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3화 (13/271)

13 : 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1)

서현 님과 둘이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나의 멍청함을 반성했다.

생각해 봐라. 아무리 재벌 3세라도 하더라도 이런 집에 혼자 살 리는 없다.

제일 작은 평수가 70평이라고 했다. 70평을 여자 혼자서 쓴다고?

내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아무리 재벌 3세니 어쩌니 해도 젊은 아가씨 혼자서 주상복합은 말이 안 되지.

그 말은?

가족과 함께 산다는 이야기다.

즉, 서현 님은 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날 데리고 간다는 이야기다.

가족이 있다는 말은, 라면이고, 산삼이고 나와는 인연이 없다는 이야기다.

젠장. 괜히 좋아했어.

그렇다면, 여기서 생기는 새로운 의문점.

왜?

서현 님은 왜 가족들이 있는 공간에 나를 데려가시는 것일까?

설마. 이… 인사시키러?

아이. 서현 님도 참. 우리 만난 지 하루도 안 됐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일러요.

서로 마음도 조금 더 알아보고, 몸도 좀 더 알아보고…가 아니라.

그럴 일은 없지. 그럴 리가 없지.

그럼 왜?

인사시키러? 그냥 단순한 인사?

아빠. 나 왔어. 작은어르신 모셔 왔어. 옷 갈아입고 내 차로 작은어르신 새 거처로 모셔다드릴 거야. 작은어르신 인사하세요. 우리 아빠예요.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작은어르신입니다.

말이 되냐고!

그럼 왜지? 뭐지? 지금 이 상황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41층이었다.

41층. 높은데 사시네.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은 이런 데서 못 살 것 같은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서현 님은 가방에서 카드 키를 꺼내 문에 가져다 댄다.

띠리링.

주차장 문보다는 다채로운 소리를 내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역시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문을 연 서현 님은 나를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들어가실까요?”

아… 긴장되네.

뭐라고 인사를 드려야 하나?

나는 문으로 한 발을 들이밀면서 일단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실례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자, 불 꺼진 복도만이 보였다.

응? 불이 꺼져 있어? 아무도 없나? 가족들이 아직 안 들어왔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서현 님이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는다.

와… 저 발 봐라. 와. 나는 발에 대한 페티시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 발을 보니 없던 페티시까지 생기겠네.

아무튼 신발을 벗은 서현 님이 안으로 들어가자 복도에 불이 들어왔다.

나는 인테리어의 심오한 세계는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자고로 집이라는 것은 인터넷 선이 깔려 있고, 문이 잠기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집에 대한 나의 지론이다.

그런 나도 이 집이 겁나 고급 건축자재로 지어졌다는 것쯤은 알겠다.

바닥 봐라. 뭔 대리석이 저리도 반짝반짝 하냐?

치마 입은 사람은 걸어 다니지도 못하겠네. 빤쓰 보일까 봐.

잠깐만. 서현 님. 치마 입지… 않았나?

그런 논리적인 추론을 하고 있는데 복도 안에서 뾰로롱 하는 소리가 들린다. 에어컨이 켜지는 소리다.

에어컨? 4월인데? 이 계절에 에어컨?

현관 앞에 서서 반쯤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서 있는데, 한 손에 에어컨 리모컨을 들고 계신 서현 님이 다시 모습을 보이신다.

“죄송합니다. 미리 켜 놓았어야 하는데.”

응? 뭘 미리 켜 놔?

“이 집은 창문이 안 열립니다. 환기를 위해서는 에어컨을 송풍 기능을 사용해야 해요.”

아. 그렇군요. 역시 비싼 집은 다르군요. 창문을 열 수 없다니….

“아. 그리고, 스마트폰 어플로도 에어컨은 제어 가능합니다.”

좋네요. 진짜 좋네요.

근데 왜 그 이야길 나에게…?

“들어오세요.”

그렇게 말하며 서현 님이 또 미소 지어 주신다.

