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81화 (81/271)

81 : 씨앗 심기 (1)

“우선, 이 말부터 먼저 해야겠다.”

내 말에 다섯 사람, 열 개의 눈동자가 나에게로 향한다.

김창회, 박승환, 박찬희, 이중훈, 그리고 유지연,

퇴원하고 사흘째 되는 목요일, 나를 포함해 우리 여섯 명은 면목동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 김창회의 자취방에 모여 있었다.

본격적으로 복수를 진행하기 위해서.

나는 나를 바라보는 녀석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춘 다음 말했다.

“함께해줘서 고맙다.”

친구라는 이유로, 이렇게 발 벗고 나서주는 녀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물론 나의 그런 감사 인사를 친구 녀석들은 진심으로 받아주었다.

“뭐래.”

“한수, 저 자식 머리 다친 것 같은데? 벌써 퇴원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착각하지 마. 너 때문에 하는 거 아니야. 지연이 때문이지.”

“그런 생각 안 해도 된다. 어차피 돈 받고 하는 건데.”

아오. 망할 놈들, 그렇게 한마디씩 하고야 만다.

나는 지연이를 바라보았다.

유일하게 지연이만 ‘저는 오빠 편이에요’라는 눈으로 날 바라봐주고 있다.

그나마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많이 외로웠을 거야….

아무튼, 이 이상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나만 손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한 내가 죽일 놈이지. 그동안 뭐 별일 없었지?”

“별일 있을 게 있나. 며칠이나 되었다고.”

박찬희가 그렇게 말했다.

사실 뭐 틀린 말도 아니지.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금요일이었고, 내가 월요일에 퇴원했고,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그 사이에 뭔 일이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그런데 이중훈이 손을 들어 올린다.

“확보했어. CCTV 영상,”

나를 포함해 모두의 시선이 이중훈에게 모인다.

지난주 금요일, 지연이가 처음 병원에 찾아왔던 날, 우리 여섯 명이 그 사건 이후 처음으로 모였던 그날, 나는 내가 일주일 동안 고민해서 도출한 시나리오를 그 녀석들에게 설명해주었다.

증거의 확보, 증언의 확보, 그리고 그렇게 확보한 물증을 가지고 경찰서에 형사 고발.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확보해야 하는 증거 중에서 CCTV 영상 이야기가 나왔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공 CCTV야 당연히 불가능한 이야기고, 현장 근처에 있던 업소에 설치된 CCTV 영상이라면 가서 부탁이라도 해볼 수 있겠다, 그 정도였지.

그리고 업소 CCTV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게, 우리가 뭐 국정원 요원이나 경찰도 아니고, 조사에 필요하니 CCTV 영상을 내놓으시오 하면 내어 주겠어?

골든타임을 놓친 것도 사실이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은행의 CCTV 영상 저장 기간이 60일, 편의점은 30일 전후라고 하기는 하는데, 뭐, 은행이나 편의점이나 그렇지, 일반 업장에서 그렇게까지 보관할 것 같지도 않고, 설사 보관을 해놓았다고 해도, 경찰도 아니고, 대학생이 영상 보여주세요. 그러면 잘도 보여주겠다.

아니, 뭐 보여준다고 해도 큰 기대를 하면 안 되는 것이, 무슨 미국 드라마처럼, 쭈욱 확대하면 선명한 영상이 딱 나오고 이런 건 아니다 이거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퇴원하면 박카스라도 한 박스 가져가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 영상 좀 보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려 했는데, 이중훈 저 녀석이 벌써 영상을 확보했다고?

“어떻게?”

“형님이 벌써 다 확보해놓으셨더라.”

“형님?”

“식당 사장 형님.”

이중훈의 설명에 따르면, 금요일에 CCTV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림동에, 우리가 그날 고기를 먹었던 식당을 찾아갔다고 하더라.

다른 식당 같았으면 그러지 못했겠지만, 그 정육식당은 우리가 작년부터 아지트로 자주 들렀던 식당이었고, 또한 사장 형님과도 친분을 쌓아 놓았으니 가능한 이야기겠지.

아무튼, 그렇게 찾아가서 CCTV 이야기를 꺼냈는데, 사장 형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영상을 확보했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

내가 그렇게 두들겨 맞고 병원에 실려 간 것을 보고, 사장 형님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주변에 안면 있는 가게 사장님들에게 CCTV 영상을 받아놓았다는 것이다.

