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 복수를 할 때는 무덤 두 개를 파 놓아라 (4)
원래 서울중앙의료원의 면회시간은 오후 7시 반부터 8시까지 30분에 불과하다. 그것도 보호자 외 1인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병실에는 다섯 명이, 그것도 면회시간인 8시를 넘겨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 남아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나에게 특별히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마 병원 측에서는 내 시중을 드는 하인 놈들인 줄 알았을 거다. 나처럼 고귀한 분에게는 수발을 들어줄 몸종이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아니지. 지연이가 있었지? 우리 지연이가 하인으로 보이지는 않겠지. 그러면 지연이가 데려온 하인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뭐, 헛소리는 그만하고, 아마도 VIP 병실이라고 별말 안 하는 것 같다. 뭐 원장님도 다녀가셨고 했으니 소문이 났겠지.
아. 자꾸 이런 식으로 특별한 대접 받는 데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뭐 나도 그렇고 친구 놈들이 이 늦은 시간까지 버티고 있었던 것은 그러한 특권을 만끽하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답답한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심도 깊고, 알맹이 없는 난상토론을 벌이다 이 시간이 된 것이다.
“야. 이제 정리하자. 정리해. 막차 끊기기 전에 가야 할 거 아냐? 지연이도 데려다줘야 하고.”
내 말에 녀석들이 그제야 시계를 쳐다본다.
사실 막차가 끊기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지연이를 돌려보내야 할 거 아닌가, 남의 집 귀한 딸을 그때까지 데리고 있으면 안 되지.
“자. 정리해보자. 일단 지연이.”
“넵!”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지연이가 그 예쁜 눈동자에 진지한 감정을 담뿍 담아 날 바라보고 있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
“일단 지연이는 불편하겠지만, 당분간 우리와 같이 행동해줬으면 좋겠어. 혹시라도 뭔가 새로운 상황 생기면, 오늘 새로 판 단톡방에 바로 알려주기. 니들도 마찬가지로 뭐 일 있으면 바로 단톡방에 올려. 자주 확인하고, 실수로라도 알람 꺼놓지 마.”
나를 제외한 다섯 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특히 지연이는 앙다문 입술로 결의가 깃든 얼굴을 끄덕인다.
난 솔직히 지연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했었다.
그래 봤자 이제 막 스무 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교복 입고 다니던 여고생 아니었던가.
겁을 먹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나이이건만, 지연이는 생각보다 의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지연이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창회가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안 그래도 지연이가 어제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
제일 먼저 수업 끝나면 바로 선배들에게 연락하고, 혹시 먼저 수업 끝나도 과방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겠다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자신이 보호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묻지도 않고 말이다.
참나.
지연아. 너 부모님이 누구시니? 도대체 널 어떻게 키우신 거니? 어떻게 키우셨기에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이쁘게 키우셨니?
아무튼, 그렇게 지연이가 지금 상황에 대해서 이해해주고, 우리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다고 아예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혹시 그 속 깊은 녀석이 내심 엄청 무서운데, 겉으로 내색을 안 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그런 걱정.
“지연이는 일단 그렇게 마무리하고, 이제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지에 대해 정리해보자.”
내 말에 녀석들의 눈빛이 변한다.
자고로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의 자질을 타고난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저런 우민들이 제대로 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 물론. 지연이는 빼고.
“일단 다들 진정 좀 해. 생각 없이 감정적으로 움직였다가 피만 본다. 피만 보면 다행이지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도 있고. 조금 전만 해도 그래. 김민우 이름 나오자마자 흥분해서 아주 그냥 다들 당장 잡으러 갈 것처럼 난리 치고 말야. 너희들 말마따나 우루루 몰려가서 김민우에게 네놈도 공범이렷다. 그러면 김민우가, 덜덜 떨면서 맞습니다. 제가 도촬범 친구와 공모해서 한수를 습격했습니다. 그럴 것 같냐? 생각들 좀 하고 살아라. 이래서 암기 위주의 교육이 문제라니까. 그저 개념만 달달 외우고, 문제 많이 풀어서 유형만 익히니까 응용이 안 돼요. 응용이.”
“지는 뭐 암기 위주 교육 안 받았나.”
박찬희가 그렇게 투덜거렸다.
“뭐, 아무튼 대한민국의 교육환경은 일단 넘어가고, 복수. 그래. 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 힘으로는 뭐 확실한 방법이 없는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잖아?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이거지. 제대로 준비해서, 제대로 확실하게.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어. 복수를 하려면 무덤 두 개를 파놓으라고.”
내 말에 녀석들이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말. 저도 들어봤는데….”
유지연이 말한다.
“그래. 지연이 너도 들었지? 복수할 때는 무덤을 두 개 파라. 그리고 원수의 몸을 두 동강 내서 상반신과 하반신을 따로 묻어라.”
“그…. 그런 의미였어요?”
“그럼 무슨 의미인데?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복수를 할 때는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최대한 확실하게 복수를 해야 한다. 용서 같은 거 해주면 다시 뒤통수 맞는다. 그렇게 말했다고.”
“언제요?”
“어릴 때.”
“어릴 때, 언제요?”
“유치원 다닐 때.”
