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 복수를 할 때는 무덤 두 개를 파 놓아라 (2)
금요일 오후.
나는 점심을 먹고 혼자 침대에 누워서 창밖 하늘을 보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현 님은 오늘 안 계신다. 회사에 가셨다. 비서실에 중요한 업무가 있다고 했다.
사실 그것도 비서실과 하는 통화를 내가 들었기에 망정이지. 내가 그 통화를 듣고서 다녀오시라고 여러 번 이야기해서야 겨우 간 것이다.
에이. 괜히 그랬어. 그냥 같이 놀자고 할걸.
아무튼, 그래서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다시 말해 심심해 죽겠다.
그렇게 심심함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병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 어떠십니까?”
의사 선생님. 마취에서 깨어난 날 ‘차가운 맥주를 먹고 싶으면 얼음을 넣어 먹으세요’와 비슷한 말투로 ‘당분간 아플 겁니다’라며 말하던 무심한 얼굴로 말하던 의사 샘이 오늘은 친절함이 가득 담긴 미소를 띠며 병실 안으로 들어온다.
중앙그룹 회장님이 찾아오고, 병원장님도 며칠에 한 번씩 들러서 경과를 지켜보곤 했으니, 무심한 표정으로 말하던 30대 레지던트의 얼굴에 꽃이 펴도 이상할 것 없겠지.
뭐 이해한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제는 진짜 괜찮은 것 같은데요?”
내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의사 샘이 흐뭇하게 웃는다. 마치 자기가 노력해서 그렇다는 듯.
“환자분의 상태가 참 빠르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역시 젊어서 그런가 참 좋네요 하하하.”
“…네.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나는 대충 그렇게 말했다.
의사 샘은 할 것도 없으면서 괜히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내가 건네준 초콜릿을 우물거리며 병실을 나갔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 말처럼 진짜 많이 괜찮아졌다.
팔이야 부러졌으니 어쩔 수 없다 쳐도, 수술하네 마네 하던 코도 뭐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부상의 흔적도 없다.
샤프한 내 코는 어떻게든 지켜냈다. 후후후. 찰과상 입은 데도 딱지 앉더니 금방 새살이 솔솔 돋고. 팔 빼면 딱히 아픈 데는 없다.
팔은……. 뭐 차라리 수술 안 하고 그냥 냅뒀으면 지금쯤 따닥하고 붙어버렸을런지도 모르지만, 이미 째서 핀을 박아버렸으니……. 저걸 빼기 위한 수술을 또 해야 한다니. 참 번거롭게 됐군.
아무튼, 신력은 없어졌어도 회복력은 그대로 남아 있는 듯싶다. 빠른 속도로 몸을 회복하고 있다. 아니, 이제는 거의 다 회복된 듯싶다.
지금 퇴원하겠다고 하면 서현 님에게 혼나겠지? 이번 주말만 버티고 퇴원해야겠다.
참……. 처음에 들어갈 때는 내 집 같지 않더니. 병원에 며칠 누워있었다고 집이 그립다.
내 방, 내 침대, 내 노트북, 내 외장 하드……. 후후후.
아니지. 이런 생각 할 때가 아니다.
이따가 저녁에 친구 놈들이 지연이를 데리고 올 테니, 그전에 생각을 좀 정리해 두자.
***
오늘로써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지난주 이 시간에 나는 친구들로부터 술자리 권유를 받고 있었지. 그리고 몇 시간 후, 전문용어로 다구리를 당한 후 응급실에 갔다가 어찌저찌해서 수술받고 여기에 입원, 얼른 집에 가서 서현 님이랑 맛있는 저녁을 해 먹고, 산책을 하고, 캐모마일 차를 마신 다음 기타 등등을 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병원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나는 지난 일주일간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21년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깊게 고민해 보았다.
복수. 복수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
역시 가장 하고 싶은 방법은 사적 제재다.
그냥 어디 인천항 버려진 창고 같은 곳에 납치해서 홀딱 벗겨 묶어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근자근 밟아주고 싶지만, 법치국가에서 그럴 수는 없지.
모두가 자연법의 집행자가 될 수 있는 자연 상태도 아니잖아. 조상님들이 자연법을 양도했으니, 나라에서 정한 법을 따를 수밖에.
드라마나 만화처럼 뒷생각 안 하고 막 패버려도 아무런 문제 없이 그냥 싸이다!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니까.
사적 제재는 일단 뒤로 미뤄두자.
