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 있다가 없으면 더 서럽다 (5)
수업 중에 꾸벅꾸벅 졸았다.
점심 먹고 한 시부터 시작하는 수업이 원래 좀 졸리기는 한데, 오늘은 유난히 힘들었다.
식곤증 때문일까? 아니면 탐스러운 애플힙에 맞은 주사 때문에?
아니면…. 그 능력이 사라져서?
내가 원래 체력 만빵에 낮잠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인데, 그게 능력 빨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네.
애초에 몰랐으면 그냥 아프구나. 피곤하고 졸립구나 하고 말 텐데, 막상 능력이 사라지고, 몸살 걸려 아파보니 그동안 내가 아프지 않았던 것도, 피곤함을 몰랐던 것도, 전부 다 능력 덕분이었고, 그 능력이 사라짐으로써 내가 그저 평범한 일반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절실하게 와닿는다.
뭐랄까. 마치, 로또 1등에 당첨되어서, 아싸 이제 난 걱정 없어! 그렇게 마음 놓고 있다가 로또 용지를 잃어버린 그런 기분이랄까?
와. 비유치고는 너무 끔찍한데.
아무튼 애초부터 없었으면 모르겠는데, 있다가 없으니까 더 서러운 그런 기분?
아니, 뭐 그건 그렇다 쳐도, 능력이 없으면…. 설마, 서현 님에게 버림받는 건 아니겠지?
아니. 뭐, 어젯밤 서현 님이 괜찮다고, 능력 없어도 괜찮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시긴 하셨는데, 사람 마음은 모르는 거잖아.
아니, 나와 유대관계를 구축한 서현 님은 괜찮다고 해도, 할아버지에게 ‘충성! 충성! 충성!’모드인 강 회장님이 ‘능력을 잃었다고? 네 이놈 내 귀한 손녀에게서 당장 떨어지거라!’ 하시는 거 아닐까?
그리되면 서현 님과 함께 살던 성수동 주상복합에서도 쫓겨나고, 하숙집에도 못 돌아가고, 남은 곳은 진철이 형 고시원뿐인가?
어쩌지? 어째야 하지?
***
아무튼, 그거는 그거고, 일단 한 시간 공강 후에 유 선생님 수업 들어가야 하니 일단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 존경하는 유 선생님의 명강의를 듣는데, 쓸데없는 생각으로 그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지.
정신 차리기 위해서, 카페인이라도 충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박승환이랑 같이 교내 커피집으로 가고 있다.
박승환이 저놈은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이상한 노래를 흥얼흥얼거리고 있다.
저게 박승환의 이상한 습관이다. 가끔씩 얼토당토않은 가사로 노래를 만들어 흥얼거린다.
지금 흥얼거리는 노래도 가사를 잘 들어보면 스테로이드에 중독된 창회는 근육을 얻기 위해 발기부전을 선택했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문제는 가사는 둘째 치고 음률이 또 그럴싸하다는 거다. 쉽게 말해 중독성이 있다.
옆에서 생각 없이 듣다 보면 이게 은근히 머릿속에 박혀버린다. 그렇게 박힌 노래가 전염병처럼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조심해야지. 혹시라도 무의식적으로 저 노래를 창회 앞에서 흥얼거렸다가는 살아남기 힘들겠지.
아무튼 박승환이 저놈은 진짜 신기한 녀석이다.
이상한데 재능이 있다. 잡기도 많고, 쓸데없는 잡지식도 많다.
나도 서점 손자니까 쓸데없는 잡지식이라면 어디 안 빠진다고 자부하는데, 이 자식은 정말 그 범위도 넓고, 또 은근히 깊다.
뭐 이야기 듣자니 고2 때 이과에서 문과로 전향했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수학이나 과학 전반에 대한 지식도 상당하다. 저번에는 심심하다고 영어로 된 수학책을 보고 있었지.
아무튼. 박승환이 저 자식은 언젠가 뉴스에 이름이 나올 거야. 나쁜 쪽으로. 분명히.
“그나저나 그 자식 말이야.”
김창회의 번식능력을 디스하던 노래를 흥얼거리던 박승환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그 자식?”
“도촬범.”
“그 자식이 뭐.”
“할머니가 왔다고 했지?”
“그랬지.”
“느낌이 쎄한데.”
박승환이 그렇게 말한다.
느낌이 쎄하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정확한 표현일지도.
