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66화 (66/271)

66 : 금요일 밤의 광기 (3)

자정에 가까운 늦은 밤, 보라매병원 응급실 입구 앞을 서성이던 사람들의 고막에 차량이 급제동을 하는 날카로운 고주파 음이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곳으로 향했고, 뒤이어, 거세게 열린 차 문밖으로 뛰쳐나오는 젊은 여자를 볼 수 있었다.

가벼운 옷차림,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절박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였다.

강서현이었다.

대충 보이는 빈자리에 차를 세운 강서현의 심장은 신체에 무리가 갈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러나 강서현은 그런 심박 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응급실 사인이 보이는 곳으로 전력을 향해 뛰어갔다.

30분 전, 전화를 받기 전까지, 강서현은 평범한 금요일 밤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몇 주간 그녀가 보냈던 그런 평상시의 금요일 밤은 아니었다.

요 몇 주간 그녀가 보냈던 금요일 밤은 동거인과 저녁을 만들어 먹고, 아직은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맡으며 서울숲을 산책하고, 집에 들어와 따뜻한 캐모마일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런 밤이었다.

그런 밤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기에, 퇴근 후 집에 돌아오는 서현 님의 머릿속에는 그를 위해 무엇을 만들어 줄지, 그와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동거인으로부터 저녁을 먹지 못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그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최대한 일찍 들어가겠다는 동거인의 말에는 미안한 감정이 담뿍 담겨있었다.

강서현은 그런 동거인이 미안해하지 않도록, 혹시라도 그가 자신의 섭섭함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감성을 숨겨 말했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고 재미있게 노세요.

그렇게 말했지만 섭섭한 마음은 그녀가 어찌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강서현은 적당히 씻고, 적당히 옷을 갈아입고, 적당히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는 조용한 거실에 앉아 책을 펼쳐 들었다. 하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강서현은 얼굴을 살짝 찡그린 채 책에 집중하다가, 결국 책을 덮어버렸다.

그리고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퇴근 후에 저녁을 대충 챙겨 먹고, 조용한 거실에 앉아 차 한잔과 함께 책을 읽는 금요일 밤은 그녀의 일상이었다.

유학 시절부터 그녀는 이처럼 고요한 금요일 밤을 사랑했다. 금요일 밤의 화려한 파티보다는 책과 함께하는 고요함이 좋았다.

그런 그녀가 지금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불과 몇 달, 그 짧은 시간에 그녀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강서현은 다시 책을 펼쳤다. 그리고 평소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억지로 글자를 읽었다.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고, 그래도 차 한 잔은 마실 수 있겠지 하면서 책을 보던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의 동거인의 전화가 아니었다.

변호사, 그녀의 동거인이 자취방에서 성수동으로 집을 옮길 때, 법적 절차를 밟아주었던 그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청년의 친구들이 강서현에게 연락하기 위해, 청년이 머물던 자취방 할머니에게 연락을 했고, 자취방 할머니가 변호사의 명함을 찾아 번호를 알려주었다.

한수라는 청년이 심하게 다쳤다. 누군가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친구들에게 발견되어 급하게 보라매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강서현은 변호사로부터 내용을 전해 들었지만, 그녀의 머리에는 두 개의 문장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가 심하게 다쳤다. 보라매병원.

강서현은 자신이 무엇을 입고 있는지도 모른 채, 차 키를 들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어떻게 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차를 몰아, 보라매병원에 단숨에 도착했다.

그리고 응급실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응급실 입구, 환자 대기실에 도착한 강서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의 친구들이었다.

***

김창회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놈들일까. 왜 그랬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의 팔을 누군가가 덥석 잡았다.

김창회가 채 시선을 돌리기도 전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수 씨는요?”

김창회는 여자를 보았고, 그 여자가 얼마 전 축제 당시 한수를 찾아온 강서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창회가 뭐라 말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디 있나요? 한수 씨는 어디 있나요? 많이 다쳤나요?”

질문에 대답한 것은 박승환이었다.

“한수는 지금 치료받고 있어요.”

강서현의 시선이 박승환에게로 향했다. 뒤이어 그녀의 팔도 박승환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된 거죠? 아니. 얼마나 다친 거죠?”

“일단. 여기 앉으세요.”

박승환은 감정이 요동치는 강서현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강서현은 박승환의 말에 만족하지 못했다.

강서현의 시선이 박승환에게서 굳게 닫혀있는 응급실 문을 향해 움직였다.

강서현은 직접 확인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친구들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지금 당장 한수를 봐야겠다고, 그의 상태가 어떠한지 확인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마음먹은 강서현이 막 응급실을 향해 몸을 옮기려는 그 순간, 박승환의 말이 그녀를 붙잡았다.

