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치트키 봉인! (1)
다시 서울로 올라오고 며칠이 지났다.
세상이 말 그대로 천지개벽하고 며칠이 지났지만. 내 생활에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하숙집에서 깨어났고, 하숙집 할머니가 만들어 준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공강 시간에 동기 놈들과 게임방에 갔고, 가끔은 수업시간이 되었어도 째고 계속 게임을 하기도 했다.
알바도 그대로 했다.
커피가 쓰네, 시네, 하면서 온갖 진상을 피우는 손님 놈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지어 보여야 했고, 지가 뛰다가 지가 넘어져 우는 아이에게 사과하라며 소리치는 엄마들에게도 허리를 굽혀야 했다.
하지만 나는 능력을 쓰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면 능력을 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
지각했을 때는 날아가고 싶었고, 게임에서 미친놈을 만났을 때는 직접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고, 진상손님들에게는… 음… 음… 뭐 아무튼. 그랬다.
하지만 나는 참았다. 그런 유혹들을 견뎌 냈다.
왜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닌 한 능력을 쓰지 않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했으니까.
나는 내 하숙방으로 돌아온 그날, 아주 깊게 생각했다. 심사숙고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능력을 남발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이유를 찾았다.
그 첫 번째는 우선 할아버지였다.
버스 사건을 계기로, 내가 능력을 쓰면 할아버지가 바로 알아차린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모든 능력을 알아채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할아버지의 말을 빌리면 천지 만물과 삼라만상을 주재하는 능력 같은 경우 무조건 빼박 걸리는 것 같다.
할아버지가 무서워서?
아니다. 나는 할아버지를 사… 사… 사라… 뭐. 그렇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거칠고, 나에게는 유독 거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섭섭한 마음 같은 것은 없다. 나는 행복하게 자랐다고 생각한다. 사랑 속에 컸다고 확신한다.
할아버지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다. 그게 솔직한 마음이다.
거기에 힘을 가졌다고, 할아버지 말마따나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어서 할아버지의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는 치트키의 결말이 어떤지 알기 때문이다.
내 능력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치트키이다. 돈, 사람, 사회, 자연환경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치트키를 쓰면 게임은 편해지지만, 게임 자체에 대한 재미가 소멸한다.
마찬가지로, 이 능력을 당연시하면 내 삶은 망가진다. 치트키를 쓰면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내 인생도 망가진다.
무엇보다, 나보다 먼저 치트키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은 할아버지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멋’ 때문이다.
멋. 간지. 뽀대.
능력이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는다. 위급한 상황일 때,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만 사용한다.
이 얼마나 개간지 나는 신념인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좋다. 그것이 언성 히어로(Unsung hero)의 삶이고 멋이고 뽀대고 간지 아니겠는가.
크으. 자뽕에 취한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스스로 능력을 봉인하고, 평상시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뭐…. 일단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모르지. 후후후.
***
인문관으로 올라가는 도로 벤치에 앉아 나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잘못된 결정이 아니었을까?
치트키를 썼다고 게임이 망가지나? 아니지 않나? 막 남발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적당한 치트키는 괜찮은 거 아닐까?
따지면 MSG 조미료도 일종의 치트키 아냐. 요리의 치트키.
적절히 사용하면 그 음식의 맛이 막 풍부해지고 그러는 거 아냐?
그치? 그러니까 적당히 쓰면 되지 않을까?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청각기관을 통해 뜨거운 공기가 훅 하고 밀려 들어왔다.
“하안수우야아~”
“으아악!”
나는 소리를 지르며, 본능적으로 내 귀에 입김을 불어넣은 누군가를 향해 팔꿈치를 휘둘렀다. 내 팔꿈치는 허공만을 갈랐을 뿐, 묵직하고 통쾌한 무게감은 느끼지 못했다.
“야! 이 미친놈아!”
나는 내 귀에 바람을 불어넣은 범인에게 소리쳤다.
내 팔꿈치를 피해 낸 범인은 뒤로 한 발 물러서서 혀로 입술을 핥고 있었다.
박승환,
동기, 그리고 친구 비슷한 거.
“그렇군. 역시 귀가 성감대였군.”
그렇게 말하면서 또 혀를 낼름.
“아오, 저 미친 새끼….”
“내가 사람들에게 잘 전달해 주도록 하지. 우리 한수는 귀가 성감대라서 귀에 숨을 불어넣으면 꼬추가 땡땡해집니다.”
나는 마음을 정했다.
능력을 써야겠다. 국가와 민족중흥을 위해 저 자식은 지워 버려야 한다.
내가 막 신력을 동원해 승환이 놈의 모가지를 비틀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 박승환이 말한다.
“수업 없지? 피시방 가자. 내가 쏜다.”
쏜다고?
“라면도 쏜다.”
라면까지?
그래. 자고로 예수께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지. 내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자고로 성인의 말씀은 따르는 것이 좋겠지.
잠깐만. 나 신이라며? 그러면 그쪽 집안 이야기는 들으면 안 되는 거 아닐까?
“…갑자기 왜 그러냐? 로또라도 된 거냐?”
“로또? 당첨 확률 2.36%, 낙첨 확률 97.64%의 바보들만 내는 세금 말이냐?”
뭐야? 당첨 확률이 그거밖에 안된다고? 진짜로?
“오호라. 한수 네놈의 얼굴을 보아하니, 일확천금의 헛된 꿈을 꾸는 바보가 여기 있었구나.”
박승환이 내 눈을 보며 말한다.
“구라지? 대충 아무 숫자나 말한 거 아냐?”