“뭐랄까. 저번에 이야기 들은 거랑 너무 갭이 크지 않냐? 왜 저번에는 그랬다며. 변호사 옆에 끼고 와서 죽여 버린다 어쩐다 그랬다며?”
“그랬지. 그 미친놈.”
그때 생각하니 갑자기 또 열 받네.
“그런 놈 할머니가 찾아와서 눈물로 사죄를 했다라. 삼류 싸구려 시나리오 냄새가 나는 것 같단 말이지.”
박승환은 그런 이야길 하면서 팔짱을 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류 싸구려 시나리오. 정확한 표현이다.
“뭔가…. 느낌이 싸해. 뭐랄까….”
그러면서 얼굴을 찌푸린다.
“뭐?”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은?”
“재미있는 일?”
“음… 저번에 이야기 들어보니까 그 도촬범 생각보다 미친놈 같던데, 그런 미친놈이 가끔 일을 크게 벌이거든. 그런 일을 강 건너에서 보고 있으면 엄청 재미있지. 아. 저 미친놈이 여기저기 불 지르고 다니는구나.”
그러면서 손을 들어 강 건너를 보는 듯한 모습을 취한다.
“그 미친놈이 불을 지르면, 네놈이 사랑하는 후배인 유지연이나, 친구인 내가 피해를 볼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가?”
내가 그렇게 말했다.
만약 그 자식이 큰 사고를 치려고 한다면 그 목표는 유지연이나 나를 향하겠지.
아마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고치고, 다른 누군가가 해결하고 하는 게.
그러니까 그 사고를 치고도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잠적했을 터이고, 일이 커지고 나서야 변호사를 대동하고 와서 변호사가 다 해결해주길 바랐겠지.
그래. 백번 양보해서 친할머니가 와서 대신 사죄를 했다고 치자.
그럼 이렇게 생각할까? 내가 잘못해서 우리 할머니가 고개를 숙였구나. 이렇게?
아니다. 그 정도 생각이 있는 놈이었다면 이렇게 일을 크게 키우지 않았겠지.
책임을 전가할 다른 누군가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나. 그리고 유지연이 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오싹한데.
“안 되지. 우리 지연이는!”
박승환이 말했다.
“나는?”
“우리 지연이는 안 돼. 큰일 나지. 그럼. 중훈이에게 말해야 하나? 아냐. 그 자식이 더 위험한데. 지연이에게는.”
“야 이 자식아! 나는?”
“역시 창회뿐인가? 그 녀석은 사람이 아니니까 칼 한두 방 맞아도 끄떡없긴 할 텐데. 스테로이드 때문에 성 기능도 퇴화했을 테니까, 그놈이 제격인가.”
“너 함부로 그런 말 하다가 창회에게 진짜 죽는다. 근데 나는!”
“안 되지. 우리 지연이는. 다치면 인류의 손실이다.”
나는 박승환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발끝을 세워서.
***
커피를 마시고, 다시 강의동으로 올라갔다.
유 선생님 수업을 안 듣는 박승환이는 여전히 중독성 있는 김창회 디스 곡을 흥얼거리며, 게임방으로 갔고, 나는 외로이 강의실로 향해갔다.
박승환이랑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더니 뭔가 기분이 찝찝하다.
설마. 날 노리려나? 기왕이면 좀 덜 다치게 노렸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밤길에 날 찾아오면 아주 조심스럽게 살짝 맞아야겠다.
그리고 데굴데굴 구르는 거야.
그게 다 돈이다. 합의금이다.
후후후.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알려주지.
디스! 이즈! 캐피털리즘! 호!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강의실로 가고 있었다.
걸어가는 나의 눈에 길에서 시시덕거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그 무리 중 한 놈이 내 눈에 들어왔다.
김민우.
내 전 여자 친구였던 신지수의 현재 남자친구.
그 자식이 벤치에 앉아서 패거리 놈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은 재수가 없군.
왜 그런 거 있잖아.
길을 걷다가 저 멀리 길가에 무언가가 있는 것을 봤는데, 그게 똥 같단 말이지. 저건 똥인데, 분명 똥 같은데. 그래서 안 보고 싶은데. 결국 확인하게 되는 그런 거.
김민우 같았는데, 그냥 못 본 척하고 말걸, 결국 그 자식이 맞는지 확인하게 되는 그런 상황.
에이. 젠장. 수업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 가서 눈 좀 씻고 가야 되겠다.
하필 저놈을 봐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패거리에 신지수가 없다는 거. 도촬범 그놈도 없네.
