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 어디? 로스쿨? (2)
대화라는 이름의 일방적인 폭력에 갑자기 내가 뛰어들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모였다.
김민우 저 자식도 날 바라보고 있겠지.
일단은 신경 끄자. 지금은 눈앞에 이 변호사에게 집중!
“누구?”
변호사가 짜증이 묻어 있는 표정으로 물어본다.
“유지연 선배입니다.”
내가 말했다.
선배라는 말에, 변호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어이없다는, 그런 미소다.
“당사자끼리 대화하는데, 제3자는 빠져 주면 좋겠는데,”
변호사라는 놈이 말했다.
지금 이거 반말이지?
“선배가 하는 이야기가 제 의견이라고 생각하셔도 돼요.”
지연이가 그 변호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목소리에 살짝 물기가 묻어 있기는 했지만, 잘 참았구나.
나는 지연이를 바라보았다.
분함, 억울함, 화남, 그런 표정들이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좋아. 판은 열렸군.
시작해 보자.
“우선. 지금 ‘그쪽’에서는 과실이라고 확정하고 주장하는데.”
나는 도촬범 자식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그 자식의 눈을 바라보자, 그 눈에서 감정이 화악 하고 피어오른다. 분노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그런 감정이.
생각한 것보다 더 쓰레기였군.
“그 주장을 입증할 수 있나요?”
나는 쓰레기의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입증? 무슨 입증 말이지?”
대답한 것은 변호사였다.
그렇겠지. 그나저나 변호사 이 양반 계속 말이 짧네?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냥 여러 사진을 찍던 중 우연히 사진이 찍혔다는 그 이야기와, 더 말도 안 되는, 우연히 버튼이 눌려서 SNS에 업로드되었다는 그 이야기 말입니다. 입증된 건가요? 입증할 수 있나요?”
“…입증하고 말고 할 게 없지. 사실인데.”
변호사 놈이 말했다.
그 목소리에 긴장이 담겨 있다.
알겠군. 이제 알겠어. 변호사 놈은 이번 일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변호사라는 타이틀, 상대방은 대학교 1학년 여학생, 적절한 합의금.
그 정도면 아무런 문제없이 일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테고, 그래서 처음부터, ‘도촬은 과실’이라는 대전제를 깔았을 것이다.
사람을 빙다리 핫바지로 봤구만!
“그쪽에서 사진을 찍고 SNS에 업로드 되었다는 것이 사실이죠. 그 사진이 그쪽에서 말한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우연 때문이라는 것이 주장이고. 그리고 주장에는 근거가 따라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 주장을 입증할 수 있습니까?”
“…입증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왜 우리가 그래야 하지?”
왜냐고? 니 의뢰인이 스토커 도촬범이니까! 이 비싼 양복 입은 변호사 놈아!
물론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이쪽이 피해자이고, 그쪽이 가해자이니까, 이 자리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자리이니까, 진심 어린 사과인지, 아니면 단순 면피용 사과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내 말에 변호사가 긴장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입증하는 거, 그쪽 말대로 어렵지 않네요. 예를 들어, 그 사진 말고 비슷한 시간대에 같이 찍었다는 사진을 공개하는 방법도 있군요. 지금 막 이야기를 들은 저도 이런 방법이 떠오르는데, 그쪽은 거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나 보네요.”
“…그럴 이유가 없네. 그리고 그 사진은 이미 진작에 지웠고.”
“복구라는 단어는 못 들어 보셨나 보군요.”
내가 말했다.
“말조심해.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당사자도 아니고, 제3자가!”
큰소리가 나왔다.
변호사 뭐, 별거 없구만, 논리에서 밀리니, 큰소리치고 있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이 소리치지 않는 거지. 조용히 녹음 버튼 누르고 조용히 조곤조곤 살을 발라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나는 최선책 대신 차선책을 채택하기로 했다.
도발을 할 거면 제대로, 상처를 줄 거면, 피가 날 때까지!
“당신이야말로 말조심해! 지금 사과를 하겠다는 거야? 협박을 하겠다는 거야?”
“당신? 지금…. 너 뭐라고 했어? 나도 이 학교 출신이야! 그런데 어딜 감히!”
아하. 선배셨어?
잘됐네. 한국대 출신의 변호사. 콧대 높은 우리 선배님 자존심에 깊게 스크래치 한번 내 보자.