왜 옛날이야기에 그런 거 있잖아.

막 겁나 미녀가 들어오라고 해서 갔는데 알고 보니 뭐 구미호였다거나, 귀신이었다거나, 악마라거나. 악한 존재가 나쁜 의도로 유혹한다는 그런 이야기.

그 이야기 교훈이 뭐냐면 예쁘다고 아무나 따라가지 마라, 그런 건데…….

솔직히 그 구미호나 귀신이나 악마나 악한 존재가 사현님이라면 무조건 따라간다. 그 끝이 지옥일지라도 따라가야지!

“넵!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재빨리 신발을 벗었다.

발 냄새는 안 나겠지. 오전에 농구 하지 말걸.

빤짝빤짝한 대리석-애석하게도 팬티는 안 보였다. 서현 님의 치마가 타이트해서가 아니라!

아무튼 대리석이 깔린 복도를 지나니, 커다란 거실이 내 눈에 들어온다.

겁나 크네. 내 자취방에 비하면 내 자취방의 몇 배 크기의 커다란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초대형 TV. 세상에. 저렇게 큰 TV가 실제로 있는 거구나. 내 컴퓨터 모니터의 몇 배야? 옆에 있는 스피커도 모니터보다 크겠다.

딱 봐도 고급이겠다 싶은 가죽 소파. 내가 한 번도 앉아 본 적 없지만 확신할 수 있다. 저 녀석은 딱 봐도 천연가죽 소파다.

겁나 큰 TV와 스피커 이외에도 여러 전자제품과 가구가 거실을 채우고 있는데도, 거실이 얼마나 큰지 답답한 느낌은 전혀 없다. 아니. 층높이가 높아서 그런가?

“우선 앉으세요. 목마르시죠? 일단 마실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멍한 표정으로 거실을 둘러보는 내게 서현 님이 말한다.

“네? 아뇨! 괜찮습니다.”

감히 내가 앉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고급스러움이 펄펄 풍기는 소파 끝에 앉으면서 내가 어버버 말했다.

“신선한 생과일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치, 나는 정해 놓았으니 너는 마셔야 된다. 그런 모드로 서현 님이 부엌으로 향했다.

주세요. 서현 님이 주신다면 뭐든 못 마시겠습니까? 신선한 생과일이든, 신선한 독이든 뭐든 마셔야죠.

부엌에서 착즙기로 예상되는 무언가가 가동되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에 다시 나타난 서현 님의 손에는 쟁반이, 쟁반 위에는 맛없어 보이는 색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토마토와 딸기입니다.”

서현 님이 내 앞에 잔을 내려놓으며 말씀하신다.

뭐든 다 괜찮습니다. 독극물이라 해도.

그렇게 생각하며, 생과일주스를 입으로 가져갔다.

아따. 시네. 시럽 안 넣으셨나 봐. 단 맛이 하나도 없어요.

본능적으로 찡그리는 내 얼굴을 본 서현 님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신다.

당신의 미소를 위해서라면 사약이라도 못 마시겠습니까?

그나저나, 왜 여기로 저를 부르셨나요?

그런 내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라도 하려는 듯, 서현 님은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고급스러운 가죽 소재의 카드 지갑이다.

카드 지갑에서 카드 두 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뭐지?

서현 님의 손가락이 맨 왼쪽에 있는 카드로 향한다.

“이게 현관 키입니다. 1층 정문, 주차장 출입문, 그리고 현관문을 열 때 사용합니다.”

그렇구나. 역시 비싼 아파트. 카드도 품격이 있어.

서현 님의 손가락이 옆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이건 신용카드입니다. 일단 한도는 3천만 원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3천만 원이라…. 퍼뜩 감이 안 온다.

내가 지금 알바하는 커피집 시급이 8,590원이니까, 3,493시간, 하루 8시간씩 하루도 쉬지 않고 436일하고, 4시간 좀 넘게 근무하면 3천만 원 버는구나.

