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 D-day (1)
***
“까스! 까스! 까스!”
내가 소리쳤다.
“몇 개요?”
요리 팀 남자 후배 1이 소리친다.
“세 개! 전부 다!”
“형. 두 개밖에 안 남았어요!”
“그럼 우선 두 개 갈아. 그리고, 넌 옆집 가서 빌려 오든, 구걸해 오든, 뺏어 오든, 훔쳐 오든 알아서 구해 와!”
나는 재빨리 프라이팬 두 개를 양손으로 들어 올리며 후배 1과 2에게 외쳤다.
후배 2는 그 이야기를 듣자 재빠르게 옆 주점으로 뛰어갔고, 후배 1은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가스버너에 장착된 다 쓴 부탄가스를 교체했다.
“뜨겁다! 조심!”
“넵!”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어리바리한 이등병 같던 녀석들이, 그 짧은 시간에 노르망디와 캐렁탱을 경험한 베테랑 병사가 탄창 갈 듯이 능숙하게 가스를 교체하는 모습을 보니 참 대견하기는 개뿔!
아… 미친 듯이 바쁘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점 한쪽에서 열심히 밀가루 반죽을 휘젓고 있는 녀석. 유지연을 바라보았다.
“오빠. 이 정도면 괜찮아요?”
“괜찮아. 가져와. 그냥. 가져와.”
“아직 좀 묽은 것 같은데요?”
“가져와. 저 자식들이 원하는 건 부추전 따위가 아니야. 그냥 그거 반죽을 국자로 퍼다 줘도 괜찮아.”
저 자식들.
주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저 손님 놈 자식들.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매의 눈으로 유지연을 바라보는 저 손님 놈 자식들은 안주의 완성도 따위는 관심이 없다. 애초에, 안주를 안 가져다줘도 된다.
이게 다 그 망할 놈의 별스타그램 때문이다.
오전에 주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내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반죽의 황금비율을 전수받던 유지연의 모습을 어떤 개자식이 몰래 찍어 별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축제 주점 반죽녀’라는 이름으로 각종 커뮤니티에 사진이 퍼졌다. 얼마나 퍼졌냐고? 네이년 검색어 상위 10등 안에까지 들어갔다.
그 결과는?
개나 소나 말이나 염소나 옆집 아저씨부터 뒷집 고시생까지 전부 ‘축제 주점 반죽녀’를 보겠다고 몰려들었고, 지금 이 사달이 난 거다.
테이블?
테이블은 당연히 만석이고, 주점 앞에다 임시로 박스를 깔아서 자리를 만들었는데도, 개나 소나 말이나 염소나 옆집 아저씨부터 뒷집 고시생까지 주점 앞으로 줄을 서고 있다.
줄!
대학 축제 주점에서 줄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냐!
“오빠! 반죽이요.”
와~
부추와 파를 대충 때려 박은 밀가루 반죽이 가득 든 들통을 영차, 하고 나르는 유지연의 모습에 사람들의 탄성이 터진다.
뭐야, 이거. 지금 뭐야.
“야! 언제까지 할 거야!”
내가 이중훈에게 소리 질렀다.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할 때까지 모든 전권은 나에게 있었다. 하지만 주점이 열리면서 전권은 이중훈이에게 넘어갔다. 그 자식이 총무 팀이니까.
“가자! 계속 가자! 가즈아아아아아!”
미친놈은 양손에 돈다발을 들고 눈이 벌게져서 외치고 있었다.
노동자를 착취해 취득한 부를 향유하는 19세기 초기 자본주의의 쁘띠 부르주아지처럼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가즈아, 를 외치고 있었다.
“야, 이 자식아! 재료 다 떨어졌어!”
열심히 제육을 볶고 있는 동기 최유라가 소리쳤지만, 저 탐욕스러운 자본가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가 보다.
“형! 살려 주세요!”
살려 달라고 매달리는 후배에게 중훈이는 돈다발을 쥐여 주며 말한다.
“가서 돼지고기 사 와. 제육용으로. 가즈아아아아!”
양팔에 힘이 없다.
작년 주점할 때, 이틀 동안 부친 부추전이 100장 정도였는데, 100장은 이미 진즉에 넘어섰다. 내일까지 이 상황이면, 적어도 250, 아니, 300장은 가뿐히 넘어설 것 같다.
