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82화 (82/271)

82 : 씨앗 심기 (2)

“사진으로 본 적은 있는데… 진짜 장난 아니네.”

박승환이 눈앞에 있는 오르막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리 눈앞에는 마치 스키점프대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도로가 펼쳐져 있었다.

경찰에게서 넘겨받은 가해자의 주소는 성남시 태평동, 성남의 대표 산동네였다.

그렇기에 나와 박승환은 별스타그램에서 ‘성남 인셉션 골목’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오르막길 초입에 서 있는 것이다.

나도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올라가자.”

오늘 이거 운동 제대로 하겠네.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것 같은 좁은 도로, 좁은 도로와 연결된 수많은 골목길, 틈이라고는 없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2층집의 장벽을 지나치면서 우리는 열심히 언덕을 올랐다.

그렇게 숨을 헐떡거리며 언덕길 3분의 2쯤 올라가서야 나는 발을 멈추었다.

지도 어플로 살펴봤을 때, 대충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비슷한 모양의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으니 주소가 있어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쉽게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주소 번지수부터 네 자릿수였으니.

우리 고향에는 네 자릿수는커녕, 세 자릿수 번지도 없는데.

아무튼, 주소를 들고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골목 한쪽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혹시 여기가 어디인지 아세요?”

내가 그렇게 물으며 주소가 적힌 종이를 보여드렸다.

그러자 할머니 한 분이 고개를 저으며 말씀하신다.

“번지수로 말하면 몰라. 여기 집이 얼마나 많은디. 누굴 찾아왔는데? 오래 산 사람이면 알 수도 있고.”

“아. 네. 윤기훈이라는 학생의 집을 찾고 있는데요.”

내 말에 할머니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씀하신다.

“윤…기훈? 이 근처 윤가가 누가 있지?”

“거. 박 씨 할머니 아들이 윤가잖여.”

“맞네. 그 집 손자가 기훈이 아녀?”

“맞네. 박 씨 할머니네 운동하던 손자.”

그렇게 말씀을 하시던 할머니들이 우리를 바라본다.

“그 집은 왜 찾는데?”

“네. 저기 기훈 학생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요.”

박승환이 말했다.

그런 박승환을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눈에 경계심이 가득하다.

알려줘도 될지, 어떨지를 고민하고 있는 눈빛이다.

할머니들 반응 보니 딱 알겠다.

윤기훈이, 그 녀석, 사고 많이 치고 다녔구만.

주저하는 할머니들에게 내가 재빨리 말했다.

“저희 복지관에서 나왔습니다. 청소년 지원사업 조사차 왔거든요.”

예정에 없던 애드립이었는데, 눈치 빠른 박승환이 재빨리 받는다.

“저희 복지사예요. 기훈 학생 도움 주려고요.”

할머니들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우리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잠시 살펴보시더니, 말씀하신다.

“쩌어기, 저짝으로 가서 우회전 한 다음 왼쪽에서 세 번째 집이요.”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로 골목을 가리키신다.

우리는 할머니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할머니들이 가르쳐주신 골목을 향해 걸어갔다.

“복지관?”

박승환이 나에게 속삭였다.

“그럼, 폭행 사건으로 합의금 받으러 왔다고 할까?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복지관이 최고야.”

“미리 생각해 둔 거야?”

“아니. 애드립이었는데.”

“…너는 나중에 분명히 신문에 이름 실릴 거야. 신종 피라미드 사기 이런 걸로.”

박승환이 날 보며 그렇게 말한다.

웃기고 있네.

“그러면 내 옆에는 분명 네가 서 있을 거다. 주범이라는 타이틀로. 시끄럽고, 일단 저기부터 가보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골목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슈퍼마켓’이라는 이름의 구멍가게로 걸어갔다.

***

할머니들이 가르쳐주신 집은 지금까지 우리가 봐 왔던 특색 없는 2층집 중 하나였다.

나는 현관에 붙어있는 주소와 경찰이 가르쳐준 주소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가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지.

그렇게 속으로 힘 한번 주고, ‘지하’라고 쓰여 있는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무도 없는 걸까?

다시 초인종을 눌렀지만, 역시 반응이 없다.

헛걸음 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박승환이 안에다 대고 ‘계세요~’ 하며 소리친다.

그렇게 두어 번 소리친 후에, 건물 그림자 안에 감추어져 있던 지하실 문이 살짝 열린다.

“누구요?”

열린 문틈으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 윤기훈 학생 집 맞나요?”

박승환이 그렇게 물었는데, 아무런 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뭐지? 분명 문이 빼꼼하고 열렸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다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겨, 경찰이요?”

윤기훈 이놈의 자식! 평상시에 사고를 얼마나 치고 다닌 거냐!

“아니에요. 할머니. 저희 경찰 아니고요, 복지관에서 나왔어요.”

내가 재빨리 그놈의 복지관 드립을 또 쳤다.

조금 전 할머니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이번에는 복지관 드립 치면 안 될 것 같은데.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튼,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필살기인 복지관 드립이 먹혔는지, 살짝 열렸던 문이 완전히 열리고, 할머니 한 분이 모습을 드러내셨다.

잔뜩 굽은 허리, 세월의 흐름이 그려낸 얼굴, 그리고 인생의 고달픔이 그대로 느껴지는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기훈 학생 할머니시죠? 안녕하세요? 혹시 지금 윤기훈 학생 있나요?”