“당신 지금 여기 선배로 온 거야? 변호사로 온 거야? 그리고 당신 왜 자꾸 반말이야?”
그래. 선배셨어?
같이 반말하고, 같이 소리칠수록 저 선배가 입는 피해가 크다.
어디서 되도 않는 선배 대접을 받으려고 그래.
콱 죽여 버릴까 보다.
듣고만 있던 선배 누나가 변호사를 보면서 말했다.
“경어를 사용하세요. 지금 사적인 자리가 아니니까.”
누나도 화났다. 저 표정 봐 봐.
“……….”
변호사 선배 새끼는 입을 다물었다. 그저 나를 노려볼 뿐.
할 말 없지? 그럼 내가 말하지.
“좋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쪽 말대로 과실이라고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입증을 못 하겠다고 해도, 분명히 입증해야 할 겁니다. 경찰이든, 재판이든 어디선가는.”
“…지금 일을 크게 키우겠다는… 겁니…까.”
이제야 말을 제대로 하는군. 변호사라는 새끼가 말이야.
“제대로 처리한다는 이야기죠. 그쪽 말대로 단순 과실임이 입증되고, 그 사실을 검사가 받아들인다면 기소하지 않을 테고, 재판부가 받아들인다면 무죄를 때리겠죠. 그러면 그쪽에서 사과나, 마음의 표시? 그 웃기는 마음의 표시는 할 필요도 없습니다. 잘됐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지연이를 바라보았다.
지연이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내 의뢰인께서 동의하셨다.
나는 팔짱을 끼면서 몸을 뒤로 기댔다.
그리고 뭔가 말하려는 그 변호사 선배 새끼의 입을 막기 위해 다시 말을 이었다.
“아직 말 안 끝났어요.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있었던 모든 대화 내용을 공개할 겁니다. 대자보도 붙이고, 학교 홈페이지, 학생 커뮤니티, 대나무숲, 인터넷에, 올릴 수 있는 모든 공간에 올릴 겁니다. 물론 언론에 제보도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유지연 앞에 놓인 변호사 명함을 내 손가락으로 쓰윽 끌어 내 앞에 놓았다.
천천히. 그리고 확실한 동작으로.
변호사가 침을 삼킨다. 목이 타겠지. 이 자식아.
“도촬범 가해자가 변호사를 대동하고 와서, 그건 과실이었으니 우리가 잘못한 것은 없고, 혹시 니들이 신고해 봤자 별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과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돈은 조금 줄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아. 참고로 변호사가 우리 학교 출신 선배님이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말아야겠네요. 몇 학번이십니까? 선배님. 아니. 안 알려 주셔도 괜찮습니다. 변호사가 되신 훌륭한 선배님이니, 이름만 있으면 학번도 금방 알게 되겠죠.”
변호사의 시선이 내 앞에 놓인 자기 명함을 향한다.
뭐라고 좀 씨불여 보세요. 훌륭하신 변호사 선배 새끼야!
그러나 변호사 대신 도촬범이 나에게 말했다.
“…너 이 새끼. 너 이름 뭐야.”
나를 노려보면서 씹어 삼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제야 완전히 이해가 갔다.
저 도촬범이 왜 전화기를 꺼내 다른 사람의 사진을 몰래 찍고, 업로드를 하고 주말 내내 전화를 안 받으며 피해 다녔는지.
미친놈이라서, 그냥 미친놈도 아니고, 미친놈 중에 최고 미친놈이라서 그런 미친 짓을 한 것이다.
“너…. 이 건방진 새끼! 너 몇 학번이야! 확 죽여 버린다, 씨발 새끼!”
변호사는 놀란 표정으로 의뢰인의 미친 짓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저 변호사 선배 새끼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의뢰인이 이렇게 미친놈인 줄은 너도 몰랐겠지, 이 변호사 선배 새끼야.
아니지. 변호사니까 시급 막 30만 원씩 받고 그럴 거 아냐?
돈을 받았으면 일을 시켜야지.
“형법 311조 모욕.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나는 변호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
의뢰인을 바라만 보던 변호사는 내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자신의 의뢰인을 향해 말했다.
“가만히 있어. 내가 말할 테니까….”
그렇게 도촬범을 자제시키려 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을 들으면 애초에 일을 벌이지 않았겠지.
“씨발 죽여 버린다, 이 개새끼야!”