“야, 이 자식아! 사람 다 죽어!”
“가즈아아아아아”
죽인다. 저 자식. 죽인다.
혁명의 붉은 깃발 아래, 저 부르주아의 기름진 배때기의 프롤레타리아의 원한이 가득한 죽창을 찔러 넣을 것이다!
***
첫날 밤 9시 정도에 마무리하기로 했던 계획은 이미 어그러질 대로 어그러졌다. 11시가 가까워져서야 겨우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서 널브러진 채로, 넋 놓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백여든하나, 백여든둘, 백여든셋, 이히히히, 백여든넷…….”
이중훈만이 탐욕에 물든 벌건 눈으로 돈을 세고 있을 뿐이었다.
조달팀장 근육 바보 김창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어디가?”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모였다.
시선 끝에는 장비 팀장 박찬희가 서 있었다.
그 손에는 오늘 하루 종일 쓰였던 부엌칼이 쥐어져 있었다.
“혁명하러. 자본가에게 혁명의 붉은 식도를 꽂아 버리러.”
박찬희는 그렇게 말하고 이중훈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형! 참으세요! 이렇게 무너지면 안 돼요!”
장비 팀 후배 하나가 박찬희에게 매달리며 말렸다.
아주 쇼들을 하고 있구나.
내가 몸을 일으켰다.
“자. 모두 주목!”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인다.
이 상황을 정리할 사람은 큰일을 하기 위해 선택된 나뿐이지.
“1학년들은 지금 집에 가. 가서 쉬어. 술 먹지 말고 바로 가서 쉬어. 집이 멀거나, 힘들어서 도저히 집까지 못 가겠다는 사람은 말해. 요 앞에 방 잡아 줄게. 과방 같은 데 가서 자지 말고, 지금 말해.”
내가 말하자 1학년들이 주섬주섬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내일 주점은 6시 오픈이야. 3시까지 집합. 다들 최대한 회복해서….”
“안 돼!”
이중훈이 내 말을 잘랐다.
“뭐가 안 돼!”
하루 종일 돼지 다섯 마리 분량의 제육을 볶아 낸 동기 최유라가 소리쳤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영업 시작은 내일 12시, 점심 장사부터! 집합은 오전 10시!”
이중훈이 지지 않고 소리쳤다.
그 이야기에 박찬희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박찬희를 말렸던 후배가 그에게 부엌칼을 쥐여 주었다.
유혈사태가 나기 직전,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하는 단 한 사람. 폭주하는 자본주의의 괴물을 막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움직였다.
“중훈 선배.”
“왜…가 아니라. 응?”
날카롭게 소리 지르려던 이중훈이 유지연을 보고 급격하게 기세가 수그러든다.
그래. 저 자본주의의 괴물도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진짜 내일 10시 집합이에요? 점심 장사할 거예요? 오늘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진짜 내일 10시까지 나와야 해요?”
유지연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하지만 원망이 담긴 눈으로 이중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어. 마, 많이 힘들었지? 그, 그럼 좀… 쉬었다 할까?”
“고마워요. 중훈 선배.”
유지연의 말에 이중훈이 헤~ 하고 웃는다.
그 웃음을 보자니, 몸에 힘이 들어간다.
오늘 너무 힘들어서, 진기라고는 한 줌도 안 남은 줄 알았는데, 이중훈 저 녀석의 심장에 칼 꽂을 정도의 힘은 남아 있나 보다.
“저 자식 죽여 버릴까.”
김창회가 말했다.
“내가 먼저 찌른다.”
박찬희도 말했다.
“형. 저도 기회를.”
박찬희를 말리던 후배도 말했다.
“오빠. 저도.”
다른 여자 후배도.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이곳에서 재현되려 하고 있었다.
살인은 안 되지. 폭행은 몰라도, 살인은 안 된다.
내가 나서야겠군.
“자. 자. 1학년들 빨리 가세요. 그리고 이중훈.”
“왜?”
“돈 내놔.”
“돈? 무슨 돈? 돈은 왜!”
“애들 방 잡아 줘야 할 거 아냐!”
“그… 그렇지.”
나는 오늘 매상의 일부를 받아 1학년 대표에게 건네줬다.