“영상 확인해봤어?”

김창회가 물었다.

“아니. 한수 퇴원하면 그때 같이 보려고. 근데 사장 형님 이야기로는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애초에 골목길 쪽으로는 설치된 CCTV가 없고, 다른 영상도 그렇게 선명하지는 않다고.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금요일은 워낙 사람이 많으니까. 그 동네는.”

“뭐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 조만간 박카스 사 들고 영상 받아오자고. 아. 근데 그날 누가 돈 냈냐?”

내가 물었다.

그날 우리 많이 먹었다. 내가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소고기 모둠만 세 접시였으니, 그것만 해도 10만 원은 훌쩍 넘었을 거다.

그날 누가 계산했는지 궁금했었는데, 아무래도 우선순위에서 밀리다 보니까 자꾸 물어보는 걸 까먹게 된다.

마침 오늘 식당 사장 형님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 생각이 나네.

그런 내 질문에 손 드는 놈이 없다. 그저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설마. 아무도 돈 안 낸 건 아니겠지?”

“그날 정신이 없어서….”

그렇게 말하며 머쓱한 표정을 짓는 친구 놈들.

참으로 사장 형님도 대단하다.

뭐 정신없다고 해도 돈도 안 내고 도망친 놈들인데, 뭐 이쁘다고 영상을 모아두셨다냐.

아니, 그것도 그거지만, 나중에라도 돈 달라고 이야기할 법도 한데. 벌써 열흘이 훌쩍 넘었건만, 돈 달라는 말을 안 하셨네.

내일 당장 뵈러 가야겠다. 박카스 말고 홍삼 사 들고 가서 외상값도 갚고, 영상도 받아오고, 형님 품에 안겨서 엉엉 울고 와야겠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일단 CCTV는 확보. 뭐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음은 증언 확보네요. 오빠 뭐 생각해놓은 거 있어요?”

지연이가 물어본다.

“어제 경찰서 갔다 왔어.”

내가 말했다.

“경찰서요?”

“어. 피해자 진술을 해야 하니까.”

“경찰에서는 뭐라는데?”

사건 다음 날, 범인이 자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병원으로 달려갔던 김창회가 물어본다.

“뭐, 너희들이 들었던 말이랑 비슷하더라. 대놓고, 어린놈들끼리 술 먹고 싸운 거 아니냐, 빨리 나온 거 보니까 별로 안 다친 거 아니냐. 그렇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이랄까? 솔직히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고.”

“그걸 이해할 수 있어요?”

조용히 듣고만 있던 지연이가 묻는다. 그 얼굴에 분하다는 감정을 띄우고 있다.

이 녀석은 ‘나 화났어요’하는 표정까지 귀엽고 난리야.

“경찰서에서 대충 한 시간 정도 있었는데, 그 한 시간 동안 아주 난장판이더라고. 가해자는 지가 안 그랬다고 소리 지르지, 피해자는 저놈 죽이라고 또 소리 지르지. 경찰도 먹고살자고 택한 직업의 하나인데, 맨날 그딴 것만 보고 있으면 정신적으로 힘들겠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달까?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내가 느그 서장 어디 있어? 서장 데꼬와! 니 내 누군지 아나? 으이? 내가 이 새꺄 느그 서장이랑 임마! 느그 서장 신림동 살제? 으이? 내가 임마! 느그 서장이랑 임마! 어저께도! 으이? 같이 밥 묵고 으이! 싸우나도 같이 가고 으! 마 개이 새꺄 마 다했어! 이럴 수는 없잖아.”

“…그 대사를 다 외워요?”

지연이가 묻는다.

“명작이지.”

“명작이야.”

친구 놈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진술은 어떻게 했는데?”

“대충 둘러댔어. 기억 잘 안 난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 기억나면 다시 이야기하겠다. 그렇게만 이야기하고 왔지. 사실 진술하러 간 건 아니니까. 주소 확보하러 간 거지.”

“주소요? 무슨 주소요?”

지연이가 묻는다.

“자수한 놈 거주지 주소. 전화번호는 또 안 알려주더라고. 미성년자라 보호자 쪽 연락처만 줄 수 있다고.”

“가볼 거예요?”

“가보려고.”

“가서 어쩌려고?”

이중훈이 물어본다.

“협박하려고.”

내가 그렇게 말했다.