나에게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역시.
나는 재빨리 팔로 지연이 앞을 막았다. 혹시라도 덤벼들지도 모르니까.
“조용히 해!”
변호사가 자신의 소중한 의뢰인의 양어깨를 잡고 소리쳤다.
잘 돌아가는구만. 아주 개판이야.
나는 조용히 테이블 밑으로 손을 내려 지연이의 손을 잡아 줬다.
음. 떨고 있지는 않구만.
“모욕죄는 친고죄죠. 변호사 선배님은 사건 하나 더 맡으시겠네요. 더 이상 할 말 없으시다면, 저희는 이만 일어설까 합니다. 들을 이야기도, 할 이야기도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선배 누나를 보았다.
“선배님. 저희는 이만 가 봐도 되겠죠?”
선배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와 같이 일어나며 변호사 선배 새끼를 향해 말했다.
“오늘 일은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총학 차원에서 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지연이의 어깨를 감싸며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그 둘을 따라 방을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도촬범, 도촬범의 어깨를 잡고 어쩔 줄 모르는 변호사 선배 새끼. 그리고 당황한 표정으로 어찌할지 몰라 하는 내 전 여자친구의 현 남자친구 김민우.
나는 그 모습에 한번 코웃음 치고 문을 닫았다.
***
“괜찮아? 지연아? 괜찮겠어?”
선배 누나가 지연이를 달래고 있다.
“괜찮아요, 언니.”
지연이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안 괜찮지. 이제 겨우 20살 된 여대생이 감당할 상황은 아니지.
생각하니 또 열 받네.
변호사 데려와서 법률 용어 말하면서 씨불이면 어이쿠 알겠습니다, 하면서 개쫄 줄 알았나 보지?
두고 보자. 이 개자식들.
“지연아. 미안해. 나는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사과한다고 해서 그냥 사과할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언니는 도와주려고 한 건데요.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지.”
나쁜 사람이란 말이 이렇게 착하게 들린 것은 처음이다. 저 자식들에게 나쁜 사람이라는 표현은 너무 과분한데.
“몰랐어. 주말 내내 연락 안 받고 잠수 탔다고 해서 미친놈인 줄은 알았는데, 저렇게 미친놈일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
누나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누나 잘못이 아니다. 누가 예상했겠어. 그런 상황이 될 줄은.
“그나저나. 지연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누나가 지연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이렇게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역시 신고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일도 그렇지만, 그냥 넘어가면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올 것 같아요.”
지연이가 이렇게 말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생각했어.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 총학에서도 도와줄게. 아니. 우리 쪽에서 맡아서 해 줄게. 좀 번거로워지겠지만 괜찮겠니?”
누나가 지연이에게 말했다.
“네. 죄송한데,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지연이가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생각해 보면 이 녀석, 분해서 눈물을 찔끔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쫄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잘 버텨 냈구만.
이 녀석, 알면 알수록 괜찮은 녀석이네. 어떤 자식이 데려갈지….
“오늘 한수도 고생했다.”
선배 누나가 날 보며 말했다.
“아녜요. 고생은 뭐…. 그나저나. 그… 사람은 왜 있던 건가요?”
“그 사람이라니?”
“김민우. 벽에 기대서 있던 그 자식이요.”
“한수 너 아는 사람이니?”
“네. 뭐… 어찌 저찌….”
“그렇구나. 아는 사람이었구나. 그 미친놈 친구래.”
유유상종. 제일 먼저 떠오른 말이다.
“친구요?”
“응. 뭐 도와준다고 온 것 같지는 않고, 그냥 구경 온 것 같던데?”
“그렇군요….”
암튼 그 자식이 거기 있을 줄은 몰랐네.
“오빠. 고마워요.”
지연이가 날 보며 말한다.
음…. 이쁘군. 이 녀석.
너도 그 표정 금지. 그렇게 예쁜 표정으로 고맙다는 말 금지!
“아니야. 고맙긴.”
내가 멋있게 답했다. 나 오늘 좀 멋있는 듯. 후후후.
“한수야. 괜찮으면 지연이 오늘 좀 데려다줄래?”
“네. 그럴게요.”
내가 말했다.
“아니에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뭐. 데려다 주신다면….”