내가 물었다. 그럴 리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로또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당첨 확률일 리가 없다.
“어허. 참으로 부끄럽구나.”
박승환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뭐… 뭐가!”
“1부터 45까지 중에서 여섯 개의 숫자를 순서 상관없이 맞춘다. 당첨 확률이 어찌 되는고?”
그 정도야 껌이지! 이 자식아. 나도 수능 쳐서 한국대 들어왔다고! 확통 초반부에 배우는 콤비네이션이잖아. nCr. 엉!
마흔다섯 개에서 여섯 개를 뽑는다. 그러면 45C6, 그러니까 45P6을 6팩토리얼로 나눠 주면….
그러니까… 그러면… 잠깐만. 이게 암산으로 계산이 되는 거야?
“팔백십사만오천육십분의 일.”
박승환이 말했다.
나는 놀람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박승환을 바라보았다.
그런 나를 웃음 띤 얼굴로 바라보면서 박승환이 계속 말했다.
“다섯 개 번호가 일치하고 한 개의 보너스 번호가 맞으면 당첨되는 2등은 1등보다 6배 확률이 높으니까, 1,357,510분의 1. 3등은 35,724분의 1, 4등은 733분의 1, 5등은 45분의 1. 1등부터 5등까지의 당첨 확률이 2.36%. 그 중에서 5등 당첨 확률이 2.22%, 즉 1등부터 4등까지의 당첨 확률이 0.14%.”
이 새끼. 이거 외웠다. 분명히 술자리에서 잘난 척하고 싶어서 외운 거다. 확신한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생이 어찌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로또라는 도박에 목숨을 건단 말이더냐.”
“목숨 안 걸었어! 이 자식아! 오천 원 자동일 뿐이야! 목숨 같은 거 안 걸었어! 임마!”
내가 항변했다. 하지만 박승환은 그런 나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는 우리 한수가 한국대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참 궁금해. 국립대라 잔디 깐다고 들어올 수는 없었을 텐데 말이지.”
“이 자식아! 나 정시로 들어왔어, 임마!”
내가 외쳤지만 박승환이 이 자식은 그런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나에게 다가와 어깨에 팔을 척 하고 올렸다.
“괜찮다. 그런 거 부끄러운 거 아니다. 귀가 성감대라는 비밀은 못 지켜 줘도, 내가 우리 한수 부정 입학했다는 비밀은 지켜 줄게.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 아니냐. 가자. 친구야. 겜방 가자. 우리의 낙원으로 같이 가자꾸나.”
“미친놈아 수업 있어.”
나는 승환이의 팔을 쳐 내면서 말했다.
수업이 없다고 해도 지금 이 자식이랑 겜방 가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끝없는 도발이 이어질 것이고, 내가 이 자식의 머리에 알록달록 LED가 반짝반짝하는 게임용 키보드를 박아 넣을 것 같으니까.
“수업? 무슨 수업.”
박승환이 마치 처음 듣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유 선생님. 너는 빡쎄다고 신청 안 한 그 수업. 임마.”
“그 냥반 어차피 출석 안 부르잖아.”
“열다섯 명 수업이니까 안 부르시는 거지. 한 명 빠지면 바로 보여, 임마. 그리고 딴 수업은 몰라도, 그 수업은 안 빼먹어!”
학생들 사이에서 유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유주원 교수님.
이 시대에 살아 있는 마지막 학자, 마지막 선비.
고등학교 때 유 선생님이 쓴 책을 읽고 감동을 제대로 먹었다. 그리고 꼭 이런 훌륭한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는 몰랐지. 이 양반이 이 양반이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한국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을 줄이야.
열심히 공부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카페인 중독과 수능 전 과목 1등급이라는 성적표를 맞바꿨다.
“아무튼 난 수업 간다. 겜방은 너 혼자서 쓸쓸히 가라. 가서 파밍 잘하고, 전자 발찌 꼭 찾아서 차고 다니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어깨에 둘러멨다.
앞으로 이 자식을 멀리 해야지. 그렇게 마음먹으면서.
막 강의실로 발을 옮기려는데, 박승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자식 차다.”
박승환이 정문에서 올라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 끝에는 차가 한 대 올라오고 있었다.
아우지인지, 아부지인지, 아무튼, 독일 자동차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문 두 개짜리 스포츠 쿠페가 시끄러운 배기음을 울려 대면서 학교를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쿠페는 학교 내 도로 속도제한 표지판을 비웃기라도 하듯 빠른 속도로 내가 서 있는 벤치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내 전 여자친구와 운전석에 앉아 있는 그녀의 현 남자친구를.
“배기음이 상스럽군.”
승환이가 멀어져 가는 쿠페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수업이나 들어갈란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더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괜찮은가, 친구?”
그런 내 뒷모습에 대고 박승환이 말했다.
“닥치고. 겜방이나 가세요.”
“암튼 이래서 CC는 괴로워. 내가 그래서 CC를 안 하는 거야. 그럼!”
“어련하시겠습니까. 어서 전자 발찌나 파밍 하러 가세요.”
“너 없이 뭔 재미냐? 원래 게임할 때 허접 하나 끼고 해야 재미있는데.”
“허접 같은 소리 한다. 유 선생님 수업 끝나면 바로 내려갈 테니 좀 가라. 이제 좀.”
나는 손을 흔들며 강의동으로 향했다.
그런 내 귀에 다시 박승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선생님에게 잘 보여 봐. 따님이 엄청나게 예쁘다는 소문이 있어.”
그래? 그건 또 금시초문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