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 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2)
물어본다고?
나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조금 전에, 아까. 삼촌, 그러니까 기사님에게 왜 그렇게 깊게 허리 숙여 인사하셨어요?”
아까라면… 그… 내가 개싸가지가 됐을 때.
“그거는… 그게… 저기… 그… 뭐랄까….”
“혹시 아까 작은어르신 차에서 내리시기 전에 잠깐 고민하셨나요? 차에서 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데 기사님이 문을 열어 주시니 당황하셨나요? 문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겠구나. 버릇없어 보였겠구나 하고 생각하셨나요? 그래서 기사님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이신 건가요?”
뭐야. 이 여자 뭐야? 독심술사? 사이코메트러?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끄덕임을 보면서 서현 님이 미소 짓는다.
마치, 뭐랄까, 칭찬해 주고픈 어린아이에게 미소 짓는 초등학교 선생님? 아니, 어린이집 선생님? 그런 느낌의 미소.
“이런 말씀 드리면 죄송하지만.”
서현 님이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뜸을 들인다.
“당황하시는 작은어르신의 표정이 너무 귀여워 보였습니다.”
귀여웠다고요?
“현관 들어오실 때도, 지금 키를 받으실 때도, 같은 표정을, 너무 귀여운 표정을 하고 계셔서, 여쭈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실례인 줄 알면서도,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샴푸 모델 같은 머리카락이 그 동작에 맞춰 찰랑거린다.
“예상 못 하신 거죠? 이 집이라고.”
내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조금 기뻤어요.”
응? 기뻤다고요?
“작은어르신께서 당연히 여기가 새 거처겠구나. 당연히 내 카드겠구나. 당연히 내 차겠구나 하셨으면 조금 실망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작은어르신께서 당황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했고, 조금은 기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마음씨 좋은 분을 모시게 되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미소 짓는다.
아… 뭐랄까. 복잡한 기분이다.
서현 님이 웃어 주니까, 기쁘다고 하니까 나도 좋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이 집이, 저 카드가, 저 삼각별 달린 자동차 열쇠가 내 거로구나, 하고 덥석 받고 싶지 않다고 할까?
정확히 말하면 몸에 안 맞는 옷을 선물로 받은 거북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죄송해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서현 님이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아니요. 아닙니다. 저는 그저. 좀. 뭐랄까.”
“할아버지에게 혼나겠어요. 무례하게 굴었다고.”
서현 님이 살짝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신다.
아 진짜, 겁나 예쁘네.
“설마요. 모르실 텐데.”
“모르실까요?”
“모르실 겁니다.”
둘 사이에 하나의 약속이 맺어졌다. 입을 다물겠다는 약속.
좋은 시작이다.
약속이 하나씩 하나씩 생겨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지겠지.
굿 스타트!
“감사합니다. 안내해 드릴게요.”
서현 님이 그렇게 말하며 일어선다. 나도 번개같이 일어선다.
일단 따라가 볼까나?
“이 방이 작은어르신의 방입니다.”
방문을 열리고 불이 켜졌다.
방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이건 방이 아니라 강의실 크기인데요?
침대 형태를 한 거대한 무언가가 강의실 한편에 놓여 있다.
시트도 깔려 있고, 이불도 덮여져 있고, 베개 비슷한 것도 있고 하는 걸 보니 침대일 가능성이 높기는 이 공간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침대가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왜냐? 겁나 컸으니까. 몇 시간 전까지 나의 소중한 공간이었던 하숙집에는 죽어도 안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으니까.
그리고 TV. 거실 TV보다는 작지만, 거실 TV가 워낙 커서 그렇지, 저 TV도 충분히 크다. 아이맥스야?
그 옆에 초라한 내 컴퓨터.
설마 이사하면서 컴퓨터를 켜 보지는 않았겠지? 아니야. 켜 봤어도 암호가 걸려 있는데….
잠깐. 중앙그룹이잖아. 그 보안에 철저하다는 중! 앙! 그! 룹!
개미가 생각한 것보다 더 단순한 로그인 키워드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설마. 아니겠지?
그리고 그 옆에 노트북.
노트북? 저거 내 노트북 아닌데. 5년 전에 산 내 노트북, 부팅에 5분이 걸리는, 포맷하고 윈도우 다시 깔까 싶다가도 다시 잠들면 영원히 못 깨어날 것 같아서 차마 포맷을 못 하고 있는 내 노트북이 아닌데.