***

집으로 돌아온 나는 서현 님과 맺었던 협약에 따라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했다.

서현 님과 내가 맺은 불평등 협약의 내용은 간단하다.

친구들과 이야기한 내용을 공유할 것, 도움이 필요할 때는 숨기지 말고 요청할 것.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서 회장님의 힘을 빌리는 것도 생각해 둘 것.

요렇게 세 가지였다.

아무튼, 나는 협약에 따라. 고깃집 사장 형님이 CCTV를 확보했고, 망할 놈들이 아직까지 고깃값을 안 냈다는 보고를 드렸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영상을 확보했다니 다행이네요.’, ‘어머. 빨리 돈 드려야 되겠어요.’ 그렇게 반응하시던 서현 님께서, 내일 직접 죄를 뒤집어쓰고 자수한 멍청이를 찾아가겠다는 이야기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니, 반응은 있었지.

‘제정신으로 그런 말씀 하시는 건가요?’ 그런 시선으로 날 바라보고 계신다.

“직접 가보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한참 후에야 서현 님이 말씀하셨다.

“네. 제가 가볼까 하고요.”

서현 님은 내 대답에 그저 지긋이 나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표정은 조금 전과 그다지 변함이 없지만, 날 바라보는 눈이 어딘가 모르게 매섭다고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그리 짧지 않은 침묵 뒤에 이어진 서현 님의 말이었다.

“아니, 확실히 말씀드리면 저는 반대에요. 한수 씨가 직접 가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말하는 서현 님의 시선은 내 팔에 있는 깁스를 향하고 있다.

나는 서현 님의 반대를 예상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 친구 놈들도 서현 님과 똑같은 말을 했었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똑같지는 않았지. 그놈들은 ‘야! 이 미친놈아!’로 시작했지.

나는 그런 서현 님을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여준 다음, 친구 놈들에게 해주었던 말을 그대로 서현 님께 들려주었다.

“일단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을 거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

“근거 없는 희망에서 하는 말은 아니에요. 도촬범이 이번 사건을 꾸몄고, 그 일을 도운 중년 남자가 자수할 희생양을 만들어놨다는 것은 일단, 이번 사건이 더 이상 확대되기를 원치 않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저를 무고로 엮기 위한 함정일 수도 있겠지만, 자수를 시킴으로써 처음부터 경찰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의미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판단을 기반으로 한다면, 제가 설사, 그 깡패들의 본거지에 쳐들어갔다고 해도 저에게 손을 대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서현 님은 내 말에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표현하지 않은 채, 그저 지긋이 날 바라보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다른 사람이 아닌 제가 직접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차별성을 줄 수 있으니까요.”

“…차별성이요?”

“자수했다는 그 녀석은 그날 그 자리에 있었을 확률이 높아요. 제 생각에는 그날 제가 받은 전화는 그 녀석이 했을 거예요. 증거를 남겨야 하니까.”

서현 님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어요. 그런 표정의 진지한 얼굴인데, 왜 그런 얼굴마저 저렇게 이쁜지 모르겠다.

일단 집중. 집중하자.

“그 녀석이 거기 있었다면 분명히 알고 있었을 거예요. 내가 그날의 피해자이고, 나를 각목으로 내리친 놈이 그 도촬범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도촬범을 대신해 자수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당시에는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고 있겠죠. 하지만 아직까지도 모르는 사실이 분명 있을 거예요.”

“도촬범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촬범이 왜 한수 씨를 노린 건지.”

똑똑한 우리 서현 님은 내 말을 바로 알아들으신다.

이러니 내가 우리 서현 님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냐고요.

“맞아요. 희생양으로 지목된 그 녀석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았겠죠. 나중에라도 입을 잘못 놀리면 안 될 테니까.”

“하지만 궁금하겠죠?”

“그렇죠. 그리고 그 궁금증을 제가 해소해 주는 거죠.”

보고는 전부 끝냈다. 이제 서현 님의 결재 도장만 받으면 된다.

하지만 서현 님은 바로 결재 도장을 찍지 않으셨다.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으로 서류를, 아니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도움이 될까요?”

“모르겠어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바보도 아니고, 진심을 다해 이야기하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그 녀석의 마음에 씨앗을 하나 심어 놓겠다는 생각이죠.”

“어떤 씨앗을 심으시려는 거죠?”

“억울함이라는 이름의 씨앗이요.”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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