뭔 일 있었냐?”
중훈이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승환이에게 물어본다.
“아니. 특별한 일은 없었어.”
박승환이 그렇게 말한다.
아닌데, 저 자식 분명 뭔가 있는데. 그런 표정인데.
사실 박승환이 저놈이 좀 특이하긴 한 녀석이라 가끔씩 얼토당토않은 일을 꾸밀 때가 있다.
지금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일을 벌인 것 같은데 말이지.
뭐 평소 같으면, 그냥 뭔가 또 사건 하나 벌어지겠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알아야 하는 이야기라면 이야기해주겠지.
창회 집 근처 카페에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 지 한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우리 모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단톡방 알림이었다.
-이야기 끝났다. 다들 들어와도 괜찮아.
김창회가 보낸 깨톡이었다.
흠. 어떻게 결정이 났을까?
우리는 그렇게 궁금증을 안고, 창회 자취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