“지금은 들어갈 수 없어요.”

강서현의 시선이 다시 박승환을 향했다. 그녀의 시선에는 분노가 담겨있었다.

“한수는 치료받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지금 들어간다 하셔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저희도 마찬가지라서 여기에 있는 거고요.”

박승환은 분노 서린 강서현의 눈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강서현은 여전히 숨이 차 온몸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심장은 여전히 온몸을 울리며 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울렸다.

맞는 말이다. 그의 말이 맞다. 그의 말이 맞지만.

“하지만.”

강서현이 말했다.

박승환은 강서현의 어깨를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다. 그런 의미를 담아.

“하지만…….”

강서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렇게 고인 눈물이 조금씩 맺히더니 방울져 흘러내렸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강서현은 계속 그렇게 말하며 박승환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일단 앉으세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던 이중훈이 그런 강서현에게 다가와 자리를 권했다.

강서현은 이번에는 권유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더 울고 싶었지만, 억지로 그 감정을 찍어 눌렀다. 등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떨림이 조금씩 잦아드는 것을 확인한 박승환이 입을 열었다.

“한수는….”

두 손으로 감싼 강서현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직 눈물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박승환을 바라보았다.

“한수는 우리와 술을 먹다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나갔어요.”

강서현은 한쪽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지금 울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가고 5분 정도가 흘렀는데, 그때까지 한수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저 통화가 길어졌다고 생각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서현은 마음속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가 다치는 그 순간에, 친구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 사실도 모른 채 술을 먹고 있었다.

박승환은 분노가 서린 강서현의 눈동자를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가 밖으로 나갔다가, 골목에 쓰러져 있던 한수를 발견했어요.”

박승환은 몇 시간 전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본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강서현은 소리치고 싶었다.

왜 몰랐냐고, 한수가 그렇게 다칠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눈앞에 있는 한수의 친구를 원망하는 대신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다친 거죠? 한수 씨는 얼마나 다친 건가요?”

누가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한수가 얼마나 다쳤냐는 것이다.

박승환은 강서현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그 분노를 꾹꾹 눌러 참아내고 있음도 알았다.

“저희도 아직 알지 못해요. 확실한 것은, 얼굴에 출혈이 있고…. 팔이 부러졌어요.”

강서현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얼굴에 출혈이 있고, 팔이 부러졌다고?

강서현의 마음속에서 슬픔과 분노가 막 터져 나오려고 할 때, 굳게 닫혀있던 응급실 문이 열렸다.

강서현을 포함해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한수 씨 보호자 분 계십니까?”

열린 문 사이로 나타난 의사가 말했다.

“네! 여. 여기요.”

대답한 것은 이중훈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빨리 의사에게 다가간 것은 강서현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여자를 포함해 건장한 남자 4명이 자신에게 달려들었지만 응급실 의사는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법적 보호자 분 계십니까?”

의사가 말했다.

“제가 법적 보호자입니다.”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강서현이 말했다.

“혹시 환자분과의 관계는…. 아닙니다. 우선 말씀드리죠.”

뭔가를 물어보려던 의사는 그녀의 눈물 범벅된 얼굴과 목소리를 보고 말을 이었다.

“우선….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호자 분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수술이요?”

그렇게 소리 내어 외친 것은 이중훈이었지만, 이중훈을 제외한 다른 사람도 다들 마음속으로 같은 말을 외쳤다.

수술이라고?

“우선 짧게 말씀드리면, 현재 환자의 상태는 비골, 그러니까 코뼈가 골절되었고, 갈비뼈도 부러진 상황입니다. 얼굴을 포함해 온몸에 타박상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부분은 좌측 하완, 그러니까 왼쪽 팔에 발생한 복합골절입니다. 수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강서현은 아찔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쓰러지도록 두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정신력을 모두 모아, 정신을 바짝 잡았다.

“지금. 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하나요?”

의사는 강서현을 바라보았다.

특이한 보호자였다.

울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눈빛이나 목소리는 눈물과는 어울리지 않게 침착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기는 합니다만. 아주 응급상황은 아닙니다.”

의사에 말에 강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하지만 침착한 눈으로 의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환자를 옮기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옮긴다…라. 뭐.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만, 추천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환자 상태도 그렇고, 또 지금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강서현에게 다른 말은 들리지 않았다.

불가능하지 않다. 그 말이 중요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앰뷸런스를 요청 드립니다.”

강서현이 말했다.

“그런데 어디로 옮기실 생각이신가요?”

의사가 물었다.

환자를 어디로 데려가겠다는 이야기지?

“중앙 서울 의료원입니다.”

강서현이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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