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1화 (1/271)

1 : 마른하늘에 날벼락(靑天霹靂) (1)

할아버지가 말했다.

근엄한 표정으로.

내 표현으로 하자면 잔뜩 ‘똥폼’을 잡고서.

“너도 이제 가업을 이어야 할 때가 왔다.”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 대답 없이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아니, 당연히 단어의 담긴 의미는 전부 이해했다.

문제는 내용이었다.

가업? 가업을 이으라고?

“응?”

한참 시간이 지난 후의 내 반응이었다.

“이놈! 방금 할애비의 말을 듣지 못했느냐.”

할아버지가 더 엄한 표정으로, 내 표현으로 하자면 짜증이 묻어 있는 똥폼으로 소리친다.

아. 저 표정 나오면 귀찮아지는데.

“아니. 듣기는 들었지. 가업을 이으라고. 근데,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가업이라니요. 우리 집에 무슨 가업이 있어. 설마…. 우리 서점? 코딱지만 한 그 책방?”

한가서고(韓家書庫).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우리 집의 유일한 수입원.

우리 집은 지방의 작은 도시, 도시라고 하기도 민망하네. 아무튼 ‘시’보다는 ‘읍’이 더 잘 어울리는 작은 도시가 내 고향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이곳, 시내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릴 적에는 손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 손을 잡고 동화책을 사러 오는 애기들도 있었고, 전과나 참고서를 찾는 어린애들도, 매월 정기적으로 잡지를 사가는 어른들도 있었다.

물론 책을 훔치다 걸리는 중고생도 가끔 있었고.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사람들이 찾질 않았다.

전국에 인터넷이 깔리면서 사람들은 책 대신 마우스를 잡았고,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마우스 대신 스마트폰을 들었다.

당연히 책방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가끔 할아버지 친구들이 책을 한 두어 권 사가기는 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나는 요 몇 년간 책이 팔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나야, 지금이야 대학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 있으니, 진짜 손님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생계를 유지할 정도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가진 전 재산과 손모가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망해가기 직전’에 걸겠다.

“이 책방을 물려받으라고요? 학교 그만두고, 내려와서 책방 물려받으라고요? 나 작년에 대학 입학해서 이제 2학년 됐는데? 이 망하기 일보 직전에, 아니, 진즉에 망한 이 책방 때문에 학교 관두라고요?”

“이노옴! 어디 말을 함부로 하느냐!”

할아버지가 조금 더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큰소리로 꾸짖었다.

할아버지의 분노를 이해한다. 할아버지는 이 책방을 사랑했다.

당신이 아직 청년이던 시절, 고향에 내려와 책과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결심하고 서울에 모든 것을 두고 왔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하셨다.

“귀한 손주 놈이라고 오냐오냐 키웠더니. 어디 말을 함부로 하느냐!”

목소리의 톤이 변했다. 사극인데 정통 사극 톤으로.

음. 몸을 좀 사려야겠군. 사극 톤은 일종의 경고 시그널이다. 여차하면 상황이 악화된다. 아주 악화된다.

“죄송합니다. 소손이 불민하여 말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바로 납작 엎드렸다. 20년간 살아오면서 배운 생존의 기술이다.

“이 할애비가 자랑이 있다면 하나는 고향에 지식을 심은 이 책방이고, 또 하나는 너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침에 있어서 노력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예의범절을 가르치셨다고요? 뭘로요? 폭력으로요?

“소손. 명심하겠습니다.”

누가 보면 사극 찍고 있네 하겠구만. 하지만 어쩌겠어. 일단 살아야 할 거 아니야!

“가업이라 함은 책방이 아니다. 이 책방은 나의 집이고, 나의 정원이며, 또한 나의 무덤이니, 너에게 갈 곳이 아니다.”

책방이 아니라고? 그럼? 우리 집 가업이 있어? 할아버지 투잡이었어? 아닌데? 맨날 책방에서 재미없는 책 보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잖아?

“너도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알 때가 되었다. 우리 가문의 가업은.”

가업은?

“이 땅을 수호하는 것이다.”

“네?”

“못 들었느냐?”

“아니…. 듣기는 들었는데. 뭔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뭐…라고 하셨죠?”

“우리 가문은 이 땅의 수호신이다. 그러니 이 땅을 수호하는 것이 우리 가문의 가업이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 얼굴에는 어떠한 웃음기도, 장난기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진지한 얼굴을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 내 머리 속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망했다!

할아버지가!

하나뿐인 할아버지가!

노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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