뭐 사실 신지수가 있다고 해도 뭐. 사실 지금의 나라면 그다지 대미지 안 입을 것 같다.
솔직히 요즘 같아서는 신지수에게 별 감정도 없다.
예전 같았으면, 저 패거리의 그림자가 보이자마자 자리를 피했을 거다.
그것도 이제 옛날이야기다.
뭐. 시간이 약인지, 아니면 서현 님 덕분에 마음의 평화를 찾아서 그런 것인지.
뭐 내가 신지수 그 녀석이랑 결혼을 했던 것도 아니고. 누구 말마따나, 만나고 헤어지고 그런 거 일상다반사인데, 언제까지 괴로워하고 미워하고 그러겠나.
아무튼, 신지수 그 녀석, 그 녀석도 뭐 나름 벌 받았지.
승환이나 창회나 다른 녀석들하고는 그래도 나 없을 때는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하는 것 같더만, 뭐 그렇다고 해도 어찌 되었건 매일 같이 붙어 다니던 동기 녀석들이랑 멀어진 것도 사실이고.
뭐 사실 그게 내 잘못은 아니지. 내가 ‘나랑 놀 꺼면 신지수 그 녀석이랑은 놀지 마!’ 그렇게 유치하게 왕따 시킨 것도 아니고.
한편 신지수와는 별개로, 김민우 저 자식에게는 여전히 감정이 남아 있다.
특히 나를 볼 때 저 자식의 표정. 재수 없게 웃는 표정을 보고 있자면 물리력을 쓰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다.
물리력을 쓰고 싶다. 그게 가장 정확하다.
그냥 복면이라도 뒤집어쓰고 어디 밤길 으슥한 뒷골목에서 패버릴까? 패도 되는 것 아닐까?
나 능력 있잖아.
아니지. 없구나. 나 그냥 일반인이구나.
아. 갑자기 또 열 받네.
아무튼 똥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그렇게 마음먹고 김민우 패거리를 지나치는데!
“어이.”
그런 말이 들린다.
어이?
“어이. 거기 후배.”
다시 들리는 목소리.
김민우의 목소리다.
어이?
어이가 없네. 어처구니가 없어.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 특유의 여유 있는 승자의 표정으로 날 보며 웃는 김민우의 얼굴이 보였다.
허허허. 저 자식 보게.
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그 자식에게 다가가며 속으로 말했다.
시간아. 멈춰라.
물론 시간이 멈추지는 않았다.
젠장. 있다가 없으니 더 서럽네.
아무튼,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김민우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고, 그놈 자식 두어 발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김민우의 얼굴에서 조금 전 보였던 웃음이 사라진다.
이 새끼. 딱 알겠다.
지 패거리랑 함께 있으니 든든했겠지. 그래서 충동적으로 날 부른 거다.
내가 못 들은 척 지나치면 지들끼리 낄낄거릴 생각이었는데,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맞받아칠 줄은 몰랐겠지.
얼굴에 드러난 저 당황스러움이 내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아오. 이 새끼를 어떻게 한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턱에 훅이나 두어 방 멕였으면 딱 좋겠는데.
때릴까? 그냥 때려버릴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김민우 옆에 있던 똘마니 하나가 슬그머니 내 앞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이 자식은 뭐야? 이 새끼. 참 똘마니처럼 생겼다. 캐릭터 확실하네.
나는 똘마니에게서 시선을 돌려 김민우를 바라보았다. 지금 똘마니까지 상대하기엔 내 심력이 충분하지가 않으니까 말이지.
“야.”
내가 김민우를 보며 말했다.
반응을 보인 것은 똘마니였다.
“너. 이 자식이 감히 선배한테.”
나는 다시 똘마니를 바라보았다.
제 딴에는 최대한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내 눈에는 그저 똘마니3 정도의 엑스트라일 뿐이다.
나는 다시 김민우를 보며 말했다.
“야. 이거 좀 치워. 입 냄새가 너무 난다.”
내 말에 김민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 숨어있는 당황스러움은 감추질 못하네.
“비켜줘.”
김민우가 말하자 똘마니는 똘마니답게 바로 얼굴을 치운다.
고놈 새끼. 말 잘 듣네.
“왜?”
내가 물었다.
“인사나 하려고.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김민우가 말했다.
인사 같은 소리 하네. 우리가 인사할 사이냐?
하지만 여기서 화를 낸다면 그건 하수지.
