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54화 (54/271)

54 : 능력은 쓰라고 있는 거지 (6)

박진철은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눈앞에 앉아 있는 중년 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게 말하는 박진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중년 여성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한국말이니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몇 시간 전, 박진철은 언제나처럼 고시반에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책의 활자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지만, 내용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최근 그를 괴롭히는 고민과 걱정들에 의해 점령당해 있었다.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향해 걸어가는 아버지, 예정된 슬픔을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들,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병원비.

이대로 계속 공부를 해야 할까?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아니, 시험에 붙는다고 당장 무언가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야. 이럴 때가 아니야.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고민과 걱정은 쉽사리 그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통받고 있던 그때, 전화기가 울렸고, 화면에는 엄마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빨리 병원으로 와달라고 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박진철은 바로 고시반을 뛰쳐나와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중앙의료원으로 가달라고 외쳤다.

박진철의 간절한 목소리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택시 기사는 교통체증이 심한 강남을 이리저리 가로질러 말도 안 될 정도로 짧은 시간에 병원으로 향했다.

택시에서 뛰어내린 박진철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대신, 급하게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과 목구멍 끝까지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병실에 도착했을 때, 박진철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비어있는 침대였다.

비어있는 아버지의 침대.

1초가 한 시간 같고, 1분이 하루 같던 택시 안에서 생각했던 가장 최악의 상황이 그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빈 침대를 확인한 순간 박진철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현기증이 밀려오면서 동시에 참아왔던 욕지기가 다시 밀려 올라왔다.

박진철이 막 그 자리에 주저앉으려는 그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상호 씨 아드님이시죠?”

박진철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몇 번이나 신세를 지고, 몇 번이나 감사를 드렸던 담당 간호사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는 옅게 미소 짓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였다.

박진철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두 어깨를 잡았다.

“저희 아빠는 어디에!”

그렇게 소리 질렀다.

박진철의 그런 과격한 행동에 간호사는 잠깐 놀란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런 경험이 처음은 아닌 듯, 어깨를 잡은 박진철의 두 손을 능숙하게 살짝 잡아 부드럽게 끌어 내렸다.

손을 끌어내렸지만, 간호사는 여전히 박진철의 손을 살포시 잡고서 안정감 주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아버님은 병실을 옮기셨어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박진철은 혼란스러웠다.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오면서, 자신이 생각한 가장 최악의 경우, 비어있는 침대가 눈앞에 있다.

그런데, 간호사는 미소 짓고 있다. 그렇게 미소 지으며, 마치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목소리로 아버지가 병실을 옮겼다고 말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지시를 받아서. 저희도 놀랐지 뭐예요.”

반걸음 앞에서 박진철을 안내하는 간호사가 말했다.

박진철은 그녀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감정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박진철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엄마의 울음 섞인 목소리, 최대한 빨리 와달라는 이야기, 비어있는 침대, 거기에 간호사의 미소와 이유를 알 수 없는 밝은 목소리.

아무리 생각해도 조합이 되질 않았다.

박진철의 혼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몇 층을 더 올라가 새로운 병실에 도착했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상급 병실이었고, 아버지는 잠들어 있었고, 어머니는 침대 옆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중년 여성이 엄마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고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다.

“아드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박진철을 안내한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 감사해요. 이 선생님. 안 그러셔도 되는데.”

박진철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중년 여성이 간호사에게 활짝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아닙니다. 그럼 전 이만.”

그렇게 말한 간호사는 박진철에게 미소를 한 번 더 지어주었다.

박진철은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엄마!”

박진철이 달려가자 어머니는 두 팔 벌려 아들을 안으며 또 눈물을 터트렸다.

“엄마. 왜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야?”

“진철아. 아빠가. 아빠가.”

“아빠가 왜? 무슨 일인데?”

“진철아. 아빠가….”

진철이의 어머니는 말을 잊지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렸다.

그 모습을 중년 여성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박진철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어머님이 많이 격양되셨네요.”

“네? 아. 네”

어머니를 부축해 다시 의자에 앉힌 중년 여성이 명함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사단법인 중앙복지재단. 이사장 강지윤.

명함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잠시 앉을까요?”

명함을 바라보는 박진철에게 중앙복지재단 이사장이라는 중년 여성이 말했다.

“네? 네….”

“놀라셨죠. 우선 간단히 말씀드리면요.”

한쪽에 놓인 소파에 앉자 이사장이라는 중년 여성은 마치 자기 영역인 것처럼 능숙하게 냉장고를 열고 주스 하나를 꺼내 박진철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우선 아버님. 그러니까 박상호 씨가 이번 저희 재단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셨어요.”

“네?

“그러니까 저희 재단에서 치료비를 일부 지원해드린다는 말씀이죠.”

박진철은 혼란스러웠다.

지금 중앙복지재단 이사장이라는 저 중년 여성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아니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버님께서 투병 생활을 오래 하셨더라구요. 저희도 이 사업을 오래 해봐서 아는데, 환자분의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 가족분들도 같이 오랜 시간 동안 고통받으시죠. 심적으로는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박진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겠지만 중앙복지재단과 서울중앙병원은 같은 그룹 소속이에요. 그리고 저희 재단에서는 본 병원에 입원 중이신 환자분들 중 몇몇 분을 선정해서 치료에 더욱 집중하실 수 있도록 치료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다른 병원에서는 ‘키다리아저씨’라고 부르는 프로그램인데,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무튼, 이번에 저희 재단에서는 아버님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중년 여성은 병실을 돌아보았다.

