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9화 (9/271)

9 : 치트키 봉인! (3)

서초동 중앙그룹 글로벌센터. 일명 JAGC.

40만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중앙그룹의 본사이자, 전 세계에 깔려 있는 중앙 네트워크의 글로벌 헤드쿼터.

그 앞에 내가 서 있었다.

와…. 진짜 드럽게 크다.

중앙그룹의 사원증을 목에 걸고, 강남역에 내러 중앙그룹 글로벌센터로 출근하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야 뭐 사실 아직 취업이라는 것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많은 청년들이 이곳을 목표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주변에도 중앙그룹의 사원증을 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사람 중 남자 한 명이 나를 슬쩍 쳐다보면서 지나간다.

마치 ‘난 꼭 중앙그룹에 들어갈 거예요.’라고 다짐하는 애송이를 보는 눈빛이다.

헐…. 저 인간이!

느그 회장 어딨어?! 강 회장 데꼬 와! 니… 내 누군지 아나? 으잉?! 내가 이 쉐꺄. 느그 회장이랑 임마! 느그 회장, 서초동 출근하제? 으잉?! 내가 임마 느그 회장이랑 임마! 어저께도! 같이 밥 묵고 으! 싸우나도 같이 가고 으! 마 개이 섀꺄 마 다 했어! 이 새끼들이 말이야…. 개쉐키들.

그만하자.

그나저나, 오기는 왔는데, 이제 어쩐다. 그냥 안내 데스크 가서, 저기요. 저 회장님 만나기로 했는데요. 그래야 하나?

될 리가 있냐!

검은 양복 두 사람이 내 팔을 잡고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상상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보인다.

어쩌지? 어떻게 하지?

전화번호는 아는데. 이 번호로 걸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여자가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겁나, 거어어어어어어어업나 예쁜 여자가.

세상에. 강남역 가면 예쁜 여자 많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진짜 저렇게 예쁜 여자는 스물한 해를 살면서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허리부터 골반을 거쳐 다리까지 아름다운 곡선을 고대로 드러내는 스커트는 마치 저 여자분을 위해 만든 옷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혹스러우면서도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뿜뿜 뿜어내고 있었다.

스커트만 예쁜가? 밝은색 니트 계열의 상의는 또 상체의 곡선을 아름답게 표현해, 여체 곡선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흉부의 아름다움을 숨기면서도 강조하는 마술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저 옷을 디자인한 디자이너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다.

아니. 얼굴에 비하면 아름다운 곡선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얼굴에서 빛이 났다. 그 빛이 너무나도 강렬해, 직접 바라보다가는 눈이 멀 것 같지만, 눈이 먼다 해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그런 아름다움의 결정체!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니.

매일 학교에 처박혀 있다가 그 유명한 강남역에 나오니 이런 신세계가 있을 줄이야!

안 되겠다.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열심히 공부해서 중앙그룹에 입사해야겠다.

그리고 사내 커플이 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사내 커플 말이지.

슬쩍슬쩍 지나가면서 몰래 신호를 주는 거야. 우리만의 비밀 약속 장소에서 만나자. 그런 신호를….

그리고 우리만 아는 은밀한 장소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거지.

비상계단? 아니. 거기는 위험하지. 어디 없을까?

잠깐만. 여기는 핸드폰 카메라에도 스티커를 붙인다는 중앙그룹의 헤드쿼터잖아. CCTV 없는 공간이 있을까?

아씨. 그게 뭐가 중요해. 일단 있다고 치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가 빼꼼 나타나는 거지. 그리고 약간 토라진 얼굴로, 회사에서 자꾸 이러면 들킨단 말이야. 뭐 그런 말을 하는 입술에 그냥! 기냥! 아우. 그냥 막!

그렇게 막 영화의 첫 신을 완성해 가던 그때!

그 여자가, 그 아름다운 여자가. 아주 심하게 아름다운 여자가 점점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 설마?

점점 더 다가온다.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 뒤에 누군가 있는가 싶어서.

아무도 없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확실히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눈을 바라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 여자의 가슴에 사원증이 걸려 있었고, 걸어오는 충격에 따라 사원증이 왔다 갔다 하며 양쪽 가슴을 툭툭 치고 있다.

저 볼륨감!

한국인에게 허용되지 않은 저 DNA!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을 떼야 하는데, 뗄 수가 없었다.

‘야, 이 미친놈아. 당장 거기서 눈을 떼고, 도망쳐!’

이성이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신체에 대한 지배력은 감성이 가져간 지 오래였다.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녀가 다가온다.

눈을 뗄 수가 없다.

확실히 나를 향한다.

그걸 알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나는 이제 끝장났다.

신문에 나올 거야. 한국대 재학 중 성희롱범 체포. 학교에 소문이 나겠지. 승환이 그 자식이 온 사방에 내 이야기를 하고 다닐 거야. 분명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니까!

안녕. 중앙그룹. 안녕. 미래의 내 여친. 안녕. CCTV 없는 어딘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시겠습니다.”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여자가 나에게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네. 가까이서 보니까 아름답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커…. 커험. 흠.

잠깐. 그게 아니지.

“…기다리셨다고요?”

내가 물었다.

“네. 한수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수. 성은 한, 이름은 수. 내 이름 맞지.

그런데 이 여자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에게 미소를 보여 주었다.

와. 진짜, 뻥 아니고, 그녀를 가질 수만 있다면, 아니, 언감생심, 가지기는커녕, 옆에 있을 수만 있다면, 세상 모든 즐거움을 포기할 수 있다. 식욕? 수면욕? 명예욕? 그깟 헛된 욕망 따위 당장 포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와… 씨. 엉덩… 와. 씨. 와… 진짜. 와.

나는 결심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내가 가진 신력으로.

저 옷을 만든 디자이너에게 상을 줘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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