“유…치원이요?”
“어. 할아버지가 동화책 읽어주면서, 주인공이 나쁜 놈 용서하는 장면 나오면, 이러면 안 된다고, 사람 안 변한다고.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목숨을 거두는 것이 최선책이고, 그게 안 되면 아예 재기가 불가능할 때까지 박살을 내버리라고. 목숨만 붙여 놓으라고.”
“….”
“왜? 그런 뜻 아냐?”
“네. 뭐. 맞는 것 같아요. 무덤 두 개, 몸을 두 동강 내서….”
지연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한다.
“저번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 지연이는 처음 듣는 이야기겠구나. 방법은 두 가지야. 사적 제재, 아니면 공적 제재.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사적 제재를 내리고 싶다. 어디 으슥한 곳에 모셔다가 막 씨.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싶다. 솔직히.”
그 말에 5개의 고개가 동시에 움직인다.
지연아. 너는 끄덕이면 안 되지. 그러면 안 돼요. 그래야지.
“솔직한 심정으로 완전범죄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패에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 일단 대기.”
“폐기 아니고 대기?”
이중훈이 다시 확인한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연이가 말한다.
“좋은 생각이에요. 가능성은 남겨둬야죠.”
단호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지연이에게서 빠루를 들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일단 내가 생각한 게 있는데.”
그러면서 나는 내가 일주일 동안 고민해서 도출한 시나리오를 그 녀석들에게 설명해주었다.
***
녀석들이 집으로 돌아간 시간은 결국 시침이 11이라는 숫자를 넘어가고 나서였다. 그렇게 지연이와 지연이 수행원 놈들이 돌아가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사실 피곤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육체적인 피로는 거의 없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계속하느라 정신적인 피로가 쌓여있었나 보다.
거기에 지연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연이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걱정까지 포함되면서 알게 모르게 정신적인 피로가 누적되어 가중되었기도 하고.
그렇게 지연이에게 이야기를 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그 녀석을 보니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잠이 들고, 이상한 꿈을 꾸었다.
병실에서 지연이와 단둘이 있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고, 장르가 드라마에서 멜로로, 멜로에서 에로로 바뀌려는 그 타이밍에 병실 문이 열렸고, 서현 님의 모습이 보였고, 우리의 눈이 서로 마주치는 그 순간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프롤로그가 흘러나오는 그런 꿈이었다.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본능적으로 이 꿈이 계속 이어지면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고, 보호 본능이 판단했는지 꿈에서 깨어버렸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병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어둠이었다.
아직 이른 새벽인지, 병실은 어둠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렇게 잠시 어둠에 눈을 적응시키는데….
“괜찮아요?”
바로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핫! 뜨아! 깜짝이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내가 외친 비명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손 하나가 천천히 내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손이 내 손을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날 바라보는 서현 님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둡다. 창밖도 어둡고. 그…근데. 서현 님이?
아직 꿈인가? 아직 그 꿈이 이어지고 있는 것인가?
“악몽을 꿨나 보네요.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요.”
“서현… 씨?”
“네. 저예요.”
어둠 속에서도 서현 님의 미소가 보인다.
꿈은 아니구나. 아까 꾸었던 꿈의 연장이라면, 저렇게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주실 리가 없으니.
“지…금. 몇 시죠?”
내가 물었다.
“아직 다섯 시 안 되었어요. 조금 더 자요.”
서현 님이 말하신다.
“근데, 어떻게 이 시간에…. 아. 죄송한데 불 좀 켜주실래요?”
서현 님은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표정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조명 스위치를 눌렀다.
나는 본능적으로 얼굴을 찡그려 갑자기 눈에 들어온 광량을 최소화했다. 그렇게 빛에 눈을 적응시킨 후, 다시 서현 님을 바라보았다.
근데….
풀 착장이시네? 화장도 풀 메이크업이시고.
역시 우리 서현 님은 정장이, 소위 오피스룩이라고 말하는 복장이 잘 어울린다.
물론 나야 우리 서현 님이 거적때기를 입는다고 하여도, 아니지! 감히 우리 서현 님에게 거적때기라니! 이런 불경한 놈 같으니!
아무튼, 나는 우리 서현 님이 어떤 옷을 입으셨다 하여도 다 좋아하지만, 솔직히 어울리지 않는 옷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를 뽑으라면 단연코 정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품 있고 단아하다. 동시에 섹시하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 막 여신 같으면서 동시에 또 막. 막. 막….
“물 드릴까요?”
서현 님이 물어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실 거 따윈 필요 없으니 당장 이리로 오시오. 여기. 침대로 올라오시오. 이리로, 내 옆으로 올라오시란 말이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서현 님은 나에게 걸어왔다. 그리고 침대로 올라…오지는 않고 옆에 앉았다.
지금 미니미는? 분기탱천해 있구만. 아주.
방법이 없다. 지금 당장 저 녀석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은 없다.
나는 옆으로 몸을 돌렸다. 최대한 미니미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서. 엇. 눌린다.
아오. 진짜 장난 아니네.
남자라는 짐승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본능에 충실하단 말이냐?
나는 그런 욕망을 최대한 감춘 채로, 서현 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에요.”
서현 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서현 님이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