“퇴원하실 때까지 재단에서 치료비의 일부와 2인실을 지원해 드려요.”

“일, 일정 부분이라 하시면…”

“저희 재단에서 80%를 지원해 드릴 겁니다. 그리고 기존에 치료받으신 비용도 장기 분할 납부로 전환될 거예요. 물론 일정 부분을 저희가 지원해드리고요. 알아보니 비용이 조금 밀려있던데요. 앞으로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박진철이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두려웠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일까 봐,

고시반 책상 위에서 깨어 날까 봐.

이 꿈에서 깨어나, 감당할 수 없는 현실로 돌아가 또다시 눈물을 쏟아야 할까 봐.

두려웠다.

박진철은 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그리고 있는 힘껏 자신의 뺨을 꼬집었다.

아팠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다.

아니 실제로 눈이 시려 왔다.

아파서 나는 눈물인지, 아니면 꿈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눈물인지, 박진철은 확실히 알지 못한 채, 흐릿해지는 시선으로 눈앞의 중년 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진철의 그런 모습을 보고 중년의 여성은 입을 가리고 고상하게 웃었다.

“어머. 죄송해요. 어쩌면 그렇게 어머님과 똑같으실까 싶어서. 어머님도 팔을 꼬집으셨거든요.”

“죄…. 죄송합니다.”

박진철이 물기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울지 마.

지금은 아니야.

조금만 더 있다가. 조금만 더 있다가 울자.

그런 생각과는 달리,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기요.”

중년 여성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박진철은 손수건을 받아 재빨리 눈가를 닦아 냈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다음, 눈앞의 중년 여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저희가…. 선정됐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박진철은 눈물을 닦고 손수건을 돌려주며 물었다.

사실은 묻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하고 끝내고 싶었다.

지금 이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요소를 전부 다 차단하고 싶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아프면 그가 가장이다. 모든 부분을 확인하는 일이 그의 의무다.

“물론이죠. 일단 저희가 진행하는 사업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면, 병원에 입원해 계신 환자분들 중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을 추천받아 치료에 전념하실 수 있도록 비용 측면에서 지원을 해요. 그 지원 대상을 교수님들과 간호사 선생님들로부터 추천을 받고, 아버님이 이번에 후보로 추천되신 거예요. 물론 단순히 어려운 분들을 선정하는 것은 아니고, 심사를 하는데, 이번에 아버님은 가족분들의 헌신이 상당히 높게 평가됐기에 지원 대상으로 선정이 되신 거예요.”

“헌신이라 하심은 어떤….”

“긴 병 앞에 효자 없다고 하잖아요? 투병 생활이 길어지시면 보호자분들도 같이 지치시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러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어지는 게 보통이죠. 그런데…. 잠시만요.”

중년 여성은 가방에서 꺼낸 서류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네요. ‘박상호 씨 가족은 수년간 입 퇴원을 반복하는 지난한 투병 과정 속에서도 서로를 지탱하며 버티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평일에는 부인 되시는 분이, 주말에는 아드님과 따님이 항상 환자분 곁을 지키며, 환자분이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이던 따님은, 보조 침대에 엎드려 핸드폰으로 수능 인터넷 강의를 보면서 문제를 푸는 모습이 너무나 대견하고 장해서 스테이션에서도 참 훌륭한 가족이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했습니다.’ 이 내용은 병동 간호사 선생님 중 한 분이 작성해주신 코멘트에요. 아. 스테이션은 간호사 선생님들 모여계신 곳.”

박진철은 결국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다른 이야기라면 몰라도, 동생의 이야기가 결국 그의 감정의 둑을 터트려 버렸다.

오빠 난 대학 안 갈 거야. 취업할 거야. 내가 병원비 벌 테니까, 오빠는 걱정 말고 더 공부해. 죽어라 공부해.

자신의 가슴을 호기롭게 탁탁 치면서 그렇게 말하던 여동생이, 보조 침대에 누워서 들키지 않게 수능 공부를 했을 여동생의 모습이 떠올라서 박진철은 결국 눈물을 후드득 쏟을 수밖에 없었다.

이사장은 건네받은 손수건을 다시 박진철에게 건넸다.

박진철은 그렇게 한참을 울다 고개를 들고 중년 여성을 바라보았다.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담당 교수님께서… 호스피스 병동을…”

“어머. 말씀 못 들으셨나 봐요. 아버님 상태 호전 중이세요.”

2인실을 제공하겠다. 앞으로 병원비를 부담하겠다. 기존 병원비도 지원하겠다는 말보다 더 깜짝 놀랄 말이 박진철의 고막을 때렸다.

“…네?”

“아직 못 들으셨구나. 아버님. 지금 엄청 좋아지셨어요. 짧은 기간은 아니겠지만, 아버님 치료 가능하다고 담당 교수님께서… 어디 보자… 성철훈 교수님이시네요. 종양내과. 성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요. 치료 계속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고. 음…. 이틀 전 진단이네요.”

박진철은 자신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도, 자신의 눈에 눈물이 한가득 들어차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그저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진철아. 아버지 살 수 있단다. 이제 살 수 있대!”

박진철의 어머니가 다시 울음을 터트리며 아들에게 안겼다.

두 팔로 어머니를 받은 아들은 결국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질끈 감긴 그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두 모자를 중앙복지재단 이사장 강지윤은 따스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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