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마른하늘에 날벼락(靑天霹靂) (3)
“잘 보아라.”
할아버지의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켰다.
내 시선도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늘을 중심으로 구름이! 아주 시커먼 먹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흘러내리는 코피를 막는 것도 잊은 채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먹구름? 조금 전까지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할… 할아… 할아… 할아버지. 저… 저거… 저게… 저거….”
“이놈아. 눈이 삐었구나. 어디가 맑은 날씨더냐?”
할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무언가 모를 비웃음이 담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느낌 따위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먹구름이 계속 커져 가고 있었으니까.
먹구름은 계속 크기를 더해 갔다. 점점 커져 읍내 전체를 덮을 정도로 커졌다. 커지면서 우르릉 소리를 내는 것이, 미친 듯한 소나기가 내릴 낌새였다.
그러나 나는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을 다니는 이성적인 사람이다. 이성적인 사람으로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로 결정을 내렸다.
“국. 국. 국.”
아 씨. 뭐더라. 분명히 배웠는데.
할아버지가 ‘이놈이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생각이냐’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기억났다! 국지성 소나기! 게릴라성 호우! 그래. 그거. 상층과 하층의 기온차가 극명할 때, 느닷없이 발생하는 그, 그거!”
내가 소리쳤다.
종교와 미신의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과학의 시대다!
그렇게 외치는 나를 할아버지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뭔가 불안하다. 바둑 둘 때, 숨겨 놓은 한 수가 있을 때 보여 주던 표정이다.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그러더니 할아버지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저것이 무엇이냐?”
할아버지의 손가락은 마당 한쪽에 세워져 있는 내 스쿠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 보물 1호.”
100cc 엔진의 국산 스쿠터.
서울로 올라간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두고 있지만, 열심히 조이고 닦아서 아들 낳으면 물려주고, 죽기 전에 유언으로 손자에게도 물려주라고 할 나의 보물 1호.
중고였지만, 저놈을 사는 날 얼마나 행복했던가!
“잘 보거라.”
할아버지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 순간 번쩍 하는 섬광과 함께, 벼락이 내렸고, 내 보물 1호에 직격했다.
아니, 직격한 것 같았다. 나는 뒤로 발라당 넘어졌으니까.
설사 넘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벼락이라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아무튼, 섬광이 번쩍, 그리고 조금 뒤에 온 천지를 진동하는 콰과과과과과광!
천둥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코피를 질질 흘리며 창문에 매달렸다.
마당에는 나의 보물 1호가, 불붙은 채로 뒤집혀 있었다.
마치, ‘과학 조까! 종교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어!’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너의 보물 1호는 지금 역사가 되었느니라.”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창가에 매달려서, 불타고 있는 나의 보물 1호, 아니, 이제는 역사가 되어 버린 나의 옛 보물 1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앉거라.”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다. 과학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세상을 바꾼 것은 과학이다! 이성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할아버지의 손가락 하나에 먹구름이 끼고, 번개가 치고, 내 스쿠터가 생명을 다했다.
하… 하지만, 백 번, 아니, 천 번, 만 번 양보해서 우연이라고 쳐도….
지근거리에 번개가 떨어졌는데, 스쿠터를 제외하고는 피해가 없는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있나?
“앉거라.”
다시 할아버지의 말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불타는 내 보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마… 말이 되는 거야? 이게?”
그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무형의 힘이 나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억지로 무릎을 꿇렸다.
처음 그 자세, ‘가업을 이어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자세로.
“한 번 말해선 듣지를 않는구나.”
뭐야? 바… 방금 그건 뭐야!
분명 무언가 물리력이 작용했다. 그런데 그 실체가 없다?
“꾸… 꿈인가?”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과학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신을 신봉하다 인류의 진보를 더디게 만들었던가.
이 상황은 절대로 현실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꿈일 수밖에 없다.
좋아.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고, 꿈에서 깨어나면 분명 서울의 내 하숙방일 거야.
꿈이야. 꿈인데, 코가 왜 이렇게 아프지?
휙.
그 순간 할아버지의 스트레이트가 또 한 번 터졌다.
하지만 나는 피해 냈다.
생각한 것이 아닌데도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 스트레이트를 피해 냈다.
경험의 위대함이여!
하지만 조금 부족했다.
할아버지의 펀치가 내 귓바퀴를 스쳤다.
아프다!
분명히 스쳤는데!
귀가 뜯겨 나간 것처럼 아프다!
꿈인데!
분명 꿈인데!
이렇게!
이렇게 아프다니!
“으아아악!”
나는 귀를 감싸 쥐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분명 손바닥에는 내 머리에 붙어 있는 귀가 느껴졌다.
하지만 귀가 뜯겨 나간 것처럼 아프다! 아파도 너무 아프다!
그때, 다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셋.”
셋? 숫자 셋? 셋 다음에는 넷?
“둘.”
줄어들었다. 셋에서 둘로,
그럼 그 다음은 하나…?
카운트다운이구나!
나는 벌떡 일어나 다시 무릎 꿇고 앉았다.
너무 아파서, 코와 귀가 너무 아파서 막 데굴데굴 구르고 싶은데, 그러면 더 아프게 될 것 같아서, 아니! 확실히 아프게 된다. 아주 아주 아프게 된다.
“이제 이 할애비 말을 믿겠….”
“믿어요! 믿습니다! 믿고말고요!”
나는 온몸으로 동의했다.
믿어야 한다. 안 믿으면 아프다. 죽을 만큼 아프다.
“…쯧쯧. 성인이 된 놈이 이리 약해 빠져서야.”
약해 빠져요? 저 지금 귀 뜯겨 나간 줄 알았는데요?
