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 금요일 밤의 광기 (2)
흔히 명치라고 불리는 검상돌기는 낭심과 더불어 대표적인 신체의 신체 급소 중 하나다.
아니, 위험도로만 본다면 낭심보다 더욱 치명적인 급소가 바로 검상돌기였다.
검상돌기는 흉부와 복부의 연결 부위에 위치한다. 그 말은 흉근이나 복근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근육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은 낭심과 같았지만, 낭심과는 달리 검상돌기에 가해진 충격은 심정지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었다.
심정지라는 최악의 결과를 피한다고 해도, 검상돌기에 가해진 충격은 상대방을 무력화시키기에는 충분하다. 충격은 그대로 장기를 자극하고, 자극은 호흡계를 마비시킨다.
쉽게 말해 숨이 턱 하고 막힌다.
나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명치에 충격을 느끼자마자 가장 먼저 숨이 턱하고 막혀버렸다. 가장 기본적인 생명유지 활동인 호흡이 멈추고, 자연스럽게 신체의 통제력을 상실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그저 신경계를 타고 흐르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는 수밖에 없었다.
내 움직임이 멈추자, 무언가가 내 손을, 정확히 말하면,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쳐버렸다.
내 손에서 벗어난 핸드폰은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한다는 듯, 누군가가 바닥으로 떨어진 핸드폰을 발로 강하게 차 버렸고, 내가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골목 깊은 곳의 어둠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마치, 미리 써놓은 시나리오에 따라 합을 맞추는 액션 씬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시나리오를 숙지하지 못한 유일한 사람인 나는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핸드폰을 보면서,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명치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통각과 숨이 막히는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때 무언가가, 아니, 누군가가 내 머리카락을 잡았다.
머리카락이 뽑히는 듯한 고통을 채 느끼기도 전에, 내 머리카락을 잡은 손이 강한 힘으로 내 머리를 밑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그 동작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니 킥(Knee Kick).
무릎으로 내 얼굴을 찍어버리겠다는 의도였다.
팔꿈치와 더불어 인체에서 단단한 부분이 무릎이었다. 무릎으로 얼굴을 찍히면 명치를 맞은 것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나는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막아보려 했다.
그러나 아직 나는 내 몸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지 못했고, 빠른 속도로 솟구쳐 올라오는 누군가의 무릎이 강한 힘으로 끌려 내려가는 내 얼굴, 정확히 내 코를 강하게 찍는 것을 막지 못했다.
설사 통제력을 회복했다고 해도, 팔이 내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하더라도, 막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무릎 찍기였다.
내 얼굴 안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 무언가가 조각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내 몸은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버렸다.
명치, 코, 그리고 바닥에 강하게 부딪힌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내 온몸을 휘저었지만, 나는 있는 힘을 모아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안고, 온몸을 최대한 강하게 말았다.
본능에 따른 움직임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고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본능이 경고한 것처럼, 내 몸 위로 여러 사람의 발길질이 마구 쏟아졌다.
날카로운 구두 앞코가 내 옆구리에, 두꺼운 구두 굽이 내 어깨에, 단단한 구두 바닥이 머리를 감싸고 있는 내 팔을 마구 강타했다.
발길질 하나하나마다 버틸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이 따라왔지만, 나는 머리만은 보호하겠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잔인한 폭행을 버텨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체감상으로는 수 시간은 족히 될 것 같은 발길질이 누군가의 말소리와 함께 끝이 났다.
“그만. 이제 그만해.”
그 말과 함께, 내 몸에 가해지던 충격이 순식간에 멈추어버렸다.
발길질은 끝났지만, 그게 고통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온몸의 신경계를 태워버릴 듯 타고 날뛰는 고통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나는 당장에라도 의식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의식을 놓아버리면, 당장 이 죽을 것 같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아니, 확실히 그럴 수 있기에, 의식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의식을 놓아버리는 대신, 얼마 없는 정신력을 끌어모아 날아가려는 의식을 억지로 붙잡았다.
이대로. 이대로 의식을 놓아버리면 안 될 것 같았기에.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이 누군가의 발소리에 의해 깨졌다.
누군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나는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질끈 감은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직 내 머리를 감싸고 있는 두 팔의 틈 사이로 나에게 걸어오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골목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미약한 역광 때문에 검은색 윤곽으로만 보이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 흐릿한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렇게 내가 쓰러져 있는 곳 두어 발 앞까지 다가온 남자의 발이 멈추었다.
“…….”
남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내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다쳤는지를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실루엣은 누굴까? 왜 나를 습격한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재빨리 그 의문을 털어버렸다.
지금 저 남자가 누군지, 왜 나를 습격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 폭행이 계속 이어질지, 이어진다면 얼마나 이어질지를 판단하기 위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었다.
나는 초점이 맞지 않는 시선으로 남자의 실루엣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 정도면?”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금 전, 그만하라고 했던 그 목소리였다.
이 정도면?
그게 무슨 의미일까?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여전히 흐릿한 시선에 새로운 실루엣이 보였다.
처음 보였던 실루엣보다 조금 더 왜소한 실루엣.
새롭게 나타난 실루엣은 나에게 다가와 천천히 자세를 굽혔다.