그리고 책상. 물론 처음 보는. 책상과 책.
음. 처음 보는 거 같은 걸 보니 저건 내 책이 맞겠구나.
5평 하숙집을 가득 채웠던 내 짐들이 강의실 만한 이 방에서는 한 톨 먼지와 같구나. 허허허.
“우선 최소 필수적인 것만 마련을 했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필요한 것이라.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할까요? 옷장?
아니. 그러고 보니 옷장이 없네? 옷장도 없고, 내 옷도 없고?
설마, 다 버렸나? 이런 싸구려는 옷이 아니야! 하면서 다 버린 건가?
잘 보니 방 안쪽에 문이 또 하나 있었다.
아, 저기가 옷장인가? 그 뭐시냐 드레스 룸인가 그건가?
그런 내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 듯 서현 님이 나를 그 문으로 이끄셨다.
문 뒤에는 옷장 대신 화장실이 있었다.
아니, 변기가 있으니까 화장실이라고 말 하는 거지, 공간으로만 봤을 때는, 절대 화장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특히, 저 욕조. 목욕탕 간판 걸고 장사해도 될 정도로 큰 욕조.
“밖에도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화장실을 바라보는 내게 서현 님이 말씀하셨다.
아니. 화장실이 또 있다고?
아니. 그건 그거고, 옷은? 내 옷은?
진짜 다 버렸나? 싸구려라고 다 버린 건가?
“그런데. 제 옷은…?”
화장실을 둘러본 내가 서현 님에게 말했다.
“집에서 입으시는 가벼운 옷은 저기에 있습니다.”
서현 님이 침대 옆, 비싸 보이는 서랍장을 가리키며 말씀하신다.
다른 옷은요?
“나머지 옷은 전부 옷 방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먼지도 그렇고, 옷은 따로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이쪽입니다.”
서현 님께서 친히 두 번째 방문으로 날 이끌어 주신다.
그리고 내 눈앞에 가득한 옷. 옷의 향연.
잠깐만. 내 옷이 이렇게 많았나?
이렇게 많을 리가 없는데? 이럴 리가 없는데? 여기 걸려 있는 옷에 10분의 1, 아니. 50분의 1도 안 되겠는데?
그리고 왜 이렇게 화려해?
이거 뭐야? 원피스, 투피스, 정장, 트레이닝복. 청바지.
“여자… 옷인데요?”
내가 말했다.
“네. 우선 제 옷하고 같이 두었습니다. 하지만 구역이 구분되어 있으니 섞일 일은 없을 거예요. 문 열고 오른쪽이 작은어르신 옷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 여기다 두면 섞일 일은 없겠다. 생각 외로 구분하기 편하네.
암튼 여자 옷은 참 종류도 많고 다양하구나…가 아니잖아!
“네? 서현 님 옷이요?”
“네. 제 옷이요. 불편하시면 따로 공간을 마련할까요?”
서현 님이 웃으며 말씀하신다.
“아니.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왜 서현 님 옷이 여기 있어요?”
“저도 옷은 입어야 하니까요.”
그리고는 몸을 빙글 돌린다.
“이 방이 제 방입니다.”
서현 님이 세 번째 방문을 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여자의 방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이쁜 침대, 이쁜 화장대, 이쁜 소품…이 아니라!
“서현 님 방이요?”
“네. 제 방입니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들어오실 때는 꼭 노크를 해 주세요.”
들어올 때 노크를 하라고? 그럼. 당연히 노크를 해야지…가 아니라!
“서현 님 방이라고요?”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죠. 제가 작은어르신을 모신다고.”
“그… 그랬죠. 아마도.”
“그래서 여기가 제 방입니다. 다시 부탁드리지만, 노크는 꼭.”
“그럼. 서현 님과 제가. 그 한… 한 지붕 밑에서. 그 도… 도… 동….”
“불편하신가요?”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불편하다뇨! 아뇨! 완전 좋습니다!
“부족합니다만, 앞으로 동거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웃었다. 싱긋.
자.
일단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그렇게 폐 안에 공기를 가득 모은 다음.
그 공기 안에 내가 지금 느끼는 모든 감정을 모아서.
몸 안의 모든 에너지를 모아서.
세상사람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외쳐 보자!
심! 봤! 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