“아니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 미친놈이 막 나가면…. 한수가 오늘 좀 더 고생해 줘. 아니, 당분간은 좀 지연이 봐 줄 수 있을까? 솔직히 난 걱정이 좀 되네.”
“네. 걱정 마세요. 당분간 지연이랑 같이 다니도록 할게요. 괜찮지, 너도?”
내가 지연이를 보며 물었다.
“…고마워요. 한수 오빠.”
그러면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음, 고맙다는 말도 금지.
이 자식 진짜 예쁘네. 원래 알기는 했지만.
***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
나는 지연이를 집까지 바래다주기 위해서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이 녀석이랑 집에 자주 같이 가는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얼굴 한 번 볼까 말까 그랬는데.
좌석에 앉은 지연이는 가방을 품에 안고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힘들었겠지. 놀라고 괴로웠겠지.
이제 고작 20살, 고등학교 졸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애가 감당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걸어오던 평소와 달리, 오늘은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다.
그러네. 저번에 같이 지하철 타고 집에 갈 때도, 그 몰카 사진 이야기하면서 갔었지.
그때는 의연하게, 자주 있는 일이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여 나는 괜찮겠거니 생각했는데, 괜찮을 리가 없지.
나는 손을 뻗어 지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분명히.”
아무 일 없을 거다.
다른 동기들도 있고, 유지연이 협박받았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당장 죽창을 들고 그 미친놈을 처단하러 갈 사람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리고 여차하면 나도 있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나는 지연이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의 능력은 있다.
“오빠.”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잠시 그 손길을 받아들이던 지연이는 잠시 후 고개를 들고 나에게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나는 자상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생각해 봤는데요.”
그래. 무슨 생각 했니? 우리 지연이가 어떤 생각을 했든 이 오빠는 다 지지한단다.
무슨 말이든 하렴. 다 들어 줄 테니.
“오빠는 우선 빨리 군대를 가는 게 좋겠어요. 올해는 좀 그런가? 늦어도 내년에는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응?
“어디를 가라고?”
“군대요. 오빠도 졸업하고 장교로 갈 생각이에요? 그러지 말고 최대한 빨리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지연이의 눈을 쳐다봤다.
이 녀석이 오늘 충격이 너무 컸나? 갑자기 헛소리를 하고 그러지?
“오빠가 군대를 가면 적어도 2년, 많으면 5학기는 쉬게 되는 거고, 그러면 오빠랑 저랑 한 학번 차이니까, 제가 더 학년이 높아지는 거죠.”
지연이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정신 나간 애 같지는 않은데?
“그리고 오빠는 복학하면 바로 로스쿨 준비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졸업은 내가 먼저 하니까, 오빠가 로스쿨 준비하는 사이에, 내가 취업하고 열심히 돈 벌어서 뒷바라지를 하는 거죠. 그러면 오빠도 졸업하고 로스쿨 가고.”
“어디를 가라고?”
“로스쿨이요.”
“누가?”
“오빠가요.”
“왜?”
“음…. 오늘 보니 변호사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짧은 시간에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도발할 때 아주 효과적으로 도발하고, 말로 사람 긁어 열 받게 하는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렸어요.”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태클 걸 만한 데가 많아서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감도 잡히질 않는다.
“졸업하고 장교로 갔다가 로스쿨 가는 것도 좋기는 한데, 장교는 복무 기간도 더 길고, 그렇지 않나요? 아무래도 조금 더 젊을 때, 머리가 쌩쌩 돌아갈 때 공부하는 게 더 좋고. 사실 제일 좋은 건 오빠가 군대 안 가고 바로 로스쿨로 가는 게 좋기는 한데, 그러면 제가 오빠보다 졸업이 늦으니까 뒷바라지를 못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방법은 안 되고.”
그렇게 말하더니 어이없어 쳐다보는 내 눈을 보고 말했다.
“알아요. 오빠가 무슨 생각하는지.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제가 뒷바라지하는 거 은혜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 그런 거는 걱정하지 마세요. 변호사 되면 그때부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천천히 갚으면 되니까요. 오빠는 그저 빨리 로스쿨 준비를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나는 다시 이 녀석의 눈을 바라봤다.
진심이다. 저건 100% 진심이다.
“공군이 좋을까요? 우리 친척 오빠가 공군 나왔는데, 군 생활은 조금 길어도, 다른 군에 비하면 편하다고 하더라고요. 공부할 시간도 있고.”
유지연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나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