“조금 아프다고 그리 호들갑을 떨면서 어찌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자신하건대, 내 모든 재산과 왼손, 오른손모가지에 양 발목을 걸어도 좋다.
방금 귀를 스친 그 스트레이트, 어른이 아니라 누가 맞아도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다.
솔직히 나 정도나 되니까, 바닥을 구르는 정도에서 끝난 거지, 심력이 약한 사람이었다면, 삼도천 건너가 저승사자 손을 잡아도 이상하지 않다!
“참으로 걱정이구나. 어쩌다 후손이 이리 불민한지. 쯧쯧. 조상님 볼 낯이 없구나.”
조상님도 이 펀치 맞으면 아프다고 했을 겁니다!
“어찌 됐든. 이제 네가 가업을 이어 다음 대(代) 수호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암요. 그럼요. 제가 가업을 잇겠습니다. 수호신이고 책방이고, 제가 전부 다 맡겠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갑자기 말을 딱 끊었다.
그러나. 이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가.
“너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기엔 아직 너무 부족하구나. 그러하기에, 당분간 모든 능력을 개방하지 않고, 유예기간을 두도록 하겠다.”
잠깐만. 지금 뭔가…. 듣기 좋은 단어가 할아버지 입에서 나온 것 같은데? 능력? 개방?
“느… 능력? 능력이요?”
“그렇다. 지금 천둥벌거숭이 같은 네놈에게 수호신 역할은 아직 버겁구나.”
아니. 할아버님. 중요한 게 그게 아니라. 그 단어. 능력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조금 더 심도 깊게 이야기 해 보자고요.
“능력이라 하심은…?”
“수호신은 말 그대로 신이다. 신에게 신력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뭣을 묻고 있는 것이냐?”
당연하다? 당연하다고?
“그… 그러면, 저, 저도 할아버지처럼 막 구름 만들고 번개 쏘고 그럴 수 있단 말씀이신가요?”
할아버지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지만물과 삼라만상을 다루는 능력은 아직 너에게 이르구나. 그 능력은 당분간 봉인이다.”
“그… 그럼 무엇을 할 수 있는데?”
“무엇을 하고 싶으냐?”
“그… 그러면, 뭐 예를 들어, 아 그냥 단순한. 지금 막 생각난 건데. 뭐랄까. 그. 뭐냐. 그거 저기… 그 뭐… 투명…인간 같은 거?”
할아버지의 한심하다는 눈빛이 벌레를 보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아니. 아니. 뭐 투, 투명인간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그냥 막 머릿속에 떠오른 건데…요.”
“네놈에게 가업을 물려줘도 되는지 고민이 되는구나.”
“그렇죠? 투명인간은 안 되겠죠? 그건 과학적으로도 말이 안 되니까.”
투명인간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모든 사물은 빛을 반사해 색을 표현한다. 그것이 우리가 보는 가시광선의 세계이다.
그래서 투명인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체가 그 빛을 반사하지 않고 통과시켜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린다.
당연히 그 안에는 각막도 포함된다.
물리적 유기물인 신체가 빛을 통과시킨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지만, 설사 된다고 치더라도 투명인간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유용성이 제로이다. 투명인간을 왜 하려고 하는 건데!
“이런 것 말이냐.”
그러더니 갑자기 할아버지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갑! 자! 기!
“어? 어! 할아버지?”
“왜 그러느냐.”
분명 눈앞에 아무도 없는데, 소리는 들린다.
나는 조심스럽게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자리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 지금 여기 계세요?”
“쯧쯧. 뭐 하나 제대로 보는 것이 없구나.”
“그럼 할아버지. 저기. 그. 뭐냐. 나 보여요? 볼 수 있어? 지금 내가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숫자가 뭔지 알아?”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하나를 표시했다.
그리고 두 번째 펀치.
보이질 않으니 피할 수 없다.
나는 뒤로 세 바퀴를 굴러 벽에 처박혔다.
그리고 외쳤다.
“쩐다! 대박! 개! 쩐다!”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만질… 수도 있다.
“쯧쯧쯧. 어찌 저런 놈이 우리 집안에 나왔을꼬.”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할아버지는 처음 그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나는 아픔 따위는 상관 하지 않고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럼. 그럼 그 뭐 예지력 같은 것도 있어? 막 내일 일어날 일?”
벌레를 보는 눈빛이 시체를 보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헉. 이건 위험한데.
“…에휴. 다 업보로구나. 자식을 잘못 키우고, 손자를 잘못 키운 나의 업보.”
할아버지는 담배를 꺼냈다. 나는 재빨리 불을 붙여 드렸다.
사랑하는 우리 할아버지.
“빨리 죽으라고 불붙여 주는 것이냐?”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내가! 우리 할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수족이 되어서 모시고 싶구만. 나 대학 그만둘까? 아니. 당장 그만둘게. 여기 내려와서 우리 할아버지 모시고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어요!”
나의 그런 말에 할아버지는 피식하고 웃음을 보였다.
할아버지에게 손자 애교만 한 게 또 없지!
이 타이밍이다!
“근데 예지력은?”
“…로또라도 사려고 하느냐.”
“로또는 무슨. 아니. 뭐 토토도 있고, 경마도 있고, 그 주식도 있고, 옵션도 있고.”
“다른 건 몰라도 옵션만은 안 될 말이다. 이놈아!”
할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내 머리! 내 뇌가 남아 있나? 나 머리 날아간 거 아냐? 이마 위로 내 머리 아직 있나?
“으아아아아악!”
나는 다시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놈을 어찌할꼬.”
나는 방안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보지 못했다. 느꼈다.
“그래. 매를 아끼면 손자를 망치는 법이지.”
그런 말이 들려왔다.
연속기가 들어온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나는 사커킥을 피하지 못했다.
아니, 못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내 의식이 끊겨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