폐기는 아니고 연기. 기회가 있을 수도 있으니 일단 연기.
두 번째로 법적제재를 하는 건데….
상해의 의도가 있었지. 실제로 행했고. 또 단체의 위력, 쉽게 말해 여러 명에게 다구리를 당했다. 거기에 위험한 물건, 각목이라는 위험한 물건이 동원되었으니 형법 258조 2항의 특수상해 되시겠다.
도촬범 그놈을 감옥에 보내 똥꼬 검사도 받게 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똥꼬도 따였으면 싶지만, 뭐, 미국 감옥도 아니고….
그리고 사실 감옥에 보내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중범죄인 특수상해이니까, 기소유예로 어물쩍 넘어가지는 못하겠지. 아무리 가진 분들에게 관대한 대한민국 사법부라고는 해도 말야.
하지만 실제로 빵에 가지는 않을 거다. 돈 있는 집안이니 비싼 변호사 쓸 테고, 초범이니 뭐니 하면서 집행유예를 때리겠지.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거 씁쓸하구만. 대한민국 사법 정의 마렵다.
그리고 사실 재판을 시작하는 것부터 쉽지가 않다.
자수할 놈들을 미리 준비했다는 이야기는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다는 이야기고. 그리고 그 시나리오 작성자 중에 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변호사가 껴 있을라나? 저번에 총학방에서 만난 그 변호사 선배님 새끼가 시나리오 집필에 참여했을라나?
아무튼, 냄새가 난다. 박승환이 말한 것처럼 함정의 냄새.
내가 범인은 도촬범 제이슨 그 새끼에요~ 하자마자, 월척이구나! 하면서 바로 무고로 들어올 것 같은 그런 함정의 냄새.
다음으로 세 번째 방법, 나도 뭔가 주변의 힘을 가져다 쓰는 건데….
내가 쓸 수 있는 힘이 뭐가 있나 하고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친구 놈들 네 명이 떠오른다.
김창회, 박찬희, 박승환 그리고 이중훈.
에효. 한숨이 먼저 나오네…. 지금 상황에서 그 녀석들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 아, 물론 능력 없는 놈들이라고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름 똑똑하고, 나름 뭐 애들도 성실하고. 나름 뭐…. 그다음에는 없네.
같이 복수해 주겠다고 피의 맹약을 맺었지만, 그래 봤자 대학생들인데, 대학생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현실적인 이야기다.
아무튼 그놈들은 킵. 나중에 할 일 생기면 잔심부름이라도 시킬 수 있겠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고마운 놈들인데.
자. 그다음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
할아버지. 오토바이에 막 번개 쏘고, 투명인간도 되고, 가슴에서 막 금덩이가 나오고, 미국 국채가 나오는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움직이면 게임 끝이지.
신이라며? 우리 할아버지 신이라며?
자. 한번 그림을 그려보자. 일단 퇴원을 하면, 바로 고향에 내려가는 거야.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도촬범에게 맞았다고 징징거린다.
그러면 우리 할아버지는 어느 자식이 감히 우리 귀한 손자에게! 그러면서 바로 신력을 빠방!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없다.
한심하게 어디 밖에서 줘 터지고 다닌다고 바로 필살 콤보가 들어올 거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줘 터지고 오면 누가 우리 귀한 손자 때렸냐고 토닥토닥 해주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 줘 터지고 왔냐고 가서 끝장을 보고 오라고 하셨더랬지.
뭐, 그런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초등학교 때부터 어디서 맞고 다니지는 않았다. 엄마, 아빠 없다고 놀리다가 코피 터진 놈이 한두 놈이 아니다.
능력만 돌려달라고 말해볼까?
그냥 능력 하나만 있으면, 더도 말고, 투명인간, 시간 정지 이거 둘 중에 하나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사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데, 한번 말해볼까?
…에휴. 바랄 걸 바라야지.
백 퍼센트 자신하건대, 최소 1년은 벌레 취급당할 거다.
아무튼 할아버지는 패스.
그다음에는?
서현 님. 그리고 강민철 회장님.
솔직히 중앙그룹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강 회장님에게 이번 일을 이야기하고, 복수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강 회장님은 날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과장된 이야기겠지만, 중앙그룹 글로벌전략실의 정보수집능력은 국정원에 필적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정보력에 중앙그룹이 가진 자본력과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제이슨, 그 자식 날리는 거야 일도 아니지. 중앙그룹이 날 대신해 정보를 모으고, 현실적인 제재 방법을 기획하고 실행해 줄 것이다.