“그래. 반갑네. 저번에 도촬범 네 친구랑 같이 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버버한 표정 짓던 그날 이후 처음 보는 거지?”
가벼운 도발에 김민우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진다.
뭐야. 가벼운 잽인데 이렇게 효과적이라고?
그리고 내가 던진 잽은 단순히 김민우에게만 먹힌 것은 아니었나 보다.
“이 자식이!”
김민우 패거리 중 한 놈, 패거리에서 무력을 담당하는 놈인지, 덩치가 김창회 보다 조금 작은 덩어리 한 놈이 내 멱살을 잡는다.
나는 멱살을 잡혔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고 눈빛으로 김민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덩어리, 우리 학교 학생 아니지?”
내 말에 김민우의 눈빛이 흔들린다.
역시 맞았군.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공부 좀 한다는 놈들이 모인 곳이 바로 한국대다.
잠잘 시간 쪼개가며 공부한 놈들만 모인 곳인데, 저렇게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저놈이 우리 학교 학생일 리가 없다.
아니. 생각해보니 김창회가 있었군.
아니지. 김창회는 전부 근육질이잖아. 근데, 이놈은 김창회 같은 밀도 높은 근육이 아니다.
어디 개 사료라도 처먹었는지, 지방질과 섞여있는 근육이다.
뭐 아니면 말고.
“도촬범에, 조폭에. 좋은 친구들 많이 알고 있네.”
내가 다시 김민우를 보며 이죽거렸다.
내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무섭지 않다.
백주 대낮에 캠퍼스에서 지가 어쩔 건데?
어디 법치주의와 자본주의의 무서운 맛 좀 볼 텐가?
아니, 설사, 어두운 밤 골목길에서라도 전혀 무섭지 않다.
내가 유 선생님에게 감화되어서, 저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고, 제대로 공부 시작하기 전까지, 싸움이라면 진짜 수도 없이 한 몸이야.
유치원 다닐 때 엄마 없다고 놀린 놈들부터 시작해서 내 주먹에 코피 터진 놈들 모으면 사열 종대로 연병장 두 바퀴는 껌이지.
지금 멱살 잡은 이놈도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제압할 수 있다.
다리 벌리고 있죠? 바로 무릎 불알 치기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턱에 원투.
싸움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죠. 급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략하느냐가 핵심입니다. 이 부분 시험에 나오니까 꼭 기억해두세요.
김민우 같은 검은 머리 외국인 한 트럭이 와봐라. 내가 쪼나.
잠깐. 한 트럭이면 좀 위험하려나?
아무튼.
“놔줘.”
김민우가 말한다.
하지만 덩치는 여전히 내 멱살을 틀어쥐고 있다.
“놔주라고.”
김민우라 소리치고 나서야 내 멱살이 풀린다.
나는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며 말했다.
“이거. 보는 눈이 너무 많은데.”
내 말에 덩어리는 그제서야 자신이 너무 성급했음을 깨달았는지, 슬그머니 뒤로 빠진다.
오케이. 너는 내가 얼굴 기억해두지.
나는 살짝 늘어난 내 상의를 가볍게 정리하고는 다시 김민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민우야. 내가 충고 하나 해줄게.”
이름을 불렸음에도 기세에 밀린 김민우는 아무런 말이 없다.
“다음부터는 인사 같은 개소리 하지 말고, 나 보이면 그냥 머리 숙이고 못 본척해. 그러면 그냥 너 졸업할 때까지, 네 똘마니들이랑 재미있는 학교생활 할 수 있을 거야. 나도 너 보이면 아. 저기 똥덩어리가 떨어져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시선 돌릴 테니까. 그 정도에서 합의를 보자. 그렇게 하자고.”
내 말에 김민우는 뭔가 분한 표정을 잠깐 보이더니, 바로 그 얼굴에 가식적인 미소를 덧씌운다.
여유 있다. 그런 척을 하고 싶은 거겠지.
“그래. 그렇게 하지.”
김민우의 대답을 들은 나는 몸을 돌렸다.
계속 저놈을 보고 있다가는 저놈의 턱주가리에 주먹을 꽂아놓고 싶은 욕망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런 내 등 뒤로 김민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나도 충고 하나 해주지.”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길 건널 때 좌우 잘 살피고, 밤길 조심하라고.”
김민우가 웃고 있었다.
조금 전 억지로 띄운 가식적인 미소가 아닌, 찐으로 비열한 미소를 띠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