“고생했다. 우선 이걸로 아무거나 좀 사 먹이고, 집에 안 가는 애들 물어보고, 저기 학교 뒤 여관촌에 가서 방 잡아. 남녀 방 따로 잡아라. 문제 안 생기게. 영수증 꼭 챙기고.”
녹초가 된 1학년 대표는 지친 몸을 이끌고 동기들을 모았다.
“자. 다들 모여 봐.”
나는 2학년을 모았다.
“우선. 이대로 두고 가자. 정리는 나중에.”
“그러자.”
애들이 동의했다.
“사우나. 사우나가 가고 싶다.”
“그리고 내일은 6시 시작. 3시 집합. 콜?”
“콜.”
다들 동의했다.
이중훈은 불만이 좀 있는 것 같았지만, 지 목숨 소중한 건 알겠지.
“집에 가자. 죽겠다. 아주.”
그렇게 힘든 축제 첫날이 끝났다.
***
그나마 비슷한 방향이라서 유지연과 나는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었다.
“헐… 저는 몰랐어요.”
지하철 안에서 유지연이 정말 몰랐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 망할 놈의 별스타그램 때문에. 진짜. 아오.”
“그랬구나. 어쩐지.”
“어쩐지? 뭐가?”
“아니. 오늘 좀 시선이…. 좀 강하구나. 그런 느낌?”
“좀 강하구나?”
“음… 제가 좀 사람들에 시선을 많이 받는 편이라서요.”
사실을 사실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다른 놈 같았으면 아, 그러셔, 하면서 좌우 원투를 날려 주겠건만, 이 녀석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루 종일 반죽하고, 접시 나르고, 요리하고, 뛰어다니느라 머리는 산발이요, 옷은 밀가루가 덕지덕지, 꾸질꾸질 지저분해졌는데도, 예쁨은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아니, 퇴색하기는커녕, 뭔가 알 수 없는 귀여움을 더해 주고 있었다.
뭐야, 이 자식.
“암튼 사진 봐 봐. 이 사진 때문에 오늘 죽는 줄 알았다고.”
나는 검색어 10위에 올라간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건 오전에 반죽 배울 때네요…. 누가 찍었을까요.”
“찾아서 고소할 거야. 형사고소. 끝나고 민사고소. 그거 끝나면 사적 제재.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사진을 찍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그나저나 넌 기분 안 나쁘냐?”
“사진 찍힌 거요?”
“응.”
“뭐. 기분 좋지는 않죠. 그래도 뭐 한두 번도 아니고….”
“한두 번이 아니라고?”
“네. 인터넷상에 제 사진 은근히 많아요. 중학교 때 사진부터. 그거 다 없애자면 진짜 돈 몇천만 원은 그냥 깨질걸요?”
“…괜찮아?”
“뭐…. 물론 기분 나쁘죠. 제 사진이 돌아다니고, 그 사진으로 뭐 할지도 모르고. 기분 나쁘고 께름칙하기는 한데. 뭐 어쩌겠어요. 이상한 합성 사진만 아니면 신경 안 쓰려고요. 나중에 시간 지나면 다 없어지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헤~ 하고 웃는다.
강하구나. 이 녀석.
그냥 20살 어린애인 줄 알았더니.
“어른이구나. 너.”
“엣헴. 저 다 컸죠.”
“그래. 이제 술도 먹고. 맞담배도 피워도 된다. 이 선배가 허락할게.”
“술은 이미 먹습니다. 그리고 담배는 안 피워요!”
“뭐 일종의 승진 그런 개념이니까.”
“좋아해야 하나요? 와. 나 이제 한수 오빠랑 맞담배 피울 수 있어요! 하면서. 근데 오빠 담배 피워요?”
“가끔씩…?”
“그래요? 몰랐어요. 피우는 모습 못 본 것 같은데.”
“뭐 술 먹을 때 가끔씩 한두 대 정도?”
“그렇구나. 몰랐어요. 근데 그렇게 가끔씩 한 대, 두 대 피울 정도면 안 피워도 상관없는 것 아닌가요? 몸에도 안 좋은데. 오빠가 아직은 젊고 건강해서 별 영향을 못 느끼겠지만, 누적되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요?”
“끄… 끊겠습니다.”
“역시, 오빠는 착하네요.”
그러면서 손으로 내 팔을 쓱쓱 문지른다.
뭐야.
이 녀석. 뭐야!
사람 설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