사적 제재, 법적 제재를 모두 포함한 방법을 말이지.
솔직히 생각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다. 어찌 보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해결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 도촬범 새끼와 똑같은 놈이 되어버린다는 생각이 드니까.
제이슨 임, 그 도촬범 새끼는 돈의 힘을 이용했다. 변호사를 대동했고, 돈으로 자신의 잘못을 면피하려 했다.
나에게 한 짓도 돈으로 했을 것이다. 설마 그 조폭 같은 놈들이 도촬범과의 끈끈한 우정과 의리로 날 다구리 놓은 것은 아니겠지.
나는 할아버지에게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 기준으로는 주먹질을 해버리는 것이 차라리 사람의 마음에 더 가깝다.
콩밥 먹을 각오를 하고 패버렸으면 패버렸지, 강 회장님의, 중앙그룹의 힘은 사용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
오후 면회시간인 오후 7시 반이 되자, 지연이가 친구 녀석들과 같이 병실로 올라왔다.
친구 놈들 중 누가 무슨 이상한 소리를 했는지, 황도까지 사 들고 왔다.
뭐야. 쌍팔년도도 아니고 황도라니. 아니, 황도 맛있긴 하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만난 지연이는 침착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좀 섭섭한데?
오빠~ 으아아앙~ 하면서 울음을 터트리는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면 지연이는 그렇게 잘 울고 그러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 그 사물함 사건 때도 고개 숙이고 있길래 우는 줄 알았더니 망치로 사물함을 두들겨 팰 생각을 하고 있지를 않나, 도촬범 그 개자식이……. 생각하니 또 열 받네. 아무튼, 그 자식이 변호사 대동하고 와서 억울한 소리 할 때도 눈가에 물기는 촉촉했지만 울지 않았지.
이 녀석은 잘 울지를 않는 녀석인가 보다. 지금 눈동자에 감정이 담겨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 감정을 눈물이나 표정 같은 것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아무튼 지연이는 들어와서 황도 캔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내 간식 창고에 추가하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그 녀석에게 요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물론 검열은 했지. 잔혹한 집단 폭행은 그냥 애들 싸움처럼 묘사했고, 코뼈가 부러졌었다는 이야기도 빼버렸다.
그냥 도촬범이 동네 양아치들 데리고 와서 ‘까불면 죽는다’ 뭐 요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대충 순화해서 이야기해주었지.
“…그래서 너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거야. 당분간은, 아마 많이 불편하겠지만 집에는 좀 일찍 들어가고, 그리고 좀 늦게 들어가게 되면 선배들이랑 같이 가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지연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이후로 지연이는 아무 말이 없다. 그 녀석의 시선 끝에는 내 왼팔을 향하고 있다.
크흠…. 이것 좀 불편하구만.
“그. 그럼 지연아. 저기 초콜릿 있는데 그거라도 좀….”
“오빠.”
어색함을 깨기 위해 지연이에게 초콜릿을 권하려 하는데 지연이가 말을 걸었다.
“응?”
“그 사람도 관계있나요?”
“그 사람?”
“지수… 선배 남자친구요.”
생뚱맞은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다.
김민우? 그 자식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오지?
“김민우?”
“저 얼마 전에 봤어요. 오빠가 그 사람이랑 싸우는… 다투는 모습을요.”
다투었다고? 내가?
“잠깐. 그 이야기 좀 자세하게 해볼래?”
뒤에서 지연이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친구 놈들이 말했다.
지연이가 해준 이야기는 이렇다.
학교에서 수업 가는 나를 보고, 놀래켜 주려고 뒤에서 몰래 살금살금 따라왔는데, 내가 김민우 패거리에게 끌려가 멱살 잡히고, 협박당하고 했다는 이야기를.
협박? 나 협박당했어?
“협박?”
“그때 그… 사람이 오빠에게 밤길 조심하라고 그렇게. 그런데 그때 도촬범이 사과하겠다고 왔을 때도, 그 사람 같이 있었는데, 그때 그런 이야기 하니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학교에서 김민우가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충고 하나 해주지. 길 건널 때 좌우 잘 살피고, 밤길 조심하라고.
김민우 그 자식의 이야기가 이번 사건에 대한 일종의 예고 아니었을까? 아니, 일부가 아니었을까? 계획단계에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