내 체크카드에는 얼마 들어 있지? 20만 원? 30만 원?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데, 서현 님의 가방에서 무언가가 또 하나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차 키입니다. 차량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습니다.”

서현 님의 손가락이 삼각별 로고가 달려 있는 스마트 키를 가리키고 있다.

삼각별. 좋은 차 타시네요. 부럽습니다.

부러운 건 부러운 거고. 근데요?

왜 이걸 저에게 보여 주시는 거죠?

그렇게 카드 키, 신용카드, 그리고 자동차 스마트 키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설명을 마치신 서현 님은 아무 말 없이 날 보고 계신다.

감상하라고? 이미 충분히 감상했는데요?

뭐 다시 한번 더 보죠. 카드 키 고급스러워 보이네요. 신용카드 좋아 보이네요. 중앙카드군요. 중앙그룹 금융계열사 중앙카드. 차 키도 좋아 보이네요. 삼각별이 참 이쁘네요.

감상 잘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서현 님을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서현 님은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서류 파일보다 작은 크기의 상자다. 상자에는 마차의 그림과 H로 시작하는 상표명이 적혀 있다.

저걸 어떻게 읽는 거야. 헤르메스? 헐메스?

“어떤 취향이신지 몰라서, 일단 가장 심플한 디자인으로 골라 보았습니다.”

서현 님은 그렇게 말하며,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꺼낸다.

검은색, 솔직히 패션의 F도 모르는 내가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색의 지갑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현 님은 그 지갑에 아파트 카드 키와 신용카드를 넣고, 천천히 내 앞에 내려놓는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서현 님을 보고, 카드 지갑을 보고, 다시 서현 님을 바라보았다.

“안 챙기세요?”

“네?”

“챙기셔야죠.”

“제가요?”

“네. 작은어르신이요.”

“왜요?”

“작은어르신 거니까요.”

“제꺼요?”

“네.”

“왜요?”

나의 질문에 서현 님이 다시 미소를 보이시며 말씀하신다.

“카드 키는 작은어르신의 새 거처인 이 집의 카드 키이고. 이 키가 없으면 집에 들어오실 수 없으니까요. 아니. 비밀번호가 있으니, 키가 없어도 들어오실 수는 있겠네요. 비밀번호도 정해 주세요. 제가 설정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이 신용카드. 여기 이름 보세요. 작은어르신 이름이 서 있네요. 그리고 자동차 시동을 걸기 위해서는 이 차 키가 필요하니까요.”

잠깐만. 분명 한국말인데 이해가 잘 안 간다.

그러니까, 여기, 한류 스타가 살고 있는 이 겁나 큰 갤러리 포레스트가 회장님이 말씀하신 내 새로운 거처고, 내가 하루 8시간씩 436일을 연속으로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 한도로 설정된 신용카드에 내 이름이 박혀 있고, 저 삼각별 달려 있는 차 키가, 아니, 지하 주차장에 있는 삼각별 차가 내 차다. 이 말씀이신가요?

나는 이 모든 내용을 함축해 다시 물었다.

“네?”

“말씀드렸잖아요. 새 거처.”

“여기가요?”

“여기가요.”

“왜요?”

내 질문에 그녀의 입가에 다시 웃음이 걸렸다.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미소와는 다른 미소였다.

그 전까지의 미소가 뭐랄까…. 그 중앙그룹 회장님 비서실 비서의 미소였다고 한다면, 지금 미소는 온전히 강서현이라는 사람이 보여 주는 미소라는 느낌이다.

뭐 둘 다 겁나 예쁜 미소임에는 분명하지만, 확실히 무언가 다르다.

뭐랄까. 조금 더… 사랑스러운?

뭔 소리야? 지금!

“작은어르신. 하나만 여쭤볼게요.”

서현 님이 사랑스러움이 담겨 있는 미소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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