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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을 이어라-2화 (2/271)

2 : 마른하늘에 날벼락(靑天霹靂) (2)

눈물이 났다.

하나뿐인 할아버지이다. 하나뿐인 가족이고, 하나뿐인 육친이다.

어릴 적 돌아가셨다는 부모님은 기억에도 없다. 할아버지 혼자서 나를 키우셨다.

여자 하나 없는 집안에서 사랑으로…. 응? 사랑으로? 뭔가 어감이 이상한데.

아무튼… 키워 주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하나뿐인 할아버지가!

노망이 났다.

눈물이 난다.

이제 겨우 대학교 2학년인데!

이제 내 청춘이 막 시작인데!

할아버지 똥 기저귀를 갈아야 할 운명이라니!

눈물이 난다.

“왜 우느냐?”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할아버지가 물었다.

“할아버지.”

나는 눈물 젖은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불렀다.

“말해 보려무나.”

“할아버지 걱정 마. 나 할아버지 안 버려. 요양병원에도 안 보낼게. 내가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꼭 모시고 살게.”

그래. 대학이 뭔 대수냐. 배움에 나이가 뭐가 중요하냐? 나중에 10년, 20년이 지나 그때 다시 다니면 되지.

하지만 연애는 해야 하는데. 젊었을 때, 하루라도 젊었을 때, 연애도 하고, 그것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나중에 나이 먹고, 발기부…. 아무튼, 딱딱하고 쌩쌩할 때, 연애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어라?”

아니다. 하나뿐인 육친이다. 금수도 길러 준 은혜를 아는데, 어찌 사람이 욕망 앞에서 천륜을 저버리랴.

그래. 요즘, 약도 좋다잖아. 안 서면 약 먹으면 되지. 그때 되면 과학이 더 발전했을 거야.

나는 마음을 다 잡았다.

“괜찮아. 정권 바뀌면서 치매 노인에 대한 정책도 좋아졌다고 나 뉴스에서 봤어. 대학 그까이꺼 휴학하면 되지. 뭐 늦어지면 다시 재입학하면 되지. 걱정 마. 내가 할아버지 모시고 살 거야.”

굳은 결심을 할아버지에게 전달했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보고 계신다.

이해한다.

눈물 어린 나의 고백에 할아버지도 분명 감동했을 것이다.

아니지. 지금 상태가 약간 안 좋은 것 같은데, 내 이 진심 어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치매 초기라면 그래도 제정신일 시간이 더 많을 텐데 말이야.

“수야.”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응. 할아버지.”

“고개를 들어라.”

그래. 고개를 들자. 웃어 주자. 웃는 모습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자.

“응, 할아버….”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드는데 눈앞에 무언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느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빠르기가 아니니까.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할아버지의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내 코에 작렬했다.

물리 법칙에 따라 내 몸이 뒤로 날아갔다.

“이 녀석이 보자 보자 하니까. 뭐? 치매? 치이~매애? 네 이놈! 이 할애비가 지금 노망났다고 말하는 게냐!”

뒤로 날아가는 와중에도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청각신경을 파고들었다.

할아버지는 사랑으로 날 키워 주셨다. 거친 사랑으로. 아아아아주우우우 거친 사랑으로.

그런 사랑 속에서 커 온 나이기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려 피해 면적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몸을 굴렸다.

왜냐고?

오른손 스트레이트, 그리고 이어지는 사커킥. 할아버지가 자주 사용하는 콤비네이션이었다.

내 예상대로, 할아버지의 발이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날카로운 풍압이 내 몸을 할키고 지나간다.

사커킥을 피해 냈다. 콤비네이션을 파훼했다.

음. 아주 잘 컸군.

“어쭈? 이놈 봐라?”

할아버지는 몸을 굴려 피하는 나를 보며 자세를 잡았다.

찍기 준비 자세. 발뒤꿈치로 찍어 들어오는 필살기!

필살기에 왜 ‘필살(必殺)’이라는 접두사가 붙었겠어? 막거나 피할 수 없으니까.

“아니, 잠깐! 타임! 타임! 잠깐만!”

나는 재빨리 손으로 T자를 만들었다.

막 오른쪽 다리를 반원으로 돌리려던 할아버지는 나의 외침에 발을 멈추었다.

하지만 저 다리에는 아직 힘이 들어가 있다. 내기해도 좋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요! 어제 갑자기 전화해서 내려오라고 하고서는! 우리 가업은 수호신이다. 그러면, 아. 우리 집 가업은 수호신이었군요. 제가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이 나라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허허. 이놈 봐라.”

나는 보았다. 할아버지의 왼쪽 장딴지에 힘이 들어가 근육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나는 알았다. 오른쪽 다리를 들어올리기 위한 준비 작업이 끝났다는 것을.

“생각해 봐요! 할아버지가 내 입장이었다면!”

먹혔다.

올라가던 할아버지의 오른쪽 다리가 멈췄다.

“차라리 가업이 킬러라고 하면 믿겠어. 대대로 국정원의 의뢰를 받아 전 세계를 뛰어다니는 독립요원 그런 거라고 해도 믿지! 그건 사람이니까! 그런데 수호신 가문이고, 가업이! 가! 업! 이! 이 땅을 수호하는 것이라면 그걸 어떻게 믿어? 아, 진짜! 할아버지! 쫌!”

내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이 카드로 막을 수 없다면 어떠한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다.

판사의 의사봉을 바라보는 사형수의 눈으로 할아버지의 발끝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간절한 외침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할아버지가 천천히 다리를 내렸다. 그리고는 다시 양반다리를 하고, 처음 자리에 앉았다.

살았다!

하지만 안심해서는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빠른 행동이 요구된다.

나도 재빨리 몸을 일으켜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코피가 무릎 위로 뚝뚝 떨어진다.

코피로 끝난 거면 다행이다. 코뼈가 걱정인데….

“그래. 아직 아둔한 네 녀석이라면 믿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어찌해야 이 녀석의 어리석음을 깨우칠꼬….”

깨우치기는 무슨! 수호신은 신이잖아!

“그러니까 저기, 할아버님.”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물론, 할아버지의 두 주먹에 신경 쓰면서.

앉아 있을 때는 발보다 손이 먼저 나온다. 경험을 기반으로 한 통계다. 과학이다.

“그래. 우둔한 네 녀석에게는 열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 주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지.”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젠장. 이러면 손이 나올지 발이 나올지 모르는데.

발이겠지. 발이 먼저일 거야.

그렇게 경계하고 있는 나를 지나쳐 할아버지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창문을 열었다.

“이리 오너라.”

할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나는 최대한 엉덩이를 뒤로 빼고, 여차하면 막거나 도망가야 하니까. 그런 엉거주춤한 자세로 슬금슬금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 보더니, 다시 시선을 창문으로 돌렸다.

“날씨가 어떠하냐?”

날씨가 어떠하냐고? 구름 한 점 없는 초여름 날씨, 그 자체입니다요.

“맑은데요….”

“눈이 있어도 보지를 못하는구나.”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을 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뻗어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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