마치, 내가 얼마나 다쳤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겠다는 듯.
“개새끼야.”
새로 나타난 실루엣이 말했다.
나에게 말했다.
나는 머리를 감싸고 있는 팔을 살짝 풀었다.
그리고 조금 더 확장된 시야로 새로운 실루엣을 바라보았다.
“내가 죽여 버린다고 했지?”
여전히 실루엣의 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도촬범. 그 새끼.
“좆같은 새끼야. 씨발 좆도 아닌 게, 왜 씨발 사람 성질을 건드려. 개씨발 새끼야. 퉤.”
존재를 드러낸 도촬범은 그렇게 욕설을 퍼부으며 나에게 침을 뱉었다.
살짝 열린 두 팔 사이로 그 침이 내 머리에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병신아. 이건 너가 다 자초한 거야. 알아? 너가 자초한 거라고.”
도촬범이 말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제이슨.
제이슨 임.
그래. 제이슨 임.
“나는 한다면 해. 죽여 버린다고 했지? 그러면 난 죽여. 이 개씨발 좆같은 새끼야.”
제이슨 임, 병신 같은 도촬범이 계속 떠들고 있다.
이 새끼였구나. 이 새끼가 시나리오를 썼구나.
아니, 시나리오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작은 이 새끼다.
나는 입을 열어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다.
하지만 피와 체액으로 막혀버린 코 때문에 제대로 호흡을 할 수가 없었고, 웅얼웅얼 거리는 소리만이 나올 뿐이었다.
“허. 이 좆같은 새끼야. 뭐라고? 씨발놈아, 제대로 씨불여봐.”
내 웅얼거림을 들었는지 도촬범이 말한다.
그 목소리에 승자 특유의 거만함이 담겨있다.
나는 힘을 내어 코를 빨아들였다.
비릿한 무언가가 비강을 통해 입으로 넘어왔다. 힘들게 그것을 뱉어낸 나는 조금 편해진 호흡으로, 도촬범 새끼가 들을 수 있도록 최대한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죽여봐. 이 병신 새끼야.”
보이지 않았지만, 도촬범의 얼굴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간청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겠지. 살려달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 기대했겠지.
좆까. 절대로 내 입에서 간청을 듣지 못할 거다. 설사 내가 오늘 죽는다 하더라도.
내 말을 들은 도촬범은 잠시 말이 없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몸을 일으키는 그의 손에 길쭉한 무언가가 들려있다.
“이 미친 새끼가 아직도…. 그래. 죽여줄게.”
나는 살짝 벌렸던 팔을 다시 모아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최대한 힘을 주어 다시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해봐! 이 새끼야!
그 순간 강력한 충격이 내 팔을 강타했다.
“으아아아악!”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팔로 머리를 감싸지 않았다면, 분명 두개골이 함몰되었을 정도의 강한 충격이 내 팔 위에 작렬했다.
본능적으로 팔이 부러졌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팔을 내리면 안 된다.
내 이성이, 본능이 그렇게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만해!”
중년 남자의 목소리.
“충분해. 이 정도면.”
그만하라고 했던 목소리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촬범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다시 한번 발길질이 내 머리를 향해 날아왔고, 부러진 팔이 그 발길질을 받아냈다.
나는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참고 싶었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치, 고압의 전류가 팔을 타고 내 온몸 신경계를 태우는 듯한 고통 때문에, 도저히 고함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너 이 새끼. 오늘이 끝이 아니야. 기다리고 있어. 나는 한다면 하니까. 퉤.”
도촬범의 목소리가 들리고, 내 머리에 다시 침이 떨어진다.
저벅저벅.
그리고 멀어져 가는 발소리.
누굴까. 도촬범? 아니면 중년 남자?
“좀 자라.”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턱에서 느껴지는 강한 충격,
나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고기 쟁탈전을 벌이던 박승환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5분.
한수가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 후 5분이 지났다.
5분.
애매한 시간이다.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다 보면 5분 정도는 순식간에 흘러간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과 통화하기에 5분은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다.
박승환은 한수의 마지막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모르는 번호인 것 같았고,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 통화를 하고 있다면, 모르는 사람과 5분 넘게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박승환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손은 생각과는 달리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있었다.
“어디가?”
박찬희와 등심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던 이중훈이 그런 박승환을 보며 물었다.
“어. 잠깐. 담배 한 대 피려고.”
박승환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중훈이 그런 박승환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기를 눈앞에 두고 담배를 피우러 간다니.
이중훈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박승환은 뭐라고 한마디 할까 하다가 말없이 식당 밖으로 나왔다.
금요일 밤의 신림동 번화가는 사람들로 흥청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가득 들어찬 사람들 중 한수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화장실에 갔나?
그렇게 생각하며 막 몸을 돌리려던 박승환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근육질의 몸매를 감싼 검은 양복, 짧은 머리, 그리고 날카로운 인상을 하고 있는 중년 남자.
아는 얼굴이었다.
혹시?
박승환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남자도 박승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그 순간 박승환은 확신했다.
아는 사람이다. 그 남자다.
중년 남자는 잠시 박승환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저 인간이 왜….”
박승환은 중년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무언가가 떠오른 듯, 재빨리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식당 옆으로 이어진 어두운 골목 입구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