박승환이 할머니에게 말했다.

“지금 기훈이 없는데….”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문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구야!”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였고, 대낮임에도 목소리에 술기운이 묻어 있었다.

“혹시 기훈 학생 아버님이신가요?”

내가 물었고,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끄덕임에 삶의 고통과 피로가 눅진하게 묻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아버님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봐도 될까요?”

내가 다시 물었고, 할머니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없이 철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햇볕이 들지 않는 지하방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

내부는 예상대로 어두웠다. 산동네 협소 주택의 반지하 방은 반지하라는 말이 무색하게, 햇볕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오래된 형광등의 불빛만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그리고 그 광원 아래,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내가 의사는 아니었지만, 중년 남자는 중증의 알코올 중독 상태라고 진단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 보였다.

“뭐야, 니들은.”

중년 남자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목소리에 이유 모를 증오가 담겨 있었다.

“안녕하세요? 윤기훈 학생 아버님 되시죠? 저희는 성남 중앙 복지관에서 나온 사회복지사입니다.”

내가 재빨리 친절한 복지사 가면을 쓰고 말했다.

실제로 성남 중앙 복지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시작을 했으니, 밀고 가는 수밖에.

“…복지관?”

중년 남자가 말한다. 목소리에서 의심이 묻어난다.

좋아. 그럼 콤보를 넣어볼까?

“이거 별것 아닙니다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요 앞 구멍가게에서 사 온 식용유 선물세트를 내밀었다.

중년 남자의 눈이 힐끗하고 선물상자를 바라본다.

“다름이 아니라 기훈 학생이 저희 복지관의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이 되었거든요. 사업을 진행하려면 저희가 기훈 학생을 만나봐야 하는데, 연락이 되질 않아서요. 그래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돈 드는 거요?”

중년 남자가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한다.

역시 현물은 효과가 있군.

“아니요. 오히려 저희가 돈 드리는 거예요. 기훈 학생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박승환이 빠르게 받았다.

“흥. 그런 자식이 무슨 공부를 한다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마쇼. 그리고 그놈 집에 안 들어온 지 한참 됐소. 어디 살았는지, 뒈졌는지, 아니면 교도소에 들어갔는지.”

교도소는 아직 안 들어갔지. 검찰에 송치가 안 되었으니까.

“그렇군요. 혹시 기훈 학생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전화번호로는 연결이 안 되어서요.”

중년 남자는 말없이 옆에 놓인 컵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색은 야쿠르트 색인데, 분명 소주가 들어있겠지.

“몰라.”

중년 남자의 말투가 바뀌었다.

선물 약빨이 벌써 떨어진 건가? 식용유가 아니라 양주 같은 걸 사 왔어야 했었나?

“더 이상 할 이야기 없으니 나가.”

“저기. 아버님.”

“당장 나가라고!”

중년 남자가 소리 질렀다.

그 모습을 본 박승환이 고개를 흔들며 속삭였다.

“나가자.”

나도 미련 없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삶의 궤도에서 탈락한 실패자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힘들었다.

***

나는 찝찝한 기분으로 그 집을 나왔다.

뭐, 자수했다는 그 윤기훈이라는 놈을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전화번호라도 얻고 싶었는데, 전화번호는커녕, 기분만 상했다.

아무튼, 그 아저씨랑은 더 이상 말은 안 통할 것 같고,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대문 밖으로 나왔는데, 대문 앞에서 할머니가 초초한 표정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할머니에게 여쭤볼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할머니가 말을 걸어오신다.

“저기. 복지관에서 오신 선생님들… 이시라고요?”

“네. 할머니. 저희 복지관에서 나왔어요.”

박승환이 재빨리 말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눈빛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깃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죄송해요. 할머니. 저희 복지관에서 나온 사람 아니에요.”

어쩐지, 할머니에게는 솔직하게 말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럼, 어디서. 겨. 경찰인가요?”

“아니요. 경찰은 아니에요. 그저 기훈이 학생하고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요. 지금 자세하게는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기훈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박승환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 하고 찌른다.

뭐하러 만들어진 판을 깨느냐고 하는 거겠지.

나도 안다. 계속 복지사라고 거짓말을 했으면 쉽게 전화번호를 얻어냈을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할머니에게만큼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기훈이 전화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나는 그런 할머니의 눈을 보고 말했다.

“혹시, 그…. 봉투 때문에 그런 건가요?”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거를 돌려주면, 우리 기훈이에게….”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가슴팍에 꾸깃꾸깃하게 접혀있는 편지봉투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리고 그 봉투를 보는 순간 나는 머릿속에 가설 하나가 떠올랐다.

“제가 좀 봐도 될까요?”

내가 최대한 정중하게 할머니에게 말했고, 할머니가 주저하는 손으로 나에게 봉투를 넘기셨다.

꾸깃꾸깃한 봉투를 대충 펴서 슬쩍 열어보니 5만 원권으로 보이는 지폐가 들어있다.

느낌상으로는 대충 스무 장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기훈이가 이걸 언제 주고 갔었나요?”

“그게. 한 일주일 전에….”

그런 거였군.

나는 봉투를 다시 곱게 접어 할머니에게 돌려 드렸다.

봉투를 돌려받는 할머니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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